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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관스님의 예술세계 원문보기 글쓴이: 선인화
허허당이 본 화엄세계
천년의 세월을 씻고
허허당 초대전에 부쳐
홀로 있는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獨木不成林)
天上有星皆控北
世間無水不朝東
白髮不隨人老去
轉眼又是白頭翁
하늘의 모든 별은 북극성을 따라 돌고
세상의 모든 물은 동쪽을 향해 흘러간다.
흰 머리카락은 나이 들어도 없어지지 않는데
눈 깜짝할 사이 또 다른 사람, 흰머리 노인이라네.
화엄은 비로자나불의 세계다
.
빛이요 광명이다.
밝은 세계이기에 어둠이 없고
깨달음의 세계이기에 어리석음이 없다.
그렇다고 어느 한 면의 부정이 아니라 한 바탕에서 어우러지는 세계다.
만물은 정해진 이치에 따라 빈틈없이 오고간다.
시작과 끝이 다르지 않고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니다.
그래서 초발심시변정각이다.
찾아 나서지 말라.
집 떠나면 고달프다.
손에 보물을 들고 구걸을 나설 것인가?
본래 구족한 자리...우린 화엄법계라 부른다.
화폭에 넘쳐나는 數의 향연에 경이롭다
.
천리 밖에서도 고아라고 속여서는 안 되고(千里不欺孤
)
홀로 있는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獨木不成林)
더불어 채워놓으니 일심동체다.
아름답기가 붉은 비단 위에 진주구슬을 흩어놓은 듯하다
.
작가가 꿈꾸는 세계는 그래서 장엄하고 눈물겹다.
옛날 불전에는 등잔을 상시로 켜놓았는데 심지가 오래되면
기름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심지 윗부분을 자주 잘라줘야 했다(剔起佛前燈).
허허당의 그림에 대한 발상이! 정열이 그렇다.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다던가?(路遙知馬力)
그리고 또 그려내도 지치지 않는 걸 보면 분명 그는 得力漢이다.
바람을 이용하여 불을 피우면 힘이 적게 들겠지(因風吹火 用力不多).
눈을 감고 보라!
불일 미술관장 보경
천년의 세월을 씻고 [觀]
떠나 있어라.
떠나 있는 자에겐 삶이 곧 여행이다.
찾지 마라 잃기 쉽다.
천년의 세월을 씻고 [傳燈]
아무런 일없이 겨울이가고 아무런 일없이 봄이 왔다.
본래무일물
본래 한 물건 없었건만 봄은 봄이요 겨울은 겨울이었다.
아무런 일없이 나고 병들고 아무런 일없이 늙고 죽었다
.
본래무일물
본래 생사가 없었건만 生은 생이요 死는 사였다.
천년의 세월을 씻고 [割]
새가 하늘을 날 때 오직,
제 몸에 붙은 날개 하나뿐이듯이
수행자가 의지 할 곳은 오직,
제 몸에 붙은 등뼈 하나뿐이로다.
화엄법계도/ 천년의 세월을 씻고 [존재의 기쁨]
아름다움,
그것은 어떤 사물의 한정된 모습이 아니라
빈 마음이다.
빈 마음으로 보는 세상은 무엇이든 아름답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눈에 띄는 모든 것이 다 신비롭고 아름답다
.
빈 마음. 모든 아름다움은 여기에 존재한다.
화엄법계도/ 천년의 세월을 씻고 [無心]
아무도 없는 빈 절,
달그림자 벗 하며 맑은 바람 차 마시고
이슬 따 얼굴 씻고 풀 섶에 눕노니
한 마리 산새는 창공을 논다.
화엄법계도/ 천년의 세월을 씻고 [존재의 슬픔]
세상이 나를 슬프게 할 때 나는 세상을 꼭 안는다.
마치 숨겨놓은 보석을 아무도 몰래 살짝 보듯 아까운 마음으로 세상을 꼭 안는다.
내가 슬플 때 세상은 숨겨놓은 보석 같이 아까운 마음으로 내 품에 안긴다.
화엄법계도/ 천년의 세월을 씻고 [고요한 비명]
오늘은 길 잃은 나그네의 슬픔으로 비에 젖은 아카시아 꽃향기로 서 있고 싶다.
내일은 산불에 몸살 앓은 작은 소나무로 서서 노승의 기침 소리에 편지를 써야겠다
.
처마 끝 풍경 바람에 몸살 앓고 객실 아랫목은 차갑기만 하다
.
나는 지친 만행의 몸을 풀고 싸늘한 객승의 옷을 벗겨 쾨쾨한 냄새로 그림을 그린다
인생은, 객이 잠시 머물다간 자리.
화엄법계도/ 천년의 세월을 씻고 [고요한 자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리기 보다는 품는 것. 닭이 알을 품듯
존재의 내밀한 그 무엇을 끊임없이 품고 사는 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지금의 내가 또 다른 나를 향해 고요한 자살을 꿈꾸는 일
화엄법계도/ 천년의 세월을 씻고 [破天舞]
화엄법계도/ 천년의 세월을 씻고 [새벽 분황사]
밤인가 해서 눈을 뜨니 밤이 아니요
낮인가 해서 눈을 뜨니 낮이 아니로다.
아 나는
세월 맨 끝 뒷모퉁이에서 無의 파편 하염없이 토하며
윤회의 사슬 뒤척이며 한 바퀴 생사의 꿈을 희롱 하노라
화엄법계도/ 천년의 세월을 씻고 [저물 무렵의 첨성대]
귀여운 자리,
두발 묻고 쓰러진 내 작은 무덤.
생명의 소리
온 밤 통곡으로 탑을 쌓고
다시 찾은 세상
아 아 겨울바람 소리만 울고 있구나.
화엄법계도/ 천년의 세월을 씻고 [다보탑과 석가탑]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시비 하는 자 없고
아무것도 줄 게 없어 관심 갖는 이 없도다
.
佛國의 밤 심심한 마당에 비 떨어지는 소리
한가로이 고개 숙인 중 살림이 넉넉하다.
화엄법계도/ 천년의 세월을 씻고 [순례자]
내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아무런 할 일 없이 오고 갔었네.
지금 길을 멈추고 생각해보니 온 일도 없고 간 일도 없네.
몸을 굽혀 앞을 보니 왼발은 뜨고 오른 발은 닿네.
화엄법계도/ 천년의 세월을 씻고 [비마]
한걸음 쉬어가고 두 걸음 쉬어가네
.
앙상한 빈 가지 소리내어 울고
맑은 바람 맑은 물은 태초의 소식 전하는데.
빈 몸 끌어안고 다시 길을 걷는다.
화엄법계도/ 천년의 세월을 씻고 [붉은 우주의 심장]
쉬려해도 쉬지 못한 건
가슴이 하나 밖에 없는 탓이요
놓으려 해도 놓지 못한 건
하나 뿐인 가슴이 타고 있기에
붉은 가슴이...
화엄법계도/ 천년의 세월를 씻고 [一心]
달도 휘고 해도 휘고
해인지 달인지 사람인지
무슨 일로 저렇게
한 덩어리로 서 있는가?
까만 밤은 어쩌라고!
화엄법계도/ 천년의 세월을 씻고 [一花]
어쩜 저리도 작은 몸을 가졌는가?
거미줄 같이 가는 몸, 눈이 아파 못 보겠네
햐~그 몸에 잎 나고 그 몸에 꽃피었네.
노랑 빨강 연분홍.
그 꽃에.. 빛을 숨기네 바람 숨기네.
내 일생을 몽땅 숨기네.
크다!
화엄법계도/천년의 세월을 씻고..춤추는 팽귄
너는 태어났다.
아무런 부족함 없이
너는 온전했다
.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이
어떠랴!
한점 바람이면
잠시 스쳐 지나갈 세상.
화엄법계도/천년의 세월을 씻고.. 바람의 아들
이승과 저승이 둘이라면
나는 기웃 기웃 홀로 걷는 두발 나그네
이승과 저승이 하나라면
나는 폴 폴 홀로 걷는 외발 나그네
쳔년의 세월을 씻고 [순결한 성전]
천년의 세월을 씻고 [님을 부르는 마음]
나, 님 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다만 님을 보기 위한 것만은 아니요
.
나, 님 을 부르는 것은 다만 님이 듣기를 바래서 만은 아닙니다.
나, 님 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다만 님 이 가셨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천년의 세월을 씻고/ 생명의 축제(歡)
우주는 하나의 큰 생명 덩어리요
세계는 하나의 큰 생명의 꽃이로다.
천년의 세월을 씻고/ 생명의 축제 (寂)
여기 꽃이 있네
.
생명의 꽃 우담바라 우담바라의 꽃은 피고
여기 피어 있네.
부처의 꽃 중생의 꽃 온갖 성인의 모습으로 온갖 중생의 모습으로
여기 피었도다
.
영원한 생명의 꽃 무량수화 영원한 빛의 꽃 무량광화
그대는 이미 우담바라다 싹을 틔우고 꽃으로 나아가라
우담 바라는 삶의 꽃이다 활짝 핀 마음으로 사는 꽃이다.
般若
허허당이 본 화엄세계는
사상 주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觀
화엄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생명관. 우주관
.
하늘도 땅도 일체 만물이 생명 아님이 없다는 부처님의 覺觀
.
이것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 화엄법계도 이다
생명은 어떤 경우에도 주의, 사상, 이데올로기가 아닌
절대 자유라는 것이 허허당의 생각
따라서 화엄은 어떤 사상적 배경이 아닌
우주는 하나의 큰 생명임을 고함치고 싶은 생명의 몸짓
그 이름을 화엄법계도라 한 것이다.
첫댓글 허허당의 학 그림들 잘 감상 했습니다
천년의 세월이 지나야 알 것도 같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