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남자 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는데요....
조선 명종 때에 함경도 길주에서 어떤 사람이 남자와도 결혼을 하고, 여자와도 결혼을 한 이상한 일이 있어서 그 사람을 조사해 보니 남자와 여자의 거시기를 모두 가진 사람이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다.
-- 20 여 년 전에 카나다의 한 여자배우가 아기까지 출산한 이후에 남자로 성전환수술을 하여 어떤 여자와 결혼을 한 적이 있는데, 이 경우는 멀쩡한 여자가 성전환 수술을 한 경우이기 때문에 좀 다른 경우이다 --
그 사람은 "임성구지(林性仇之)"라는 이름의 사람인데, 이름으로 보아 여진족 계통의 사람으로 판단된다. 당시 조정에서는 이 해괴한 사건을 놓고 한참 고민하다가 세조 임금 때 "사방지(舍方知)" 사건의 판례를 따라 처리하라고 결정하였다.
그러면 "사방지" 사건은 또 무엇인가? "사방지" 사건은 조선 세조 때에 무려 14회나 조선왕조실록에 이름이 올라 있었던 유명한 사건이다.
'사방지"는 원래 어떤 양반 댁의 노비였는데, 수염도 나지 않고 여자 옷을 입고 다니며 바느질을 좋아 하는 그냥 보통 여자였다. 그러나 사실은 남자여자의 거시기를 다 가지고 태어난 그런 비운의 여인(?)이었다.
그냥 보통 노비로 살다가 그냥 죽었으면 별일도 아니었을 텐데 어떤 과부가 밤마다 불러서 같이 지낸 것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고, 그것이 화근이 되어 임금님까지 간섭을 해야 하는 큰 사건으로 확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왜 임금까지 나서야 했는가 하면 사방지와 관련된 그 과부가 대단한 사람의 딸이었고, 동시에 영의정 대감의 안사돈이었기 때문이다.
그 과부는 우리나라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이면서 천문학의 대가이기도 한, 세종대왕과 세조임금이 가장 아끼는 "이순지" 대감의 따님이었고, 동시에 당시 영의정까지 올랐던 "정인지" 대감의 사돈 부인이었다. 그러니까 그 과부의 아들이 정승대감의 사위였고, 그 과부의 친정 아버지 또한 임금님이 가장 자랑으로 여기는 과학자이었으니, 한 마디로 이 과부는 임금님도 두렵지 않은 용감한 아줌마였다.
그런데, 이 용감한 과부 아줌마가 어떤 비구니의 소개로 사방지를 알게 되었고... 사방지는 낮에는 바느질 동무가 되어 주고, 밤에는 잠자리의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아마도 그 비구니가 자기로서는 더 이상 감당이 안 되니까 대갓집 마님에게 넘겨 준 것으로 보인다.
노비 출신 사방지가 갑자기 호의호식하며 출세하게 되자 분수를 모르고 까불게 되었고, 주위 사람들은 "제까짓 게 뭔데.." 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다가 "매일매일 동거"가 입방아에 올랐고...
정밀조사 결과 "양성을 다 가진 괴물"로 판명이 났고... 아무리 법전을 다 뒤져 봐도 이런 경우의 법 조문은 안 보이고.... 임금님도 골치가 아파서 "에라, 모르겠다. 이순지 대감 당신 딸의 일이니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라 하였고, 이순지 대감은 사방지를 서울 바깥으로 추방하는 걸로 사건은 마무리 지었는데
나중에 이순지 대감이 죽자, "울 아빠 없다. 또 놀자" 하면서 사방지를 또 불러들여서 밤낮으로 사이좋게 놀았다.
결국은 임금님이 또 개입하였으나 아무리 봐도 법전에는 "인간을 위한 법"만 있지, "괴물을 위한 법"은 없어서 또다시 추방하는 정도로 사건을 끝내는 수밖에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후의 기록은 없는데 그 용감하신 과부님이 사방지의 귀양지인 "신창현"으로 가끔 찾아 가서 놀다 오기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순지 대감과 그 따님은 본관이 양성(陽城)이라 "양성 이씨"라는 점이다. 양성 이씨라서 과부가 된 이씨 부인이 양성(兩性)을 가진 사방지와 놀았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참으로 희한한 우연이었다.
어쨌든 함경도 길주의 양성 인간(?)도 사방지의 예처럼 다른 동네로 추방하는 것으로 결말을 냈다.
아직도 어리둥절한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조선왕조실록 중 2군데 것만 소개해 보기로 한다.
-------------------------------------------------------- 명종 008 03/11/18(기축) 함경 감사의 장계에 따라 양성(兩性) 인간 임성구지를 외진 곳에 살게 하다
함경 감사의 장계에, “길주(吉州) 사람 임성구지(林性仇之)는 양의(兩儀)가 모두 갖추어져 지아비에게 시집도 가고 아내에게 장가도 들었으니 매우 해괴합니다.”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성구지의 일은 율문(律文)에도 그러한 조문은 없으니 대신에게 의논하라. 성종조(成宗朝)에 사방지(舍方知)를 어떻게 처리하였는지 아울러 문의하라.”하였다. 영의정 홍언필이 의논드리기를, “임성구지의 이의(二儀)가 다 갖추어짐은 물괴(物怪)의 심한 것이니 사방지의 예에 의하여 그윽하고 외진 곳에 따로 두고 왕래를 금지하여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하니, 상(임금)이 따랐다.
【*사방지(舍方知)의 일은 이러하다. 사방지란 자는 사천(私賤)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 어미가 여자아이의 의복을 입히고 연지와 분을 발라주고, 바느질을 가르쳤다. 장성하여서는 벼슬한 선비의 집안에 꽤나 드나들며 많은 여시(女侍)와 통하였다. 선비 김구석(金九石)의 아내 이씨(李氏)는 판원사(判院事) 이순지(李純之)의 딸인데, 과부로 있으면서 사방지를 끌어다 수놓는다고 핑계하고 밤낮으로 함께 있은 지가 거의 십년이 되었다. 천순(天順) 7년 봄에 사헌부에서 듣고 국문을 하였는데 그가 평소에 통하였던 여승[尼]에게 묻자, 여승이 말하기를 ‘양도(陽道)가 매우 장대하다.’ 하므로 여자아이 반덕(班德)에게 만져보게 하였더니 정말이었다. 상이 승정원 및 영순군(永順君)의 스승 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 등에게 여러 가지로 시험하여 보게 하였다. 하성위의 누이는 이씨의 며느리였다. 하성위 역시 혀를 내두르며 ‘어쩌면 그렇게 장대하냐.’ 하였다. 상은 웃으시고 특별히 추국하지 말라고 하시며 이순지의 가문을 더럽힐까 염려된다.’ 하시고 사방지를 이순지에게 주어 처리하게 하니 이순지는 다만 곤장 십여 대를 쳐서 기내(畿內)에 있는 노자(奴子)의 집으로 보내었다. 얼마후 이씨는 몰래 사방지를 불러들였는데 이순지가 죽은 후에 더욱 방자하게 굴어 그침이 없었다. 그 뒤에 재추(宰樞)가 한가한 이야기 끝에 아뢰니, 상이 사방지를 곤장을 쳐 신창현(新昌縣)으로 유배하였다.】
임성구지의 일이 이렇게 조용히 처리된 반면 세조때의 사방지 사건은 자못 소란스러웠다(세조때 무려 14번이나 사방지에 관한 일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있다). 그러면 사방지란 누구이며,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아보자. [세조실록](1437)에 나와있는 내용을 하나만 살펴보자.
세조 042 13/04/05(경자) 풍속을 문란하게 한 종 사방지의 죄를 핵실하고 외방의 노비로 소속시키다
처음 김구석(金龜石)의 아내는 이순지(李純之)의 딸이었다. 일찍이 과부가 되었는데, 그 일가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의 종[奴] 사방지(舍方知)라는 자는 턱수염[鬚]이 없어 모양이 여자와 같은데다가 재봉(裁縫)을 잘하여 여자 옷을 입고 일찍이 한 여자 중을 통간(通姦)하였다. 여자 중과 이씨(李氏)는 이웃하였으므로 사방지(舍方知)가 인연이 되어 이씨(李氏)의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 마침내 사랑하고 가까이 친해짐을 보고는 좌우에 있으면서 음식도 그릇을 같이 하고, 앉고 눕는데도 자리를 같이 하며 의복(衣服)도 빛깔을 같이하니 모두 사치스럽고 화려하기가 극도에 달하였다. 노비(奴婢)가 섬기기를 집 주인과 같이 하여, 이웃 마을에서 비록 알더라도 이씨(李氏)는 달리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니, 추잡한 소리가 퍼지어 대관(臺官)이 이를 규찰(糾察)하였다. 임금이 승정원(承政院)으로 하여금 안험(按驗)하게 하고, 사족(士族)을 더럽히고 욕되게 함은 옳지 못하다 하여 석방하려고 하니, 길창군(吉昌君) 권남(權擥)이 치죄(治罪)하기를 힘껏 청하므로, 명하여 사방지(舍方知)를 의금부(義禁府)의 옥(獄)에 내려 핵실(實)하게 하고, 이어 이순지(李純之)의 구처(區處)에 붙이니, 이순지가 엄호(掩護)하여 징치(懲治)하지 아니하고 시골집[村莊]에 두었는데, 이씨(李氏)가 온천(溫泉)에 목욕함을 칭탁하고 따라갔다. 이순지가 졸(卒)함에 미치자 사방지는 다시 이씨(李氏)의 집에 들어가 처음과 같으므로, 헌부(憲府)에서 안찰(按察)하고 여의(女醫)로 하여금 증험하여 보게 하였더니, 과연 그러하였다. 이순지(李純之)가 여러 재상(宰相)에게 말하기를, “헌부(憲府)는 어찌 혹심합니까? 그 근거는 바로 쓸데없는 군말이고 진실이 아닙니다.”하니, 당시 사람들이 기롱하기를, “속담에 사위를 췌랑(贅郞)이라고 부르니, 이공(李公)의 발명(發明)은 진실을 발명하였다.”하였었다. 이에 이르러 한명회(韓明澮)가 아뢰기를,“사방지(舍方知)는 다시 이씨(李氏)의 집에 들어가 추납한 흔적이 더욱 현저하니, 청컨대 먼 지방으로 유배(流配)하소서.”하니, 임금이 말하기를,“전에도 이미 국문하지 않았으니, 지금도 또한 우선 용서하라.” 하니, 신숙주(申叔舟)와 심회(沈澮)가 진언(進言)하기를,“사방지(舍方知)는 일찍이 한 여자 중을 통간(通姦)하고 여자 중은 마침내 머리를 길렀으니, 그 정상을 알 만합니다. 청컨대 도성 안에 머물러 풍속(風俗)을 오래도록 더럽힘이 없게 하소서.”하고, 홍윤성(洪允成)은 아뢰기를,“신과 한계희(韓繼禧)·노사신(盧思愼) 등이 함께 들었으니, 이 일은 진실로 허위가 아닙니다.”하고, 신숙주(申叔舟)가 또 아뢰기를,“외간(外間)에서 전하는 말이, ‘사방지(舍方知)가 아니고 바로 서방적(西房的)이라’고 하니,【속담에 사위는 서방(西房)에서 묵으니, 따라서 사위를 서방(西房)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사람은 강호기문(?곽?紀聞)에도 또한 있습니다.”하니, 임금이 서거정(徐居正)에게 이르기를, “경(卿)도 또한 아는가?”하니, 서거정이 대답하기를,“과연 있습니다. 그 말에 이르기를, ‘하늘에 달려 있는 도리는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사람에게 달려 있는 도리는 남자(男子)와 여자(女子)라고 한다.’ 합니다. 이 사람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니, 죽여서 용서할 게 없습니다.”하니, 임금이 좌승지(左承旨) 윤필상(尹弼商)에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인류(人類)가 아니다. 마땅히 모든 원예(遠裔)와 떨어지고 나라 안에서 함께 할 수가 없으니, 외방(外方) 고을의 노비로 영구히 소속시키는 것이 옳다.”하였다. 이씨(李氏)의 집은 돈이 넉넉하고, 한 아들이 있으니 이름은 김유악(金由岳)이다.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의 사위가 되어, 일찍이 그 어미에게 울면서 간하였으나, 마침내 용서를 받지 못하였다. -------------------------------------------------------------
쯧쯧쯧...
사람이 태어 날 때에 대개 남자 아니면 여자인데, 남녀의 거시기를 다 가지고 태어 나는 경우가 지금도 종종 있다. 확률은 100만분의 1 정도라고 알려져 있고, 그 확률대로라면 현재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람이 최소한 40명 이상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병원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이런 경우에는 생후 1년 이내에 어느 한 가지 성별로 통일시켜 준다고 하는데, 대개는 "남성"을 잘라 버리고 "여성"을 만들어 준단다.
외관상으로 여성을 만들어 주기는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대개는 임신을 못하는 여성이 된다고 한다. 불임 여성으로 사는 것이 나은 건지,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은 남성으로 사는 것이 나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이 이 경우에는 남자를 포기시킨다고 한다.
요즈음은 의학이 발달하여 이와 같이 일찌감치 어느 한 쪽을 선택하여 정작 본인은 자신의 비밀은 잘 모르게 하여 평생을 살아가게 할 수는 있지만 옛날에는 그렇게도 못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 그러면 이러한 일이 어째서 일어 나는 것일까?
대부분의 경우 남녀의 성구별은 X, Y 의 유전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여기서 대부분이라 함은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SFG(Sex Factor Gene:성 구별 인자)라는 것이 X 또는 Y 인자에 제대로 제 위치에 달라 붙어 있어야 하는데, 간혹 떨어져 나갈 수도 있고 엉뚱하게 뒤바뀌어서 붙기도 한다.
이게 대략 10만분의 1의 확률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 현재 최소한 400명 이상은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유전자가 XX인데도 남자가 될 수가 있고, XY인데도 여자가 될 수가 있다.
유전자 XY를 가진 여자인 경우는 뱃 속에 자궁 대신에 남자의 고환이 대신 들어가 있을 때도 가끔 있다.
병원에서는 이런 경우 대부분은 환자에게는 자세히 알리지 않고 "단순한 종양"이라 하면서 거짓말을 하고서는 슬쩍 제거해 버리곤 한다. 임신이 안 되는 불임 여성들 중의 일부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임신이 안 된다. 물론 병원에서는 환자가 충격 받을까 봐 자세히 이야기해 주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요즘 성전환 수술을 하는 사람의 경우, 만약 그가 어렸을 때부터 여성스러운 행동을 많이 했던 남자였다면 그의 유전인자가 처음부터 XY가 아닌 XX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만약 처음부터 유전자가 XX인 남자였다면 그는 "성전환수술"이 아니라 "성 도로 찾기" 수술을 한 셈이 된다. (그래도 여전히 내부적으로는 불완전 XX이기 때문에 임신은 안 된다)
하여튼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유전인자에 이상이 생겨서 겉으로는 분명히 멀쩡한 남자 또는 여자이지만, 내부적으로 완전한 남자, 완전한 여자가 못되는 경우가 10만분의 1 정도이고.. 그게 좀 심하여 아예 바깥으로 남녀의 그것이 모두 드러나는 경우(양성 또는 간성이라 함)가 100만분의 1 정도이다.
요사이 20만 달러만 주면 인간을 복제해 준다는 클로네이드 회사에서 불임여성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는데....
만일, 만일보다 더 만일에 ("만일"은 "만 번에 한 번씩"이나 되니까.. 그것보다 더 적은 확률로)
위와 같은 돌연변이 유전자 인간을 실수로 복제해 내는 사고가 벌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으음..
갑자기 골치가 아파 오는군요... 제 대신 고민 좀 해 주세요.. 그럼 저는 이만,....
네? 뭐라구요? 그 양성 인간이 쉬-- 할 때 어디로 나오느냐구요? 거 참 별 걸 다 묻네요. 이 코너가 얼마나 점잖은 코너인데 그런 말을...
사실 저도 그게 엄청나게 궁금했는데... 20 여 년 전에 경기도 모 학교 교사의 누님에 그런 분이 있었는데.. 여러 번 술자리를 같이 했다는 분들의 말씀에 의하면...
쉬--가 두 군데(?)로 다 나와서 불편한 점이 많다고 하더군요 웃지 마세요. 웃을 일이 아니지요... 정말 끝. =============================== 글쓴이 : 문학박사 황재순(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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