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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恨中錄] “내 붓을 들어 한의 세월을 기록하다.” *역사적 사실에 의한 픽션입니다.* #.여는 글 운명의 막이 오르다. 영조 11년(1735) 1월 21일 새벽. 집복헌(集福軒) 앞. 효종 이래 왕가의 혈맥은 외아들로만 이어지고 있었다.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유일한 아들이었던 ‘행’은 열 살 되던 해 아버지를 앞서 요절하고 영조(조선21대 왕)는 오늘까지 7년을 기다려왔다. ‘부디 아들어이어야 할 터인데...’ 삼종의 혈맥이라 하였다. 효종, 현종, 숙종의 뒤를 잇는, 왕손이 될 혈통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그 말에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만은 아들이어야 했다. 그리 해야만 죽어 눈을 감은 뒤에도 황형(皇兄-경종을 이른다, 조선20대 왕)을 떳떳이 뵐 수 있으리라. 철없을 적 나를 그리도 아꼈던 황형은 슬하에 자식이 없어 나를 왕세제로 삼고 보살펴 주었었다. 병약햐여 즉위 4년만에 눈을 감은 황형을 두고, 사람들은 독살이라 나를 의심하였다. 하늘만이 알리라. 훗날 황형을 만나거든 그 앞에 웃는 얼굴로 대할 수 있도록, 오늘 이 기다림이 분명 왕손(王孫)을 맞을 기다림이어야 했다. 편전에 앉아 가만히 기다릴 수 만 없었던 영조가 친히 산실청으로 걸음을 하겠노라며 보련(寶輦)에 올랐다. 불혹을 넘긴 나이, 그 기대와 불안에 찬 걸음이 가까워짐에 꼭 맞추어, 집복헌 안에서 영빈 이씨의 단말마 같은 비명이 하늘을 찌를 듯 세어나왔다. 7년이라는 긴 무자(無子) 기간, 그 어둠을 뚫고 삼종의 혈맥, 영조의 아들이 태어났다. “경하 드리옵니다, 전하!!!!” “전하의 세령(歲齡, 나이)이 높으시고 이제 나라의 국본(國本)이 태어났으니 저사(儲嗣, 왕세자를 세우는 것)를 서두르심이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그 말이 지극히 옳도다. 경들의 입궁에 앞서 짐이 이미 정호(定號, 호를 정함)하였으니, 그 이름을 ‘선(愃)’이라 하고, 원자로 정하여 책봉하노라.“ 이 선(李 愃). ‘너그럽다’는 이름의 영조의 아들은 갓 태어난 당일 원자로 책봉되었다. 대신들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나라의 경사를 함께 기뻐하니 어찌 즐겁지 않으리. 영조는 국본의 탄생을 종묘사직에 고하고 내외에 반포하라 조정에 명하였다. 대신들이 물러가고 영조는 내관을 앞세워 영빈 이씨의 선희궁으로 들까 하다, 이전에 정빈 이씨의 처소로 향하였다. 16년 전 영조의 원량(元良, 임금의 큰아들), 효장세자를 낳은 생모였다. 전하계서 납시었다는 내관의 고함에 영조가 안으로 걸음을 들이자 중전(정성왕후 서씨)이 한걸음 앞서 정빈을 면대하고 있었다. “중전이 먼저 와 있었구려.” “어서 듭시옵소서.” 중전과 정빈의 낯빛이 좋았다. 나라의 원량이 새로 태어났는데 어찌 자식을 외로운 길에 앞세운 정빈의 마음에 씁쓸함이 있지 않으랴 싶어 그 마음을 달래주려 들렀거늘, 그 마음씀이 같아 중전이 이리 먼저 당도해 있으니 영조의 마음에 걱정이 없었다. “경하 드리옵니다, 전하.” “고맙소, 중전과 정빈의 말씀이 수십 대신들의 말보다 더 기쁘구려.” “새 원량의 호를 정하셨다 들었사옵니다.” “‘선’이라 하였소.” “담긴 뜻이 깊으니 원자가 그 뜻을 알고 너그러운 재목(材木)이 될 것이옵니다.” “허허, 중전의 말씀에 참으로 덕이 있지 않은가, 정빈.” “지당하시옵니다. 또한 소첩을 염려하시어 이리 성상(聖上, 임금을 칭하는 말)과 곤전(坤殿, 왕비를 칭하는 말)께오서 친히 납시어 주시니 성은(聖恩)이 망극하옵니다.“ 친히 축하하는 말들과 웃음소리가 오가고 영조가 일어서며 선희궁에 가겠노라 동참을 권하니 두 비빈이 사양하며, 먼저 가시어 어서 원량을 뵈오시고 영빈의 노고를 치하하시라 하니 기껍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희궁에 들어가니 몸을 눕힌 영빈이 황공한 기색으로 영조를 맞이하니 일어나지 말라 가볍게 하명하였다. 영빈의 곁에 황포에 싸여 잠든 원자 선의 갓난 얼굴이 참으로 흐뭇하여 절로 웃음이 났다. 내 아들, 나라의 왕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으리라던 그 말이 꼭 실감되어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수고가 컸느니라, 영빈.” “황공하옵니다.” “원자의 혈빛이 밝고 영빈의 낯색도 이리 건강하니 짐이 더 바랄것이 없구나.” 소식을 아직 접하지 못한 영빈이 원자라는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라의 원량이 원자가 됨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또한 호를 ‘선’이라 하였으니 그리 부르라.” 일년 후인 영조 12년(1736) 3월, 원자 선은 생후 14개월만에 세자로 책봉된다. 국조오례의에 실린 의식에 따라 창덕궁 인정전에서 대소실료들이 모인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진 세자책봉식은 그 어느때보다 찬란했다. “왕이 말하노라, 왕세자를 세우는 것은 바로 나라를 튼튼히 하는데 제일 먼저 힘써야 할 일이며, 천명을 계승하여 터전을 잡는 큰 계책이다...... 이에 원자 선을 세자로 책봉하여 조선의 왕업을 잇고자 함이니라.“ 한 살배기 세자는 강보에 싸여 대신들의 우러름을 받았다. 자라면서 그 모습이 효종을 꼭 빼닮았다고 하여 보는 이들 마다 그 덕을 칭송하였고, 우의정 송인명은 이를 두고 세자의 덕스러운 모습이 동방의 한없는 복이라고 하였으니 영조가 기뻐해 마지않았다. 그 말대로 세자의 모습이나 기량이 삼종의 혈맥 중 첫째라고 하는 효종과 더없이 꼭 닮아 문(文)보다 무(武)를 좋아하였다. 또한 사리에 밝고 학문에 임하는 태도가 훌륭하여 3세 때 이미 부왕과 대신들 앞에서 효경(孝經)을 외우고 7세 때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독파하였다. 세자가 이렇듯 기량이 넓고 모든 이에게 칭송을 받으니 영조에게 더 큰 욕심이 있으랴. 하루는 태학(太學, 세자의 교육기관)에서 돌아온 세자에게 영조가 물었다. “세자는 독서와 연회(宴會) 중 어느 것이 더 좋은고.” “연회입니다.” 영조가 바라던 대답은 독서였으니 크게 놀라 세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세자의 대답은 이러했다. “연회에 나아가 부모의 기쁜 기색을 볼 수 있으니 그러하옵니다.” //한중록 恨中錄// 영조 11년(1735) 6월 18일. 반송방. 풍산 홍(洪)가 홍봉한의 여식이 반송방의 외갓집에서 첫 울음을 울었다. 나라의 원량이 태어나고 다섯달 후의 일이다. “고생하였소, 부인.” “...여식이 태어났으니 그런 말씀 마시어요.” “어찌 그리 말을 하시오. 슬하에 아들을 두었으니 내 딸을 바란다고 하였건만.” “딸은 살림 밑천이라 하질 않사옵니까...” 홍봉한이 젊어 벼슬의 길에 오르고자 하였으나 학문이 얕았던 탓인지 운이 따르지 않았던 탓인지 그 문이 좁았던 탓인지 수 년째 뜻을 이루지 못하여 가세가 기울어진지 오래였다. 여식이라지만 자식이 태어난 경사스러운 날에도 가문 걱정에 한숨을 포옥 내쉬는 부인을 보며 홍봉한이 함께 착잡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러나 곧 낯색을 바꾸어 갓난 여식을 안아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용모는 나를 닮았으니 성정은 부인을 닮았으면 좋겠구려.” “탈 없이 자라준다면야 바랄것이 있겠습니까.” “밖에서 듣자하니 울음소리가 청명하면서도 고요하기 그지없으니 분명 침착한 아이로 자랄것이오. 자라서 고요하고 깊은 사람이 되라 ‘연꽃 연(蓮)’자를 써 아명(兒名, 어렸을때 의 이름)을 연이라 부릅시다.“ 홍 연(洪 蓮). 아명 그대로 천성적으로 말수가 적고 생각을 입 밖으로 내기 보다는 그 뜻을 두 번 세 번 생각하여 행동하기를 좋아하였다. 비록 가세가 기울었다고는 하나 선조들에 이어 고조부 증조부에 이어 첨정, 예판, 대사헌을 지내오신 명문가의 여식으로 윗 형제인 언니와 오라버니 못지않게 학문에 능통하였다. 시서화를 즐겨 그 중에도 특히 시를 짓는 일에 두각을 나타내어 조부에게 항상 예쁨을 받았다. “네 반드시 귀한 몸이 될 것이니, 몸과 마음을 닦는데 항상 힘쓰거라.” “네, 할아버님.” 어려서부터 귀하게 된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온 연은 조부의 말에 따라 말 한마디도 허투로 내뱉는 일이 없었고 마음에 헛된 욕심을 품는 일도 없었다. 외척과 사이가 가까워 친척 아이들이 자주 집에 들르곤 하였는데, 그 때마다 비단옷을 입고 화려하게 치장한 친척들을 보는 연이 안쓰러워 한날 어머니가 물었다. “사촌 동기들이 부럽지 않느냐.” “부럽지 않습니다. 무릇 사람은 형편에 맞게 사는것이 도리이지요.” “나이가 차서 혼례를 올리게 되면 저렇듯 고운 옷을 해주마.” //한중록 恨中錄// 영조 20년(1744)에 마침내 도성과 온 나라에 간택령이 내렸다. 세자 선의 배필이 될 세자빈을 간택한다는 령과 함께, 10세에서 13세의 대갓집 숙녀들은 혼인이 금지되었다. 세자 선의 나이 10세, 홍 연의 나이 또한 10세였다. “세자의 보령(寶齡)이 혼기에 들었다니 이 어미는 세월이 유수 같음에 놀랄 뿐이니라.” “말씀 듣고보니 소자(小子) 또한 마음이 허허롭게 느껴지옵니다.” “허허, 어미의 농이 지나쳤나보구나. 며느리를 맞는 일이거늘 어찌 아쉽기만 하겠느냐. 세자는 배필이 궁금하지 아니하느냐.“ “배필이 될 인연이라면 자연히 천명(天命)으로 맺어지지 않겠사옵니까.” “세자의 말이 참으로 그러하구나. 윗전에 빠짐없이 인사 올리는 것을 잊지 말거라.” “명심하겠사옵니다.” 궁 안에 상서로운 기운이 돌고, 세자의 배필이 될 간택단자가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홍봉한의 집에서도 마땅히 간택단자를 마련하여 궁으로 보내졌다. 가솔들은 어려운 형편에 단자를 마련하는 일 조차 버거워 할 수만 있다면 반대를 하고자 하였으나, 나라에서 내려진 령을 어찌 거스를 수 있을까. 간택령이 내려지고 가장 먼저 신료들이 단자들을 심사함에 있어 당파의 힘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을 터. 이때에 영조를 즉위시킨 노론과 그 반대파인 소론이 힘겨루기에 한참이었으니, 세자빈이 어느 당파의 집안에서 간택될 것인가에 따라 이어질 세력도 정해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홍봉한은 노론에 속해 있었고, 비록 가세가 기울었다 할지라도 명문대가라는 명분아래 그의 여식은 노론 사이에서 단연 합당한 세자빈 후보가 되었다. 탕평을 주장하며 당파의 저울질을 그르다 하였으나, 스스로도 노론의 일원이었던 영조는 홍봉한의 여식의 간택단자를 흡족히 손에 쥐었다. 이윽고 풍산 홍가는 잔칫집 분위기가 되어 곧 세자빈이 될 연의 가례 준비에 한창이었다. 식구는 물론 가솔들도 세자빈으로 간택된 교명문을 받은 날부터 연에게 존칭을 사용하였다. 혼인 의복을 마련 할 여비조차 부족했던 탓에, 언니 보다 먼저 시집을 가면서 언니의 혼수로 쓰려던 옷감을 빌어 의복을 준비했다. 미안하다 눈물을 보이는 연을 언니가 기꺼운 마음으로 달래주었다. 영조 20년(1744) 1월 9일. 왕세자빈으로 책봉 받는 예물이 안국동 풍산 홍가로 들어왔다. 이틀 뒤인 1월 11일, 궁으로부터 나온 형형색색의 화려한 가마가 도착하고 그 앞마당에서 이별의 인사들이 한창이었다. “혼례를 하게 되면 고운 옷을 해주마고 약조한 것이 엊그제 이거늘, 오늘에 그 약조를 지키옵니다.” “건강하시어요, 어머니.” “부디 사가의 일은 걱정하지 마오시고, 삼전(三殿, 대비, 중전, 세자의 모후를 이른다)을 잘 뫼시오소서.” “불충한 여식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훗날 궐에서 뵙겠습니다. 아버님.” “오늘에 세자빈 마마의 모습이 이렇듯 훤하시니 무엇을 염려하겠사옵니까. 돌아보지 말고 가오소서.” 세자빈 홍씨가 가마에 오르자 철없는 가솔들은 눈물바람이었고, 부모와 형제는 손을 흔들어 인사하였다. 꽃과 같은 가마가 사가와 궁궐을 엄연히 구분짓는다 하는 금천교(錦川橋)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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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으왓!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정말 기대만발입니다 ^^ >.< 다음 편도 기대할게요.
안녕하세요 히순님★ 앗, 혹시 '인현왕후' 연재하시는 히순님이신가요? 제가 2편까지만 읽고 시험기간에 겹쳐지는 바람에 진도가 없었거든요>_< 꼬릿말도 못남겨드리고 죄송해요~ 저도 인현왕후 기대하겠습니다^^
기대되요! 다른 사극과는 판이한 분위기가 호기심을 끄테요^^
안녕하세요 스마일:)님★ 좋게 봐주셔서 기뻐요^^ 제가 정통 사극을 선호하는 편이라 앞으로도 조금 고지식한 문체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꼬릿말 감사해요^^
오오 ~! 정말 재밋어요. 제가 바라던 사극이에요^^ 히힛 앞으로 정말 기대되요
안녕하세요 안녕녕하세요님★ 하핫, 기대해 주신다니 저도 막 긴장되네요^^ 좋은 글 될수 있게 노력 많이 할께요~ 꼬릿말 감사합니다^^
재밌는데 ㅠㅠ 제가보기엔어렵네여 ㅋㅋㅋ 픽션좋아하는데 ㅋㅋ
이건 인문계 다니는 애들이나 뭘 알고 보겠네요.. 실업계 무시하는게 아니라 ㄷㄷ;그렇지만 꽤 흥미롭네요~~~~ 한중록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꽤 기대됩니다
혜경궁 홍씨가 쓴 이야기, 잘 볼게요^^
엇, 앞부분이 사도세자의 고백이라는 책이랑 비슷해서 깜짝 놀랐어요. 어쨌거나 기대됩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