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먼저 나가느라 정리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했습니다.
기계 장비 준비해 주신 상경 형제님도 수고 많으셨네요.
소감이랄까... 확실히 몇년 전에 보았던 것보다는 많은 내용이 보였습니다.
굳이 [모노노케히메]의 주제라기보다는 미야자키 하야오 씨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삶과 공존'의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관객을 때리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혹시라도 관객이 못 알아들을까봐(?) 아시타카 군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한
'共に生きよう' (같이 살아가자) 라는 메시지.
'산'으로 대표되는 환경보전(保全)론자와 '에보시'로 대표되는 휴머니즘의 대립에서
결코 어느 한쪽만 옳은 것이 아니라 함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데
일단은 파괴된 자연을 회복시키며(시시가미 머리 돌려주기) 문명을 발전시키자... 라는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을 해답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노노케히메]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을 대표하는 것은 언제나 때묻지 않은, 척 보기에도 성(性)적으로 순결한 소녀군요.
문명을 대표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에서는 남성입니다만 이 작품에서는 여성.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차림이 화려한, 순결하지는 않을 것 같은 나이 든 여성.
이런 구도(순결 대 비순결)로 여성 캐릭터를 이분하는 것은 흔히 있어 온 구도이지만
이 작품은 후자에게도 긍정적인 시각을 보냅니다.
에보시가 영도하는 마을은 휴머니즘의 극치. 약자가 공정하게 보호받는 사회였죠?
여성과 나병 환자가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당당하게 대접받으면서 살고 있는.
어쩌면 현대 사회가 이상으로 꿈꾸는 (하지만 실천하지는 못하는) 사회의 모습이네요.
반면 자연으로 대표되는 각종 짐승들의 사고방식은 약육강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신'으로 상징되는 자연의 '의지'의 스펙터클한 재현은 다시 보아도 멋졌습니다.
이 작품을 보고 자연신을 숭배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없을 것 같지만,
'자연'을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영역에 놓고 경건한 감정을 가지는 것은
확실히 반기독교적인 정서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겠습니다.
뭐 어쨌든, 너무 개발만 하면 자연이 인간에게 복수하게 되는 것은 맞는 말이니까요.
앞으로도 쭉, 환경보호에 힘을 써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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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시타카 군, 고향에 놔두고 온 카야는 어쩌고 산 옆의 마을에 눌러 살겠답니까?
하긴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자한테 카야의 보물까지 간단히 줘 버린 걸 보면... ( '')a
차기 족장의 지위도 포기했고, 아무래도 단단히 반해 버린 모양입니다.
하지만 금기까지 깨 가면서 배웅하러 와서 전해 준 물건인데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카야쨩, 지금이라도 고무신 바꿔 신어야겠네요 ( -.-)
첫댓글 안본 사람도 보고싶게 만드는 소감문인걸^^ 잘 들어갔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