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힙합의 역사
[1] 왜 힙합의 역사인가?
앞에서 설명했듯이, 힙합은 문화전반을 일컫는 개념이며, 그 문화 속의 한 요소로서
랩(MCing)이 존재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랩"과 "힙합"은 구분되는 개념이나,
오늘날 힙합 문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리고 가장 발전된 종류의 요소는
아무래도 랩이며, 따라서 랩 과 힙합은 모두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로
통일적으로 쓰이는 게 상례이다. 이하에서도 힙합이란 말은 음악적 장르로서
사용하도록 하겠다. 힙합을 하나의 나무로 생각할 때, 오늘날 그 줄기는 다른
여러 영역으로 뻗어나갔으며, 랩은 더 이상 흑인사회와 문화라는 토양에
국한될 수 없을 만큼 다른 문화와 음악적 장르에도 혼합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한 발전은 힙합문화를 세계 곳곳에 퍼트린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으나, 힙합의 줄기만을 보고자란 사람들에게 그 뿌리는 잊혀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굳이 여기서 역사를 아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더라도, 미국의 흑인들(African-Americans)에 의해 탄생된 힙합이란 장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발 전하였는지를 아는 것이, 오늘날의 힙합을 듣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는 점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아래에서는 음악적
장르로서의 힙합의 탄생과 그 시대별 발전을 간단하게 살펴보겠다.
[2] 힙합의 탄생
몇몇 사람들은 힙합의 기원을 과거 미국 농장에서 흑인노예들이 읊조리던
노래에서 찾는가하면, 힙합을 단어 그대로 해석하여 엉덩이를(hip) 들썩거리는(hop)
것이 그 의미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두 나름대로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음악적 장르로서의 힙합은 1970년대 초 DJ들에 의해 탄생되었다.
1970년대 초, 미국 동부의 뉴욕에서는 한창 Disco음악이 인기여서 많은
DJ들은 파티나 클럽에서 디스코음악을 어주곤 하였다. 그러나 그들 중
자메이카 출신의 Kool DJ Herc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R&B
나 Funk음반을 자주 틀어주었는데, 그는 때때로 이 음악들의 간주부분(break)
을 계속 반복하여 틀어주곤 하였다. 즉, 가사가 없는 비트만 계속하여
틀어준 것인데, 이 동안에 춤을 추는 사람들은 중앙으로 나와서 춤을 추곤 했고,
이들을 Kool DJ Herc는 "B-Boy(Break-Boy)"라고 부르고 그들의 춤은 "Break
Dancing"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또 Kool DJ Herc는 이 간주부분에 흥을 돋구기 위하여 소리를 지르곤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랩의 시작이었으나, 그 내용은 관중들 중에 있던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거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의미 없는
두어 마디 정도였다.
그 뒤, Kool DJ Herc는 DJ일에만 전념하고 간주부분 랩을 하기 위해 따로
사람을 두었는데 그들이 Coke La Rock과 Clark Kent로 이루어진 Herculoids
이었고,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emceeing"(후에는 rapping)이라고 불렀다.
즉 이들이 바로 첫 힙 합그룹이었던 것이다. Herculoids는 두어 마디 정도였던
랩을 몇 문장으로 늘려 가사에 라임(rhyme)을 도 입하기 시작하였고, Kool
DJ Herc이후 많은 DJ들은 그와 같은 스타일로 힙합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DJ Hollywood, Afrika Bambaataa, DJ Grandmaster Flash, Grand Wizard
Theodore등이 그들인데, DJ Hollywood의 경우 그가 자주 이용하던 랩 가사
중에 "hip, hop"이란 부분이 있었고, 이때부터 힙합음악, 힙합문화라는 용어가
사용되게 된 것이다. 1970년대 후반, emceeing(MCing)은 더 이상 DJ들이
틀던 간주부분에 관중들의 흥을 돋구기 위한 한정적 역할이 아닌 독자적인
음악장르로 정착되는데, 이때 Mele-Mel과 같은 많은 MC들은 파티 같은 곳에
서 몇 시간 동안이라도 계속하여 DJ가 틀어주는 비트에 맞추어 자신이 쓰고
외운 가사를 들려주곤 했다. 이 때, MC들은 서로 가사에서의 라임, 은유라든가
비트에 맞추어 얼마나 잘 가사를 전달하는가에 따라 평가받았으며, 서로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시합(battle)을 벌이기도 하였다. 결국 1978년 첫 힙합앨
범인 Sugerhill Gang의 "Rapper's Delight"가 발매되었으며, 이때부터 힙합은
그 본격적 발전을 시작한 것 이다.
[3] 시대별 힙합의 발전
1. 1970년대
1970년대 전반에 DJ들에 의해 힙합이 탄생한 후, 랩의 본격적 발전은 1978년
Sugerhill Gang의 "Rapper's Delight" 싱글레코드의 발매로 시작되었다.
당시 대표적인 흑인 음악 레이블인 Sugerhill Records가 세워졌고, 첫 여성
그룹인 Sequence의 "Funk You Up" 싱글이 발매되기도 하였다. 바로 랩의
탄생과, 레코드 발매 통한 대중 속으로의 본격적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였던
것이다.
2. 1980년대 초반
Sugerhill Gang의 뒤를 이어, 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나 Afrika
Bambaataa and the Soul Sonic Force, 그리고 Kurtis Blow와 같은
그룹/래퍼들이 모두 레코드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음반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특히 Kurtis Blow의 싱글 "The Breaks"는 랩으로서는 처음으로
gold(50만장 이상 판매)를 기록했다. Afrika Bambaataa는 "Planet Rock"
이란 곡으로 E-Funk(Electro Funk)를 소개했고, 그의 샘플러 사용기법과
신디사이져/드럼머신으로 이루어진 비트는 Miami Bass로 발전하여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 Grandmaster Flash는 사회 비판적 시각이 담긴
날카로운 가사의 "The Message" 란 곡을 발표했다.
3. 1980년대 중반
Run-DMC는 1983년 "It's Like That" 싱글을 발표하면서 사회 비판적인 가사로
주위를 끌면서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게 되었다. 동시대에 UTFO는 "Roxanne,
Roxanne"를 발표하였고, Roxanne Shante는 그에 대한 응답으로 "Roxanne's
Revenge"란 곡을 발표하여 서로 "씹는(diss)" 스타일의 랩을 시작하였으며,
Run-DMC는 "Sucker MCs"란 곡으로 자기 과시적 랩스타일의 장을 열었다. 또
LL Cool J, Salt N' Pepa등이 등장하여 많은 인기를 끌었고, 백인힙합그룹
Beastie Boys는 앨범 "Licensed to Ill"을 발표하여 백인사회에까지 힙합
의 인기를 퍼뜨렸다.
4. 1980년대 후반
KRS-One의 Boogie Down Production, Gang Starr, Eric B. and Rakim, EPMD, Big
Daddy Kane, 그리고 Public Enemy등의 등장으로 랩은 큰 발전을 보게 되었다.
특히 Eric B. and Rakim은 수준 높은 가사로 높은 인정을 받았으며,
Public Enemy는 흑인인권운동적 가사와 짙은 정치적 성향으로 많은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은 무엇보다 도 West Coast(미국서부)에 서의 힙합의
발전으로 특징지어진다. 동부에서 탄생한 힙합은 서부로 중심이 건너가기 시작해
소위 갱스터랩(Gangster Rap)의 형태로 90년대 초반까지 주도권을 잡게 된다.
N.W.A.(Ni**as With Attitude)의 1988년 앨범 "Straight Outta Compton"은
캘리포니아 LA갱스터 스타일의 랩을 소개했으며, 또 후에 N.W.A.를 탈퇴한
Ice Cube도 서부의 갱스터랩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5. 1990년대 초반
1990년대 초반에는 두 가지 상반된 스타일의 랩이 인기를 끌었는데, 바로
"댄스랩" 과 "갱스터랩"이 그것이다. 댄스랩은 비트가 빠르고 가사의 내용도
다소 가벼우며 춤추기 좋 은 파티리듬의 랩을 가리키는데, MC Hammer(후에
Hammer로 개칭)의 "U Can't Touch This"와 백인 래퍼 Marky Mark and the
Funky Bunch의 "Good Vibrations", 또 다른 백인 래퍼 Vanilla Ice의
"Ice Ice Baby", 또 십대그룹 Kriss Kross의 "Jump"와 같은 곡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반면에 갱스터랩은 그 발전을 계속하여, Dr. Dre의 g-funk 스타일
데뷔앨범 "The Chronic"의 발매로 그 절정을 이루고, Snoop Doggy Dogg와
같은 갱스터래퍼들의 등 장을 불러왔다. 이와 같은 갱스터랩의 공격적이고
여성비하적인 가사는 흑인사회안팎으로부 터의 비판을 받게 되었으며,
1992년 Ice-T의 곡 "Cop Killer"는 그러한 비판을 최고로 고조 시키기도 했다.
한편 동부에서도 A Tribe Called Quest, De La Soul, Redman, Das Efx, Onyx
등의 실력 있는 그룹/래퍼들이 나타났으며, Miami Bass계열의 2 Live Crew는
가사의 선정성을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어 몇 개의 주에서 그들의 앨범
"As Nasty as They Wanna Be"는 판매를 금지 당하기도 했다.
6. 1990년대 중반
9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다시 동부쪽 그룹들이 랩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1994년 뉴욕의 Staten Island에서는 Wu-Tang Clan이 앨범 "Enter the Wu-Tang"
을 발표 하여 큰 인기를 끌었고, Jeru the Damaja, Black Moon등은
Jazz와 Funk의 요소를 이용한 곡들을 선보였으며 QBC스타일을 소개한 Mobb
Deep과 Nas, 그리고 데뷔 앨범 "Ready to Die"를 발표한 Notorious B.I.G.등이
모두 많은 인기를 얻었다. 서부에서도 Warren G로 계속되는 g-funk음악과
새로운 스타일의 Bone Thugs-N-Harmony가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1990년대 후반을 장식한 사건은 바로 East Coast 대 West Coast간의
싸움, 즉 Bad Boy Entertainment 소속의 Notorious B.I.G.와 Death Row
Records소속의 Tupac Shakur간의 분쟁이다. 몇 번에 걸친 Tupac에 대한
저격사건과 그 배후에 Bad Boy가 있었다는 Tupac의 주장, 그리고 서로를
욕해대는 곡들의 발표로 거칠어진 두 실력있는 래퍼간 의 싸움은 결국
두 레이블간의 분쟁, 양 코스트(Coast)간의 분쟁으로 변하여, 결국
Tupac과 Notorious B.I.G.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7. 1990년대 후반 - 현재
90년대 후반은 Bad Boy Entertainment의 Puff Daddy(Sean Combs)가 그 막을
열 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동안 힙합의 주류이던 갱스터랩, 그리고
동부의 어둡고 무거 운 분위기의 랩들 대신, 이제 Puff Daddy의 독특한
프로듀싱을 거친 다소 가볍고 빠르고 파티 풍의 음악이 많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샘플링에 크게 의존하는 Puff Daddy의 프로 듀싱 기법은 랩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고, 그와 비슷한 또는 약간 변형된 스타일을 추 구하는
Jermaine Dupri, Wycleff Jean과 같은 프로듀서들도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Wu-Tang Clan, Dr. Dre등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그룹들도 꾸준히
앨범을 내놓아 많 은 인기를 끌고 있으며, Master P와 같은 새로운 래퍼/
프로듀서도 독특한 음악으로 스타덤 에 오르게 되었다. 또 과거 해체되
거나 활동을 중단했던 그룹들도 돌아왔거나 돌아올 준비 를 하고 있어,
Rakim, EPMD, Big Daddy Kane, Biz Markie, Brand Nubian등과 같은 옛 그룹들도
다시 명성을 찾고 있다. 즉 90년대 후반 현재는 많은 스타일의 랩이 모두 동시에
존재하며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는 힙합에 있어서의 전성기가 아닐까 싶다.
[4] 글을 마치며
이로서 간단하게나마 힙합의 탄생과 그 시대별 발전 과정을 살펴보았다. 지면상
힙합의 발전에 영향을 끼친 모든 사람을 언급할 수 없었음에, 그리고 내용이
크게 축약될 수 밖에 없었음에 아쉬움을 느끼나, 위의 글로서도 대략 힙합의
생성-발전의 줄기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다음에는 힙합/랩, Old
School/New School, East Coast/West Coast, 갱스터 랩등 힙합음악에
있어서의 세부적 장르와 여러 개념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다.
글 : 김 다슬 (고려대학교 법학과 4년, 나우누리 힙합동아리 Dope Soundz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