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
갑자기 의문이 생겨서 질문합니다.
'제행무상'이고 '제법무아'이기 때문에 '일체개고'인가요? --- 1
아니면 '무상'하고 '무아'인것을 '상락아정'으로 잘못 인식했기 때문에 '고'가 되는 건가요? --- 2
만약 1이 맞다면 고통을 벗어난 상태(해탈)는 '무상'과 '무아'가 아닌 것, 바꾸어 말해 '상락아정'이 됩니다.
하지만 해탈도 분명히 제법무아라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1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2의 경우처럼 '무상'과 '무아'를 제대로 알고 체험하는 사람이 '고'에서 벗어나는 것입니까?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사실 이 두려움때문에 '진공묘유'니 '진면목'이니 하느 말이 생긴 것이 아닐까요?
김진홍목사가 한때 불교를 공부하다가 '무'라는 말 한마디에 도로 기독교로 돌아선 일화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소멸'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무상', '무아'와 '소멸'은 다른 것인가요?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열반'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 고민을 확 풀어줄 인연을 기다리겠습니다.
< 답변 >
< '제행무상'이고 '제법무아'이기 때문에 '일체개고'인가요? >
아닙니다....^^
무상, 무아라서 일체개고가 아닙니다.
일체법(오온, 12처, 18계)은 그 자체가 무상이고, 괴로움이고, 무아입니다.
이미 태어남, 즉 일어남이 있다는 조건 자체가 괴로움입니다.
그래서 물질과 정신이라는 무더기로 존재한다는 것,
오온 그 자체가 괴로움입니다.
우리가 사유가 아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직접 알아차리는 수행을 통해서
몸과 마음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실체가 없다는 것을 제대로 본다면,
아무리 좋은 곳에 태어난다 할지라도
다시 태어남을 갖는 윤회가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오온을 있는 그대로 본 통찰지를 갖추었다면,
오온의 형태로 존재하고자 하는 갈애가
바로 괴로움의 근본 원인임을 알게 되고
그래서 다시 태어나는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스스로의 지혜에 의해
괴로움을 종식하는 해탈열반을 성취하려는 사람은
오온을 소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몸과 마음을 갖고 산다는 것,
태어나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즐길만 한 것이고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태어남이 멈춘 해탈 열반이라는 상태가 두려움이 됩니다.
여기에는 이 몸과 마음을 가지고 매 순간을 살아가는
'나'라는 실체가 있다는 유신견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신견은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 태어남이 소멸한 해탈, 열반이라는 궁극의 행복을
결코 행복이 아니고 두려움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아직 오온이 괴로움이라는 지혜(고성제)가 없어서 존재에 대한 갈애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열반'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그 방법은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자신의 물질과 정신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사념처 수행을 해서
찰나마다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물질(색)과 마음(식)과 마음의 작용(수상행)의 무상함을
직접 경험하여 알아야합니다.
여기에 있는 이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고, 나의 것이 아니고, 나의 자아(실체)가 아니고
단순히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조건에 의해 사라지는, 물질과 정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통찰하여
'나'라는 것을 개념이라고 이해할 뿐,
'나'라는 실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근본 무명인 유신견을 제거해야합니다.
부처님께서 12연기로 윤회의 흐름을 설명하셨고
또한 윤회의 흐름을 끊는 방법을 설명하셨습니다.
바로 지금여기에서 감각기관을 통해서 느끼는 느낌에서
갈애로 넘어가지 않는 4념처에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8정도를 닦는 실천 수행을 통해서
다음생을 만드는 갈애를 제거하여야
미래의 생, 노사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생사 윤회의 흐름을 끊게 되며,
더불어 괴로움의 흐름을 끊는 해탈 열반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질문자께서는
이제 사유로 아는 지혜에서 벗어나
직접 수행으로 아는 지혜를 얻으실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