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산 동래구 명륜동 일신초밥 김재웅 대표가 지난 8일 주방에서 횟감을 다듬으며 활짝 웃어 보이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
부산 동래구 지역 중증 장애인들은 집에서 이따금 '맛집' 음식을 즐긴다. 동래구에서 이름난 음식점들의 배려 덕분이다.
맛집으로 소문난 유명 음식점 20여 곳이 매달 두 차례 맛깔스러운 음식을 정성껏 준비한다. 생선초밥, 잡채, 떡갈비, 추어탕, 돼지국밥, 복국, 곰탕, 생선구이 등 음식 종류도 다채롭다.
동래 지역 일식집 뜻 모아
시설 아동 음식 만들기 20여 년
4년 전부터 맛집 20여 곳 합심
매달 두 차례 온갖 음식 준비
재가 중증장애인 음식 대접도
장학회 3곳 이사 맡아 학생 후원
손님·거래처까지 도움 요청
봉사단체 기금 조성에도 앞장
중증 장애인들은 평소 맛보기 쉽지 않은 음식을 고마운 마음으로 즐긴다.
이 같은 음식 나눔을 진두지휘하는 이는 동래구 명륜동 일신초밥 김재웅(68) 대표이다.
김 대표는 4년여 전 동래구 맛집 사장 12명을 모셔놓고 불쑥 제안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부산시지회 동래구지부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우리 명색이 이름난 맛집 사장들인데 좋은 일 좀 합시다."
김 대표는 각자 잘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재가 중증 장애인' 가정에 전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뜻대로 움직일 수 없어 집에만 있는 중증 장애인들에게 좋은 음식을 맛보게 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럽시다. 좋은 생각입니다."
모두 선뜻 받아들였다. 맛집 음식 나눔 활동이 순조롭게 시작됐다.
한 달에 두 번 일식집은 초밥과 새우튀김, 생선구이를 만들어 냈다. 한정식집은 잡채와 떡갈비를 내놓았다. 중국집은 탕수육, 추어탕집은 정성껏 끓인 추어탕을 협조했다. 음식 종류는 매번 달라졌다.
맛집들은 한 번에 50인분 정도의 음식을 만들어 인근 사회복지관으로 보낸다.
그러면 여성친목단체 '모윤회' 회원들이 준비된 음식을 도시락에 나눠 담아 장애인 가정에 일일이 날라 준다.
"척추를 다쳐 30년 가까이 집에 누워 계시는 할아버지 댁에 음식을 가져다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제 손을 잡으며 평생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보내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셨어요. 저희가 만든 음식을 이렇게 소중히 여기는 분들이 있는 한 음식 나눔을 중단할 수가 없습니다."
김 대표는 "음식을 기다릴 이웃들을 떠올리면서 모두 흥겹게 음식을 준비한다"고 덧붙였다.
음식 나눔에 참여하는 음식점은 널리 알려진 곳들이다. 참여 식당이 지금은 20여 곳으로 늘었다. 일신초밥, 논두렁추어탕, 해림갈비, 상림초밥, 어가초밥, 초량숯불갈비, 팔각정, 안양해물탕, 금문, 재민식당, 꼬리집, 영주동할매복국, 동신참치, 우향, 풍촌숯불갈비, 원조본가산곰장어, 또랑돼지국밥, 예원한정식, 진수사, 가마솥추어탕, 메리움금강뷔페, 함경면옥, 용덕제과 등이다.
유명 음식점 2곳도 다음 달부터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동래구의 나눔 물결이 계속 확산하고 있는 셈이다.
김 대표는 30여 년 전부터 나눔 '대열'을 이끌었다. 동래구 지역 일식전문점 대표들을 모아 인근 아동보호시설을 도왔다. 주기적으로 시설을 찾아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줬다. 그 일을 20년 넘게 했다.
로타리클럽에 가입하면서 힘을 모으면 더 큰 나눔을 실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 대표는 "로타리클럽 회원들이 뜻을 모으니 아동보호시설에 컴퓨터와 책걸상도 보내줄 수 있었다"면서 "많은 사람이 더불어 움직이면 더 큰 봉사가 가능해진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명륜동장학회와 수안동장학회, 명륜1번가장학회 등의 이사를 맡고 있다. 해마다 또는 다달이 장학기금을 출연하면서 학생들을 돕고 있다.
나눔을 위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김 대표는 '나눔의 가교'로 불릴 만하다.
최근에는 이웃들에게 자장면을 만들어 나눠주는 봉사단체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는 기금 조성에 앞장섰다. 사업하는 지인들에게 부탁해 거액의 지원금을 모았다. 이 봉사단체는 넉넉해진 살림으로 자장면에다 탕수육, 과일까지 더해 이웃들의 배를 불린다.
묵묵히 장사만 하는 음식점 주인들을 부추겨 등을 떠미는 것도 김 대표의 몫이다.
어느 추어탕집 여사장은 김 대표의 줄기찬 권유로 나눔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 그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이웃들을 배려한다.
동래시장을 지나다 손님들이 줄 서는 떡볶이집을 보고서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김 대표는 "노인들이 맛있는 떡볶이를 맛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뜻을 전했더니 주인이 흔쾌히 승낙했다"고 말했다.
일식점을 드나드는 손님, 거래처 등에도 김 대표는 스스럼없이 도움을 청한다. 대부분 사람이 음식 나눔의 뜻을 잘 알아주는 게 그는 신기할 따름이다.
신종철 한국외식업중앙회 부산시지회 동래구지부 사무국장은 "김 대표는 동래구 지역 봉사 활동을 앞장서 이끌고 있는 '봉사의 씨앗'이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36년 전 동래구에서 일신초밥을 열어 지금껏 전문 일식을 선보이고 있다. 10여 년 전 수안동에서 명륜동으로 자리를 옮긴 일신초밥은 신선한 수산물과 식재료로 손님들에게 최상의 음식을 내놓는다.
식당 건물 옥상 텃밭에서 직접 기른 상추와 치커리 등을 쌈 채소로 제공하기도 한다.
김 대표는 "손님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서 "좋은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선보이려고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일신초밥은 제철 음식이 특기다. 요즘은 가자미쑥국 맛이 일품이다. 가을과 겨울에는 생대구탕, 제주산 방어회 등이 유명하다.
이현우 기자 hooree@busan.com
2부 '부산 맛 기업의 사회 환원'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합니다.
※ 나눔 참여 문의: 어린이재단 부산지역본부 051-505-3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