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昌德宮 熙政堂 벽화–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景福宮 內에 있는 國立古宮博物館에서는 특별전으로 <昌德宮 熙政堂 壁畵>를
기획전시실에서 전시하고 있다. (전시기간; 2017.12.13~2018.03.04)
國立古宮博物館은 朝鮮王室과 관련된 유물을 수집, 보존, 연구, 전시함으로써 朝鮮王室의
문화를 알리고 보존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조선왕실 전문 박물관이다.
이와 더불어 景福宮 내에 위치하는 都心의 문화공간 역할도 自任하고 있다.
박물관 收藏庫에 보관된 약 45,000점의 유물과 더불어 景福宮과 昌德宮을 비롯한
古宮과 서울∙京畿 등지에 散在한 朝鮮王陵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곳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은 1908년 大韓帝國 昌慶宮 내에 만든 帝室博物館으로 開館하였으며,
庚戌國恥 이후 李王家美術館으로 명칭이 格下되었다가 1946년 德壽宮美術館으로 改稱,
1992년 宮中遺物展示館으로 개편되었으며, 2005년 國立中央博物館이 龍山으로
移轉하면서 國立古宮博物館으로 개편하여 현재의 景福宮 境內에 자리잡고 있다.
國立古宮博物館에서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內殿인 昌德宮 熙政堂(보물 815호)에
걸려 있던 조선의 마지막 宮中裝飾畫 2점을 보존처리를 마치고 熙政堂 좌우 벽에 걸려
있던 海岡 金圭鎭(1868~1933)의 <金剛山萬物肖勝景圖>와 <叢石亭絶景圖>를
97년만에 공개하고 있다.
두 작품은 朝鮮時代 眞景山水畵家들이 즐겨 그리던 소재인 金剛山을 화폭에 담았는데
金剛山萬物肖勝景圖는 화강암 봉우리가 모여 있는 강원도 高城의 萬物肖를,
叢石亭絶景圖는 關東八景 중 하나인 강원도 通川郡의 叢石亭을 그렸다.
展示는 1부 昌德宮 熙政堂, 2부 昌德宮 熙政堂 壁畵, 3부 海岡 金圭鎭으로 구성되었다.
지난 12.14(木)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을 관람하면서 찍은 사진을 올린다.
2017.12.26 孤 山 朴 春 慶
(01) 國立古宮博物館 前景
(02) [昌德宮 熙政堂 壁畵] 포스터
(03) [昌德宮 熙政堂 壁畵] 특별전을 열며 (*글씨가 작아 打字한 글을 올린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창덕궁 희정당의 大廳 내부를 장식했던 海岡 金圭鎭(1868~1933)의
<叢石亭絶景圖>와 <金剛山萬物肖勝景圖>를 2017년 겨울 특별전에서 선보입니다.
두 작품은 1920년에 그린 마지막 宮中裝飾畵로, 조선시대에 眞景山水畵家들이 즐겨
그렸던 金剛山을 큰 화폭에 펼쳐 熙政堂의 벽면을 장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지금의 熙政堂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후 1920년에 전통 건축의 外觀에 西洋式을
加味한 내부구조를 갖추어 大造殿, 景薰閣과 함께 재건한 건물입니다. 1920년 再建
당시에 그려 96년간 희정당 大廳의 東西 壁面을 장식해온 〈총석정절경도〉와
〈금강산만물초승경도〉는 큰 화면에 眞彩를 사용하여 금강산의 絶景을 웅장하게
표현한 걸작입니다. 금강산은 지금껏 궁중장식화로는 잘 그려지지 않았으나,
신비로운 절경을 지닌 靈驗한 산으로서 眞景山水畵, 民畵 등 傳統繪畵의 중요한
主題가 되어 왔습니다. 또한 1920년은 교통의 발달과 함께 금강산이 관광지로
개발되어 많은 유람객들이 찾던 시기였습니다. 金圭鎭 역시 여러 차례 金剛山을
유람하면서 바위에 자신의 글씨를 새기고, 新聞紙上에 金剛山 스케치를 연재하는 등
금강산과 관련한 書畵活動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희정당 벽화는 이처럼 전통과 근대가
교차하는 激動의 時代에 다양한 視角에서 주목 받은 금강산이 宮中繪畵의 새로운
主題로 등장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이번 특별전은 희정당 벽화에 대해 2015~2016년 보존처리를 진행한 후 처음 작품을
공개하는 자리입니다. 문화재를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보존하고 미래에 전하는
방도를 생각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전시기간 중에 江原道 平昌에서 제23회
동계올림픽이 개최됩니다.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는 이번 겨울, 강원도의 이름난
絶景을 그린 두 작품을 감상하며 아름다운 우리 山川의 雪景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04) 熙政堂, 大造殿, 景薰閣 벽화의 제작
(05) 熙政堂, 大造殿 벽화 (위로부터)
=熙政堂; 金圭鎭 /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大造殿; 金殷鎬 / 鳳凰圖
(06) 大造殿, 景薰閣 벽화 (위로부터)
=大造殿; 吳一英, 李英雨 / 백학도(白鶴圖)
=景薰閣: 盧壽鉉 / 조일선관도(朝日仙館圖)
=景薰閣: 李象範 / 삼선관파도(三仙觀波圖)
(07) 昌德宮 熙政堂 壁畵의 保存處理
(08) 昌德宮 배치도, 熙政堂의 위치
(09) 昌德宮 熙政堂 -보물 제815호-
(10) 昌德宮 熙政堂 -보물 제815호- -2014.11.25 촬영사진-
*熙政堂은 본래 寢殿으로 사용하다가, 朝鮮 後期부터 王의 執務室로 사용하였다.
建立時期는 확실하지 않으나 燕山君 2년(1496) 崇文堂 건물이 燒失되어 이를 다시
지으면서 熙政堂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몇 차례의 화재로 再建했는데 현 건물은 日帝强占期인 1917년에 燒失되어 1865년
景福宮 重建 때 재건한 景福宮의 寢殿인 康寧殿을 헐어 1920년에 移建한 것이다.
팔작지붕으로 앞면 11칸∙옆면 4칸으로 한식건물에 西洋式으로 실내를 장식 했다.
내부는 居室 주위가 複道이며, 應接室과 會議室,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었다.
응접실에는 金圭鎭의 <金剛山萬物肖勝景圖>와 <金剛山叢石亭絶景圖>의 벽화가 걸려있다.
건물 앞쪽에는 전통건물에서 볼 수 없는 玄關이 있으며, 자동차가 들어설 수 있게
設備했는데 이는 마차나 자동차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채택된 西洋式 構造라고 할 수 있다.
朝鮮 後期와 大韓帝國時代에 王의 사무실과 外國使臣 등을 접대하는 곳으로 사용하면서
韓式과 西洋式이 어우러진 건물로, 시대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11) 1920년 昌德宮 熙政堂∙大造殿 일곽의 再建
(12) 사진으로 보는 1920年代 金剛山 여행 -朝鮮金剛山交通大鳥瞰圖 (*瞰: 굽어볼 감)
–요시다 하츠사부로[吉田 初三郞] -1929년 –종이에 인쇄 –성균관대학교박물관 소장
밝은 圓으로 표시된 名所(왼쪽부터); 萬瀑洞∙普德窟–望軍臺-九龍淵∙八潭-萬物相-
海金剛-叢石亭
(13) 九龍淵∙八潭 -朝鮮 金剛山 交通大鳥瞰圖 부분
높이 74m에서 쏟아지는 瀑布水는 흰 무명필을 드리운듯하며, 그 아래로 물줄기를 머금는
九龍淵이 있다.
九龍瀑布 너머로 산줄기를 감싸고 흐르는 8개의 큰 못이 이어지는 八潭의 壯觀을
볼 수 있다.
(14) 九龍瀑布 -2007.09.19 촬영사진-
*폭포의 높이 74m, 너비 4m이며, 일명 衆香瀑布라고 한다.
구룡폭포는 雪嶽山의 大勝瀑布, 開城 大興山城의 朴淵瀑布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폭포 중 하나이다.
金剛山 十二瀑布∙飛鳳瀑布∙朝陽瀑布와 함께 금강산 4大 名瀑의 하나로 웅대하고
경치가 뛰어나 으뜸으로 꼽힌다.
폭포 위에는 여덟 개의 맑고 푸른 못이 層層으로 上八潭이 있으며, 이곳은
‘金剛山 八仙女’의 전설로 유명한 곳이다.
폭포 앞 넓은 바위에는 ‘千丈白練 萬斛眞珠(천장백련 만곡진주)/천길 흰 비단
드리웠는가 만 섬 진주 알을 흩뿌렸는가’라는 新羅 末 孤雲 崔致遠(857~?)의
詩句 刻字가 있고, 폭포 우측 바위 벽에는 海岡 金圭鎭이 1919년에 새긴
<彌勒佛>刻字가 있다. (*斛: 휘 곡)
(15) 上八潭 -2007.09.19 촬영사진-
*금강산 毘盧峰에서 동쪽의 九龍臺 아래는 화강암으로 된 계곡에 크고 작은 못들이
층층으로 여러 개 있는데 그 중에 큰 것 8개를 ‘八潭’이라고 하며, 九龍瀑布 의 웃골에
있기 때문에 妙香山 萬瀑洞의 八潭과 구별하기 위하여 上八潭이라고 부른다.
이곳의 경치가 신비로워’金剛山 八仙女’ 傳說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16) 大衆에게 다가온 金剛山
(17) 金剛山과 江原의 名勝
(18) 천하기절[天下奇絶] -金圭鎭 작 -20세기 초 –종이에 먹과 담채 –개인소장
금강산 萬物相 입구에 있는 三仙巖을 부채[扇面]에 그린 작품이다. (*扇: 부채 선)
乾燥하고 가는 筆致로 奇異하게 솟은 모양의 바위를 묘사하고 녹색이 살짝 도는
옅은 먹으로 渲染하였다. (*渲: 바림 선)
‘天下奇絶’이라는 제목을 쓰고 왼쪽에 ‘爲金剛飴龜屋主人(의금강이귀옥주인)/
금강산을 그려 구옥주인에게 준다.’라고 썼다. (*飴: 엿 이)
*渲染: 東洋畵에서 畵面에 물을 칠하여 마르기 전에 붓을 대 몽롱하고 沈重한 妙味를
나타내는 技法.
(19) 총석정도[叢石亭圖] -海岡 金圭鎭 -20세기 초 –비단에 먹과 채색
–개인 소장
海岡 金圭鎭이 叢石亭 일대의 높게 솟은 돌기둥을 클로즈업하여 그린 작품이다.
돌기둥과 물결, 돌기둥 사이로 보이는 山의 윤곽선을 표현한 筆致와 彩色技法이
熙政堂 벽화 <叢石亭絶景圖>와 거의 비슷하며, 벽화가 제작된 1920년 또는
조금 뒤에 그린 것으로 보고 있다. (*叢: 모일 총)
화면 오른쪽 上端에는 七言詩를 적고 ‘萬二千峰主人’이라고 自號하였다.
奇石怪岩千萬叢(기석괴암천만총) / 기이한돌과 바위 천만 겹이니
自然雕啄出天工(자연조탁출천공) /자연스러운 조탁은 하늘이 빚어낸 것이로다.
應是龍宮建築後(응시용궁건축후) / 응당 용궁을 지은 후에
更將餘者積波中(경장여자적파중) / 남은 것을 저 파도 속에 쌓은 것이라네.
-萬二千峰主人(만이천봉주인) 海岡(해강)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다-
*彫(雕)啄: 보석과 같이 단단한 것을 새기거나 쫌. (*雕=彫: 새길 조 *啄: 쫄 탁)
문장이나 글 따위를 매끄럽게 다듬음.
(20) 金圭鎭의 [金剛遊覽歌]
(21) 要旨. 金圭鎭의 [金剛遊覽歌]
(22) 金剛山探勝 路程略圖 – 外金剛 萬物肖圖 - 內金剛 普德庵圖
*表訓寺 普德庵은 6세기 중엽인 고구려 安原王 때 승려 普德이 創建했다고 하며, 지금의
건물은 朝鮮 肅宗 元年(1675)에 건립하고, 純祖 8년(1808)에 重修 하였다.
보덕암에는 원래 자연동굴인 普德窟 앞을 막아 벼랑 벽에 세운 보덕암 本殿과 보덕암 위의
평평한 곳에 정면 3칸(6.49m), 측면 1칸(3.47m)의 요사채 判道房이 있었으나 판도방은
남아있지 않고, 보덕굴로 내려가는 층대만 있다.
보덕암은 보덕굴 앞 바위에 의지하면서 높이 20m가 넘는 절벽 중간에 7.3m의
구리기둥 하나로 받쳐 세운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이다.
(23) 金剛山 遊覽歌(왼쪽) - 金剛山 旅行準備一覽表 - 探勝路程 里數表(오른쪽)
(24) 금강유람가[金剛遊覽歌] -김규진 –회동서관 발행 -1920년 –종이에 인쇄
–연세대학교 국학자료실 소장
<每日申報>에 1919.12~1920.01에 연재한 海岡 金圭鎭의 金剛山 紀行歌辭
<金剛遊覽歌>를 모아 單行本으로 匯東書館에서 출판하였다. (*匯: 물 돌아나갈 회)
금강산 名所에서 느끼는 감정을 空間과 時間의 이동에 따라 간결하게 敍述하였으며,
중간중간 금강산의 絶景에 대하여 讚嘆하는 漢詩를 삽입한 것이 특징이다.
紀行歌辭 외에도 探勝路程略圖와 스케치,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 등을 수록하여 단순한
旅行記가 아닌 금강산 관광을 위한 案內書로 意圖했음을 알 수 있다.
(25) 金圭鎭의 金剛山 刻字
(26) [彌勒佛] 刻字 -九龍瀑布 옆 암벽
(27) [彌勒佛] 刻字 -海岡의 글씨 -2007.09.19 촬영사진-
(28) [天下奇絶] -萬瀑洞 眞珠潭 盤石 -每日申報 1919.10.05 기사
(29) [法起菩薩] -法起峰 주변 -每日申報 1920.04.23 기사
*法起菩薩 (*菩: 보살 보 *薩: 보살 상)
<華嚴經>에 따르면 법기보살은 金剛山 1만 2천 봉우리마다 머무르고 있는 菩薩들의
우두머리이다. <小品般若波羅蜜經>에는 금강산의 衆香城에 머문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금강산에는 실제로 법기보살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고려 忠肅王 때 閔漬가 지은 <金剛山楡岾寺事蹟記>에는 신라의 고승 義湘이 五臺山을 거쳐
金剛山을 찾았을 때 曇無竭菩薩이 나타나 “五臺山은 修行이 있는 사람들만 世間의 티끌을
벗어날 수 있는 땅이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中國에서 法을 펴던 印度 승려 指空도 고려시대에 금강산에 들어와 함께 지냈다고 하며,
조선의 世祖도 죽기 전에 금강산에 올라 담무갈보살에게 참배를 했다고 전한다.
(*漬: 담글 지 *曇: 흐릴 담 *竭: 다할 갈)
(30) [釋迦牟尼佛] -萬瀑洞 盤石 -每日申報 1920.02.02 기사
(31) 海岡 金圭鎭과 金剛山
(32) 海岡 金圭鎭
*金圭鎭(1868~1933) -平南 中和 출생 -號; 海岡∙白雲居士∙醉翁∙萬二千峯主人
어려서부터 外三寸 李小南에게 글씨를 배우고 18세 때 淸나라에 유학하여 書畵의 名蹟을
연구하였다.
한국의 近代 書畵家로 篆書·隸書·楷書·行書·草書에 모두 妙境을 이루었으며 특히 大字를
잘 썼다.
山水畵·花鳥畵를 잘 그리고 특히 蘭竹은 절묘하였으며, 四君子도 즐겨 그렸다.
1896년 宮內府 外事課 主事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內藏院 주사, 禮式院 文書課長,
侍從院 侍從, 經理院 技師 등의 관직을 지냈으며 英親王 李垠에게 書法을 지도하는 書師에
임명되었다. (*垠: 지경 은)
한국 최초로 사진술을 도입하고 御前寫眞師가 되었다.
著書에 <海岡蘭竹譜>∙<六體筆論>∙<書法眞訣>∙<金剛遊覽歌>, 작품으로는 글씨에
<起法菩薩>∙<天下奇絶>∙平壤 浮碧樓의 <錦繡江山>∙平壤 永明寺의 <大雄殿>∙
扶餘 <白馬長江>∙晋州 <矗石樓>∙陜川 海印寺의 <伽倻山海印寺>∙서울 鐘閣 <普信閣>∙
昌德宮 <熙政堂 大造殿> 德壽宮 <太極殿>이 있으며, 그림은 昌德宮 熙政堂 壁畵
<外金剛萬物相圖>∙<瀟湘大竹圖>∙<大富貴吉祥圖>등이 있다.
(*訣: 이별할 결 *矗: 우거질 촉 *瀟: 맑고 깊을 소)
(33) 金剛山圖의 傳統
(34) 檀園 金弘道, [叢石亭圖], 海山圖屛 -18세기 -91.4cm X 41.0cm
–비단에 채색 –澗松美術館 所藏
(35) 謙齋 鄭敾 [叢石亭](위) - 蕤堂 金夏鐘 [喚仙舊址望叢石圖] (*蕤: 꽃 유)
=謙齋 鄭敾 [叢石亭] 辛卯年 楓嶽圖帖 -17~18세기 –비단에 채색
-37.8cm X 37.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蕤堂 金夏鐘 [喚仙舊址望叢石圖], 해산도첩 -19세기 –비단에 채색
-29.7cm X 43.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36) 금강산만물초 승경도[金剛山萬物肖 勝景圖] –등록문화재 제241호-
*1920년경 當代 최고의 書畵家 海崗 金圭鎭(1868~1933)이 52세에 그린 195cm×880cm
크기의 山水畵 大作으로 昌德宮 熙政堂의 서쪽 벽면에 그린 벽화로, 동쪽 벽의
<叢石亭絶景圖>와 함께 양쪽 壁을 장식하고 있다.
純宗의 命으로 그린 그림으로 金剛山을 여행하면서 그린 草本을 바탕으로 금강산의 氣勢와
빼어난 絶景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옮기는 畵法으로 그렸으며 裝飾的 寫實主義에 충실했다.
금강산의 가을 모습을 毘盧峯을 중심으로 약간 위에서 내려다본 듯한 角度로 그린 것으로
金剛山 一萬二千峰을 모두 畵幅에 담고 있는 듯하다.
그림의 좌측 상단에 가로로 ‘金剛山萬物肖勝景’이라고 썼으며, 이 벽화와
<叢石亭絶景>에만 끝에 ‘金圭鎭 謹寫’라고 쓴 것을 보면 두 폭을 한 쌍처럼 생
각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37) 金剛山萬物肖 勝景圖
(38) 金圭鎭, [金剛遊覽歌] 중에서
(39) 金圭鎭, [金剛遊覽歌] 중에서
(40) 金圭鎭, [金剛遊覽歌] 중에서
(41) 총석정 절경도[叢石亭 絶景圖] –등록문화재 제240호- -195cm×880cm
*1920년경 당대 최고의 書畵家 海崗 金圭鎭이 52세에 그린 山水畵 大作으로 熙政堂
동쪽 벽을 장식하고 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와 海金剛을 바라본 광경을 그린 것으로, 畵幅 중앙의 산 언덕 위에
여러 그루의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叢石亭의 모습이 壯觀을 이룬다. 뒤로는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바다에 솟아 있는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圖案化된 방식으로 물결을
표현하였다.
그림의 좌측 상단에 ‘叢石亭絶景’이라 쓰고 이와 수직 방향으로 ‘金圭鎭 謹寫’라고 썼다.
(42) 叢石亭 絶景圖
(43) 새로운 宮中裝飾畵
(44) 조선 금강산 사진첩[朝鮮 金剛山 寫眞帖] –도쿠다 도미지로[德田富次郞] 작
-도쿠다 사진관[德田寫眞館] 발행 –종이에 인쇄 -1913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1913년 德田寫眞館에서 金剛山 사진을 名所 別로 모아 발행한 사진첩이다.
叢石亭 사진은 水平構圖로 찍은 사진 4장을 연결하여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도록
收錄했는데, 당시 多樣한 사진첩이 간행되었으나 이렇게 叢石亭 전체를 표현한 예는
드물다.
바다에서 바라본 총석정 일대의 景觀으로, 돌기둥의 형태와 背景의 언덕까지 명료하게
볼 수 있다.
(45) 해금강 총석도[海金剛 叢石圖] -金圭鎭 작 -1920년 –종이에 먹과 채색 -個人 所藏
1920년 여름 海岡 金圭鎭이 熙政堂 벽화제작을 의뢰 받고 이를 준비하기 위하여 금강산을
돌아보고 그린 작품이다.
題跋文의 내용대로 배를 타고 나가 바다 쪽에서 보이는 叢石亭의 全景을 수평으로 펼쳐
긴 화면에 그렸다. (*跋: 밟을 발)
簡潔한 筆線을 활용하고 넓은 바다를 餘白으로 처리한 점 등은 草本으로서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朝鮮 金剛山 寫眞帖>(1913)에 수록된 叢石亭 사진과 비교해 보면 돌기둥과 언덕,
나무 등 景物의 배치와 형태가 실제 景觀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6) 해금강 총석도[海金剛 叢石圖] (*오른쪽부분)
(47) 해금강 총석도[海金剛 叢石圖] (*가운데부분)
(48) 해금강 총석도[海金剛 叢石圖] (*가운데부분)
(49) 해금강 총석도[海金剛 叢石圖] (*왼쪽부분)
(50) 해금강 총석도[海金剛 叢石圖] 題跋文
題跋文
庚申初夏 因昌德宮熙政堂壁畵事 奉命入金剛之路 經到通川庫底 登叢石亭
觀水石之天下絶勝 駕小舟寫其全景起草 轉向金剛周覽 名勝各處數幅
而歸家乃引伸模寫 此畵及萬物肖全景 進獻掛御壁 留此草本以 供後人之記念
-海岡- (*駕: 멍에 가 *掛: 걸 괘)
(경신초하 인창덕궁희정당벽화사 봉명입금강지로 경도통천고저 등총석정
관수석지천하절승 가소주사기전경기초 전향금강주람 명승각처수폭
이귀가내인신모사 차화급만물초전경 진헌괘어벽 유차초본이 공후인지기념
-해강-)
경신년 초여름 昌德宮 熙政堂 벽화 일로 인하여 명을 받들고 金剛山에 들어가는 길에
通川郡 庫底面에 이르러 총석정에 올라가 水石이 천하에 絶勝함을 보고 작은 배를 타고
그 全景을 그려 草本을 만들었다.
다시 금강산으로 향하여 그 名勝 各處를 돌아보고 몇 폭을 그려 집에 돌아와 이를 확대해
그렸다.
이 작품과 萬物相 全景을 나라에 바쳐 宮 안벽에 걸고 이 草本은 남겨 후세의 기념으로
한다 –해강-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