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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에서 설명이 부족한 부분들은 임의로 풀어서 썼고, 일부 표현들은 역시 임의로 바꿨습니다. 예를 들어 '리멤버런스'는 원래 단수로 묘사되지만, 여러 영혼이 모여 단일한 의식을 이루고 있다는 설정이라 여기서는 복수로 썼습니다. 통역자가 다가타르에게 드로모카의 용언을 번역해줄 때는 통역자로써 드로모카의 말을 전달하듯 말하지만, 여기서는 드로모카가 직접 다가타르에게 말하듯 썼습니다.
이와 같은 점 감안하고 봐주시기 바라며, 원본은 아래에 있습니다.
http://magic.wizards.com/en/articles/archive/uncharted-realms/no-end-and-no-beginning-2015-02-11
-끝이 없으면 시작도 없다-
By Nik Davidson
사르칸 볼(Sarkhan Vol)이 사악한 볼라스(Bolas)로부터 우긴(Ugin)을 구하고 타키르(Tarkir)의 운명을 바꾼지
몇년이 지났다. 그 후로 '용의 폭풍(the Dragon Tempest)'은 계속해서 어린 용들을 낳았을 뿐 아니라, 마치 우긴이
입은 치명상에 분노하기라도 한 듯 무수한 용들을 창궐시키고 있었다. 오직 소수의 타키르인들만이 폭풍이 분노한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그 영향 자체는 모두가 볼 수 있었다. 한때 미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던 각 부족과 용들 사이의 관계는 완전히 파탄에
이르고 말았다. 매달 새로운 용들이 나타났으며, 매달 새로운 파괴와 손실이 이어지고 있었다.
끝없이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의 아브잔(Abzan) 가문은 과거에 그들이 이 사막에 적응해 살아남았던 것처럼, 이제는 그들의
적인 위대한 용 드로모카와 그 자식들과도 대면해야 했다. 이제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고 아브잔은 새로워진 용들의 습격에 그 어떤
부족보다더 큰 손실을 입고 있었다. 아브잔의 칸인 다가타르는 그의 백성들이 새로운 시대를 견딜 수 있도록 현명한 결단을 해야만
했다: 전멸을 각오한 전쟁인가, 혹은 생존을 위한 항복인가.
단호한 다가타르(Daghatar, the Adamant): 들고 있는 것이 바로 호박석 철퇴이자 왕홀인 리멤버런스(the Rememberance)
아브잔 칸의 자리인 석조 요새, 메르-에크(Mer-ek) 위로 바람이 휘몰아치며 울부짖는 소리를 냈다. '폭풍'은 지난 해 이래
점점 빈번하게 몰아닥치고 있었고 '폭풍'들 사이의 간격도 점차 줄어들었다. 바람 또한 지속적이고도 치명적일 정도로 사막에 불고
있었다. 가장 강한 바람은 모래와 함께 불어와서 사람이나 이벡스의 살을 찢어낼 정도였다. 지금까지 식량과 물은 부족의 역사에
있어서 늘 부족해서 위기를 불러왔지만, '폭풍'이 아브잔의 장로들의 무거운 엉덩이를 아브잔 제국 각지에서 일으켜 중앙으로 불러들일
정도의 중대한 위기가 된 적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용들의 폭풍(Dragon Tempest): 타키르의 모든 용들은 이 초자연적인 폭풍에서 태어나는 반쯤은 영적인 존재들이다.
아브잔의 칸인 다가타르는 긴 대리석 탁자의 상석에 앉았다. 탁자는 오랜 세대 동안 의회가 열린 덕에 곳곳에 흠이 났거나 깨진 모서리들이
보였다. 탁자의 모든 자리가 찼으며, 20개 부족의 가장 위대하고 현명한 이들이 의원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오랜 전통에 따라
다가타르는 각각의 조언자들이 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는 입을 열지 않을 것이었다. 마지막 조언자의 말이 끝난 다음에야 다가타르는
논의의 주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그의 조언자들은 이미 두 시간이나 자기들끼리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부족의 존폐 위기가 달린 일이었기에 누구도 확실함 없이는 결정을 내리고 싶어하지 않았다. 다가타르는 자리에 앉아 턱을 괸
채, 이미 지친지 오래였지만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이며 자기 앞에서 벌어지는 언변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터무니 없습니다! 장로께서는 드로모카의 일족이 마치 자연 자체의 힘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씀하고 계시지
있습니까? 지난 여섯 달 동안 제 전사들은 세 마리의 용을 잡았습니다. 게다가 우리 칸께서는 직접 그분의 철퇴로 두 마리의 용을
죽이기도 하셨습니다. 그것도 갓 태어난 새끼가 아니라, 날개를 다 피면 20야드나 되는 놈들을 말입니다. 예, 물론 손실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용비늘 장군(Dragonscale General)
지금 말하고 있는 자는 레얀이었다. 세 가문이 힘을 합친 군대의 장군이자, 지난 2년 동안 유일하게 지속적인 승전보를 갖다주고 있는 군사 지도자였다. "당신께서 겁쟁이라고 해서 우리까지 항전을 포기하게 만드시면 안되는 겁니다."
레얀은 탁자 주위를 흘겨봤다. 레얀의 응시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둘 눈길을 피했다. 오직 다가타르의 오른쪽에 앉은 사내만이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 그래, 말 잘했소. 잘했어! 그래서 그대는 마르두(Mardu) 야만족들처럼 그대의 전리품을 관문들에 걸어놓은 거요? 날개 폭이 20야드라니! 대단한 승리군. 여섯 달 동안이나 말이오. 놀라운 솜씨야. 하지만 그 사이에 얼마나 되는 용들이 폭풍으로부터 태어난 것 같소?"
이렇게 말하는 이는 다가타르의 삼촌인 메렐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스스로 칸의 제위를 거절한 일로 유명했다.
"내 정찰병들이 식별한 새로 태어난 용들은 16마리였소. '내 정찰병'들
이 보고한 것만 말이오. 게다가 드로모카(Dromoka)는 여기서 25마일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서는 폭풍으로부터 더
많은 용들을 불러들이고 있소. 드로모카는 단순히 다른 용들의 복종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용들의 '군대'를 통솔하고 있는 거요.
그리고 내 생각에는 우리가 드로모카를 직접 대면하게 될 경우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여기 계신 분들께 구태여 상기시켜드릴 필요가
없을 거 같소. 레얀, 그대는 소모전의 달인이요. 그러니 내 수학적 재능이 다소 녹슨 거라면 부디 나를 깨우치게 해주시오. 그대는
대체 어떤 근거와 계산으로 전쟁의 판세가 우리에게 유리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다가타르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아브잔의 지도자들이 한 데 모여서 단합된 지혜로 자신이 알아낼 수 없던 새로운 해답을 제시해주리는
희망으로 이 의회를 소집했었다. 그러나 희망대로 되는 대신, 그들은 다가타르의 깊은 공포만을 재확인시켜주고 있었다.
레얀은 메렐을 흘겨보았다. "
어르신께서 하시는 비판은 이미 많이 들었습니다, 어르신. 하지만 어르신 비판에는 아무 해결책도 없더군요. 여러분 중 누구도
항전보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제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운용 가능한 군대를을 모두 소집해서 적의 근원을
치는 겁니다. 모든 싸울 수 있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우리의 부름에 응해주시는 모든 조상신들과 함께 용족의 심장부를 타격하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드로모카를 쓰러뜨리고 나면 드로모카의 일족은 흩어질 겁니다. 타키르의 나머지 부족들도 스스로 폭풍이
잦아들고 바람이 바뀔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늘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에 대답하는 메렐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그의 눈은 천천히 과거의 후회로 잠기고 있었다.
"그대는 그곳에 있지 않았지, 레얀. 그대는 드로모카가 우리에게 행한 것들을 보지 못했어. 우리는 천 명의 병사를 잃고도 드로모카에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네. 그대가 제안하는 것은 그저 아브잔의 종말이야."
방에는 침묵이 드리웠다. 완고하던 레얀의 얼굴도 조금은 부드러운 표정이 됐다. "
저는 오늘 회의에서 그 결론, 아브잔의 종말로 이어지지 않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르신. 저는 우리가 이 회의에서 작은
희망의 조각이라도 찾았으면 합니다. 그게 아니면 최소한 조상들께 자랑스러운 끝을 맞이할 준비를 하거나 말입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나와야 할 말은 모두 나왔고 이제는 진실만이 그들 앞의 탁자 위에 놓여있었다. 다가타르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다른 모두는 의자에서 자세를 바로 잡고 칸의 말을 경청했다.
"지혜로운 조언자들이여, 그대들의 조언을 경청했고 각각의 의원들께도 감사하는 바요. 우리는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전쟁을 하고 있소.
그러나 다른 면으로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수성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기도 하오. 나는 이 사실을 결코 간과하지 않고
있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지금 상황이 단지 불리한 전세가 아니라 아브잔의 종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성급히 결론내리고 행동하지는 않을 거요. 나는 조상신들과 의논을 해봐야겠소. 하지만 어떻게 결정이 되든, 나는 그대들과
끝까지 함께 할 것이오. 그만 해산하시오."
Citadel Siege: 드로모카와의 전투
칸의 방은 소박했다. 다가타르는 막강한 가문에 속한 부유한 사내였지만, 그가 남들과는 공유하지 않는 유일한 자신만의 공간인 이곳에는
어떠한 장식물도 두지 않았다. 하인들도 이 방은 청소하지 않도록 지시받았고 방문객들도 이 방안을 들여다보는 일은 금지되어있었다.
집단에서 존중받는 긍지높은 인물이 갖는 기벽이 있는 법이고 다가타르는 칸이었기에 그 또한 몇몇 기벽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도 진정 혼자는 아니었다. 사실 이곳은 그가 혼자서 그들을 맞이해야 하는 장소였으며, 가급적이면
들어오고 싶지 않은 장소였다. '리멤버런스(the Rememberance)'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가타르가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고 다가타르 또한 그들의 응시를 느꼈다. 이것이 모든 세대의 모든 칸들이 지는 짐이었다.
그들은 명예로운 대우를 받았으며, 자신들을 보는 모든 아브잔인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을 자신들을 지닌 이에게는
그렇게 다루기 쉬운 물건이 아니었다. 칸에게 있어서 '리멤버런스'는 끔찍한 짐이었다. 그러나 어두운 시기에 '리멤버런스'는
남들에게는 없는 무기이자 자원이 될 수 있었다.
'리멤버런스'...
사람들은 이들이 선조나무(First
kin-tree) 중 하나에서 나왔다고 한다. 선조나무는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던 사막에서 생존하고, 적응하고, 집단을 이룬
태초 아브잔인들의 혼 중 일부가 메인 나무였다. 이 위대한 조상신들은 자신들이 깃든 나무를 거대하고 드높게 키웠는데, 그
가지들은 메르-에크의 성벽들보다도 높게 뻗어올랐고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저 멀리 있는 제스카이의 봉우리들보다도 높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이 나무가 천상까지 올라가는 건 아닌가 생각했는데, 결국 천상은 정말로 나무가 자기에게까지 닿을 수 없도록 일격을
가했다. 거대한 폭풍의 한 가운데서 내리꽂힌 파괴적인 번개의 기둥이 나무를 강타해서 뿌리까지 조각을 낸 것이다. 사람들은 파괴된
나무 속에서 오래된 나무의 호박석 심장을 찾아냈다. 이것은 오래 전에 죽은 신령들의 힘으로 요동쳤고 단 하나의 합일된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호박석 심장은 곧 철퇴의 머리로 조각되었으며, 이 철퇴는 대대로 아브잔 칸들이 지니는 통치의 상징인
'리멤버런스'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진실이 어땠는지를 알았다면, 다가타르는 결코 칸의 지위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호박석은 유동하는 빛으로 맥박치고 있었으며, 다가타르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다가타르는 호박석 철퇴를
집기 전에 잠깐 망설였으나, 이내 가죽으로 싸인 철퇴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쇄도하는 야수와도 같이 무겁게 울리는 음성의
그의 정신으로 파고들었다.
"겁쟁이. 나약자. 너는 우리를 회피하고 있다. 자신의 의무를 지는 것이 그다지도 무서운가?"
다가타르는 공손하게 철퇴를 들어서 왼손으로 호박석 머리를 쓰다듬었다. 장로들은 그가 필요로 하는 조언을 제공해주지 못했다.
하지만 조상신들은 한 번도 조언을 제공하는 데 실패한 적이 없었다. 다가타르는 앉아서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지치고 분개한 기색을 지우기 위해 애쓰며 목소리를 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제가 의무를 지는 것이 무섭냐고 하신다면, 아니요, 제가 무서운 것은 제 의무가 수행되지 않을
경우 벌어질 일들 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피하고 있냐고 하신다면, 그렇습니다. 지금 저는 살아있는 조언자들과의 논의를 마치고 온
길입니다."
"살아있는 자들. 그래... 네가 잃기를 무서워하는
것들이 바로 살아있는 자들이지. 그들 때문에 너는 네가 진 의무에 대한 시야를 잃어버리고 있다. 네 의무는 누군가의 삶, 혹은 만
명의 삶보다도 더욱 크다. 네 의무는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모든 아브잔인'들에 대한 것이야."
다가타르는 눈을 감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나아온 길을 생각한다면, 만 명의 삶은 그렇게 큰 게 아닐지도 모르지요."
그는 호박석으로부터 전해지는 멸시감의 파장을 느꼈다. "
오직 네가 실패할 때만 치르게 될 희생이야. 벌써부터 실패한다는 생각으로 물러진 게냐? 네가 책임지는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넣고
너도 그들과 함께 죽겠다는 생각으로 쉽게 타협하려는 것이냐? 네 길의 단단함은 고작 그 정도뿐인가?"
"여러분의 조언을 위해서라면 여러분의 모욕도 달게 받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가능할 따름입니다. 둘 다 성공할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말입니다. 드로모카와 그 일족은 다른 용들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강하고, 예, 뿐만 아니라 서로를
지켜줍니다. 그들은 사막의 가혹한 환경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함께 힘을 합해 살아갑니다. 우리는 우리와 같은 종류의 힘과 방식을
지녔으면서도 우리보다 강한 적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늘 해왔던 방식대로 우리의 방어를 보다
견고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용들은 우리보다 수에서나 힘에서나 우위에 있고, 우리의 보급품으로는 영원히 버틸 수도 없습니다.
아니면 우리는 그들 일족의 우두머리를 치고 나머지 놈들이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길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지는 솔직히 의심스럽습니다. 저는 다른 몇몇 칸들로부터 타키르의 다른 지역으로도 '용의 폭풍'이 확산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여기서 하나의 용 일족을 물리치고 있는 동안 다른 지역들은 이미 용들에게 정복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세
번째 선택지가 있다면 그건 아마 제가 발견하지 못한 것 같군요. 이제 여러분께서는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
잠시 동안 '리멤버런스'는 침묵했다.
"처음 네가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도 위기의 상황이었지. 그 때는 사소한 문제였지만 말이야. 너는 정찰대 하나를 잃었고 그들이
술타이(Sultai)에게 포로로 생포됐다고 했다. 너는 그들을 구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지. 우리가 네게 칸이
짊어져야 하는 가장 가혹한 의무는 바로 다음 전투에서 생존하기 위한 손실을 감수하는 것임을 깨우쳐주었을 때 너는 울고 말았다.
네가 그때 구조대를 보냈다면 술타이에게 붙잡힌 정찰대의 다섯 배나 더 되는 병력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너는 구조대를
보내지 않았어. 그리고 이듬 해 준비가 됐을 때에는 유리한 입장에서 술타이를 응징할 수 있었지. 그 과정에서 쓰러진 모든
아브잔인의 혼은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게 바로 아브잔의 방식이야. 설사 패배를 하더라도, 아브잔의 힘에는 어떠한 손실도
없다. 넌 이 방식을 이어가야 해. 아브잔의 힘은 저 짐승들을 물리치기 충분하다, 네가 얼마나 되는 수를 잃든, 그 희생으로 인해
남은 자들에게 미래가 보장된다는 사실을 너는 알아야 해... 다가타르 칸, 너는 네가 해야 할 일을 실행할 준비가 됐나?"
칸은 '리멤버런스'에게 대답하기 전에 오랜 시간 동안 숙고한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 그렇습니다."
Plains
하늘은 청명했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다가타르가 쓴 투구는 계속해서 강철을 때리는 모래바람 탓에 금속성 메아리를 울리고 있었다. 그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투구의 면갑을
내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자신과 사절단 일행이 향하는 만남 장소를 찾아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피며 나아갔다.
곧
사막에 우뚝 박힌 거대한 바위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메렐은 복잡한 기색을 보였지만 그는 여전히 조카의 옆자리를 지켰다. 이곳은
바로 드로모카와의 첫번째 전투가 있던 곳이었다. 천 명의 아브잔인이 이곳 사막에 쓰러진 바 있었지만, 이제는 시간과 사막이 죽은
자들의 흔적을 모두 지운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여전히 성스럽고 중요한 장소였다. 다가타르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위 가까이로 다가서자, 다가타르는 곧 암석 주변에 일단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은 아브잔의 복식을 하고 있었지만 어떠한 가문의 문장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가문을 버린 그들에 대해 거의 본능적인 수준의
증오감이 칸에게 일었지만, 그는 자신이 여기 왜 온 것인지를 상기해냈다. 다가타르는 '리멤버런스'를 쥔 채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뚫고 나아갔다.
바위들은 바람을 약간이나마 막아주는 피신처가 되어주고 있었기에 다가타르의 일행 또한 그들의 면갑과
투구를 벗고 물로 목을 축일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칸이 무표정한 얼굴로 사절들의 면면을 살피고 있자 사절들은 낮은 자세로
칸에게 절을 했다. 다가타르 또한 그들에게 회답하는 동작을 취했다.
"다가타르, 아브잔의 칸이시여. '영원한 존재'의 의지에 따라 당신을 환영합니다. 저는 소헤무스라고 합니다."
"그대는 내 땅에서 나를 환대하는군. 어쨌든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그 환대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난 그대와 대화하기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니다. 그대의 주인은 어디에 있나?"
소헤무스는 삭발한 그의 머리를 낮게 숙여 절했다. 다가타르에게 그는 제스카이 수도승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실 때 우리에게 합류하실 겁니다. 어쨌든 그 동안 저는 당신께서 따르실 의전을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실 때는 그분을 보고 말씀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오직 용언으로만 말씀하시고 제가 통역을 할 겁니다만, 어떤
경우에도 저를 보고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다가타르는 살짝 고개를 올렸다가 이내 끄덕였다. "잘 알았다. 다른 건 없는가?"
"또한 그분께서 이 만남에 어떠한 휴전의 조약도 제시하지 않으신 점을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로는 당신과 당신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안전의 보장도 해드릴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뭐라고?" 다가타르의 심장이 분노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럼 드로모카가 우리에게 보장하는 건 대체 무엇이냐?"
소헤무스는 빈 손바닥을 피고 다가타르에게 보여주며 다시 한 번 낮게 절했다. "그건 제게 물으실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소헤무스는 움찍하더니, 얼굴에 미묘한 미소를 띄었다. "아,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으실 거 같군요. 그분께서 오십니다."
다
가타르는 하늘을 보았지만 눈이 멀듯한 빛을 뿜어내는 태양 외에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곧 빛이 잦아드는가 싶더니,
모래바람을 모두 막아버릴 정도로 큰 날개를 지닌 거대한 존재가 창공으로부터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 아래 있던 사람들은 용이 그들
앞에 착륙할 때까지 천천히 날갯짓하며 불러일으키는 강대한 풍압을 느낄 수 있었다.
드로모카는
거대했으며, 심지어는 다가타르가 지금껏 본 가장 큰 상아어금니보다도 세 배는 더 컸다. 드로모카의 비늘은 두터웠고 청동빛부터
진주빛까지의 색채를 냈는데, 단 하나의 비늘도 흠집 하나 없었다. 수천 발의 화살, 창, 검이 모두 이 비늘 앞에거 부서지고
말았다.
'그들이 이 자리에 있었겠군.' 다가타르는 생각했다. '그 모든 수고가 아무 의미도 없었어.'
칸은 몇 걸음 나아가서 용 앞에 허리를 숙였고 용 또한 고개를 살짝 낮춰서 그의 인사에 응답했다. 드로모카는 다가타르를 관찰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거의 사람이 신기한 딱정벌레를 보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용은 다가타르가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으르렁거리고
긁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다가타르는 소헤무스가 통역을 시작하자 그에게로 돌아서고 싶은 본능을 간신히 억제해냈다.
"그대에게 이 회담을 허하노라, 아브잔의 다가타르여. 비록 네가 여기서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다가타르는 용을 바라보았다. 거의 성채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위대하고 강대한 드로모카여, 나는 아브잔과 그대 일족 사이의 분쟁을 종식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소."
용은 다가타르의 가슴에 지진을 일으키는 듯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잠시 후에야 다가타르는 그것이 웃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어서 소헤무스의 통역이 뒤따랐다.
"그건 불가능하다. 이는 그대 부족의 사령술사들이 이 대지를 내가 용납할 수 없는 방식으로 더럽히고 있기 때문이노라."
"뭐? 사령술사? 이해할 수 없는 말이오. 드로모카, 그대는 술타이를 얘기하고 있는 거요. 우리는 그런 추악한 술법을 결코 쓰지 않소."
용은 그 거대한 머리를 거의 다가타르의 눈 앞까지 내리고 그를 응시했는데, 어쩐지 그 동작은 호기심이 어린 것처럼 보였다. 드로모카가 입을 열자 그 안에서 타오르는 태양과도 같은 빛과 열이 명멸했다.
"그대는 그대들의 죽은 자들을 구속하여 자신을 섬기게 하고 있도다. 사령술이다. 심지어 그대는 내 앞까지 그 어두운 신령들을 데리고
와서 나를 대면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부인하는가? 그래도 그대는 정직한 것처럼 보이는구나. 이 모순을 설명해보라."
다가타르는 '리벰버런스'를 내려다 보았다. "그대가 오해하고 있는 거요. 이들은 우리의 명예로우신 조상신령들이시오. 이분들의 지혜는 우리를 인도하고 그게 우리의 전통이자 방식이오. 우리는-"
드로모카가 내는 요동치는 소음과도 같은 용언이 다가타르의 말을 잘랐다. 소헤무스는 드로모카가 내는 소리에 망설이며 잠시 통역을 멈추었다.
"산 자는 산자를 섬겨야 하고 죽은 자들은 산 자를 떠나야 한다. 그게 바로 자연의 법이니라. 나는 이 법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강하게 반대하노라."
용은 조금은 부드러워진 음성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네 민족을 연구해왔고 너희들로부터 존경할 만한 점들을 찾기도 했다. 너희는 타인을 용기와 명예를 갖고 존중하고 공존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따로 있을 때보다 함께여서 강해진다. 너는 희생과 힘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 너희의 전통인 크루마는 내가 내 날개 아래로 보호를 청하며 찾아온 인간들을 대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너희 민족이 사령술에 오염되어 있는 이상, 우리 일족은 사막으로부터 너희를 쓸어내 이 땅을 정화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Unyielding Krumar: 신의와 유대를 중시하는 아브잔은 전투에서 쓰러뜨린 적들의 아이를 입양하기도 한다. 이를 크루마라 한다.
다가타르는 한동안 용과 시선을 마주치고 있었다.
'리멤버런스'의 목소리가 다가타르의 정신 속으로 파고들었다.
"멍청이. 이 기회를 놓치지 마라. 넌 조약의 깃발 아래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야. 이 짐승은 분명 우리 모두를 죽일 게다. 또
언제 이렇게 가까이까지 다가올 수 있겠느냐! 우리를 들어라. 우리를 들어서 네 적을 쓰러뜨리는 거다, 지금 당장!"
다가타르는 '리멤버런스'의 힐트를 쥐고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드로모카, 우리 조상신령들께서는 수세기 동안 우리를 인도하셨소. 그리고 나는 그분들께서 내게 주신 진실된 조언을 그대와 함께 나눌
생각이오. 그분들께서는 내게 한 사람, 혹은 만 사람의 삶보다 더 중요한 의무가 칸에게 있다고 하시오. 내게는 세계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우리 일족의 모든 후손에 대한 책임이 있소. 그게 바로 아브잔이오. 우리는 패배를 당하더라도 우리의 힘을 잃어서는
아니되오.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그게 바로 우리가 걸어야 하는 방식이오. 아무리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말이오."
다가타르는 겁없이 용 앞에 우뚝 섰다. 드로모카는 자신이 팔을 휘저어 공격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다가타르가 들어와도 미동 하나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가타르는 '리멤버런스'가 힘과 기대감으로 맥박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가타르는 철퇴를 들어올리며
탄식과도 같은 숨결과 함께 속삭였다.
"용서하십시오."
다가타르는 철퇴의 머리를 근처에 있던 바위에 세게 내리쳤다. 호박석에는 금이 갔고 '리멤버런스'의 목소리는 천 가지 절규와 분노의
비명이 되어 폭발했다. 그러나 다가타르는 또 한 번, 다시 한 번, 마침내 호박석이 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질 때까지 철퇴를
내리쳤다. 그제서야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조상신들이 떠난 것이다.
다가타르는 천천히 숨을 쉬고 무릎을 꿇었다.
"메렐 삼촌. 가서 모든 가문에 전해주십시오. 모든 선조나무를 뿌리까지 뽑아내라고 말입니다. 이 자리에서 모든 사령술을 금지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다가타르는 드로모카를 올려다 보았다. "이걸로 우리 사이의 조약이 이루어진 것이라 믿어도 되겠소?"
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메렐은 갑자기 더 늙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얘야, 모든 가문들이 반역할 게다. 넌 우리의 모든 전통을 배격하겠다고 하고 있어. 우리 조상신령들을 모두 소멸시키다니! 내전이 벌어질 게야!"
"네, 그럴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측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미래가 보장되겠지요."
다가타르는 이제는 침묵하게 된 '리멤버런스'의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자 호박석 조각들은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으며,
반짝이는 알갱이들은 이내 모래 속으로 잠기기 시작했다. 단지 몇 분이 지나자, 더는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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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아앙 잘 봤습니다. 매우 재미지네요 ㅎㅎ
오오 해석감사합니다 술타이도 궁금궁금
잘 봤습니다. 전 저 선택부분을 무모한 돌격과 수비 중에서 선택한다고 생각했는데 번역된 걸로 보니까 한 결 낫네요.
우왕 번역본 재미지게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d
이렇게 선조들의 영혼을 박살냈으니 이걸로 다음 블럭에선 아브잔의 철권통치를 몰아낼 수 있겠죠? (헛소리)
감사합니다. 번역이 깔끔하네요. 문장을 읽다보면 느껴지는 배경의 분위기도 실감나고 멋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아... 안돼!!! 이 BG싫어하는 나쁜 용시키들아! 유 ㅁ유
와우 영문으로 읽다가 이걸 읽으니 훨씬 편하네요~ 좋은 번역 정말 감사합니다. ^_^bbb
감사합니다앙
오오 정성이 들어간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멋지네요 다가타르에게는 능력대신 멋진 스토리를 줬네요
뭔가 겁나 슬픈 댓글인데 이거....
'골든팽'이라 더 슬프게 다가옴요 ㅠ_ㅠ
아브잔 부족 일원이라 번역이 더욱 감사합니다. 그럼 결국 아나펜자는 태어나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거군요 ㅜ
정말 잘읽었습니다^^
굿굿!
안녕하세요 김선조라고 합니다.
는 드립이고 이런 스토리들이 우리가 가진 카드의 가치를 더 빛나게 해주는거 같아요.
비록 카킹에서 카드를 수치화시켜 똥으로 보이는 카드들이라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처럼 말이죠.(다가타르 포일 뽑아서 쓰는 말 아님.)
정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