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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순례 여행기
기간: 2017년10월26(목) -10월31(일) 4박6일
주관여행사: 아제여행(주) 케이투어
인솔자: 임영희차장
현지가이드: 최우석부장
여행팀 : 한일선우회, 지도 법사 보각스님
작성: 최규용
여행 떠나는 날은 많은 설렘을 갖게 된다. 특히 오지 여행은 더 그러하다. .
아제 여행사에서 라오스에 대한 간단한 안내 팜플렛을 주었지만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아서 라오스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다.
남방불교 유적지로 사회주의 국가이고 최빈국이라는 것이 내가 아는 상식의 전부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번 순례 여행에는 꼭 동참하여 가보고 싶었다.
인천공항이 많이 거대해졌다. 여객 항공기가 많이 늘어나 터미널도 증설되었고, 먼 구간 이동은 셔틀트레인을 타고 가야 한다. 여행을 자주 다니지도 못한 사람, 전자 정보에 익숙하지 못한 나이든 사람들은 찾아 다니기도 힘들 것 같다.
우리가 탄 QV912 라오항공기는 정확히 10시 40분에 이룩을 위한 시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항공기를 타고 하늘을 오르면 고도는 얼마나 되고 속도는 얼마나 내면서 날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되는데, 이 항공기는 그런 정보를 주는 계기화면이 없어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구름 층 위를 날고 있고, 솜구름 뭉게구름이 쫙 깔린 맑은 하늘은 아름답고 멋있으며, 한없는 마음의 평화로 즐거워졌다.
옆 좌석에 앉은 동해 거사님은 구름 사진 찍기에 매우 흥분되어 계속 찍어댔다. 비행기 날개에 가려 별반 좋은 배경이 잡힐 것 같지 않은데도 찍고 또 찍으신다.
라오스는 어떤 나라인가?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한 바다와는 조금도 접하지 않은 완전 내륙 국가이다.
면적은 23만 6,800Km2 로 우리 남한의 2.4배 정도이고, 인구는 약 7백만명 정도 되며, 기후는 열대몬순 기후로 연 평균 25도 정도 된다고 한다.
주민은 라오족외 48개의 민족이 있고, 라오족도 저지대 사는 라오스 인을 “라오룸”, 구릉지대에 사는 라오스인을 “라오텅” 고지대에 사는 라오스 인을 “라오쑹”이라 하며, 민족구성은 라오족 55%, 크무족 11%, 몽족 8%, 기타로 되어 있다. 몽족은 우리 고구려 후손이라고 했다.
종교는 전 인구의 90% 가 불교를 믿는 소승불교다.
우리 교민은 통계상으로 2,000명정도 되지만 실제 현지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7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행정구역은 17개의 주 1개의 도로 구성되어 있고 수도는 비엔티엔이다,
1인당 GNP가 2,000불 정도로 최 빈곤 국가 부류에 속한다.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월 $150정도이지만, 국민의 행복 지수는 굉장히 높다는 현지 가이드의 말을 듣고 보니 부유하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조실부모하고 수원에서 짜장면집 운영하는 숙부 집에 얹혀살다가 태국,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다 라오스 현지처와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둔 가이드 최우석씨(50)는 이곳 라오스 생활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엄마의 강이라고도 하는 메콩강은 라오스와 태국과 국경을 가르면서 4,000Km 이상 흘러 남중국해에 합류한다. 라오스만 거쳐가는 강의 길이가 1,500km이고 한강의 8배쯤 되는 모양이다. 메콩강은 티베트고원인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하여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빠지며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과 마주보고 있는 태국을 갈라 흐르는 완전 황토 강이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라오스는 메콩강 건너 태국으로부터 수많은 침공과 약탈을 당했고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다가 1954년 독립한 후 왕정은 계속 유지하지만 우파와 좌파세력의 치열한 내전을 겪다가 1975년 베트남의 사이공 함락으로 좌파 세력인 쓔파누웡이 이끄는 빠텟라오 조직 중심으로 “앙코로의영광, 농사지어 잘살자, 외국인을 몰아내자”를 슬로건으로 한 공산주의가 정권을 잡아 라오스 왕정을 폐지하고 라오스 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일명 미밀 전쟁이라고도 하는데, 북 베트남군이 전쟁물자를 라오스를 통과하는 호찌민 루트를 통해 전선에 수송하는 것을 간파한 미군은 1964년 -1973년(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기간) 58만회의 폭격 2백만톤 이상 폭탄을 투하하여 라오스 전 국토가 황폐화 되어, 지금도 폭탄의 잔재를 수거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다.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모두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무서운 세상… 우리도 그 와중에 있다는 현실이 불안 초조를 넘어 안타까울 뿐이다. 그나마도 반가운 소식은2017년 노벨 평화상을 “핵무기 폐기국제운동” 단체에서 탔다는 것이다.
수도 비엔티엔
국제공항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협소해 보였다. 진주 사천공항 정도나 된다고 할까!
수도인 비엔티엔에 시내버스가 23대라고 하니 대중교통은 열악하기 그지없고, 도심을조금만 벗어나면 비포장 도로라 마치 우리나라 군인 수송 트럭같이 생긴 트럭버스가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인 오토바이는 베트남같이 엄청 많았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봉안된 45m높이의 황금색 탑”라오스의 심장 “탓루앙”이 있고, 인접 건물에는 거대한 황금색 부처님 와불상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죽기 전에 이 탑을 3바퀴 도는 것이 평생 소원이라고 하고 지금이 축제 기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중동 회교중심지 메카 같은 곳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도 이번 순례 여행을 통해서 탑돌기를 3바퀴 하였으니 영광이고 큰 행운이었다.
비엔티엔 사람들이 건강을 기원하는 “왓씨므앙” 사원이 있고 왕실 전용 사원에 에메랄드 붓다를 모시기 위해 세워진”왓호파깨우”는 웅장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비엔티엔 시내에서 서울 한강 폭 정도 되어 보이는 메콩강 건너편이 태국 “농카이”라고 했다.
우리는 4성급호텔 폰팁프라자에서 1박 하였는데, 샤워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다소 불편을 느꼈지만 지내기엔 큰 불편이 없었고, 호텔에서 제공하는 뷔페식 아침식사도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지금 호텔방 예약이 안되어 여행객이 못 들어올 정도로 예약이 밀려있다는 가이드의 이야기도 있었다.
루앙프라방
수도 비엔티엔에서 로컬 비행기로 5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800년에 걸쳐 화려한 불교 문화를 꽃피웠던 고도로 1995년 도시 전체가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라오스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도시로 라오스 최초 통일왕국 란쌍의 수도로 지정된 후 800년간 그 영예를 지켜온 곳이다
*왓씨엥롱 사원
1560년에 만들어진 라오스의 대표적인 사원 “왓씨엥롱(Wat Xieng Thong)은 450년의 역사를 지켜온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손꼽히며 “황금도시사원”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붉은색과 금색의 조화와 우아하고 섬세함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아내게 한다.
*푸시산
328계단으로 정상에 오르는 푸시산은 산 전체가 불교 박물관 같다. 오르는 계단의 좌우에는 여러 형태의 황금 불상이 수없이 조성되어 있어 너무 경이롭고, 산정상에는 1804년에 건축되어 1914년에 개축한 탓 좀 푸씨(That chom phousi) 사원이 있다. 그리고 UNESCO의 도시 루앙프라방을 한눈에 두루 볼 수 있다.
*쾅씨폭포(Khang Xi Waterfall)
시내에서3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쾅시폭포는 주변에 산림이 우거져 있고 높이 50m의 폭포에서 물이 쏟아져 물안개가 낀 옥빛의 물 빛깔이 너무도 아름답다. 물의 흐름에 따라 여러단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폭포는 물놀이를 즐기는 관광객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마치 한폭의 그림 같았다.
보도에 의하면, 한국에서 자유여행으로 라오스에 온 손경산(33)이라는 여자분이 이곳에서 실종되어 아직도 행방이 오리무중이라고 하던데, 이렇게 관광객이 분비는 곳에서 과연 어떻게 실종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라오스에는 지금도 곰과 호랑이가 산속에 사는 곳이 있고 깊은 산속에서 외계와 차단된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탁발 행렬 참관 과 아침 야시장
우리 나라의 사찰은 대부분 산새 좋은 산중이나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 나라의 사찰은 모두 도심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고 종교(불교)와 생활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중심에 항시 종교가 있는 것 같았다. 아침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싸들고 와 줄을 지어 앉아있다가 스님들이 지나 가면 탁발공양을 한다. 동자스님에서부터 중학생 고등학생 또래의 스님, 청년스님, 중년스님, 나이 칠팔십 되어 보이는 늙은 스님 등 두루 구성되어 있어 보인다. 인구 7백만명에 스님이 3만명 정도라 하는 것 같다.
우리는 미리 예약한 장소에서 탁발 행렬에 참관하였다. 정말 생소한 체험이고 그
행렬이 장관이 아니었다.
몬도가네 아침 재래시장은 소래나 강화 어시장 보다도 더 넓고 길었다. 메콩강에서 잡은 메기나 생선은 엄청 큰 것 이었고, 바나나 등 열대과일이 즐비 하였다. 역시 시장은 어느 나라나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몽족마을
몽족은 고구려의 후예라고 한다. 원래 라오인은 코가 납작하고, 키가 작고, 깡마른 체구이지만 이 마을 꼬맹이들은 우리의 생김새와 별반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마을 어귀를 한 바퀴 돌아나가는 골목에는 수공예품 가게가 즐비해 있는데, 엄마품에서 재롱부릴 나이인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맹들이 소꿉장난 하듯이 수제품 하나 집어들고 완달러 완달러 한다. 꼭 무엇을 팔겠다는 것이 아니라 재미삼아 즐기는 것 같았다 . 귀엽기도 해서 사진 한번 찍으려 하면 고개를 확 돌려버린다.
방비엠
루앙프라방에서 12인승 벤을 타고 1500고지의 꼬브랑 산길을 굽이 돌아 4시간 정도 가야 일명 “소계림”이라 불리는 방비엠에 도착하게 된다. 길이 험해서 대형버스는 못다닌다고 했고 푸푼지역의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비엠파 휴게소 주변에는 군 막사들이 띄엄 띄엄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산이 험해 산적이 출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넘어온 길은 신작로(新作路)로 중국에서 근처 광산 개발 조건으로 건설해준 길이라고 하였고, 구 길은 더 험하고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엠까지는 6시간 넘게 걸린다고 한다.
방비엠에 도착해 김삿갓이라는 한국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식당에 걸려 있는 태극기가 돋보였다. 해외에 나와 있는 교민은 대한민국 국민임을 긍지와 자랑으로 삼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코끼리 동굴인 탐쌍, 물 동굴인 탐남동굴 “튜빙”
주변 경관이 매우 뛰어났다. 누렇게 영글은 벼논을 지나고 원주민의 판자집도 구경하면서 지나 간다. 동굴내부에 종류석이 코끼리형상을 한 코끼리 동굴이 있다. 황금빛 불상을 둘러싼 천정과 벽체에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석회암의 여러 가지 형상이 너무나도 멋지고 아름답다.
물 동굴은 밧줄을 따라 튜브를 걸터 타고 동굴로 들어갔다 돌아 나오는 거리가 100m이상은 될 상 싶다. 물에 젖고 서로 부딪치면서 힘은 들지만 재미 또한 만만치 않다. 반바지를 준비해 오지 않아 다소의 불편과 어색함은 있었겠지만 보각스님도 체험의 즐거움으로 계속되는 미소를 감추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쏭강을 가로지르는 “카약체험”
우리가 머문 그랜드 리버사이드(4성) 호텔 주차장에는 상층부에 카약을 실은 트럭버스가 아침 일찍 주차해 있었고 행사 준비 요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트럭버스는 1톤화물차에 길게 두줄로 의자를 만들어 사람이 앉고, 비닐하우스용 파이프를 휘어 덮개를 만들어 천막을 씌운 형태로 마치 군인 수송 트럭과 흡사하다. 우리는 이 트럭버스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1시간가량 먼지를 마시며 달려 쏭강 어귀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에 뒤편 난간에 걸터 탄 붉은 창 모자를 눌러쓴 행사요원 “미스터 에림 쌍큐”가 갑자기 박수 박수 노래 노래 하더니 “내나이가 어때서”를 불러댔다. 재창요청엔 “소양강처녀”도 신나게 불렀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크게 한바탕 웃었고, 마지막 밤의 이벤트장 에서도 그를 만났다.
카약은 에스키모들이 바다 사냥을 나갈 때 이용한 배라고 한다. 3인 1조가 되어 앞, 뒤에서 노를 저어 간다. 전문가는 뒤에서 노를 젖고 초보는 앞에서 노 젖는 시늉만하면 된다. 그러나 그 노젖기가 만만치 않고 매우 힘이 들었다. 고관절이 당기는 것이 제일 큰 고통이었다. 그러나 정말 재미있고 즐거운 체험이었다.
*내륙의 염전 마을인 소금 마을
천지 개벽이 있기 전에 라오스도 바다 밑이라고 하는 것 같다. 라오스가 바다와는 거리가 먼 완전한 내륙인데도, 이곳에서 지하수를 길러 건조시켜 소금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징표가 될 것 같다. 맛을 보니 짭짤한 소금 맛이 구미를 당겼다.
마지막 밤의 이벤트
아무 구조물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두움의 쏭강가에 은하수같이 깔아 놓은 촛불은 전설의 고향 향수와도 같은 것이었고 원초적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임시로 마련해 놓은 음향기에선 “안동역에서”가 흘러나왔지만, 보각스님은 개구리 소리 좀 들어보자고 어디론가 자리를 뜨셨다. 짝꿍끼리 맞잡고 있던 연등에 불을 켠 후 날리니 모여있는 저 마다의 소원과 기도를 간직한 채 하늘 멀리 더 멀리 빛을 뿌리며 올라갔다.
관계자 모두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집시의 모자라도 한번 돌려 봤어야 하는 건데…
보각스님의 법문
우리와 이번 라오스 순례 여행에 동행한 보각 큰 스님은, 스님 최초로 1974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신 분으로 중앙승가대학 사회복지학 교수이시고, 자재공덕회 이사장이시며, 한일선우회 지도 법사 이시다. 여행지에서 하신 스님의 법문을 요약해 보면,
말을 할 때는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을 해야 하고,
사람이 말로 마음의 화살을 한번 박으면 사람의 힘으로써는 뺄 수가 없다.
기쁜 마음을 끝없이 가지면 고통이 없어진다.
주는 마음을 가지면 차별이 없어진다.
제일 먼저 기억되는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가는 것이다.
몸은 음식을 먹어야 살고 ,
마음은 기도를 먹어야 산다.
자비(慈悲) 의 慈(자)는 중생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고, 悲(비)는 중생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없게 하는 것이다.
첫댓글 일심 거사님 덕분에 다시 라오스를 다녀온 기분이 드네요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사진과 글을 부탁합니다 상연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