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마의 종류와 형태 ◈
가마는 조그만 집 모양의 탈것으로
그 안에 사람을 태우거나 물건을 싣고 앞뒤에서 둘 또는 네 사람이
멜빵을 걸어메고 옮기는 것이지요
지금으로 말하면 소형 승용차로 비견될수 있겠지요
그러나 보통 앉아있을 공간만 안에 갖추어진 경우가 대부분 이었으나
침대나 웬만한 가구들까지 갖추어진, 작은 집 수준의 초대형 가마도 존재했어요
이 경우 16~64명 수준의 대규모 인원이 운반하며
이용자는 대부분 제국의 황제 수준의 거물들 이었지요
대표적인 경우가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 제국 정복 과정에서 마주쳤던 아타우알파의 가마
주성치 주연의 영화 녹정기에서 황제가 타는 가마의 크기와 운송수단으로 이용되는
대규모의 인력이 잘 묘사되어 나오지요
또한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전국을 떠돌때의 가마 또한 초대형 이었지요
우리나라는 신라의 기와에 가마와 같은 모습의 무늬가 새겨져 있고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가마에 앉은 부인의 모습이 있어서
역사학자들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가마가 존재했으리라 짐작하고 있어요
그러나 가마의 형태나 종류 등은 그리 정확히 전래되지 않다가
고려시대를 걸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가마는 그것을 타는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됨으로써
신분에 따라 가마의 종류와 이름이 다양하게 나타나지요
물론 어떤 가마든 상관없이 신분이 매우 높은 사람들의 이동수단으로 이용됐어요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가마의 형태는 조그마한 집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사극에서 보이는 사각형의 상자 모양에 지붕을 얹어 덮고 정면에 문을 달아
그것을 들고 내리며 사람이 출입하는 형태가 바로 그것이지요
아무래도 아녀자들이 얼굴을 내보이기 꺼리던 사회니만큼
여자들은 가마에 한해서 완전히 밀폐된 것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고 있어요
가마가 그것을 타는 사람의 위세를 대변하는 것이라 했는데
이는 하급관리로 계층이 내려갈수록 자신보다 낮은 하층민에게
더욱 위세를 과시하는 경향이 나타나서
장보교(帳步轎)는 가마의 네 모서리에 각각 기둥을 세우고 네 면에 휘장을 둘러
자유롭게 꾸미거나 뜯어낼수 있도록 화려하게 변해갔지요
가마는 남성의 경우 일반적으로 벽과 지붕이 없이 개방되어 있는 교자(轎子)를
주로 사용했는데 현대에 비유하자면 나름 오픈카라고 할수도 있어요
왕이 타던 어가(御駕) 역시 지붕은 있어도 벽은 없었지요
일반 가마의 육면체 아래쪽에는 가마채라고 하는 두 개의 긴 막대를 나란히 덧대어
가마의 앞뒤에서 두 사람 또는 네 사람이 손으로 들거나 끈으로 매어 가마를 운반했어요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의 품계에 따라 수레나 가마를 타는 데 차등을 두었던
교여지제(轎輿之制)가 있었어요
그리고 가마를 타고 대궐의 문안에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삼정승과 조선 말기의 청나라 공사에 한정되었지요
조선시대 부터 가마는 교여지제 즉 타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종류가 나뉘어 지는데
임금이 타던 연(輦)과 가교(駕轎), 왕녀가 타던 덩(한자로 덕응:德應)
일품 관리와 기로(耆老)(예순 이상의 노인)가 타던 평교자(平轎子)
정2품 판서급 관리와 재상이 타던 사인교(四人轎)
종2품 이상 관리가 타던 보교(步轎)와 초헌(軺軒)(종 3품의 관리가 타는 외바퀴 달린 가마)
정3품 참의와 승지가 타는 (사극에 등장하는 의자 모양의 위가 트인 가마) 남여(籃輿)
하급 관리가 타던 장보교(帳步轎)
물건을 나를때 사용하는 채여(彩輿), 갸자 등이 있어요
혼인날에 신부가 타고 친정에서 결혼식장으로 갈때 타는 가마 역시 평교자이지요
또 조선시대 가마제도에는 크게 왕실용, 양반용, 서민용및 의례용으로 나뉘고 있어요
왕실용 가마에는 여러가지 연(輦),여(輿),교(轎), 거(車) 등이있어
상황에 따라 알맞은 것을 선택 하였지요
이중에서 연(輦)은 왕이 타는 가마로 난가(鑾駕), 난여(鑾輿), 옥연(玉輦)이라고도 하지요
또 공주나 옹주가 타던 덩(덕응德應) 팔인교(八人轎)가 있어요
양반용 가마에는 평교자(平轎子) 종2품관 이상이 타던 높은 외바퀴 수레인 초헌(軺軒)
위에 포장없이 의자처럼 생긴 남여(藍輿),쌍마교(雙馬轎)
혼인때 사용하는 사인교(四人轎), 보교(步轎), 독교(獨轎) 등이 있지요
또 상중에 상주가 타는 삿갓가마(초교(草轎)도 있어요
그리고 서민은 혼례용으로 가마와 보교(步轎)를 이용하였지요
의례용으로는 왕실의 채연(彩輦), 채여(彩輿), 용정자(龍亭子), 축로차(逐虜車)와 상여(喪輿)
요여(腰輿) 그리고 절에서 재를 올릴때 쓰는 연(輦)이 있어요
가마를 메고 갈 때는 권마성(勸馬聲) 소리를 냈어요
권마성이란 임금이 말이나 가교를 타고 거동할 때나
봉명관(奉命官)·수령 및 그들의 부인이 쌍교(雙轎)를 타고 행차할 때
위세를 더하기 위하여 앞에서 하졸들이 목청을 가늘고 길게 빼어 부르던 소리이지요
임금이 거동할 때에는 사복(司僕)하인들이, 그 밖의 경우에는 역졸들이 불렀지요
민간에서는 가마를 메고 가다가 맞은편에서 낯모르는 가마가 오게 되면
길을 비키지 않고 서로 실랑이를 벌이며 신분을 과시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마끼리 맞대고 밀어붙이며 싸움을 벌어기도 했어요
아무튼 우리나라는 오랜 옛날부터 가마 문화였기 때문에 대로나 골목길이 좁은 것이고
서양은 달리는 마차 문화였기 때문에 옛부터 길이 넓었다 하지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 *-
▲ 사인교(四人轎), ...
▲ 평교자 ...
▲ 보교(步轎) ...
▲ 초헌(軺軒) ...
▲ 남여(藍輿) ...
▲ 견여(肩輿) ...
▲ 쌍마교(雙馬轎) ...
▲ 덩: 덕응(德應) ...
▲ 연(輦) ...
▲ 진시황의 가마 ...
▲ 진시황의 마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