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 축구에 남긴 발자취는 너무도 거대했다. 그가 대표팀에서 물러난 이후, 아리엘 오르테가(Ariel Ortega), 마르셀로 가야르도(Marcelo Gallardo), 심지어는 그와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보유하고 있는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Juan Sebastian Veron)까지도 '마라도나의 후계자' 또는 '제 2의 마라도나'라는 수식어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녀야만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직까지 마라도나처럼 '승리의 화신'을 연상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선수들에게 기대하고 있다. 어린 미소년같은 외모를 지니고 있는 파블로 아이마르는 최근 들어 급속하게 커다란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젊은 스타 중 한명일 것이다. 01/02 시즌, 발렌시아가 31년만에 스페인 왕좌 자리를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고, 2002 월드컵에서도 자신의 무한한 잠재 가능성을 보여줬던 그가 범상치 않은 재능의 소유자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베론과 아이마르가 호흡을 맞추는 아르헨티나의 환상적인 미드필드 라인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후안 로만 리켈메(Juan Roman Riquelme), 안드레스 달레산드로(Andres D'Alessandro), 에스테반 캄비아소(Esteban Cambiasso)와 같은 젊은 기대주들과 기존의 킬리 곤살레스(Kily Gonzalez), 하비에르 사네티(Javier Zanetti), 후안 파블로 소린(Juan Pablo Sorin)등이 조화를 이룬다면 더더욱 환상적일 것이다.
'마라도나의 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신들린듯한 그의 플레이와 함께 호흡하지 못한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역사를 직접 목격하는 행운을 누릴지도 모른다. 아이마르가 아르헨티나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게 될지, 더 나아가 마라도나가 세웠던 금자탑을 다시금 쌓아올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그 가능성을 타진해볼만한 시기가 바로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READY~
아이마르의 아버지 리카르도는 뉴웰스 올드 보이스와 벨그라노에서 활약했던 축구 선수 출신이다. 그는 78'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차지했던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조국의 우승에 크게 공헌했던 당시 대표팀 감독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Cesar Luis Menotti)의 이름을 그의 아들 파블로에게 선물했다.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파블로 '세자르' 아이마르(Pablo Cesar Aimar)는 어렸을때부터 공을 갖고 노는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유년 시절, 지역팀 중 하나인 에스투디안테스(Estudiantes)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그 이후에 리베르 플라테 B팀에 입단하기 위해 1994년에 14살의 나이로 시험을 치렀다. 하지만 리베르는 그를 선택하지 않았고, 어린 파블로는 실망스러움을 묵묵히 참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수비수로 이름을 남기고 있는 다니엘 파사레야(Daniel Pasarella / 98' 프랑스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는 확실히 인재를 찾아내는 안목의 소유자였다. 아이마르를 눈여겨 본 그는 전화를 걸어 "다음해에 입단시켜주겠다" 라는 메세지를 남겼다고 한다. 노르베르토 알론소, 엔조 프란세스콜리, 아리엘 오르테가등 리베르 플라테의 수퍼스타들을 동경해왔던 파블로에게는 분명 잊을 수 없는 짜릿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의욕적으로 리베르에 입단한 그는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나가는데 몰두했고, 곧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는 수많은 축구 스타들을 배출해낸 유서깊은 무대로 잘 알려져 있다. 아이마르 또한 이 대회를 통해 집중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는 말레이지아에서 펼쳐졌던 97년 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조국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차지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세우기도 했다. 청소년 대회가 막을 내린 이후, 팀의 우승을 이끌어낸 아이마르, 리켈메, 캄비아소등은 많은 주목을 받았고, 아르헨티나의 미래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서서히 소속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들었다. [사진: 97 청소년 대회의 우승 주역 - 파블로 아이마르, 에스테반 캄비아소]
GO!
리베르 플라테의 간판스타였던 아리엘 오르테가의 유럽 진출 이후, '리베르의 살아있는 전설' 엔조 프란세스콜리(Enzo Francescoli)의 No.10 셔츠를 물려받은 아이마르는 팀의 확실한 플레이메이커로 정착해나갔다. 축구공을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재능은 그에게 'El Payaso(The Little Clown)'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이는 '어릿광대'라고 해서 흔히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는 말이지만, 팬들은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그를 이러한 애칭으로 부른다고 한다.
99년에 아이마르는 아르헨티나 리그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그의 현란한 테크닉과 감각적인 시야, 정교한 패싱등은 리베르 플라테의 홈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어느덧 남미 리그에서 손꼽히는 스타 플레이어로 자리매김을 해나갔다. 팔레르모와 리켈메, 카냐, 델가도, 바로스 셸로토등이 이끄는 보카 후니오르스를 맞이해 리베르 플라테가 자존심으로 내세울 수 있었던 인물은 사비올라, 앙헬과 함께 바로 파블로 아이마르였음이 분명했다.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선보인 후, 고국 아르헨티나로 돌아 온 오르테가는 아이마르, 앙헬, 사비올라와 함께 'Los Cuatro Fantasticos(The Fantastic Four)'라 불리우며 리베르 플라테에 한층 화려함을 더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팀의 구심점은 아이마르였고, 그의 활동 영역은 오르테가와 별다른 충돌을 일으키지 않은채 조화로운 모습을 갖춰나갔다.
이제 아이마르는 아직 아르헨티나에서 이뤄야 할 것들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다양한 경험을 위해 유럽 진출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왔음을 깨달았다. 그에게 인터 밀란과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몇몇 클럽들이 접근해왔지만, 아이마르의 선택은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적극적으로 영입 의사를 타진한 스페인의 발렌시아였다.
DASH
아르헨티나 리그 역사상 최고 이적료(2200만불)를 기록하면서 발렌시아의 유니폼을 입게 된 아이마르는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스페인에 입성했다. 비록 존경하는 선배 아리엘 오르테가는 이곳에서 성공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The Bullfighter(투우)'라 불리우던 78' 월드컵 우승 주역 마리오 켐페스와 현 대표팀의 레프트 공격수 클라우디오 로페스가 클럽을 대표하는 스타로 남아있다는 점에서 그의 발렌시아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아이마르의 발렌시아 데뷔전은 잉글랜드의 거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원정 경기였다. 노르웨이 출신의 장신 스트라이커 욘 사레브(John Carew)의 뒤를 받치는 셰도우 스트라이커로 출전했던 그는 후반전에 들어서면서부터 특유의 재간을 마음껏 선보이며 최고 수준의 찬스 메이킹 솜씨를 훌륭하게 발휘해냈다. 각종 스페인 언론들은 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축구영웅 요한 크라이프가 아이마르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는 점이었다. [사진: 로이 킨 vs 아이마르 - 'El Payaso'의 발렌시아 데뷔전]
Johan Cruyff - "아이마르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모두가 지켜봤을 것이다. 그는 많은 것들을 지니고 있었다. 탁월한 볼터치, 정확한 위치선정, 동료들과의 지혜로운 협조 플레이,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패스를 해낼 수 있는 능력까지. 아이마르는 유럽에서 성공할 수 있는 모든 자질을 겸비하고 있다. 아직 매우 어리고, 좀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지만 지금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나다. 몇년후에 그가 어떤 선수가 되어있을지 한 번 상상해보라."
라스 팔마스와의 데뷔전에서 행운의 프리킥골을 뽑아내며 기분 좋은 출발을 보인 아이마르는 이후 메스타야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전에서도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팬들의 기대감을 더욱 부풀게 했다. 하지만 01/02 시즌 초반에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전혀 제 기량을 펼쳐보이지 못했고, 이러한 부진이 반복될수록 아이마르에게 쏟아지는 것은 따뜻한 격려가 아닌 야유의 목소리였다. 결국 벤치 멤버로 밀려난 그는 적지 않은 마음 고생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나 2002년으로 접어들면서 경기를 거듭할수록 플레이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바르셀로나전에서 터뜨린 팀의 두번째골과 32라운드 테네리페와의 경기에서 극적으로 성공시킨 결승골이 결정적이었다. 강등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테네리페를 맞아 0의 행진을 거듭하던 발렌시아가 만약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더라면 01/02 시즌 프리메라 리가 우승팀은 레알 마드리드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후반 말미에 터진 아이마르의 그림같은 중거리슛이 팀을 구해냈고, 발렌시아는 이 승리를 계기로 추격의 고삐를 더욱 힘차게 당길 수 있었다.
결국 발렌시아는 31년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영예를 누렸고, 아이마르는 이미 '작은 영웅'이 되어있었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월드컵으로 쏠렸다. 많은 전문가들이 파블로 아이마르의 이름을 '주목해야 할 영스타' 1순위에 올려놓으며 주위의 시선을 끌어모으는데 한 몫을 했다. 나이지리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교체 멤버로 출전했던 그는 16강 진출 티켓을 놓고 맞붙은 스웨덴과의 최종 경기에서는 스타팅으로 출격하며 자신의 진가를 마음껏 발휘했다. 하지만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는 불운한 탈락을 맞이했고, 어린 아이마르에게는 상처만이 남았던 첫 월드컵이었다.
FLY?
이제 아이마르는 자신이 한 시즌동안 변함없이 꾸준한 활약을 펼쳐보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야만 한다. 그가 지난 시즌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월드컵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준 것 또한 사실이지만 주위의 기대감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좀 더 확신감을 심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그가 보여왔던 가파른 상승 곡선이 갑자기 궤도를 바꾸리라 예상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아이마르는 지난 1년동안 의미있는 경험을 했고, 젊은 기대주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것들은 더욱 훌륭한 선수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보다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가까이에 있는 선배들의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면에 있어서 어쩌면 아리엘 오르테가는 가장 이상적인 '도우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마르가 리베르 플라테의 유니폼을 막 입기 시작했을때부터 팀의 간판 스타로 자리잡기 시작한 오르테가는 오랜 마음속의 우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는 리베르의 팬들을 열광시키는 오르테가의 플레이를 존경하며 자신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발렌시아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모습을 보인 후, 이탈리아 파르마에서도 실패를 경험해야만 했던 오르테가의 전례들은 이제 막 유럽에서의 성공 시대를 알리려 하는 아이마르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을 것이다. [사진: 대표팀에서 함께 훈련하는 아이마르와 오르테가]
아직도 발렌시아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는 클라우디오 로페스(Claudio Lopez) 또한 훌륭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그와 아이마르는 돈독한 우정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무엇보다도 발렌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아르헨티나 선수 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로페스의 성공'은 '오르테가의 실패'와는 다른 교훈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El Payaso' Says ◁: )
Tape 1. 아이마르가 존경하는 인물들
"어린 시절에 봤던 노르베르토 알론소(Norberto Alonso)를 결코 잊을수가 없어요. 그는 저의 영원한 우상이죠. 엔조 역시 아주 인상깊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존경할 수 있었던 선수는 바로 오르테가에요. 정말 최고의 선수죠." [사진: 7~80년대 리베르 플라테의 간판 스타로 활약했던 'El Beto' 노르베르토 알론소]
Tape 2. 발렌시아 유니폼을 입게 된 소감
"리베르 플라테를 떠나는 것은 분명 어려운 결정이었죠. 하지만 아르헨티나 출신의 몇몇 선수들이 발렌시아에서 플레이했고, 킬리 곤살레스와 로베르토 아얄라는 새로운 준비를 하는데 있어서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전 켐페스와 피오호(Piojo/클라우디오 로페스의 애칭)가 했던만큼 이 곳에서 잘해내기를 원하고 있어요."
Tape 3. "사과하고 싶지는 않아"
(01/02 시즌 초반, 슬럼프에 빠져있던 중) "사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른 환경과 스타일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제가 보다 많은것을 해내야 한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좀 더 참을성을 갖아야 해요."
"곧 아르헨티나에서 펼쳐보였던 플레이들을 반드시 재현해낼겁니다. 그때가 되서야 모두가 진정한 아이마르를 지켜볼 수 있을거에요."
Tape 4. "지단이 부러워"
"레알 마드리드에서 지단이 맡고 있는 역할이 바로 저에게 가장 이상적인 임무입니다. 하지만 전 모든것을 해내기 위해서 스페인에 왔어요."
"2002년이 되면서 점점 나아지고 있는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전 더욱 많은것을 해내길 원해요. 단지 뛰는것만으로 만족할수는 없으니까요."
"프리메라 리가는 최고의 리그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서 뛰고 싶은 생각이에요."
"제가 스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가지 분명한것은 한 사람의 축구선수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거죠. 저를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Tape 5. 돈보다 중요한 것
"돈으로 저를 평가하지는 말아주세요. 제게는 가족과 친구들이 제 몸값으로 매겨진 1300만 파운드보다 훨씬 값어치있는 것이니까요."
Tape 6. 겸손한 아이마르?
"만약 제가 축구선수가 아니었다면 여자들은 절 거들떠보지도 않았을겁니다."
X-File
하나 - 처음 태어났을때의 몸무게는 3.4kg 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후안 파블로 아이마르'라는 이름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버지에 의해 '파블로 세자르 아이마르'로 불리우게 되었다.
둘 - 파블로는 어렸을때부터 항상 조용한 것을 좋아했다. 독서와 음악 감상은 오랜 취미로 손꼽힌다. 그는 내성적이고,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는 듣는것을 즐긴다고 한다.
셋 - 수줍음이 많아서 언론들과 접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자와의 인터뷰 시간 또한 결코 긴 편이 아니다.
넷 - 많은 사람들과 함께 파티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따라서 팀 동료들이 먼저 물어보지 않는 한 자신의 생일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다섯 - 농담이나 유머를 좋아한다. 하비에르 사비올라와 함께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긴다.
여섯 - 사비올라의 어머니 메리는 아이마르에게 제 2의 부모와도 같은 존재다. 그가 어린 시절,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홀로 남겨졌을 때 메리는 파블로를 마치 아들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어머니의 정성 덕분에 하비에르와 파블로는 이제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일곱 -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지만, 결코 공부를 소흘히 하지 않았다. 그는 약대(medicine college)에 갈 수 있었지만, 축구에 보다 전념하기 위해 대학을 선택하지 않았다.
여덟 - 그룹 'Los Piojos'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아홉 - 어릿광대라는 뜻을 갖고 있는 그의 별명 'El Payaso'는 아르헨티나의 스포츠 일간지 의 편집장에 의해 만들어졌다. 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이 보는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붙여준 애칭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마르는 이러한 별명으로 불리우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열 - 요즘에는 몇몇 발렌시아 팬들이 'El ángel(천사)'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P.R.O.F.I.L.E
성명 : 파블로 세자르 아이마르(Pablo Cesar Aimar)
생년월일 : 1979년 11월 3일
국적 : 아르헨티나
신장 : 170cm
체중 : 62kg
주포지션 :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클럽 : 리베르 플라테(1996~2000/아르헨티나), 발렌시아(2000~/스페인)
주요경력 : 97 Apertura 우승, 96, 99 Clausura 우승, 97'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 우승, 99' 아르헨티나 리그 최우수 선수, 01/02 시즌 프리메라 리가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