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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이 누구여?" 광주도 화순도 무관심… 중국 관광객들만 신났다
택시기사 "광주 시민들 정율성에 관심 없어… 보존지역 되면 개발 막혀" 불만
능주초 '정율성 기념교실' 방문객 80% 이상이 중국인… "교육 침해되고 있다"
정율성 고향집 관리인 "관광객 수 굉장히 적어… 그나마 중국인이 종종 방문"
광주시 "역사공원 설립 취지, 관광 콘텐츠 개발"… 예산안 세부 자료는 공개 안해
▲ 뉴데일리 취재진이 25일 전라남도 광주시와 화순군에 '정율성 기념사업'과 관련해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현장을 방문했다. 사진은 '정율성 기억교실' 모습ⓒ정상윤 기자 |
"정율성이 누구에요? 살기 바쁜데 주민들은 그 사람이 누군지 잘 몰라요."
'공산당 나팔수' 정율성(1914~1976)을 기념하는 일부 지자체 사업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현지에선 정율성이라는 인물이 누군지 모르는 주민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율성이 유년시절을 보낸 전남 화순군 측은 "그의 업적 덕에 우리 지역에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온다"고 홍보를 하고 있지만, 실제 주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정율성 기념사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광주광역시의 시민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지난 25일 뉴데일리는 광주시와 화순군에 위치한 △정율성 고향집 △정율성 거리전시관(정율성로) △정율성 생가 △능주초등학교 등을 둘러보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본지가 이날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전남 화순군 능주면에 위치한 능주초다. 정율성은 8세에 능주공립보통학교(현 능주초)에 입학해 2년을 다녔다.
능주초는 '기억교실', '벽화·흉상' 등을 설치해 정율성을 기리고 있었다. 정율성 기억교실은 1922~1923년 당시 교실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이다. 정율성에 대한 관련 자료들이 함께 전시돼 있다. 정율성을 형상화한 모형이 교실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모형은 마치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을 연상케 했다.
▲ 25일 찾아간'정율성 기억교실 방문일지에 중국인 관광객들의 서명이 가득하다. ⓒ정상윤 기자 |
학교 관계자는 "정율성 기억교실은 우리 학교 자체의 교육활동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학교 건물에 남는 교실이 상당수 있기 때문에 대여 형식으로 해서 외부에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정율성 기억교실'은 화순군이 정율성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15년 하반기 조성했다. 들인 예산은 무려 7600만원이다.
학교 관계자는 "방문일지를 보면 가끔 중국 관광객들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학교 기관이다 보니 그렇게 많이 오지는 않고, 특별히 학교에서 관리하는 것도 없다"고 했다. 중국인들의 방문에 대해선 "학생들의 교육이 이뤄지는 곳인데 관광객들이 그렇게 오면 상당히 (교육이) 침해되는 부분이 있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실제 방문일지를 살펴보니, 기억교실 방문객의 80% 이상이 중국인이었다.
▲ 능주초등학교 외벽 정율성 초상화와 흉상의 모습. ⓒ정상윤 기자 |
또한 화순군은 능주초 외벽에 8100만원을 들여 가로 10m, 세로 11m 모자이크 형식의 대형 '정율성 초상화'를 그려놨다. 학교에는 정율성 흉상도 설치됐는데, 화순군은 흉상 주변에 담쟁이를 심고 가로등을 설치하는 등 관광지 분위기를 내기 위해 정비사업을 진행했다. 흉상 설치 비용은 2400만원이다.
정율성 흉상 뒷면에는 당시 제작에 관여한 전완준 화순군수, 조유송 화순군의원, 전남대학교예술연구소 등의 이름이 기재됐다.
전완준 전 군수는 5건의 전과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4년 건축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원, 2005년에 상해로 벌금 200만원, 2010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2017년 1월과 11월에는 근로기준법 위반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위반으로 각각 벌금 300만원과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특히 전완준 전 군수는 2022년 5월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 운동을 하면서 지지를 호소하는 전화 ARS 음성메시지 8만6500여 건을 4차례에 걸쳐 선거구민에게 발송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정율성 흉상 옆에는 다음과 같은 건립 취지문이 쓰였다.
<동아시아 현대음악의 최고 반열에 오른 능주초등학교가 낳은 위대한 음악가 정율성 선생,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팔로군행진곡' '옌안송' 등 300여 곡의 주옥같은 선율을 남긴 작곡가요, 아시아에 희망을 선사한 혁명가인 선생의 뜨거운 조국애와 열정적인 예술을 기리며 그 호연지기의 기상을 후배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다.>
▲ 25일 방문한 정율성 고향집의 모습. 의문의 말 조형물도 눈에 띈다. ⓒ정상윤 기자 |
'정율성 고향집' 12억 들였다더니… 뜬금없는 말 조형물, 축음기만 덩그러니
능주초에서 차로 5분 거리엔 정율성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20평 남짓의 '정율성 고향집'이 전시돼 있었다. 해당 공간에는 관련성이 떨어지는 말 조형물과 축음기 한 점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본지가 확보한 '중국인 관광명소화(정율성 관련) 사업내역서'에 따르면 전남 화순군은 2017~2018년 12억원(국비 6억원, 군비 6억원)을 들여 이곳에 사업을 추진했다. 사업비는 주로 전시관 1동, 관리사 1동, 주차장 설치, 진입로 정비에 투입됐다.
또한 화순군 계약정보공개시스템을 통해 확인된 세부 사업비 항목은 △포토존 설치(2101만원), △외부조성공사(1607만원) △전시컨텐츠 제작(4854만원) △신문형 홍보물(2016만원) △무인경비용역(96만원) △안내판 제작(2090만원) △방염방충사업(2087만원) △무인경비용역 유지보수(132만원) 등으로 총 1억4983만원이 정율성 고향집에 사용됐다.
사업 취지는 "정율성의 성장지를 복원해 한중 우호교류의 교두보를 마련하고 주자묘(朱子廟)와 연계한 관광상품 개발로 중국 관광객 유치한다"고 적시됐다.
이와 관련, 화순군청 관계자는 "2016년부터 군은 정율성과 주자묘를 연계해 '관광명소화'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다"며 "현재 군은 문화유적지 등을 유지·관리 위주로 맡고 있다"고 했다.
'정율성 고향집'과 관련해선, "정율성이란 인물을 기억하고 보존해서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고취하고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한 것"이라며 "말 동상은 '과거 정율성이 중국에서 말을 탔다'라는 얘기가 있어 갖다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공간을 관리하고 있는 관리인은 "이 곳은 2018년도에 만들어졌고, 원래 민간 개인주택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사실 근무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접촉했는데, 주민들은 정율성 선생에 대해 그리 자세히 알지 못한다"며 "관광객은 대부분 중국인이고, 간혹 오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리어카를 끌고 주변을 지나던 한 70대 여성은 정율성을 알고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누구길래,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냐"고 되물으며 "왜 이 집을 지어 놨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정율성 고향집' 앞에 위치한 전남화순경찰서 능주파출소 관계자는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연세가 많지만 정율성에 대해선 잘 모른다"며 "파출소가 관광지 앞에 있다 보니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관광객들이 종종 들어온다. 솔직히 여기에 볼거리는 없다"고 말했다.
능주초 주변에 위치한 능주교회 관계자는 "여기에 정율성 관광지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듣는다"며 "근처에 조광조 유배지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봤는데, 정율성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 '정율성로' 거리 모습. ⓒ정상윤 기자 |
광주에 울려퍼지는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 주민들 "여기가 중국이냐"
취재진은 광주시 남구 양림동 양림2단지 휴먼시아 옆에 조성된 정율성 기념거리도 방문했다. 광주 남구 역사문화마을 코스로 지정된 '정율성 기념거리' 홍보물은 시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었다.
광주시민들은 관심 없다는 듯 지나가기 바빴다. 한참을 지켜보자 노래가 나오는 버튼을 눌러보는 노인 한 두 명이 시야에 들어왔다.
버튼 위에는 '옌안송', '팔로군행진곡', '우리는 행복해요',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는데 버튼을 눌러보니 실제 노래가 흘러 나왔다. 광주시 길거리에서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와 팔로군행진곡을 들어보니 어색함이 느껴졌다.
▲ 정율성이 바위에 걸터앉아 만리장성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정율성 부조'의 모습. ⓒ정상윤 기자 |
버튼을 누르던 70대 주민은 노래를 들어보니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묻는 취재진에 "(조형물을 보니)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모르겠다"며 "정율성 부조를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든다"고 소견을 전했다. '정율성 부조(浮彫)'는 정율성이 바위에 걸터앉아 만리장성 너머를 바라보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정율성로(路) 근방에 거주하는 60대 주민은 "정율성에 대해 주민들 대다수가 잘 모른다"며 "중국에서 유명한 노래를 만들었다는 정도만 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중국 사람들이 동네에 오면 시끄러울 때가 종종 있다"며 "문화재 보존지역이라고 해서 이 동네는 재개발도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이 곳 사람들은 오히려 '정율성 거리'가 손해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한 택시기사 역시 "시민들은 정율성에 대해 관심 자체가 없다"면서 "플래카드를 보고 알게 된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전 대통령)이 정율성에 대해 얼마나 알았겠냐, 당연히 모르지"라며 "광주시에서 하도 검토해보라고 문서를 올리니까 마지못해 (기념사업을) 진행한 거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젊은 세대는 정율성이건 정치건 관심이 아예 없다, 야구에나 관심이 있지"라고 혀를 찼다.
▲ 공사 중인 '정율성 생가'의 모습. ⓒ정상윤 기자 |
공산당 나팔수를 세금으로 기념… '정율성 역사공원' 48억원 투입
광주 동구 불로동 C호텔에 인접해 있는 '정율성 생가'는 논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불로동 정율성 생가 부지에 광주시는 48억원을 들여 역사공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광주시청으로부터 입수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추진현황' 자료에 따르면, 역사공원의 설립 취지는 '관광자원 콘텐츠 개발 및 시민의 문화·관광 휴식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비사업 추진'이다.
사업은 2018년 10월부터 올해 12월 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장소는 동구 불로동 164-1 외 5필지로 부지면적은 988.8㎡다. 소요 예산은 토지보상비 35억원, 시설비 13억4700만원을 합한 48억4700만원이다.
▲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대상지와 사업구상도 모습. ⓒ광주시 |
2019년 당초 계획된 예산은 38억원이었으나, 토지 보상 갈등 등으로 일정이 늦어지면서 사업비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정율성 유적지 정비사업을 위한 역사공원 조성사업 기본계획' 자료에 따르면 앞서 정율성 역사공원에 사용될 사업비의 세부 내역은 다음과 같다.
△생가복원(1억2800만원) △리모델링(1500만원) △관리동 신축(7800만원) △철거비(5100만원) △정자(2000만원) △보상비(23억6600만원) △토목 및 조경비(9억9200만원) △설계·감리비(1억5000만원)로 각각 사업비가 책정됐다.
광주시 관계자는 "호텔 로비 정면에 있는 '정율성 생가' 주변에서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라며 "정율성 생가는 리모델링하고 주변은 시민들을 위해 공원으로 정비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가에 있는 주택 개보수 비용, 부지 매입비, 공원 조성 등 총 비용은 48억원이 맞다"면서도 10억원이 증액된 새롭게 편성된 예산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됐는지 여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진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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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공원 추진하는 정율성… '6·25 원흉' 저우언라이의 사위였다
주은래(저우언라이) 비서이자 양녀 정설송(딩쉐쑹)… 1941년 정율성과 결혼
정율성, 김일성의 연안파 숙청 때 저우언라이 도움 받아 중국으로 귀화
광주 中총영사관, 홈페이지에 "정율성은 中 유명 작곡가" 중국인으로 소개
▲ 북한 대외선전용 화보 '조선' 4월호는 1일 '인류자주 위업, 사회주의 위업의 승리적 전진을 위하여' 제하 기사에서 김일성 주석 생일(태양절) 111주년(4월 15일)을 앞두고 그의 대외활동을 조명했다. 사진은 1970년 4월 김 주석과 저우언라이 전 중국 국무원 총리. 2(북한 대외용 화보 '조선' 2023년 4월호 캡처) ⓒ연합뉴스 |
광주 출신 중국 3대 '혁명 음악가' 정율성(鄭律成·정뤼청)이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의 사위였다는 사실이 주목받으면서 광주시가 강행하고 있는 정율성기념공원 조성사업'과 관련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율성은 1941년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비서이자 양녀인 딩쉐쑹(丁雪松)과 결혼했다. 딩쉐쑹은 중국 관영매체인 신화통신의 첫 평양 주재 특파원, 중국의 첫 여성대사(네덜란드·폴란드 주재)를 지낸 중국공산당(중공)의 유력인사다.
정율성의 장인인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둥(毛澤東)·류사오치(劉少奇)와 함께 '중공의 트로이카로' 군림한 중공의 2인자였다.
마오쩌둥이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 1966년부터 10년간 대대적으로 '문화대혁명'(문혁)을 진행할 때 저우언라이는 '일타삼반(一打三反)운동'이라는 정치적 마녀사냥을 기획했다. 일타삼반운동은 중국 공산당이 문혁 과정에서 '반혁명분자'로 낙인찍은 지식인들 최대 20만 명을 마오쩌둥의 승인 아래 학살한 사건이다.
저우언라이는 '한국전의 원흉' 중 하나로 꼽힌다. 6.25전쟁 당시 북한에 군수물자를 지원하고 구체적인 전술, 전투법까지 지시했기 때문이다. 1950년 4월부터 12월까지 9개월간 작성된 외교 전문 31건에 따르면 저우언라이는 국군의 '서울 수복' 8일 전인 9월20일 당시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이었던 김일성에게 "무조건 38선 이북을 지키라"고 지시하며 "적군(연합군)과 정면대치는 손실이 크니, 기동성을 발휘해 적군의 약점을 찾아내고, 연대나 대대 단위로 격리시켜 3~5배의 병력과 2배의 화력으로 궤멸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화력과 장비가 우수한 미군을 공격하기 어렵다면 이승만 꼭두각시 부대(국군) 공격에 주력해 몇 개월마다 1, 2개 사단을 없애라"며 "미제(미국 제국주의)의 종들이 사라지면 미군은 고립되니 그때 각개격파하라"고 김일성에게 지시했다. 10월14일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폭격기 지원을 요청했고 소련 공군 참전에 따른 중국군과의 지휘체계에 대한 지침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저우언라이의 사위이자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의 작곡가인 정율성을 주광주중국총영사관(中華人民共和國駐光州總領事館)은 홈페이지에 특집 코너까지 마련해 기리고 있다. 중국총영사관은 해당 코너에서 정율성을 "중국의 유명한 작곡가"로, 정율성의 아내 딩쉐쑹은 "신중국의 첫 여(女)대사"로, 딸 정소제(鄭小提)는 베이징바로크실내(北京巴羅克室內)합창단 단장이라고 소개한다.
중국총영사관은 "중국 항일전쟁이 발발한 이후 정율성은, 가슴에 열정을 품고, 1937년 10월에 서둘러 연안(延安)으로 가서 계속해서 섬북공학(陝北公學)·노신(魯迅)예술대학 음악과에서 공부했다"고 전했다. 중국총영사관의 설명에는 빠져 있지만, 정율성이 당시 중국 공산당 실세인 마오쩌둥(1949년 주석으로 취임)·저우언라이(1949년 총리 취임)·주더(朱德, 1946년 인민해방군 총사령관, 1949년 부주석 취임)·왕쩐(王震, 1988년 전 부주석 취임) 등을 만난 것도 노신(魯迅)예술대학 음악발표회에서였다.
정율성은 1938년 중국인민항일군정대학(中國人民抗日軍政大學) 음악 지도자, 노신음악대학 성악교사가 되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1939년 1월에는 중국 공산당에도 가입해 훗날 중공 인민해방군 군가(중국인민해방군진행곡)가 되는 '팔로군 대합창'(팔로군 진행곡'과 '팔로군 군가' 포함)을 작곡했고, 1942년 8월 태행산(太行山) 팔로군(八路軍) 총사령부 업무에 파견돼 조선혁명군정학교에서 교무부장을 맡아 '조선의용군행진곡' '혁명가' 등을 창작했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자 정율성은 중국 공산당 당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아내와 딸(정소제)을 데리고 연안을 떠나 12월 북한 평양에 들어갔다. 1946년 황해도 도당위원회 선전부장, 1947년 조선인민군구락부 부장(군대문화부장)을 맡아 조선인민군 협주단을 창설하고 단장을 겸임했다. 1949년 조선국립음악대학 작곡학부장을 지내며 '조선해방행진곡' '조선인민행진곡' '조중친선(중소친선)'과 ' 동해어부' '두만강' 등을 작곡했다.
정율성은 6·25전쟁 시기인 1950년 9월 장인인 저우언라이의 지시로 중국으로 소환됐다가 12월 한국전에 중공군으로 참전해 위문공연단을 조직해 중공군과 북한군을 위한 전선 위문활동을 했다. 그러다 1951년 김일성이 연안파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숙청을 시작하자 불안을 느끼고 저우언라이의 도움을 받아 1956년 중국으로 돌아가 귀화했다.
1976년 12월7일 베이징에서 고혈압으로 사망해 '중국혁명열사묘'에 묻힌 그는 중국 공산당이 200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선정한 '신중국 수립 영웅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중국총영사관은 "'중국인민해방군진행곡'은 소리가 힘 있게 울리는 리듬과 장엄하고 엄숙하며 씩씩한 곡조, 순수하고 간결한 언어로써 인민군대의 형상을 깊이 묘사했고, 인민군대의 용왕매진한 전투기질과 위력이 대단한 기세를 표현했으며, 중국인민해방군의 전투력과 정치업무의 하나의 구성부분이 됐다. 1988년 7월25일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에 '중국인민해방군군가'로 정식으로 확정됐다"고 정율성이 작곡한 중공 인민해방군 군가를 높이 평가했다./ 조문정 기자
신원식 "홍범도 장군 흉상 논란… 문재인 전 대통령이 근원이다“
"북한이 주적이라는 우리 군 대적관 허물기 위한 文의 큰 그림"
"홍범도 장군과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 홍범도 장군이 1922년 1월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가한 당시 레닌과 면담 후 레닌의 하사품 모젤 권총을 차고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연합뉴스(반병률 교수 제공) |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29일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기간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것을 언급하며 "굳이 대한민국 반공전선의 최선봉이자 호국간성의 요람에 흉상을 설치한 것은 우리 군의 대적관(主敵 북한)을 허물기 위한 큰 그림의 일환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신 의원은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홍범도 장군 흉상을 굳이 육사에 설치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오늘날 논란을 부른 근원"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최근 국방부가 육사 충무관 앞에 설치된 홍범도 등 독립투사 5인의 흉상을 보다 적합한 장소로 이전할 방침을 밝혔고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조치인데 이에 관한 소모적 논란이 격화돼 본질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네 가지 근원점 문제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신 의원은 먼저 "군사시설에 특정 조형물을 설치하거나 기설치된 조형물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전적으로 당시 정부와 군 지휘부의 재량권적 사항으로 정치권이 의견 제시는 할 수 있지만 가타부타 정치공세를 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한 육사는 역사관·박물관이나 독립기념관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육사는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호국간성(護國干城) 양성 기관이라는 기원을 짚은 것이다. 그는 "조국수호 반공전사 양성이 육사의 본질적 기능이자 정체성이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는 독립기념관에서 예우하고 육사에는 육사의 본질적 기능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물을 기리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홍범도 장군에 대해선 "항일운동 공로도 있지만 결국엔 소련 공산당에 종사하다가 생을 마쳤고 그래서 국민 사이에 그 행적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고 했다. 신 의원은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굳이 대한민국 반공전선의 최선봉이자 호국간성의 요람인 육사에 그 흉상을 설치한 것은 우리 군의 대적관을 허물기 위한 큰 그림의 일환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은 취임 초 육사 교과 개편을 지시했고 육사의 제1정체성에 해당하는 6.25전쟁사 등이 필수에서 선택과목으로 바뀌었다"고 역설했다. 이어 "그 결과 70% 생도가 6.25전쟁사도 배우지 않고 임관하게 된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그는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볼셰비키 홍범도' 흉상을 육사에 설치한데 이어 2019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국군의 뿌리가 남침의 주역인 김원봉이라고 국군 정신전력 해체의 결정타를 날렸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그 직후 6.25전사자와 천안함희생자 유족 등 보훈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해서 굳이 문 전 대통령 부부가 북한 김정은 부부와 손잡고 찍은 사진을 테이블에 올려놓아 천안함 유족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부연했다.
▲ 문재인 전 대통령. ⓒ이종현 기자 |
다음으로 신 의원은 "육사는 출입이 통제되고 주로 사관생도들의 교육·생활·의식·행사가 이뤄지는 장소인 반면 독립기념관은 대중이 자유롭게 왕래하는데, 어째서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을 정체성에도 맞고 보다 많은 국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로 옮기는 것이 그 분들을 폄훼하는 것이 되나? 만일 그렇다면 이미 독립기념관에 흉상이나 동상이 설치된 주인공들은 대한민국에게 홀대받고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신 의원은 "5명의 독립투사들을 꼭 육사에 모셔야만 최고의 예우라면 일제 강점기뿐 아니라 5000년 동안 900여회의 외침 극복 과정에서 명멸한 을지문덕, 강감찬 등 수많은 명장들도 다 모셔야 형평에 맞지 않은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더욱이 지금처럼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등 5인의 독립투사 흉상만 육사에 설치해 놓는다면, 그 원칙과 기준이 뭐냐는 논란이 불가피한 것 아닌가? 윤봉길·이봉창 의사 등 여기서 빠진 다른 항일 독립투사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분들의 유족이나 기념사업회 분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신 의원은 글을 마치면서 논란을 해소할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육사 졸업생 중에서 6.25 전란 극복 과정, 그 후 3000여회에 달하는 북한 군사도발 대응 작전, 베트남전 참전 등의 과정에서 전사 및 순직한 분, 영웅적인 희생정신을 발휘하신 분들의 명패를 제작해서 생도들이 자주, 쉽게 볼 수 있는 공간에 명예의 전당을 조성해서 설치하자"고 했다.
이와 함께 "육사의 명예를 고양했거나 발전에 기여한 분들의 흉상이나 동상 설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경우를 대비해 사전에 그 원칙과 기준을 명확하게 정해 놓아야 한다"고 했다. 신 의원은 "나아가 최종 선정 과정에서는 반드시 육사 총동창회와 육사 출신 현역 장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겪는 소모적인 논쟁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 의원은 육사 37기로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합참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예비역 중장이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육사 생도대장을 지내기도 했다.
한편, 홍범도 장군은 1920년 일제를 상대로 성과를 올렸다고 평가받는 봉오동전투(6월), 청산리대첩(10월)의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자유시 참변과 이후 행적은 독립운동의 공(功)을 상쇄한다는 평가가 따른다. 자유시 참변은 1921년 6월28일 소련 스보보드니(자유시)에서 일제의 사주를 받은 소련이 한국 독립군을 유인해 학살한 사건이다. 소련 적군과 고려혁명군 정의회 산하 고려혁명군(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 등 통칭)이 편입과 무장해제를 거부하던 고려공산당 상해파(사할린부대) 한인 독립군을 포위해 무차별 학살한 변이다. 홍범도 부대는 당시 고려혁명군을 택했다. 홍범도 장군은 자유시 참변 직후 대한의용군 등의 잔병을 처리하는 재판 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후 홍범도 장군은 소련군 대위로 편입된 뒤 25군단 조선인여단 독립대대 지휘관으로 승진했다.
오창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