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산의 마지막 불꽃. 해남 대흥사
부석사, 해인사 등 경상도 사찰이 좌우대칭의 가람배치를 가졌다면 백양사, 선암사, 선운사 등 전라도의 사찰은 비교적 자유분방하다. 그 대표적 사찰이 해남 대흥사. 금당천 개울이 흘러가고 가람도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 거기다가 서산대사를 모시는 표충사까지 있으니 한울타리에 3구역으로 나뉜다.
대웅보전이 있는 북원, 천불전이 있는 남원, 표충사 등 별원 등 한때는 3구역에 주지스님이 따로 있을 정도로 스님들로 북적거렸다. 대흥사에만 500여 분 스님이 북적거렸고 두륜산 곳곳의 암자까지 합치면 1천여 명에 육박했을 정도로 승가의 산실이다. 우리가 잘 아는 서산대사, 초의선사의 부도를 볼 수 있으니 ‘남도대가람’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찰임에도 지금은 고작 25분의 스님이 이 큰 대흥사를 지킨다고 하니 인구 감소의 직격탄은 사찰도 피해 갈 수 없는가 보다.
일주문을 지나면 부도밭. 돌담장에서 서산대사 부도와 역대 13대 종사를 포함한 부도 50여 기가 한때 대흥사의 사세를 말해주고 있다. 서산대사 승탑은 보물로 지정
조금 더 가면 해탈문이 나온다.
어라 사천왕문은 어디 갔지?
북으로 영암 월출산, 남으로 송지 달마산, 동으로 장흥 천관산, 서쪽으로 화산 선은산이 대흥사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굳이 사천왕상이 필요 없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4곳의 산 정상부는 모두 기암괴석. 사천왕상의 불끈거리는 근육을 보는 듯하다.
해탈문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 기교를 부리지 않고 간결하며 삐쩍 말랐다. 그 역시 완도 신지도로 유배 왔다. 문을 빠져 나오면 비단결 같은 두륜산이 대흥사를 감싸고 있다.
중국의 곤륜산 줄기가 한반도로 이어져 백두산을 만들어내고 계속 뻗어내려 와 바다로 빠지기 마지막 꽃을 피운 곳이 두륜산. 그래서 백두의 頭(두)와 곤륜산의 崙(륜)을 따서 두륜산(頭崙山)이 되었다고 한다.
곤륜산은 티베트 고원 북부의 산으로 불로불사약의 주인인 서왕모가 사는 산이 아닌가? 중국 대륙을 횡단해 한반도 땅끝인 두륜산에서 끝을 맺었으니 스케일이 얼마나 대단한가. 이래저래 해남은 끝의 고장
그걸 말해주듯 이곳에 서면 부처가 누워서 하늘을 향해 지권인(엄지손가락을 손바닥에 넣고 다른 네 손으로 싸 쥐는 것) 수인을 가진 불상을 볼 수 있다. 오른손은 법계를 뜻하고 왼손은 중생을 뜻하며 법으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산세를 바라보면 심장 쪽에 1500년 된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이곳 암자를 복원계획 중이란다. 단전쯤에 큰 바위가 보이는데 그곳이 북미륵암. 그러니까 산 전체가 부처님의 몸이라 하겠다.
그래서 해탈문을 빠져나온 스님은 대웅전을 향해 절을 한번 하고나서 두륜산을 향해 또 고개를 숙인다.
대웅보전으로 가다 보면 연리목이 나온다. 서로 다른 나무로 자라다가 비를 맞고 바람에 서로 부딪치고 비비다 이렇게 한 몸이 되었다. 그래서 부부나 연인들이 사진명소. 그 앞 카페이름도 연리카페
대웅전을 가려면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오래된 향나무가 방향 표시를 하는 것 같다. 대웅전의 백미는 석가모니의 미소. 해안이 가까워 왜구 침입이 많아 완도, 진도, 해님 일대는 쑥대밭이 되었다고 한다. 광해군 때 부처님의 가피로 외적을 막아달라고 이 불상을 조성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미소로서 적을 무력화시키려고 한 것 같다.
서양에 모나리자의 미소가 있다면 한국에는 대흥사 석가모니 부처의 미소를 봐야 한다. 그 스마일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계단 소맷돌은 귀면상이 새겨져 있는데 그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대흥사의 또 다른 맛은 현판이다. 대웅보전 현판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 신지도 유배인의 골기가 느껴지는 글씨. 반면 추사 김정희의 무량수각 글씨는 출세가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러니 조선 최고의 붓쟁이 눈에는 원교의 힘 빠진 글씨가 성이 차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호기를 부리며 당장 현판을 떼어내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9년의 쓰라린 제주 유배를 겪은 추사는 골기 가득한 글씨의 내면을 발견하고 그의 글씨를 극찬하고 다시 대흥사에 걸도록 했다.
가허루에 걸린 편액은 호남의 명필 창암 이상만의 글씨, 백설당 현판은 구한말 명필 해사 김성근이 썼으니 이 외딴곳에서 조선을 대표하는 명필의 글씨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천불전은 꽃문살이 화려해 겨울에 왔지만 꽃향기가 절간 가득 퍼진다. 내부에는 옥돌로 만든 1000개의 불상이 눈을 휘 둥글게 만든다.
경내에서 가장 독특한 곳은 표충사 구역 밀양에 있는 표충사는 사명대사를, 이곳은 서산대사를 중심으로 사명대사, 처영 스님을 봉안하고 있다. 표충사 편액은 정조가 직접 써서 내려주었다고 한다.
대흥사는 서산대사가 의발을 전한 곳으로 그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조선 최고의 명당이기 때문. 일지암은 초의선사의 발자취가 머문 곳으로 차향이 가득한 암자다. 초의선사가 이곳에서 40여 년간 머물면서 다도를 정립시킨 차문화의 성지다. 추사뿐 아니라 다산 정약용과 차를 마시면서 교류한 장소
스님이 경내를 안내하면서 대웅전 앞 침계루에 올라 법고를 두드린다. 북소리의 울림은 대흥사뿐 아니라 두륜산 전체를 뒤흔드는 것 같다.
대웅보전의 석가모니는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북소리를 감상하고 있다. 한 발만 하얀 강아지, 짝짝이도 함께 말이다.
첫댓글 호남의 명당 자릴 대흥사 아주 좋아요..
500명 지키던 사찰이 이제 25명 스님, 인구 감소 피해 심각합니다.
해남 기차길 어서 연결되길 간정히 기다리며 가보려 하구요..
고구마가 유명하죠, 아마 ,해도 좋은 해남, 한달살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