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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아름역사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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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아름]대고구려 인물 영류태왕에 대한 최신논문(2011년)
麗輝 추천 0 조회 183 11.08.26 16:20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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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9.21 17:37

    첫댓글 영류왕으로 표현되는 고구려의 대당인식이 지나치다라는 논지를 보이셨는데, 그 교류형태는 불문하고, 신생 1년이라하지만 당시에나 이후에나 중원정부에 대해서 고구려는 심각하게 그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단지 신생정부일 뿐이지 중원이라는 큰 존재를 무시할 정도로 당시 고구려가 독립적으로 패권을 쥐고 있었다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 작성자 11.09.21 20:58

    아...이 부분은 약간 오해를 낳을 수도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일단, 제가 갖는 생각을 정리하자면. 고구려는 4세기, 중국에서 남북조 시대라는 큰 혼란기가 찾아왔을 때 오히려 왕권이 안정화되면서 제국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박경철 선생님은 지역적 군사강국이 이 시기 비로소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제국이 되었다고 했는데 저 역시 동의합니다. 그리고 5세기 북중국과 남중국이 二强 체제로 굳어질 때 고구려 역시 동방의 제국으로서 다원화된 천하관을 바탕으로 국가를 경영하게 됩니다. 즉, 5세기 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고구려로서는 중원에서 다시 통일된 국가가 들어서는 것에 늘 신경을 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작성자 11.09.21 21:00

    그런데 수나라가 건국되면서 한번 고구려는 큰 전쟁을 치룬 바 있습니다. 물론 결과가 좋아서 고구려로서는 큰 손해없이 자신의 천하관도 지키고, 중원의 일원적 천하관도 박살을 냈죠. 그런데 이후 당이 들어서는 시기에, 고구려가 과연 어떤 마인드를 갖고 있었을까? 하는 것이 여기에서의 포인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당시 영류왕이 고구려와 교류한 것이, 그들로부터 뭘 인정을 받고 그들로부터 조공을 받고, 뭔가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것이 있어서...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 뿐입니다. 더군다나 수나라처럼 전국을 다 통일하지도 못한 신생국한테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 이글루스의 한단인님은 당시 고구려가 여러 군웅 중 당

  • 작성자 11.09.21 21:02

    나라하고만 교류했을까?(http://chiwoo555.egloos.com/3222603)하는 의문을 갖기도 하더라구요(문헌에 기록이 없으니 모르는 일이지만요). 다시 말해 저는 오히려 고구려는 중원이라는 큰 존재를 알고 있기에,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늘 예의주시하고, 그들의 동향을 살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고구려가 지속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다원적 천하관에서 갖고 있는 위상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도 있을테고요(5세기때처럼 말이죠). 그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조공과 같이, 중원왕조가 우위에 서는 시각으로 당시 상황을 봐서는 안 되지 않나~하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꼬비에뚜님 말씀대로, 중원이라고는 하지만 당은 말 그

  • 작성자 11.09.21 21:05

    대로 신생국가였지 않습니까? 아무리 중원왕조가 잘났다 한들, 고구려가 자신의 천하관을 놔두고 굳이 신생국에게 머리를 조아렸다고 보는 해석 자체가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김용만 선생님 같은 경우, 고구려가 왜 신라와 달리 당과 싸울 수 밖에 없었냐는 질문에 '독자적인 천하관을 갖춘 제국으로서 그렇지 않을 경우, 자국의 천하관과 위상이 무너지기 때문'이라고 답한 것을 보면(『새로 쓰는 연개소문傳』참고) 더더욱 위와 같은 시각은 의문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론을 정리하자면...당시 고구려는 중원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너무 신경썼기에 신생국과도 교류를 잽싸게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11.09.22 08:22

    말씀하신 당시의 전반적인 상황은 제가 참고서적을 좀 보고 말을 해야겠습니다. 상당한 의문이 생기네요.

  • 작성자 11.09.22 10:56

    아~네...

  • 11.09.21 17:43

    그리고 종교문화적인 측면을 좀 약하게 보시는 것 같은데, 당시 뿐만이 아니라 고대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불교(고구려의 경우 도교 포함) 교류는 핵심적인 컨텐츠였고, 오체투지하면서서 전수해주십사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것을 받기 위해서는 상대정부의 시혜가 없으면 있을 수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 불교의 컨텐츠가 있다면 비록 신생이었다하더라도 머리는 조아려야 할 분위기가 아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요.

  • 작성자 11.09.21 21:07

    음...위에 불교나 종교문화적인 얘기를 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그 부분에 대해서 전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일단 고구려에 불교가 도입된 시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대체로 4세기라고 했을때 그 불교가 의도적으로, 정치적으로 도입되었으므로 제대로 된 종교로서 전파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실제, 장수태왕 시기만 해도 중국 아해들이 고구려 애들은 불교를 제대로 모른다~고 평할 정도로, 불교는 기존의 통설 이상으로 한국 고대사에 미친 영향이 적었다고 생각합니다(그럼에도 한국 고대사에서는 불교가 들어와 마치 고구려인들이 갑자기 수준높은 정신세계 속에서 살게 됐다는 식으로 얘기하죠). 그리고 고구려가 제국화의

  • 작성자 11.09.21 21:10

    길을 한창 걷고, 왕즉불 사상이 치솟는 시기가 되면(대체로 광개토태왕-장수태왕-문자명태왕) 불교는 고구려 내에서 상당히 번창하게 됩니다. 단, 이때까지도 불교가 고구려의 국교로 칭해질만큼 전지역적인 포교활동을 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더군다나 왕권이 안정화되고, 낙랑군-대방군과 같은 중국계 세력을 흡수한지 오래 지나자 고구려에서는 더 이상 불교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야만 하는 종교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고 봅니다. 고구려 후기 도교라든가, 오두미교 같은 녀석들이 다시 판을 치는 것을 보면 말이죠. 암튼, 당이 신생국일 적에 고구려의 불교나 도교 수준은 이미 상당히 수준높은 단계였고, 그걸 굳이 당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 작성자 11.09.21 21:12

    야 하는 상황이었을까? 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수나라 말기 군웅들이 판을 칠때, 그리고 당이 막 건국되고 지방의 군웅들이 채 진압이 덜 되었을때, 중원왕조에서 고구려에 더 수준높은 불교 혹은 도교를 전수해 줄 정도의 정신이나, 여력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당 건국 직후 고구려와 당의 종교 문화 교류에 대해서 제가 따로 자세히 공부한 바는 없지만...현재까지 알기로는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당이 중원을 통일한 이후라면 사정은 달라지겠지만 말이죠.

    이상입니다. 가르침까지 갈 것도 없고...그냥 제 생각이 이 정도라는 것만 알아두시면 될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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