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편 쪼가리를 항아리에 넣기 위해서 우리는 선거의 현장을 체험해야 한다. 정말 추방되어야 할 인물이 과연 어떤 인물인지를 직접 손으로 만져봐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직접체험은 요즈음의 선거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디어선거전은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직접체험을 차단시킨다는 면에서 좀 문제점이 있다. 브라운관의 영상을 통해서 만난 사람은 조작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나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도 TV화면에서 본 나와 직접 만나본 나의 느낌이 너무도 다르다고 경악하는 모습을 자주 체험한다. 그래서 공설운동장에서 두 다리를 벌벌 떨며 후보연설을 들었던 감격이 있던 우리세대에게는 무엇인가 속시원치 않은 감회가 남는다.
때마침 나는 기자가 되었다. 우리 민족 역사의 중요한 고비의 현장으로 투입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자격을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직접 느낀 것을 국민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유세의 언어는 즉각적으로 득표와 연결되어야만 하는 대중선동의 장(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인간의 정감의 내면실상과 핵심적 논리를 파악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될 때가 많다.
나는 나의 삶의 역정에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두 대통령후보를 이토록 열띤 역사의 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인간은 부정적인 안경으로 보면 한없이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잣대로 보면 한없이 긍정적일 수 있다. 나는 두 후보 모두, 가급적이면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평소 언론이 전하기 어려운 측면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언론의 사명은 비판에 앞서 사회적 가치들을 소통시키고 화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임무에 관하여 내가 얼마나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독자들이 판단해주었으면 한다.
내가 이회창후보 유세단을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은 7일 오후 3시쯤 광화문 앞 공터,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재하는 단식기도회에서부터였다.
“하느님이시여 이 세상에 정의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소서. 이 차가운 땅에 다시 앉지 않게 하여주소서. 비굴하고 비참한 역사를 후손에게 남기지 않도록 하여주소서.”
이때 갑자기 이회창후보와 박계동 전의원·이부영의원이 서 있는 곳으로 달걀이 날아왔다 미사를 집도한 김영현 신부님이 미사도중, 정치인들은 이 자리에 서있지말고 돌아가라고 말씀한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치인이라 해도 효순이 미선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미사에 참여한 사람에게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정의로움을 말하는 자들의 지나친 독선일 수도 있다.
평화의 기도는 역시 포용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순식간에 경호팀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달걀세례를 퍼부은 젊은이가 붙잡혀 종로경찰서로 연행되어 갔다는 보고가 나중에 들어왔을 때 이후보는 그들에게 아무 피해가 없도록 부탁한다고 말했다.
황급히 자리를 뜬 후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두타·밀리오레 광장 앞이었다.
“젊은이 여러분 12월19일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새나라·새조국을 만듭시다. 우리의 조국을 우리의 손으로 만듭시다.정말 반짝반짝 빛나는 하얀 조국을 만듭시다. 거짓말하지 않는 깨끗하고 정직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젊은세대와 서민을 위하여 일자리를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25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실망에 찬 국민들에게 모두 제자리를 찾아드리겠습니다. 5년동안에 250만가구의 주택을 건설하겠습니다. 저는 불의 앞에 머리숙이고 엎드려 본 적이 없습니다. 세계속에서 당당한 자존심을 지키는 강력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불의로부터 이 사회를 지키는 강력한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우리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명예를 다시 찾아드리겠습니다.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이회창을 밀어주십시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노무현후보와 이후보의 연설은 매우 대조적이었다. 노후보는 분명한 테마가 있다. 노후보는 산발적으로 말을 던져도, 연속적인 주제의식을 가지고 변조해나간다. 노후보는 무엇인가를 설득시키려고 노력한다. 이후보는 스타일이 다르다. 그의 언어는 센텐스마다 단절되어 있다. 단절되어 있기에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주는 모자이크의 나열인 것이다. 테마를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지지를 즉흥적으로 호소할 뿐이다.
노후보는 한번 연단에 서면 30분을 넘어간다. 이후보는 5분을 넘기지 않는다.
노후보의 부산 롯데유세장과 이후보의 서울 두타유세장은 콘트라스트가 극적이다. 부산은 노후보가 인기를 못끄는 곳이지만 유세장의 분위기는 진지하고 열기가 넘쳤다. 서울은 이후보의 인기가 좀 떨어지는 곳인데 유세장의 분위기조차 좀 피상적이고 어색했다. 심금을 울리는 한표보다는 떠들썩한 이벤트성의 과시가 위주였다. 선거참모들의 전략에 약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노후보는 이후보님께서 서민의 삶과 지방민의 서러움을 체험하지 못한 중앙집권지의 엘리트일 뿐이라는 점을 들어 유세장에서 맹공세를 펴고 있습니다. 뭐라 답변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클 시절에는 사실 서민과 귀족의 차별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봐야 거기가 거기였습니다. 우리국민 모두가 다 어렵게 살았다는 것이죠. 아버지가 공무원이셨는데 우리엄마도 닭을 키워 달걀을 시장에 내다 팔며 생활을 꾸려가기도 했습니다. 외가는 좀 부자였는데 부친이 처가집 도움받는 것을 극히 싫어하셨기 때문에 저도 동아일보 신문배달원 노릇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충남 예산에 사시는 자작농이었는데 방학때 내려가면 새벽같이 일어나 똥장군도 지고 다니며 밭에서 일하곤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인간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왔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출신성분만으로 자기인격의 내용을 규정한다는 것은 심한 어폐가 있습니다.
그리고 매사는 각유소장(各有所長)이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키 어렵습니다. 카를 마르크스도 부유한 환경에서 컸습니다. 좀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오히려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정의에 대한 균형있는 감각을 지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노후보의 성장과정에 대해서는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요즈음 신문광고를 보면 이후보는 노후보를 인신공격하거나 DJ와의 연계라는 측면에 매달려 비판을 하곤하는데 반하여 노후보는 21세기를 향한 발돋움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네거티브한 선거전략은 좀 유치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진영은 당권과 대권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광고전략은 당차원에서 결정되어 제가 모르는 사이에 나갈 때가 있습니다. 김교수님께서 지적하신 그런 부분은 즉각 시정토록 하겠습니다. 그러한 지적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연설하는 것을 들으셔도 아시겠지만 저는 노후보를 인신공격하는 그런 발언은 하지 않습니다.”
우중충하고 음산한 기운이 도는 토요일 오후 밀리오레 앞 인파를 비집고 이후보가 타는 카니발 속에 들어갔을 때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상처투성이인 손을 보라는 것이다. 얼마나 열성적으로 악수를 해대는지 손이 긁힌다는 것이다. 유세자의 곤혹스러운 삶을 보여주는 단적인 징표였다.
그러면서 동대문 포장마차 집에서 방금사온 식어가는 만두쪼가리를 꾸역꾸역 먹었다. 그러면서 연설을 하면 허기가 진다고 했다. 아무거나 먹어 배를 채워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뱃심이 없이는 입심이 안나온다는 것이다.
“연설끝나면 부지런히 춤을 추세요. 춤한번 잘추면 백만표입니다”라고 옆에서 훈수두는 보좌관 말에, “춤도 젊어서 추어야 춤이지. 내가 춤까지 추는 것이 좀 어색하지 않아? 김교수님, 어때요?”
그의 말은 정확했다. 그의 삶의 역정과 오늘의 유세의 현장이 무엇인가 괴리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자연스럽게 분위기만 맞추라고 나는 충고를 했다. 어색하게 춤을 추면 오히려 표가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지금 묘사되고 있는 이 장면에서 나에겐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다. 나와 만난 이 긴박한 짧은 시간 속에서 이후보는 전혀 나를 유세전략의 일부로서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후보는 모든 순간을 일정한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감각이 뛰어나다. 노후보의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은 실상 모두 정확히 연출된 것이다. 그러나 이후보는 자기가 치열한 선거의 와중속에 들어 있다고 하는 의식조차 별로 없다. 그는 자연스럽게 보여야 한다는 의식조차도 없는 자연인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중앞에 선 이후보는 매우 어색하고 인위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여튼 이후보에게는 불리한 신의 마술이다.
대쪽이라구? 깐깐하다구? 천만에 이후보를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한없이 부드럽고 자상하며 자애로운 인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식이 없는 천진난만한 한 어린애 같은 인간이다. 역시 그는 고귀하게 큰 사람이 분명하다. 나의 세속적 감각으로도 그는 너무 체할줄을 모른다. 그런데도 그는 항상 경직된 것처럼 보인다.
“이후보님께서는 법관시절에 우리사회의 현실적인 진보를 기록한 매우 혁신적이고도 파격적인 판례를 많이 남기셨습니다. 교통사고로 죽은 일반육체근로자의 가동연한을 55세에서 60세로 늘려 손해배상을 받게 해준다든지, 남편이름으로 되어있는 재산도 부부공동소유로 판결을 내리신다든지, 북한을 찬양하는 표현이 이적물에 들어있다 할지라도 국가존립을 해치는 것이 아니면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든지, 계엄이 풀린후에도 군사재판을 계속 강행하는 것은 위헌이라든지 하는 판례는 당시의 역사상황에서 도저히 내리기 어려운 획기적인 판결들이었습니다. 그토록 법조계의 존경을 받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으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대쪽같이 사신 분이 왜 오늘날에는 보수당의 보스로서 사회진보를 거부하는 인물처럼 비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랑이가 없는데도 여러사람이 계속 호랑이가 있다고 하면 호랑이가 정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정치에 입문하여 이러한 이야기를 믿지 않았습니다. 내 신념대로만 살며는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통하지 않더군요. 요즈음은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을 많이 생각을 합니다. 구정물을 뒤집어쓰고서도 깨끗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정치인의 역량이요, 국가혁신의 사명이라고 다짐하고 있지요. 우리사회는 더 이상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으로 규정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규정해야 합니까.”
“정의입니다.”
“정의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페어네스(Fairness)라는 것입니다. 공정성이라는 것이지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정확히 해주는 것이 공정성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를 포괄하는 것입니다. 원칙성과 상황성이 모두 같이 고려되는 공정성이지요. 법의 가치란 바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페어네스란 한마디로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간의 페어게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적 개인들간의 자유의 상충을 균형잡는 것이 곧 법이지요.”
“혁신적인 판례의 배경에 깔린 후보님의 생각도 그러한 정의와 관련된 것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저의 사상은 한마디로 개인의 존엄과 가치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헌법의 기본정신입니다.”
“법이라는 틀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관료사회의 부패를 가장 잘 고치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일각에 있습니다. 그 결정적 복안은?”
“클린 거버먼트(clean government) 즉 깨끗한 정부입니다. 부정부패를 차단할 수 있는 모든 시스템을 정확히 가동시키는 것입니다. 싱가포르와 핀란드의 예를 생각하시면….”
“역대의 모든 대통령후보가 부패척결을 기치로 들고 나왔지만 그것을 실천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실천의지로만은 될 수 없는 문제 아닙니까.”
“저는 우리사회를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관념이 우선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법관으로 살았지만 상앙(商쐙)과 같이 엄형을 주장하는 법가(法家)가 아니었다. 그는 인치(人治)를 말하는 유가(儒家)였다. 그리고 법은 단순한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법관은 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법을 창조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법의 창조의 궁극적 기준은 개인의 존엄과 가치라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 당신은 어느쪽입니까?”
“평등을 도외시한 자유는 죽은 자유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평등은 바람직한 가치가 아닙니다. 평등은 제가 말씀드린 정의의 속성일 뿐입니다.”
나는 이틀동안 이후보를 동행했다. 마지막 행선지는 효순이·미선이네집이었다. 진눈깨비가 쌓인 마찻길에 발자국을 남기며 이후보와 효순이네집에 들어갔을 때 윗목에 놓인 메주덩어리들이 너무도 처량하게 보였다. 효순이가 너무도 맛있게 먹었을 텐데…. 미선이 삼촌은 추모비는 의미없는 것이라했다. SOFA가 개정되어 우리민족의 자존을 회복하지 않는 한 이 두 소녀의 죽음은 추모비로 보상될 수는 없는 것이라 했다.
기자의 신분으로 현재 가장 핫이슈가 되고 있는 현장으로 투입되는 것처럼 영예롭고 행복한 일은 없다.
유세(遊說)란 본시 춘추(春秋) 고전시대의 사(士)의 역할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러나 그 당시 유세의 대상은 열국의 제후(諸侯)였다. 그러나 지금 유세의 대상은 일반 백성(百姓)이다. 제후가 될 사람이 자기가 다스릴 민중에게 유세를 하는 것, 이것이 민주라는 정치행태의 매우 중요한 프로세스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김해공항에 내린 것은 6일 오후 2시쯤이었다.
“아무래도예, 나이먹은 사람은 이회창 지지고예, 젊은 사람은예 노무현하고 이회창으로 갈라져 있지예.”
“그럼 부산은 이회창 우세군요. 왜 그렇게 자기 고향사람을 박대합니까?”
“사람보고 찍는 게 아니구예, 당보고 찍는다 이 말씀이지예.”
정치부 김성훈 기자의 핸드폰 지시에 따라 부리나케 자갈치시장으로 달려가는 택시안에서 내뱉어지는 기사의 일성은 부산민심의 현황을 정확히 전달해주고 있었다.
언제나 시장은 나를 흥분케 만든다. 왁자지끌한 소리, 부산한 움직임, 싱그러운 비린내, 하역인부의 구성진 가락….
“노후보 어디로 갔습니까?”
유세장을 몰라 묻는 나의 질문에 생선 파는 아줌마가 별 관심을 쏟아주지 않는다. 저기저기 하고 손짓하는 아줌마의 얼굴은 매우 무뚝뚝했다.
“나도 모르는 30억원 짜리 땅이 있으면 찾아내라 하십시오. 찾아오면 이후보에게 드리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흑색선전을 하면 이길 선거도 집니다. 그런데 지고있는 선거, 확실하게 집니다”
“와아”하고 울려퍼져야 할 함성도 풍겨오는 갯냄새에 묻혀버리고 만다. 한마디로 기대와는 달리 썰렁했다. 우선 유세장에 사람이 없었다. 유세장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생선을 파는 아줌마에게 사진기를 들이대니깐 그냥 훌쩍 일어나 버린다.
“99% 지지율이라구요? 그건 과장된 숫자구요 한 74.5%는 됩니다. 그렇지만 이 경상도 노무현이가 전라도에서 지지받는다는 것이 왜 나쁘단 말입니까.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한 일입니까. 여태까지 대통령은 모두 반쪽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무현이는 호남에서 지지받고 경상도에서 지지받고 충청도에서, 강원도에서, 경기·서울에서 지지받아 국민통합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이제 이 노무현은 호남·영남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남이 나보다 못되어야 한다는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납시다. 호남, 영남이 따로 없는 새나라! 반목, 질시가 없는 새로운 나라를 만듭시다!”
자갈치의 썰렁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노후보는 매우 또박또박 명연설을 했다. 한마디로 그의 자세는 매우 성실했다. 연설 도중, 매우 빈한하게 보이는 꺼칠한 수염의 늙은 지게꾼이 지갑을 털어 5만원 가량의 빳빳한 지폐를 연단 아래 서있는 김근태의원에게 들이민다. 너무도 그 모습이 측은하게 보였는지 김의원이 그냥 거두셔도 될텐데 하니깐, “내가 우리나라 바른 정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더 있겠소? 받으시오!”하고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은 순간 나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우리 국민의 바른 지도자에 대한 열망은 저런 것인데.
다음 일정지는 서면 롯데백화점 앞이었다. 어차피 또 썰렁하겠거니 하고 나는 지하로 내려갔다. 새벽 6시에 출근한 이래 변변히 식사를 하지 못해 배가 몹시 출출했던 것이다. 국수나 한 그릇 훌러덩 먹고 올라가려고 국수코너에서 기웃거리는데 순식간에 아주머니가 수북이 국수 한 그릇을 퍼준다.
“돈은 어디서 내지요?”
“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한 그릇 맛있게만 드셔주시면 더 없는 영광이겠습니다”하고 두 손을 모아 허리를 굽힌다. 내 인생에서 먹어본 가장 맛있는 한 끼였던 것 같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정문 앞에 당도했을 때 나의 두 눈은 휘둥그레 뒤집어지고 말았다. 연변을 가득 메운 군중, 밤의 열기가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남녀노소 층도 다양했고 무엇보다도 듣는 자세가 진지했다. 노후보의 연설은 자신과 열정이 넘쳤다.
“제가 동북아시대를 열겠습니다. 동북아경제협력공동체를 마련하여 자주적인 외교를 펼치겠습니다. 부산에서 베이징으로, 부산에서 모스크바로, 부산에서 파리로 갑시다. 동북아시대가 오면 부산은 세계물류의 중심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가 잘살게 되고 부산은 쾌적한 삶의 보금자리가 될 것입니다.”
“동북아시아시대를 열어 부산을 세계의 물류중심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지방화시대를 엽시다. 이제 우리나라는 영·호남의 대결이 아니라 중앙·지방의 대결의 장으로 타락해가고 있습니다. 말만 지방자치이지 진정한 분권이 실현되고 있지를 않습니다. 지방화시대의 핵심은 지방대학의 집중적 육성입니다. 수도권대학에 집중되어 있는 연구개발재원을 파격적으로 지방대학에 돌리고, 지역별로 특성화하여 지방산업과의 유기적 연대를 강화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독자적인 지방산학공동체의 기획능력을 키워나가겠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그 능력을 대접받을 수 있는 새로운 가치지향적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아! 우렁찬 박수가 계속 터져나왔다. 나는 길거리 청중 속에 묻혀, 박수를 치는 한 여성에게 물었다.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자발적으로 나오셨습니까? 혹시 동원된 것은 아닙니까?”
“금품동원? 그런 것은 요즈음 인터넷시대엔 통하질 않습니다. 예전에 제 언니가 억울하게 곤욕을 당한 일이 있었는데 노후보가 무료변호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노후보를 소신껏 후원하는 사람이지요.”
이때 노후보의 유세소리는 높아지고 있었다.
“우리 보통사람들의 삶이 문제입니다. 그 고난을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고난을 위해 어떠한 실천을 할 수 있으며 과연 얼마나 지속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회창 후보는 서민을 모릅니다. 지방을 모릅니다. 서울의 밀집한 지역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산 적이 없습니다. 최소한 지방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치러봐야 지방을 알게 됩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행정수도를 지방으로 옮기겠습니다.
이 문제는 신중한 국민적 합의를 요구하는 문제이므로 국민투표에 부쳐서 결정하겠습니다.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로 잡읍시다. 우리 후손에게 떳떳한 역사를 물려줍시다. 집에 와서 아들에게 내가 오늘 산 모습을 정직하게 다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듭시다.”
노후보의 열변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 나는 재빨리 의전담당관에게 다음 행선지까지 노후보와 같이 동행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했다. 나의 청은 기민하게 처리되었다. 넉넉히 마주보고 앉아있을 수 있는 관광버스 속에서 우리의 대화는 이루어졌다.
“서민의 대통령후보임을 자처하는 후보님의 유세에 서민지역인 자갈치에서는 별 호응이 없고 비싼 쇼핑을 하는 롯데백화점 앞에서는 열기가 느껴지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우리 정치의 현장입니다. 서민은 하루 먹고사는데 급급해서 정치라는 것에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도 없습니다. 그리고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일수록 자기표현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그들은 이미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침묵은 기나긴 우리역사 속에서 되풀이되어온 지도자들의 과오를 극복해온 침묵입니다. 한국의 민중들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후보는 역시 정치인이었다. 내 질문에 즉각 대응하는 탁월한 감각이 있었다. 그리고 언어구성이 매우 적절하게 안배되어 있었다. TV토론에서 받은 엉성한 느낌을 찾아볼 수 없었다.
“부산에 오셨으니까 부산사람들 구미를 부추기는 화끈한 공약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저는 지역적인 선심공약을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체를 고려하는 큰 틀의 비전을 우선적으로 제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체의 틀 속에서만 지역의 득실을 얘기해야겠지요. 저는 지금 유세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유세라는 것을 대통령이 되기 위한 수단의 한 작은 단락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 유세야말로 정치의 핵심이며 바로 국민의 정치수준의 바로미터입니다. 이 유세의 장에서 수준 낮은 언행이 저질러지면 곧 우리 국민의 정치 그 자체가 타락하는 것입니다. 제가 비록 낙선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유세의 장에서만은 바른 말을 해야하고 야비한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선거, 그것이 바로 국민정치의식의 훈련장입니다.”
“오늘 구덕체육관에 희망돼지 모으러 가신다는데 희망돼지라는 게 도대체 뭡니까?”
“희망돼지는 제가 말씀드리는 새 정치의 상징입니다.”
“새 정치라는 건 또 뭡니까?”
“저는 정치라는 것을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대통령이 된 후에 이렇게 하겠다라는 약속은 모두 엉터리 약속입니다. 그런 식으로 정치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희망이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 정치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알 턱이 없었다. 침묵의 순간이 흘렀다.
“정치는 돈입니다. 돈이 없으면 정치는 못합니다. 그래서 여태까지의 모든 정치인은 돈줄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계파를 만들고 조직을 만들고 가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거액의 돈을 보이지 않게 큰손들로부터 갹출했습니다. 결국 표는 서민대중들로부터 얻습니다. 그러나 당선만 되면 서민에게 등을 돌리고 온갖 큰손들의 이익에 굴종하는 인간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풀이돼온 악폐에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저의 희망돼지는 바로 지금 여기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자는 서민대중들의 절규입니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돼지저금통에 한 푼 두 푼을 모아 단기간에 50여억원의 성금을 보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새 정치의 출발입니다. 계보도 없고, 가신도 없고, 조직도 없고, 돈도 없고, 청와대도 없고, 동교동도 없고, 4번이나 선거에 떨어진 제가 어떻게 국민의 후보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제가 대통령 단일후보가 되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우리나라 정치혁명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지방화전략 운운하시는데, 현재 지방자치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재원불리기, 예산낭비, 유기적 통제의 단절로 민심이 추락하고 국토가 타락하고 있습니다.”
“어린애가 넘어진다고 울밖에 나가 걷지 못하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대안이 없습니다.”
그의 말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나는 이날 밤 구덕체육관 희망돼지 모으는 행사에 참석했다. 이은미의 발랄한 노래도 좋았고 분위기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건강했다.
나는 김해에서 일박을 했다. 7일 새벽에 김해평야를 가르는 찻간에서 나이 먹은 운전사 양반이 한마디 거든다. “양산군수 될래, 김해 대저면장 될래 하면 누구나 김해면장되겠다 했다 아입니꺼. 그만큼 유족한 곳이지예. 노무현이가 이곳 한림면 아라예. 고생 많이 했지예.”
나는 김해평야를 바라보면서 이곳이 가야의 고도라는 것을 생각했다. 철기문화를 가장 선구적으로 도입한 개방적 문명의 요람이었다. 그러한 풍요 속에서 태어난 우륵의 가야금 튕기는 소리가 서낙동강에 너울치는 갈매기 날갯짓 사이로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200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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