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네가 무엇을 보느냐?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1960년에 출간된 소설이다. 서술자 스카우트가 공기총 사용법을 처음 배울 때 아버지 애티커스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희들이 뒷마당에서 차라리 깡통을 쐈으면 좋겠어. 너희들이 새들을 쫓아 다닐 것을 알고 있지만, 너희가 명중시킬 수 있다면, 원하는 모든 파랑새에게 총을 쏴 봐.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앵무새를 죽이는 일은 죄란 사실이야.”
이 소설에서 앵무새는 톰 로빈슨이라는 흑인을 의미하기도 하고, 젬과 스카우트 혹은 부 래들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중심에서 밀려난 약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 사회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노동력과 헌신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쉽게 약탈과 폭력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사회적인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정착한 이후 항상 착취의 대상이 됐다.
기원전 19세기 경 사회적 약자는 ‘맨발로 이동하는 자’인 히브리인이다. 13세기 경 이들은 당시 최고의 문명국인 이집트에서 하층민으로 살다가 새로운 신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새로운 신의 등장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개념의 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해야 정확하다. 그 신은 다른 나라의 왕이나 귀족들을 위한 신이 아니라 히브리인들의 고통을 직접 듣고 그들의 고생을 직접 보는 신이다. 그는 고아와 과부 그리고 ‘가난한 자’를 위한 신이다. 이들에게 ‘야훼 신이 유일신’이라는 표현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신’이라는 배타적 의미가 아니다. ‘유일신관’은 사회의 약자를 위한 신만이 유일하게 신이라 불러야 마땅하다는 신앙관이다.
기원전 8세기에 등장한 예언자 아모스는 그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소외된 자들의 복지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직업 예언자가 아니라 가난한 농부이자 목동이었다. 그는 예루살렘 등 대도시를 돌아다니며 ‘부익부 빈익빈’과 같은 사회 불균형을 목격한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서 출발했다. 신앙은 약자에게 베푸는 관심과 선행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중산층, 정부, 왕, 권력 기관, 그리고 종교인들은 신과의 계약을 성전을 높이 건축해 그 안에서 자기들만의 축제를 즐기며 자기들만이 구원받았다고 착각한다. 아모스는 유대의 모든 구성원들의 죄를 낱낱이 고발한다.
너희는 망한다! 시온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거기에서 사는 자들아, (...) 이스라엘의 고귀한 지도자들아, 너희는 망한다. 상아 침상에 누우며 안락의자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골라 잡은 어린 양 요리를 먹고,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는 자들, (...) 이제는 그들이 맨 먼저 사로잡혀서 끌려갈 것이다. 마음껏 흥청대던 잔치는 끝장나고 말 것이다. <아모스 6장>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서도 당시 상류층의 사치스런 생활이 증명되었다. 당시 상류층은 도덕 불감증과 탐욕에 몰두했다. 이들은 곡식을 팔 때 가짜 저울로 속이고 속임수를 통해 부를 축적했으며, 신 한 켤레 값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매매했다. 이러한 자들에게 신은 “그들이 한 일 그 어느 것도 두고두고 잊지 않겠다”라고 경고했다.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 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아모스 5장>
의례는 신의 존재를 자신의 공동체에 확인시키고 자신들이 잘못한 행위에 대해 용서를 비는 제도다. 그런데 이스라엘인들은 점점 자신들이 신에게 많은 제물을 바치면 신이 그 대가로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형식적인 의례만 화려하게 치르면 된다고 착각했다. 성대한 의례도 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자신 편이라고 믿는 인간의 정신적인 쾌감을 위한 장치나 다름없었다.
신은 아모스에게 “네가 무엇을 보느냐?”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아모스가 자신의 두 눈으로 보는 대상이 아니라 아모스의 궁극적인 관심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인간은 도시 안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존재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은 정의라는 덕과 질서 잡힌 도시다. 정의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옳은 것’ 아니라 ‘선한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아모스는 사회의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 히브리어와 아랍어에 등장한 ‘레험(자비)’은 본래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뜻이다. 자비란 자식을 위해 때로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어머니처럼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약자들이 많다. 사회의 도덕적 기초와 희망은 자비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