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62
제6장 무송 이야기
제28편 송강과 무송의 재회 28-3
“그때 자네가 떠난 후 나는 그대로 반년 이상 시대관인 장상에 머물러 있었지.
그러나 집안일이 궁금해서 아우 송청을 보냈더니 그곳 관가의 일은 주동과 뇌횡이
힘을 써주어 우리 집 일은 무사하게 되었다고 했네.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는데 마침 이곳 공태공(孔太公)께서 나를 불러 이곳에 와 있었네.
여기가 백호산(白虎山) 공태공 장상의 집일세.아까 자네와 술집에서 싸운 사람은
공태공의 둘째 아들이네만 본래 성미가 급해서 남들이 독화성 공량(獨火成 孔亮)이라 부르네.
여기 두루마기를 입은 분은 태공의 큰 자제로 남들이 공명(孔明)이라고 부른다네.
두 사람이 모두 창봉을 좋아해서 내가 몇수 가르쳐주었더니 나를 사부로 부르고 있네.
이 댁에서도 그럭저럭 반년을 살았는데, 이제 곧 청풍채(淸風寨)로 가볼까 하던 참일세.
내가 시대관인 장상에 있을 때 자네가 경양강에서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양곡현에서 도두 노릇 한다는 말도 들었고, 또 서문경을 죽이고 자수했다는 소문도 들었으나
그 뒤의 소식은 알 길이 없어 여간 궁금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무송은 경양강 위에서 호랑이를 때려잡고 양곡현 도두가 되었던 일과 형수와 서문경을 죽여
형님 무대의 원수를 갚은 일, 맹주로 귀양 가는 십자파에서 채원자 장청, 모야차 손이랑을
만난 일, 또 맹주에 가서는 어떻게 금안표 시은과 알았고, 어떻게 장문신을 때려 죽였으며,
왜 장도감 이하 열다섯의 남녀를 죽이고 장청의 집에 숨어 있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낱낱이 얘기했다.
얘기가 끝나자 곁에 있던 공명, 공량 형제는 크게 놀라 무송에게 절을 올렸다.
“저희 형제가 눈은 있어도 태산을 몰라 뵈었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무송은 황망히 답례하고 말했다.“이 사람이야말로 취중에 그렇게 된 일이니 용서해 주시오.”
밤이 깊어서야 송강과 무송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날은 한 방에서 자게 되었다.
송강은 무송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제가 어젯밤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채원자 장청이 편지를 써주어 이룡산 보주사로 노지심을 찾아가는 길이지요.”
“그도 좋겠지. 나는 청풍채로 화영을 찾아갈까 하네만, 최근에 아우 송청이의 편지가
왔는데 내가 염파석을 죽인 일을 알고 화영이 청풍채로 오라는군.
여기서 청풍채가 그리 멀지 않으니 자네도 나와 함께 가지 않겠나?”
“글쎄요! 하지만 제 죄가 너무 커서 이렇게 행자 행세를 하고 다니는데 형님께서 저와
동행하시면 의심을 받기 쉽지 않겠습니까?설사 형님께서는 저와 생사를 함께해 주신다
하더라도 알지도 못하는 화영이란 사람에게 폐를 끼치셔야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저는 그냥 이룡산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만일 훗날 사형을 당하지 않는다면 그때 형님을 찾아뵙기로 하죠.”
“자네가 그렇게 관가에 자수할 마음이 있다면 하늘이 반드시 도와주실 것이네.
억지로 권하지 않겠으니 며칠 더 있다가 함께 떠나기로 하세.”
그 이후로 그들은 10여 일간 공태공 장상의 집에서 머물다가 각자 길을 떠났다.
무송은 여전히 행자의 행색을 하고 있었고, 송강은 허리에 칼을 차고 삿갓을 썼다.
공명과 공량 두 형제가 20여 리 밖까지 따라 나와 그들을 배웅했다.
송강은 무송과 헤어지며 당부했다.“자네, 부디 술을 많이 마시지 말게. 만약 다행히
조정의 초안을 받게 되거든 자네만이 아니라 노지심과 양지까지도 잘 권해서 부디
귀순하도록 하게.나중에 무공을 세워 청사에 길이 좋은 이름을 남길 수 있다면
세상에 대장부로 태어난 보람이 있을 것이네.
나는 한 가지도 능한 것이 없는 위인이지만, 자네는 영웅이니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나?
부디 내가 지금 하는 말을 명심하게. 후에 인연이 있으면 우리 또 만나게 될 것이네.”
무송이 송강에게 절을 네 번 올리자 송강은 눈물을 흘렸다.
마침내 무송은 서쪽 이룡산으로 가고 송강은 동쪽 길로 청풍채를 향해 떠났다.
- 63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