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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인근 지역 산에는 좀처럼 인원이 안 모이는 곳이다. 올해도 세번째인데 5/28의 도봉산에는 류석현+신동천의 단 2명이었고 6/28 수락산엔 김진순+이상규+신동천의 3명이라 이번에도 그 정도를 예상했다.
분당 양지마을/파크타운 정류장에서 홍성호와 함께 직행버스를 타고 종로 YMCA에 내려 종각에서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타고 회룡역에 내리니 9시 45분이다. 8시 20분에 출발했으니 오는데 한시간 반 걸렸다.
개찰구를 나오자 곧 이어 김진순이 오는 걸 보니 같은 전철을 탄 모양이다. 이후 김성중이 나타나서 오늘은 4명인가 했더니 10시 넘어 전화벨이 울리며 이치영이 “지금 성북역인데 조금 늦겠다” 고 연락해 온다.
그가 오려면 20분 넘게 걸리니 근처에서 야채깁밥을 사고 역앞 노점(露店)에서 커피(500 원)를 한 컵 사 마셨다. 그런데 이 노점상이 재미있다. 초등학교 책상 만한 탁자 위에 가스곤로와 물 끓는 주전자에 종이컵 몇 개 놓고 인스탄트 커피나 녹차를 파는데 웬 행인/등산객들이 이리 많이 몰리는가!
그 아주머니 얌전한 것 같은데 은근히 돈을 많이 번다. 자본금이래야 10만원도 안 들여서 만들었을 단촐한 커피장사가 하도 잘 되길래 신기해서 수 분 간을 지켜 보았다. 이윽고 이치영이 도착해 5명이 되자 더 올 사람도 없어 스타트를 끊었다.
큰 도로를 건너 아파트촌으로 직진하여 들어가니 길은 끊어지고 하천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주거단지지만 가까운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라 그런지 수질이 맑고 깨끗하다. 길도 아닌 이 하천 둔치를 따라 백여미터 이상 걸어가자 비로소 등산로가 나타난다. 그러다가 길을 잘못 들어 조금 헤맸지만 김진순의 感으로 바른 길을 찾아 다시 본격적인 산행을 개시했다.
사패산(552 m)으로 오르는 길은 안골, 범공, 회룡골의 세 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회룡골 코스를 택해서 회룡사를 거친 뒤 능선에 올라 정상에 이르기로 했다.
등산로 입구인 매표소 바로 위로는 자동차 소리 요란한 간선도로가 하늘을 가로지른다.
작년에 완공된 외곽순환도로의 한 부분으로 이곳은 산보다 논란이 많았던 터널이 더 유명하다.
매표소는 그대로 통과. 2007년 부터는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어 1만원(2천원x5인)이 절약되었다.
회룡교를 지나 오르는 길은 넓고 평탄하다. 이치영은 진성균에게 초보자 코스라고 연락 받고 왔는데 정작 진성균 자신은 오지 않았다.
작은 폭포가 보인다. 골짜기를 흐르는 물은 조그만 폭포가 되고 또 이런 폭포는 몇 갠가 더 나타나는데 근 한달 가까이 큰 비가 오지 않아 물줄기는 약하다.
깊게 패인 비좁은 개울에는 작은 못이 생기고 커다란 바위는 물길을 만나 단애를 이룬다. 길 따라 물 따라 하염 없이 오르자 회룡사의 경내(境內)가 눈에 들어 온다.
회룡사는 신라 31대 신문왕(神文王) 元年(681)에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해 홍성사(法性寺)라 칭하다가, 고려 우왕(禑王) 10년(1394)에 무학(無學)大師가 四創한 후 6.25사변으로 전소(全燒)된 것을 1954년에 復元한 절이다.
절 이름의 유래는 太宗3년(1403)에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환궁(還宮)할 때 議政府에 멈추어 움직이지 않음으로 無學大師가 回龍歌를 기원하여 그 所願이 성취됨을 기념해 回龍寺라 改名했다.
또 절의 창건과 관련하여서는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에 얽힌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즉 1398년 태조가 함흥에서 한양의 궁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있던 왕사 무학을 방문했다. 무학은 1394년에 정도전(鄭道傳)의 미움과 시기를 받아 이곳 토굴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이 때 태조의 방문을 받았다. 태조는 여기서 며칠을 머물렀고, 이에 절을 짓고는 임금이 환궁한다는 뜻으로 그 이름을 회룡이라 했다는 것이다.
연대는 달리하여 함흥에 내려가 있던 태조가 1403년(태종 3)에 환궁한 뒤 이곳에 있던 무학을 찾아 왔으므로 무학대사가 태조의 환궁을 기뻐하여 회룡사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와는 달리 1384년(우왕 10)에 도봉산에서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창업성취를 위한 기도를 했는데, 이성계는 지금의 석굴암에서, 무학은 산등성이 가까이 있는 무학골에서 각각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 뒤 이성계가 동북면병마사 라는 직책을 맡고 요동으로 출전하자 무학은 홀로 남아 작은 절을 짓고 손수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그의 영달을 축원했다고 한다. 그 후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이곳에 와 무학을 찾아보고 절 이름을 회룡사로 고쳤다고 한다.
회룡골 계곡을 따라 나있는 오름길에서 바라본 회룡사. 범종각(왼쪽)과 설화당의 모습이 단아(端雅)하다.
나무가지 사이로 관세음 보살상도 조그맣게 보인다.
첫번째 횡단 다리인 오목교. 가물어서 계곡 물은 거의 없다.
두번째 다리 육목교.
육목교를 지나면서 부터는 길이 좀 더 가팔라진다.
멀리 보이는 도봉산의 오봉.
능선에 올라 오기 까지는 꽤 힘들었다. 위험한 곳은 없지만 쉴새없이 계속되는 흙길과 비탈길에 암릉과 통나무 계단 등이 갈수록 경사를 더해간다. 여기서 오늘 등산 에네르기의 80%를 소모했다.
사패산(賜牌山)의 유래는 조선조 선조의 여섯째 딸이 정휘옹주인데 왕은 남달리 옹주를 사랑하여 유정량에게 시집 보낼 때 마패와 함께 하사(下賜)했다하여 줄 사(賜), 호패 패(牌)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근데 지금은 글자대로 사정없이 또는 죽을(死) 때까지 팬다는 뜻과 같다. 그래도 홍성호는 어제 관악산에 이어 이틀 연속 산행인데 거침없이 잘 오른다.
이윽고 능선에 오르자 갑자기 길이 완만해지며 "정상 1.2km, 송추분소 1.6km, 회룔탐방 2.6km" 라는 이정표가 나타나며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도 그늘에 앉아 사과/포도를 먹으며 20분을 쉬었다. 그리고 이제 15분이면 정상에 도달하겠다.
저기가 정상. 하얗고 경사진 암반이 도봉산의 날카로운 암봉과는 대조적이다.
교묘하게 뻗고 얽힌 두 쌍의 소나무와 그 아래에 앉은 한 쌍의 남녀.
집채만한 이 암반오름막은 내려갈때도 우측 철망을 이용했다.
울창한 송림과 무수한 아파트 단지.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다.
갈라진 바위 사이를 비집고 오르는 女등산객.
정상에 올라오니까 너무 좋다. 탁 트인 전망과 넓은 암반(巖盤)으로 가슴까지 트이고 시원해진다.
상의를 벗고 일광욕을 하는 김진순. 9월 중순이라 불볕더위는 건너 갔지만 아직 햇살은 따갑다.
4명은 아직 올라오지 않은 이치영을 기다리며 과일(배)을 먹었다.
두둥실 떠있는 하얀 구름사이로 난 파아란 하늘.
급경사 암반이 저 아래까지 뻗어있다. 곧 미끌어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앉은 저 者는 담력도 세다.
웅장한 산을 배경으로한 소나무 명당 자리.
사패산 정상에 있는 조망 안내판이 정상표시를 대신.
한북정맥의 산과 도심지 등의 먼 시야를 바라보며 한동안 정신없이 앉아 있었다. 북한산과 도봉산도 비슷하지만 이렇게 넓고 평탄한 바위 정상은 없다.
사패산이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이유는 포대능선 처럼 군사보호지역이어서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밑은 천길 낭떠러지인데...
푸른 산 사이로 이어진 고속도로와 아파트들은 한 폭의 조감도(鳥瞰圖)다.
역광이라 어둡게 나왔다. 20분 기다려도 이치영이 오지를 않아 핸드폰을 거니 “정상 오르는 길을 못찾아 안골로 내려가는 중” 이라 한다. 정상을 눈 앞에 두고 길을 잃어 버렸다는게 이상하다.
하산하면서 뒤돌아 본 정상 뒤의 암벽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바윗덩어리들이 위용(威容)을 자랑한다.
다시 갓바위의 왼쪽 길을 거쳐 안골계곡 → 호암사 → 범골매표소 → 회룡역 쪽으로 내려간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절은 호암사. 범골도 호암사의 虎를 따서 지었다.
호암사 앞에서. 절은 깨끗하고 청아(淸雅)하지만 지면이 콘크리트 포장이여서 人工美가 강하다.
그러던 중 실종된 이치영이 왼쪽의 바위 계단으로 내려오고 있다.
개울가에서 달고 시원한 약수를 마시며 잠시 휴식.
낮에 병무와 약속한 종로 5가의 "닭한마리" 집으로 가기 위해 1호선을 타고 동대문으로 향한다.
한창 달리는 중이어서 사진이 선명치 못하다.
절대 남대문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동대문역 9번 출구로 나오자 사복을 한 병무가 다섯 명을 맞이한다. 이어 쇼핑몰과 재래시장 사이로 난 좌측 길로 들어가 두 곳의 은행을 지난 뒤, 다시 생선 굽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우측 골목으로 주저없이 진입했다.
김성중과 이치영은 이 먹자골목이 처음이다.
이 곳도 사실은 작년 겨울 화재로 불타 올초에 새로 오픈한 집이다.
바깥에서 먹는 것도 재미.
유독 이 집만 사람이 많다.
김성중은 김찌찌개를 좋아해 있는 김치를 다 넣고 나서 다시 반을 추가했다.
이 정도로는 양이 부족해서 2차로 생선구이집을 가기로 해, 마지막에 넣는 사리는 양쪽에 1인분씩만 주문하고. 술은 소주, 맥주 외에 막걸리를 4통이나 비웠다.
모듬세트로 삼고조꽁(삼치+고등어+조기+꽁치)과 공기밥을 먹고도 또 부족한지 3차로 생맥주를 딱 한 잔씩만 더 하기로 했다.
그래서 간 집이 Fish & Grill 이라는 퓨전음식점인데 알고 보니 京城양꼬치집 바로 옆 건물이다.
2층으로 올라 가니 창문 열려 있고 대로변이라 소음이 심하다.
메뉴는 오뎅에다 꼬치, 치즈&샐러드, 후라이, 해산물, 탕&전골 등 다양한데 배가 불러 간단한 마른 안주 하나만 시켰다.
안주 몇 개는 기본으로 준다. 話題도 다양해 출신 국민(초등)학교 부터 휘문 동창의 근황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끝난 후 분당파 세 명은 9403 버스를 타고 시내를 한비퀴 돌아 귀가했다.
後記 : 이 날은 잘 먹고 마신 것까진 좋았는데 과식을 해서 이틀동안 배가 불편했다. 류석현(청주)에게 전화가 와, 자기도 참가하고 싶은데 아무리 새벽 차를 타도 아침 시간에 못맞춰 온다고 원통해 한다.
그리고 7월 1일 올린 수락산 산행사진에는 애써 쓴 글이 모두 지워져 있어, 어떻게 된 건지
해명해 주기 바람.
첫댓글 전날 과음 탓에 산행도 못가고, 닭하마리집은 나도 좋아하는 곳인데.....화재후 재오픈한 뒤로는 한번도 못갔었기에 뒤늦게 참석할까도 생각했지만.....보나마나 이병무 만나면 연짱 과음할것 같아서.....
사패산도 초행이고 뒷풀이 닭 한마리 집도 가보고 싶었는데 본가 모임날이라서 아쉽구먼..후기 잘보았다 동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