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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의 말 안 통하는 이상한 분하고 대화를 나누다가 올린 글입니다.
여기에도 올릴 수 있겠다 싶어서 올립니다.
성서는 종교 문헌이므로 거기 있는 내용은 전부 다 완전한 거짓말이며 신화고, 그러므로 전혀 사료로 쓸 수가 없다,
, 는 말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사실 이 반대말도 몹시 곤란하긴 한데(성서는 성령 받은 사람들 말로 씌어졌으므로 일점일획 틀린 부분도 없는 모든 진실이다! ) ,
이걸 완전히 뒤집어서 주장하는 분들은 자기네들도 똑같은 광신도가 된다는 걸 백날 말해봐야 수긍을 못하시더군요.
1. 골리앗이 다윗에게 당한 것은 교회나 회당에서 해줄려고 지어낸 완전한 거짓말이다.
중무장한 전사가 어찌 그런 애송이에게 당하는가? 완전한 신화다.
골리앗이 다윗에게 당한 것은 다윗의 전투력을 얏봐서가 아닙니다. -_-
일단 고대의 슬링 자체는 굉장한 파괴력을 지닌 무서운 무기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뭐 골리앗 선생은 내가 갑옷으로 다 커버했는데 그깟 돌멩이..... 라고 생각했지만, 다윗이 워낙
슬링의 달인이었기에 갑옷으로 보호가 미처 안 된 이마에 정통으로 맞춰 기절시킨 후 골리앗 검을 빼서
목을 쳐 죽였습니다.
2. 의도를 가진 종교적 기록이므로 무조건 역사가 아니다.
....아주 비학문적인 말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거기에 무슨 기적이나 믿음
같은 게 들어간 게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성서의 모든 기록이 유대인을 위한 기록이었다고 다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크나큰 단견입니다. 그 정확하기로 이름난 이집트의 점토판 연대기들도 모두 신에 대한 공양과 봉사가 목적이었고
"종교적 기록"이었는 데, 그렇다고 그게 역사적 가치가 없다고 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은 또 모르겠는데, 적어도 사울 왕의 성공적인 게릴라 전술의 운용 등은 당대의 플리셋이나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유물이나 기록에서 교차 검증되고 있습니다.
사사 시대 연대기의 초반에 해당하는 연대에서, 이미 "이스라엘"을 독자적인 정치적 실체로 다루는 이집트측 기록이 있으며, 또한 다윗이 데리고 다녔던 크레타-플리셋 외인 부대의 정치적 활약 또한 동시대 플리셋 연맹 도시의 기록들과 함께 상당 부분 역사적 사실로 인정이 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어떤 기록이 성서에 쓰였다고 무조건 부정하는 것 또한, 성서에 쓰였다고 무조건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크나큰 믿음의 영역입니다.
일례로 이스라엘과 모압의 대결 일화에서, 모압왕이 공성전 할 때 태자를 갖다가 제물로 바치니 다들 편안하게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이 열왕기에 나옵니다. 이게 다른 기록하고 교차 검증이 안 될 때였을 때도, "그게 성서에 나온 기록이니 신빙성이 없어요!"라고 주장하는 무식한 학자는 없었습니다.
(한국에만 있지요. 성서에 나왔으니 다 뻥이라고...이것도 사실 크나큰 믿음의 영역이지요. -_-)
여하튼, 그게 옛 모압 수도 지역에서 발굴된 점토판 기록에서 입증이 되었습니다.
또한 미나쎄 왕이 앗시리아 감방에 갔다왔다는 역대기 기록. 사실 역대기 저자의 악의적인 왜곡이었습니다만,
여하튼 미나쎄 왕이 앗시리아 노역판에 가서 몇 달 노가다 뛰고 왔다는 게 앗시리아측 기록에서 발견되었지요.
여하튼 성서 중 적어도 역사서에 속하는 부분의 여러 기록들은 당대 다른 국가의 역사적 기록에서 교차 검증되고 있는 부분이 많으며, 이것이 당대 타국들의 다른 기록들에 비해 신빙성이 완전히 떨어지는 소설이라고 볼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종교적 기록 자체는 역사가 아니지만, 종교적 경전에 들어갔다고 전부 다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게 오히려 "종교적 믿음"의 영역입니다.
3. 다 유대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했으며 종교적 믿음의 일부였다.
골리앗에게 형제가 있었으며 그들이 모두 다른 전투와 전쟁에서 다윗의 부하 누구누구누구에게 죽었다는 일화 혹은 다윗이 실은 골리앗 동생에게 맞아죽을 뻔 했는데 부하 아무개가 구했다...그놈은 어느 부대 편제 누구누구며 서열 몇 위였다 이런 세세한 기록 모두가 유대인들의 조작이며 종교적 믿음의 일부라는 것 또한 크나큰 단견입니다.
성서 자체가 "종교적 기록"으로써 어떤 "일원화된 문서 체계"라는 것 또한 "잘못된 믿음"의 영역입니다. 그건 수천년에 걸친 여러 저자의 여러 목적의 기록들을 한 데 모아놓은 경전에 불과한 거고 그 정리 과정 자체도 거의 수백년에 걸친 토론의 결과였다는 것을 아신다면 그렇게 주장하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4. 다윗과 솔로몬의 이스라엘이 세계사에 큰 의미가 없으므로 역시 지어냈을 개연성이 있다.
.이것도 좀. -_- 거기 팔레스타인이 지정학적으로 그렇게 만만한 데가 아닙니다. 우선 다윗이나 사울 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지역은 이집트의 세력 확대 발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그 시기에야 비로소 일종의 큰 정치적 결사체를 이루게 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다윗의 업적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빌로니아와 대여섯 차례의 정복과 역정복을 거치며 지리한 아귀다툼을 반복하던 앗시리아가 비로소 바빌로니아를 완전히 찍어누른 것은, 앗시리아 북쪽에서 앗시리아를 성가시게 하던 아람이 다윗의 이스라엘에 몇 차례 크게 얻어맞고 그 세력이 팍 줄어들어 앗시리아에게 장기적인 부담이 크게 덜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사울에게 전투에 앞서서 한 얘기는 다분히 자기 PR적인 뻥이라서 거기에 무슨 다윗 추켜세우는 의미가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동시대 다른 놈들도 다 어느 정도는 하는 일이었는 데 말이죠. 그 상황에서 그 얘기는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겠다는 용기로 나온 것입니다.
또한 열왕기에는 다윗에게 불리한 내용도 많습니다.
4-1. 이 사람이 플리셋으로 도망간 이후에는 사실상 낙오자들 및 플리셋을 위해 싸우는 이스라엘 용병대 대장이었으며(사실상 민족 반역자입니다.),
4-2. 실제로 다윗이 이스라엘을 위해 플리셋 군주를 위하여 싸워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정말로 그럴 의도였으며,
4-3. 단순히 주변 거부가 말 좀 싸가지 없게 했다고 약탈질을 하며 그 식솔들을 싸그리 다 죽여버리겠다고 악담을 퍼부으면서
정말로 싹다 쳐죽일 요량으로 전군을 이끌고 가질 않나
4-4. 아무도 먹으면 안되는 안식일 떡을 거짓말 한 후 쳐먹어서 애먼 제사장 가문과 도시 하나가 사울에 의해 망하게 만들고
4-5. 충복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 충복을 전쟁터로 내보내 죽게 만들고 그 아내를 빼앗고.
상당히 다윗의 위대성에 금이 가는 것은 고사하고 거의 크게 욕과 비난을 들어 마땅한 처사들까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말 다윗의 위대성을 찬양하고 교회에서 애들 가르치라고 만든 내용에 저것들이 들어갈 여지가 있습니까?
이건 일부 기독교인들도 착각하는 내용이지만, 애초에 성서의 역사적 기록들은 신앙적으로만 암송하라고 기록된 내용들은 아닙니다. 근데 비기독교인들도 그런 생각을 해서 가끔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_-
5. 어쨌든 다 성서 내용은 뻥이다. 모세도 사무엘도 다 허구 인물이다.
저도 말하느라 지치지만....요나단과 그 부하가 일명 "반일경지단"이라 불리는 지경에서 말도 안되는 것 같아 보이는 기만 전술로 크게 플리셋 군대를 무찌른 전투......(사무엘서에 나오죠) 사실 이거 오히려 다윗과 골리앗 대결보다도 그냥 보기에는 믿기가 어렵습니다만, 성서에서 말하는 바로 그 지역 그 지형에서 영국군이 요나단의 그 전술을 그대로 따라해서 역시 크게 아랍군을 이긴 사례가 있습니다. 또한 사무엘서에서 사울의 이스라엘 군대에 철제 대거와 장검을 가진 자가 겨우 사울과 요나단 뿐이었다는 기록, 그리고 플리셋이 무슨 요구만 하면 뭔짓이라도 해야 했던 사울 이전 시대 이스라엘 기타 등등등... 모두 당대의 역사적 사실과 부합합니다.
또한 확실히 역사서로써의 가치는 사무엘서와는 비교가 안되는 창세기 후반부 기록마저도, 그 시대로 추정되는 연대의 유목 부족들의 관습이나 행태와 상당 부분 맞아들어가고 있으며, 고대 이집트에 대한 기록마저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컴퓨터 알레고리즘으로 문서를 분석하는 테크닉이 발달되어 모세 오경을 들여다본 결과,
종전의 저자 A,B,C,D,E 저자 다섯이 썼고 에스라가 그걸 편집했다...라는 학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완전 폐기된 상황입니다.
물론 "모세가 썼다는 다른 근거를 들이대라!"라는 말이 나올 지도 모르겠는데, 역시 그런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른 어떤 반대의 근거가 없는 한 그가 쓴 저서가 있고 그에 대한 언급이 있는 기록이 있는 한 모세는 실존 인물로 보는 게 옳다는 게 중론입니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따지면 주몽이나 혁거세의 실존도 대단히 의문시 됩니다. 물론 그들의 실존을 의심하는 이들은 없습니다. 드라마 김수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론: 뭐...물론 성서는 역사적 기록이 아니며 설령 역사적 기록이라도 오류는 많아서, 일단 에스테르서가 역사 소설인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한국 제외 -_-)
그리고 역대기는 솔직히 아주 의도를 가지고 쓴 역사서라 좀 뻥과 견강부회가 많고,(역대기/열왕기 = 삼국 유사/삼국 사기 대강 이런 관계입니다.)
적어도 낙타가 길들여진 건 아주 후대인데 아브라함이 떠억하니 낙타 타고 돌아댕기는 이건 창세기의 크나큰 오류입니다.
-근데 이건 모세 선생 실수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여하튼, 종교적 기록이니 전부다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그것도 나름대로 큰 문제라는 얘깁니다. 그 또한 "믿음의 영역"이니까요.
여튼 님께서 님의 "믿음"을 두고 주장하신다면 저는 거기까지 추궁할 권리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만......(뭐 같은 믿음으로 일부 근본주의 기독교 신도들이 단군 왕검이나 주몽, 박혁거세 등의 존재를 부정하긴 합니다만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건 그게 문제가 아니니 넘어가겠습니다.)
그런 님의 믿음을 두고 함부로 학문적인 의견이라고 주장하시면 그건 아주 큰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서 = 특정 종교 단체 종교적 기록 = 고로 전부 다 역사적 가치는 없다" 자체가 믿음의 영역이며, 남들 앞에서 객관적이라고 주장하실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근거 서적: 역사로써의 성서
죄송합니다. 논점을 제대로 파악을 못했내요. 제 개인적인 입장도 제대로 표현이.부족했읍니다.
의미가없다고하긴 힘드네요 종교를 믿지않더라도 성서엔 좋은 말들이 많습니다.. 예수란사람이 실제햇든 아니엿든 누구보다도 도덕적인 인간이엿다는면에서
....미치겠군. 댓글들만 대강 보고 남기는 것 같은데 이래서야 본문을 왜 썼는 지 모르겠습니다.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왜 논전이 계속되는건지 잘 이해가 안되는데, [성서는 사료가 아니지만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는 있다]는 것으로 해결되는거 아님...? -.-a ?
22.
꼭 그렇지만은 않던데. 그 당시 종교적 상황을 알기 위해선 성서연구도 꼭 해야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세 유럽의 특성상 종교에 미친 시대라 성서연구를 하지 않고 그 시대상황을 잘 알기란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또 전혀 본문 안 읽어보시고 다는 댓글. 지금 중근동의 고대사를 얘기하는 중인데 중세 유럽은 왜 나오는 지 모르겠군요. 후유..... 지칩니다. 지쳐요. 다음 시스템 자체가 아주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