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수르(Assyria)
지금의 이라크 북쪽인 티그리스 강 상류를 따라 북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BC 2000년경에 형성된 국가이다. 성경에서 앗수르는 함의 손자인 니므롯이 앗수르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한 때부터 등장한다(창 10:12).
앗수르 제국의 중심 도시는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니느웨, 아서 및 갈라 등이었으며,
이스라엘이 국가로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고 이 지역의 주민들은 주변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 앗수르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시기는 약 300년 동안(BC 911-609)으로 신(新)앗수르 시대였다.
앗수르와 이스라엘과의 관계: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끌었다.
아닷 니라리 2세, 앗수바니팔 2세, 살만에셀 3세가 통치하던 시기(BC 911-824)에
앗수르는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이스라엘을 위협했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 왕이었던
아합은 다메섹의 하닷에셀에게 병거 2천 승과 군사 1만 명을 지원하여 살만에셀 3세와
전투를 했으며, 이스라엘 왕 예후는 살만에셀에게 예물을 바쳐야 했다.
앗수르가 수리아(아람)를 공격하자 이스라엘은 잠시 앗수르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BC 824-744). 유다 왕 요아스는 이전에 아람에게 빼앗겼던 북쪽 성읍들을 되찾았고
(왕하 13:25),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왕하 14:25)와 유다의 웃시야는 그들의 영토를 확장했다.
앗수르 제국은 내분으로 인해 약해진 시기를 넘기고 강력한 왕들에 의해 통치되었다(AD 744-627).
디글랏 빌레셀 3세는 다메섹을 함락시켰으며,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수많은 포로들을 잡아갔다
(왕하 15:29-30). 므나헴 시대에 이스라엘의 부유층들은 디글랏 빌레셀에게 은 50세겔씩을
바쳤다(왕하 15:20). 유다의 아하스는 복종의 표시로 이방 신전을 건립했으며(왕하 16:10),
이스라엘 왕 호세아가 앗수르 제국에 매년 바쳤던 조공을 중단하자, 살만에셀 5세는 사마리아를
포위하여 공격하였다(왕하 17:3-4).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사르곤 2세는 무려 2만 7천 명
이상을 사마리아로부터 강제 이주시켰다.
사르곤에 이어 왕이 된 산헤립의 통치 때(BC 704-681) 앗수르 제국은 남쪽으로 진군하여
애굽을 공격했으며, 유다의 히스기야에게 조공을 강요하였다(왕하 18:14 이하).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공격하였지만 갑자기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왕하 19:35). 유다 정복에 실패하고 돌아간 산헤립은
아들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왕하 19:37). 에살핫돈은 속국들의 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들과 조약을 맺어 앗수르 제국의 신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토록 했으며 속국들 중에는
므낫세 치하의 유다도 포함되어 있었다(왕하 21:1-9). 이후에 앗수르는 급속히 쇠퇴해 갔다.
앗수르가 내분으로 약화되자 주변 국가들은 앗수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났다(BC 627-609).
유다의 요시야는 이러한 시기에 개혁을 단행했으며 갈대아인들(바벨론)이 일어나 앗수르를
몰아냈다. 요시야는 앗수르를 도우려던 애굽의 군대들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왕하 23:29-30).
나훔과 스바냐 선지자의 예언대로 니느웨가 함락당해 앗수르 제국은 무너지고 바벨론이
새로운 패권을 잡았다(나 1:1; 2:10; 습 2:13).
진노의 막대기, 앗수르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단순한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앗수르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도구였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앗수르를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고 하셨다(사 10:5). 하나님은 앗수르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기 위한 징계의
막대기로 사용하셨던 것이다(사 10:5-6). 하지만 앗수르 역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교만하였기 때문에 결국에는 심판을 받았다(사 10:12-16; 14:24-25).
수백년 동안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국가였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은 범죄한 나라를 다른 나라를 통하여 심판하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징계는
하나님의 원래 뜻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비록 이스라엘이 범죄하였지만 위로와 소망을 남겨
두셨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찌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불구에
네게는 분을 그치고 노를 옮겨 그들을 멸하리라”(사 10:24-25).
산헤립(Sennacherib)
앗수르의 왕으로 사르곤(Sargon) 2세의 아들이며 에살핫돈(Esarhaddon)의 아버지이다
(왕하 19:36-37). BC 705-681년까지 앗수르를 통치하였다.
사르곤을 이어 왕이 된 그는 반앗수르 정책을 펼치던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과 2년 동안
전쟁을 하였고 엘람의 동맹군들과 전쟁을 치렀다. 이때 시돈을 중심으로 한 베니게와 블레셋의
성들뿐 아니라 애굽과 유다가 반앗수르 정책을 펼치며 동맹하자 산헤립은 이 반란을 진압하려고
출정하였다. 산헤립은 유다로 가는 도중 베니게를 공략하고 블레셋 성들을 공격하였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의 46개 성읍과 작은 여러 성읍을 점령하였고 그곳
주민들을 사로잡아 갔다(왕하 18:13).
이러한 내용들은 산헤립의 비문에도 기록되어 있다.
산헤립은 블레셋 국경 근처 라기스를 치고 그곳에 예루살렘 포위 공격 본부를 세워 히스기야를
위협하였다(왕하 18:14-16). 이에 그는 히스기야의 항복을 받아내고 300달란트의 은과
30 달란트의 금을 유다에 요구하였다(왕하 18:14). 히스기야에게서 예루살렘의 성전과 궁전에
있는 은과 성전 문의 금과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받아내었지만(왕하 18:16) 산헤립은 유다의
배상금에 만족하지 못하고 대군을 보내어 예루살렘을 공격하게 하였다(왕하 18:17). 그들은
앗수르에 항복하라고 위협하며 하나님도 그들을 구원하시지 못할 것이라고 조롱하였다
(왕하 18:19-35).
그러나 히스기야와 이사야 선지자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보내신 여호와의
사자의 손에 의해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이 죽임을 당하여 유다에 패하고 말았다
(왕하 19:1-35).
산헤립은 본국으로 돌아가 신전에서 그들이 섬기는 신인 니스록에게 경배하다 그의 아들인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에게 살해되었다(왕하 19:36-37). 아버지를 죽인 두 아들들은 니느웨에서
북쪽으로 약 480km 떨어진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고 산헤립을 이어 셋째 아들인 에살핫돈이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왕하 19:37). 그의 비문을 보면 그는 궁전을 건축하여 니느웨를
재건했고 넓은 지역에 관개 수로를 만드는 등의 치적을 세운 왕이었다.
니느웨(Nineveh)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이다. 이곳은 현재의 이라크 티그리스 강변에
있는 도시로 앗시리아(BC 705-612)의 수도였다. 요나는 BC 760년 경에 이곳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고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하였다. 그러나 요나의 메시지가 전해지고 약 100년이
지난 뒤 나훔 선지자는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했다(나 1:14).
니느웨, 그 옛날의 모습: 티그리스 강 동쪽(이라크)으로 약 8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던
니느웨는 오늘날 폐허로 남아 있다. 고고학자들은 1842년에 거대한 니느웨 시의 잔해를
발견했는데, 발굴작업 결과 거대한 궁전의 흔적과 앗수르의 이야기를 담은 수천 개의 묘비를
발견했다. 발굴에 따르면 니느웨 시는 약 30m 높이의 성벽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벽이 아주
두꺼워서 네 대의 전차가 나란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고 또 성벽에는 수백 개의 탑이
있었으며 성벽 둘레에는 넓이 42m, 깊이 18m의 호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튼튼했던 도시, 니느웨는 BC 612년경 메대와 바벨론 연합군에게 점령당했는데
티그리스 강이 갑자기 흘러넘쳐서 성벽의 일부가 무너졌고, 이를 통해 적군은 도시로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 예수님은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와 유대인들을
대조시켜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라고 말씀하셨다
(마 12:41; 눅 11:32).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의
말씀을 전했을 때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전도를 받고 회개하였지만 당시의 유대인들은
요나보다 더 큰 그리스도의 전도와 이적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최후의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로부터 정죄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요나(Jonah)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가드헤벨 사람 아밋대의 아들이다(왕하 14:25). 여로보암 2세의
통치 기간 중에 살았으며, 여로보암 2세가 북방 수리아를 정복하여 이스라엘 북쪽 지역을
회복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왕하 14:25).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대한 심판을 외치라는 명령을 받았다(욘 1:2).
당시 앗수르는 말할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으므로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여
화를 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방신(느보 신)을 섬기는 니느웨가 철저히 타락하여 멸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서 바다에
던져졌다(욘 1:4-15). 그 뒤 요나는 큰 고기 뱃속에서 철저히 회개한 다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으며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욘 4:11).
< 비전성경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