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의 무제와 대결하던 BC 2세기의 위씨조선 우거왕이 어디에 있었느냐, 즉 위씨조선의 수도를 뜻하는 왕검성(왕험성)의 마지막 위치가 한국고대사의 중요문제 중 하나입니다. 전한이 위씨조선을 무너뜨리고 그 영역에 4군을 두었으므로 이 문제는 한사군의 위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통설은 한반도 북부의 대동강유역입니다. 이 가정에 따르면 낙랑군은 평안남도에, 현토군은 평안북도에 있습니다. 또 임둔군은 낙랑군의 동쪽에 있으므로 대동강 상류나 함흥부근이 됩니다.
낙랑군이 평안남도에 위치하면 BC 2세기부터 그 지역에 한나라의 유물이 나와야 합니다. 전한의 군현이므로 전한의 유물이 나와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만일 전한의 군현에서 전한의 유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는 고고학과 사료의 모순으로 어느 한 쪽이 틀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토군이 평안북도이면 고구려는 본래 현토군의 북쪽지역에서 건국하였기 때문에 고구려의 건국지는 압록강 중류가 됩니다. 따라서 왕검성의 위치는 고구려의 건국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고구려의 건국지가 결정되면 백제의 건국지가 결정됩니다. 백제의 건국지는 낙랑군의 위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백제는 낙랑군의 서쪽에서 최초로 건국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전한의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지역이라면 백제의 건국지는 남포부근의 바닷가입니다.
이런 면에서 최근에 발견된 요서지역의 임둔태수 봉니는 왕검성의 위치와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유물이 될 것입니다. 이 발굴을 소개한 복박사님은 위씨조선은 시종일관 만주에 있었으며 한반도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다. 따라서 한사군도 본래 만주(요서)에 있었다고 보십니다.
그러면 후한이 건국되기 전에 이미 존재하였던 한반도의 낙랑국이 어떻게 성립하였는가를 밝혀야 합니다. 이에 대한 뚜렷한 사료는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중에서 유일하게 환단고기가 낙랑국의 성립에 관하여 간략하나마 소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