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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원문보기 글쓴이: 영심이
이성봉 목사님 영상
이성봉 목사님 예화 모음
1.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자연계에 나타나셨다. 일월성신, 호호탕탕한 천계를 보든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다. 봄에는 백화가 만발하고 여름에는 녹음방초 성하고 가을에는 오곡백과 풍성하고 겨울에는 백설강산이 은세계를 이루어 보기 좋고, 놀기 좋고, 살기 좋게 지어놓은 사랑,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전부가 사랑이로다.
만물을 은혜와 사랑으로 주실 뿐만 아니라 독생자를 주신 사랑은 절대 사랑이다. 이들을 둘이나 가져서 하나씩 가지면 상대적 사랑이지만 독생자를 주셨으니 절대가 되고 만 것이다.
인정도 없고, 사랑도 없는 인간이로되 내 자식이 어디에 가서 잘 있어도 언제나 아들에게는 아들, 아들 하는 심정을 금할 수 없고 딸에게는 딸, 딸, 딸 하는 부모의 심정이 아닌가?
나는 김해의 어떠한 곳에 가서 집회할 때, 그 교회의 여전도사와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깨달았다.
그 여전도사가 청춘 과부로 무남 독녀 하나를 길러 고등학교까지 졸업시키고, 과년이 되어서 사윗감을 고르고 골라 마음씨 좋고 가문 좋다고 하여 결혼시켜 주었더니, 남편의 사랑을 여간 많이 받아 왔지만 신랑이 신경질이 있어 대수롭지 않은 일로 부부 싸움을 하여 아내를 때려서 눈퉁이가 부었고 쥐어박아 얼굴이 못쓰게 되어 보따리를 싸 가지고 쫓겨 나온 것을 볼 때, 그 전도사는 기절하다시피 분개해서, 못살겠다고 - 그래서 에익 내가 지옥을 가더라도 이 놈하고 가서 좀 해봐야겠다고 딸을 데리고 가서 사위하고 한바탕 싸움을 하였노라고 - 차라리 자기를 죽이는 것은 관계치 않겠다고 하며 그 순하고도 어린 딸을 그 모양 만든 것을 볼 때 견딜 수 없이 분하더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여보, 자매. 당신은 그 딸이 가서 사랑 많이 받다가 한 번 매맞고 왔다고 분한데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얼마나 많은 구박과 학대를 받으셨는가 생각하여 보았습니까?”
“그가 나실 때도 말구유에서 낳은 지 며칠 못 되어 헤롯이 죽이려 함에 교통이 불편한 그 당시에 머나먼 애굽으로 피난 가시고, 인간들을 극진히 사랑하사 저들이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을 만들어 주시고, 병들었을 때에 어루만져 치료해 주시고, 저들에게 유익한 말씀이라면 남김없이 주야로 설교해 주시고, 저들의 행복을 위하여 산과 들에서 금식과 기도로 철야하셨건만 악한 유대인들이 예수를 미워하고 반항하여 마침내 그 독생자에게 온갖 모욕과 박해로 정죄하여 자기들을 생각하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자기들을 만져 주시던 그 손에 못을 박고, 자기들을 염려하고 애타시던 그 심장에 창칼을 들이대며 발악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셨겠습니까?”
“죽으시면서도 행여나 성부께서 진노하실까 하여 아버지여, 아버지여, 저들이 알지 못하여 그러하오니 저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애원하시는 주님에게, 이리떼같이 달려드는 인간들을 다 진멸시켜야 마땅하지만 그 독생자를 죽이시고 악한 우리들을 살려 주신 하나님 사랑을 압니까? 이 사실을 압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치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2. 미국의 갈매기 동상
미국에는 갈매기 동상이 있다고 한다.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수백년 전에 청교도들이 미국을 개척할 때에 농사를 짓는데 황충의 재난으로 농작물이 전멸하게 되었으므로 청교도들은 밭 모퉁이에 엎드려 결사적인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 때 난데없이 갈매기 떼들이 수만 수 천 마리가 와서 황충을 다 잡아 먹고 똥을 싸고 달아나니 그것이 거름이 되어 그 해 농사가 참 잘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조상들은 갈매기 동상을 세워서 자자손손 신앙을 고취시킨다고 한다. 환난은 인간을 기도로 가게하고 기도는 인간으로 환난에서 떠나게 하느니라.
.3. 가시밭의 백합화
신앙에서는 소프라노도 잘해야 하지만 베이스를 잘해야 하는 것이다. 하늘 나라에는 올라도 잘 가야 하지만 내려도 잘 가야 한다. 자, 보시라. 히브리서 11:17-35 상반절까지는 모든 성도들이 믿음으로 모든 난관을 물리치고 승승장구(乘勝長驅)로 올라가며 모든 난관이 추풍낙엽(秋風落葉)과 같았다.
소프라노를 잘하였다. 그러나 35절 하반절부터는 모든 환난을 다 그대로 받아서 형편없이 내려갔다.
희롱과 채찍을 받고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을 받았고 돌로 매맞고 톱에 키고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궁핍과 환난 고생 당하였고 광야와 산중의 암혈과 토굴에서도 잘 참고 견디고 베이스를 잘하여 내려가면서도 찬송과 감사로 승리한 것이다.
6․25 후에 안동 책거리란 교회에 집회를 갔더니 첫날부터 은혜가 막 쏟아진다. 그러나 다음날 빨치산들이 내려와 신자들의 집을 불사르는 환난을 당하니 얼마나 고통이요 실망일까 하고 걱정했더니, 그 신자들은 조금도 낙망하지 않고 “목사님, 참 감사합니다. 그 전에는 집을 지키느라고 부흥회를 해도 번갈아 다니면서 은혜를 마음껏 못 받았는데 이번에는 그 집이 없어져서 온 식구들이 아이들까지 와서 몽땅 받으니 참 감사합니다.” 한다. 감사하려면 안 할 것이 없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지은 노래가 “가시밭의 백합화”란 노래이다.
가시밭의 백합화 주의 성도여
쉬지 않고 찌르는 고통에
남 모르는 눈물이 몇 번이던고
주님께서 네 눈물 씻으리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 나의 사랑은 아름다운 향기를 떨친다.
4. 먼저 겸손을 구하라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은 말년에 교만하여 망하였고, 신약에서도 교만하였던 사울은 다메섹에서 부스러져 작은 자라는 바울로 변화하여 하나님의 가장 귀히 쓰이는 인물이 된 것이다.
바울 사도가 예수믿고 20년 후에 쓴 고린도전서 15장 9절에 보면 사도 중에 작은 자라고 하였더니 한 3년 후에 쓴 에베소서 3장 8절에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하셨고 말년에 쓴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더욱더 작은 자가 되었다.
그래서 존 웨슬리도 말하기를 모든 덕의 기초는 겸손이라 하였다. 어거스틴 성자는 제자가 세상의 제일 좋은 덕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에 겸손이라 하였다. 둘째는 무엇입니까 “둘째도 겸손이다.” 그러면 셋째는 무엇입니까 하니 “셋째도 겸손이라” 하였다.
존 플레처(John Fletcher)란 사람은 그의 제자가 묻기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기도 응답으로 꼭 한가지만 주신다면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였는데 당신은 어찌하렵니까 하니 “겸손을 구하지.” 한가지 더 주시다면? “또 겸손이지.” 한가지를 더 주신다면? “또 겸손을 구할 것이라”고 하였다.
5. 모든 것이 내 까닭이다.
어떤 목사는 설교하는 데에 부인 신자가 졸고 앉았는 것을 보고 발로 강단을 구르며 “여보, 자매! 웬 잠을 그리 자오? 그것 참 종자 조럼(졸자 노릇) 하겠구만. 이 다음에 교회 올 때에는 고춧가루를 가지고 와서 졸음 올 때에 눈에다 치시오” 하니 그 부인은 한참 졸다가 깨어 목사에게 눈을 흘기며 “흥, 내 눈에다 고춧가루를 치라고 하지 말고 목사님의 설교에다 고춧가루를 치시오. 설교가 싱거워서 좁니다.”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그 교회는 볼장 다 봤지요. 목사는 신자가 존다고 야단이고 신자는 목사가 설교를 잘못한다고 야단이니 이 일을 어찌할꼬!
어느 교회의 늙은 집사님은 목사님이 설교를 잘못하고 강단에서 내려오니 목사님의 손을 잡고 훌쩍훌쩍 울었단다. 목사님이 “집사님 왜 우십니까?” 하고 물으니 “목사님이 오늘 설교를 잘 못하신 것은 내 까닭입니다. 내가 목사님의 주일 설교를 위해서 토요일 밤에는 항상 기도를 하였는데 지난 밤에는 손님이 와서 기도를 못했더니 목사님 설교 죽 쑤었습니다.” 하고 울더란다.
그 교회는 참 아름답고 사랑이 끓는 교회이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이 사회에서 피차 내 까닭이란 책임을 지고 서로 이해 깊은 사랑으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화평의 꽃이 만발하고 희락의 열매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자신의 축복이 무궁무진할 것이다.
6.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6․25 때 공산당들에게 검속되어 많은 악형을 당하고 나와서 식구들과 같이 남의 행랑방에서 많은 고생을 할 때에 우리 어린 딸이 “아버지! 이제는 인민공화국이 되었습니까? 대한 민국은 망했습니까? 이거야 어떻게 살겠어요?” 라고 말했다.
“오! 내 딸아 걱정 말아라. 공산당은 지금 승리하는 것 같지만 거기는 기도하는 자가 없단다. 스탈린은 기도할 줄 모른다. 모택동도 김일성도 기도할 줄 모른단다. 공산당은 기도하는 놈 보구 죽을래두 한놈도 없단다. 그래두 우리 대한민국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많단다. 우리 대통령도 기도하시구, 군인 가운데도 못된 사람도 많지만 기도하는 사람이 있단다.”라고 했다.
기도의 응답 없다고 그렇게 낙심 말아라, 만사에 때가 있나니 조금만 더 기다려라, 조금만 더 기다려라 하고 노래를 지어 불렀다. 과연 미구(未久)에 하나님은 남한만이라도 바로잡아 주시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7. 사람 사이의 올바른 관계가 중요하다
일본의 어느 목사가 전도를 해도 승리가 없고 목회에 실패를 자꾸 하니 너무 안타까워 결심하기를 새로운 능력을 얻지 않고는 안 되겠다 하여 금식을 하고 철야를 하면서 간구하였다. 성신을 주시든지 목사를 그만두게 하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시옵소서 하고 떼를 쓰다시피 하였다. 그랬더니 은연중에 성령의 음성이 들리기를 너 왜 나보고 조르는 것이냐 너는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하신다.
무엇이냐고 물으니 “네 처자와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 어찌하여 남의 여자를 보고는 그렇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하면서도 네 아내보고는 그렇게 뻣뻣하게 노느냐?” 그가 대답하기를 “제가 제 아내가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너무 고집이 세서 그만 윽박질러 줘야지 그렇지 않고 좀 어르는 듯하면 더욱이 못되게 굽니다”라고 변명하였다. 그때 또 말이 있기를 “아니야, 네 성격이 괴팍해서 그래. 네가 좀 더 죽여야 한다. 기도하기 전에 네 아내와 화목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지 샛문 틈으로 가만히 내다보니 부인이 바느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얼른 내려가서 바느질을 하는 부인의 치맛자락을 잡고 “여보, 기도 좀 합시다” 하니까 부인은 본체만체하면서 “흥! 기도는 갑자기 왜? 밤낮으로 기도만 하면 무엇하노”하고 비꼰다.
그 전 같으면 “에익” 하고 또 한바탕 수라장이 됐겠지만 꿀떡 참고 “여보, 모두 그저 내 잘못이었소. 그 전엔 당신만 나무랐지만 이제 기도하려니 당신이 자꾸만 걸리어 안되겠소. 내 성질 못되어 당신 마음 상하게 한 것 용서하시오” 하니, 부인이 생각해 보니 이것은 20년만에 처음 듣는 소리라 그만 일감을 방바닥에 내던지고 “목사님 그러시면 저는 어떻게 하라우” 하면서 대성 통곡을 한다. 두 내외는 서로 붙들고 자복하며 기도한다. 두 자녀가 밖에서 들어와 아버지 어머니가 붙들고 애통하는 광경을 보고 멍청하니 서 있다. 아버지는 “얘, 이리 오너라” 하고는 어린 남매를 붙들고 “하나님이시여, 이 어린 귀한 선물을 주시었건만 주님 뜻대로 기르지 못하고 나의 혈기와 완력으로 이 아이들을 길러서 잘못됨이 많음을 용서합소서” 하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얘들아, 애비 성질이 못되어 얼마나 괴로웠느냐? 내가 회개한다.” 하니 12세 된 큰 딸 아이는 “아버지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우리가 못되게 굴면 때리기도 하고 책망도 하셔야죠. 덮어 두고 귀엽다고만 하면 되나요” 하고 말한다. 그러나 6살된 아들은 어른들은 둘러보면서 “그럼 이 다음에는 아버지 안 그러지? 그럼 용서하지” 하고는 점잖게 놀러 나가더라고 한다. 그 목사가 거기까지 녹아질 때 주님의 은혜가 신기하게 임하여 권능 있는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사는 동안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항상 올바른 관계를 맺고 기도하여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는 말이 그 뜻이다
8. 기도의 용장 조지 뮬러
믿음으로 우리의 감정이 좌우되지 말고 주님 말씀에 서야 하는 것이다. 그 말씀을 다 나 위하여 주신 줄 알고 받고 그대로 의지하고, 그대로 따르고, 그대로 증거하는 그것이 나의 모든 전부를 다 주께 맡기는 것이 된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여도 기에는 아무 소리 안 들려도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뿐이다.
기도의 용장 조지 뮬러는 고아를 천 오백 명이나 기르면서도 누구에게 돈을 청구한 일이 없다고 한다. 하루는 점심거리가 없다고 그에게 총무가 말하니 “지금 몇 시나 되었소”하였다. 총무는 “11시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12시까지 가서 기다리시오” 말을 하고 뮬러는 골방에 들어가 어린이들의 점심밥을 보내 달라고 기도할 때에 12시가 되니 어디서인지 빵 수레가 덜커덩 고아원에 들어오는 소리가 난다.
그래서 그 빵이 어찌되어서 고아원에 오게 되었나 알아보니 때마침 빵 굽는 집 옆에서 화재가 나 불이 점화되는 바람에 빵을 고스란히 꺼내어 가져갈 때를 생각하다 고아원을 떠올리고 가져왔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일생을 기도만 가지고 여러 가지 응답을 얻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믿고 구하여야 한다.
9. 십자가의 대속
어떤 술주정뱅이가 만취하여 기차레일을 베고 잠을 자고 있었다. 급행열차는 고동을 틀면서 달려오건만 그 술꾼은 정신없이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고 있다. 그때에 한 자비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견딜 수 없어 “여보시오, 저기 기차가 옵니다. 속히 일어나시오” 하고 고함을 치나 그 자는 “기차는 무슨 기차, 우리 집 아랫목이야”하면서 돌아눕는다. 그 자비로운 사람은 보고 견딜 수 없어 달려들어가 술주정뱅이 다리를 끌어 철둑 아래로 내동댕이쳤다.
술주정뱅이는 떽데굴 떽데굴 굴러갔으나 무정한 기차는 미처 정거를 못하고 건지던 그 사람을 끌고 들어갔다. 목이 잘라지고 다리가 끊어지고 팔이 잘라지고 창자가 나와 즉사하였다. 기차는 그제서야 정거를 하고 기관수와 차장이 달려와서 머리 갈라진 것, 팔, 다리 끊어진 것을 모아 놓고 걱정들을 한다.
술주정뱅이는 한참 굴러가는 바람에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하늘이 돈짝만하다. “ 아하, 기차가 정거를 하였구나. 웬 사람이 저렇게 많이 둘러싸고 있노. 누가 또 기차에 치인 것이로구만. 아이구, 조심을 하지, 어떻게 하노, 어디 가서 구경을 좀 해야지” 하면서 비틀비틀 올라가 “그거 무엇들 그러시우” 하고 뚫고 들어가니 거기에는 참혹한 시체가 있었다.
“아이구, 끔찍해라. 저 사람 왜 저렇게 되었소” 하고 물으니 옆 사람이 눈에서 불이 번쩍 나게 따귀를 후려갈겼다. “이 자식아! 이 사람은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어”하니 그 사람이 달려들면서 왜 생사람을 때리느냐구 덤볐다. “그래두 정신을 못차려. 네가 여기서 술을 먹고 기차 레일을 베고 잠자고 있는 것을 아무리 소리 질러 깨워도 안 깨니까 이 사람이 너를 건지러 들어갔다가 너는 건지고 달려오는 기차를 피하지 못하여 대신 끌려 들어가 이렇게 참살을 당했단 말이야.” 그 사람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아침에 나무 한 짐 지고 가서 1원 70전 어치 술을 먹고 30전에 쌀 한 됫박을 사서 지게에 걸고 흙탕같이 취하여 거기서 잠자던 것인데, 이 사람이 살려준 것을 깨달았다. 이제 이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 기차 레일을 베고 잠자는 사람은 누구이겠는가? 이 글을 쓰는 사람부터 온 세상 사람들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멸망의 기적은 고동을 들면서 오는데, 죄악의 술을 마시고 취생몽사(醉生夢死)로 허영의 꿈만 꾸는 것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자가 33년간 외치시다 못하여 죽을 대신, 멸망 받을 대신에 죽으신 십자가의 대속을 말하는 것이다.
10. 용감한 십자가
죽어도 같이 죽고 옥에도 같이 가겠다고 하던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리고 달아날 때도 주님은 용감히 끌리어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십자가에 못박혀서 운명하셨다. 사람마다 필부의 용맹은 있으나 참된 의의 용맹은 십자가를 지는 자 외에는 없는 것이다.
왜정시대에 북만주에서 토벌대들이 삼십여 명이 모이는 교회를 둘러싸고 예수님의 사진을 문 안에 세우고 한 사람 한 사람 내보내면서 그 사진에 침을 뱉으라는 것이다. 장로도 나가면서 퉤하고 침을 뱉고 집사도, 권찰도, 늙은이도 다 침을 뱉는다.
마지막에 어떤 청년이 나아가 침을 줄줄 흐르는 예수의 사진을 손수건으로 닦고 용감하게 나를 죽이라고 가슴을 내민다.
“물론 이 사진이 참 사진은 아니오. 그러나 당신들이 나의 신앙을 시험하는 데는 나는 못 하겠소. 침 뱉고 몇 날 더 살면 뭘 하겠소. 죽여주시오”하니 토별대장은 네가 참 예수쟁이로구나 하고 따로 세운 후에 침 뱉고 살겠다고 하던 사람들을 다 잡아 조사해 보니 별일이 없음으로 석방시키면서 “에익, 못된 놈들, 예수를 믿으려면 똑바로 믿으라. 누가 예수 믿으면서 예수 사진에 침을 뱉는다던? 나는 예수를 안 믿어도 그런 짓은 안 하겠다”하며 조롱을 하며 조롱을 하여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는 것이다. 너는 극히 강하고 담대하라, 용감한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신다.
11. 공의로운 십자가
어떤 임금이 법률을 선포하였다. 누구든지 간음죄를 지으면 두 눈을 뽑는다고 하였다. 제일착으로 임금님의 황태자가 그 죄를 지었다. 그래서 임금님은 황태자의 눈을 뽑기로 결정하고 눈을 뽑으려 하니 대신들과 백성들이 “독자의 눈을 뽑으면 왕위를 계승할 수 없을 것이라”고 굳이 만류하였다. 그러나 왕은 듣지 않고 그러면 법이 없어지는 것이야 하고는 눈 한 개를 사정없이 뽑았다.
그러나 또 하나를 뽑으면 정말 장님이 되겠고 안 뽑으면 법이 완성되지 못하니 왕은 생각하다 못하여 그만 자기의 오른 눈을 뽑았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간음죄를 지으면 두 눈을 뽑는다는 법을 준수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명을 모든 인생들은 다 범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을 다 멸망시키자니 하나님의 사랑이 허락치 않고 또 무조건 용서하자니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이 파괴될 것이므로 마침내 자기의 오른 눈보다 더 귀한 독생자를 희생시키어 공의를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공의로운 십자가를 깨닫게 될 때에 죄를 미워하고 또한 하나님의 법을 중히 여기는 생활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12. 사랑의 십자가
모스크바에 흉년이 들어 어떤 아기 어머니가 며칠을 굶고 풀뿌리라도 캐어 먹으려고 들에 나왔는데 등에 업힌 어린애가 젖을 먹겠다고 조른다. 그러나 삼일간이나 굶은 어머니 가슴에서 젖이 나올 리가 없다.
그만 그 어머니는 주머니에서 장도를 꺼내어 젖꼭지를 찢어 피를 내어 어린아이에게 물리니 어린 것은 피를 빨고 있고 어머니는 기절하였다고 한다. 모성애의 참 사랑이다.
우리 주님은 목마르고 굶주린 우리들을 위해 희생의 피를 흘려주셨으니 우리도 그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주님을 위하여, 남을 위하여 희생의 생활을 하는 것이다.
13. 평화의 십자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함을 시켜 화목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라고 하였다. 악마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항상 참소하여 이간을 붙이고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간을 붙여 불평, 불만, 원망, 시비, 분쟁이 가득한 세상이 되게 하였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중보의 기도로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에게 미치게 할 것이며, 내가 십자가를 지고 화목케 하는 직책에 충성하여야 할 것이다.
어떤 부부가 결혼한 날부터 밤낮 싸움을 하다가 마침내 합의 이혼을 하게 되었다. 재판소에 가서 수속을 하는데 재판장이 그래 참말로 백년 가약 맺은 것을 일조일석에 파괴할 것이냐고 다짐한다.
두 남녀는 굳은 결심을 보이며 이렇게 이상이 맞지 않는 부부는 항상 분쟁하면서 같이 사는 것보다 차라리 헤어져서 각각 이상이 맞는 사람을 만나서 같이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단언한다.
재판장(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있는 6, 7세 되는 아이를 가리키며) “그럼, 저 어린 딸은 어찌할 것이냐”고 하니, 아버지는 “물론 내 종자이니 내가 데려가야지요”하고, 여자는 “흥! 그것을 내가 낳아서 기르느라고 얼마나 고생한 것인데 그러냐구, 내가 길러야지요”하고 또 싸운다.
재판장은 “그럴 것 없이 어린 것이 이제는 철이 들었으니 아버지를 따라간다면 아버지에게 주고 어머니를 따라 간다면 어머니에게 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방청석에서는 그것 참 명재판이라고 찬성한다.
그래서 재판장이 어린 아이에게 “화목네야, 너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이 살지 못하고 아버지는 저 먼 곳으로 가구 어머니도 다른 데로 멀리 헤어져 살게 되었다. 너는 누구 따라가서 살겠니?”하고 물으니 어린 딸은 눈을 깜박깜박하더니 “아버지두 내 아버지구”하며 아버지 손을 꼭 쥐고 또 다른 손으로 어머니 손을 꼭 붙잡으면서 “어머니두 내 어머니야. 난 아무도 못 놓겠어요”하며 하염없이 우는 것이다.
그 처량한 울음에 온 방청석에서도 다 울고 재판장까지도 눈물을 흘린다. 성이 독같이 난 사나이도 눈에 눈물이 흐르며 “여보, 저 계집애 때문에 이혼하면 안 되겠구만. 다시 가서 살면 어떻겠소”하니 여자도 독사같은 마음이 풀어지면서 “그럼, 도로 가서 삽시다”하고 화목네를 한 손씩 붙들고 도로 와서 그럭저럭 잘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들도 분쟁과 파쟁으로 싸우는 교회와 사회에서 화목동이가 되려면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14. 매를 맞는 이유
어떤 사람은 누워먹는 팔자가 좋다고 해서 밤낮 누워먹다가 무량병이 들었다는 것이다. 유명한 의사가 내가 고쳐준다고 가족과 의논하고 박달 망치를 차고 들어가서 사정없이 욕을 한다. “야 이놈아, 너 돈푼이나 있다고 밤낮 누워먹어? 너는 이 사회에 하루 살아야 하루 해독이요 이틀 살아야 그만큼 이 나라 이 사회에 해독인 기생충 같은 놈이야. 너같은 놈은 때려 죽여야 한다”고 사정없이 두들긴다. 무량병자는 마누라를 부르고 자식을 부르나 종무소식(終無消息)이다.
이러다가는 정말 죽겠구나 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발동하며 일어난다.“야, 이놈이 일어나누나” 하고 다시 후려갈기니 둥싯둥싯 달아나면서 한 번만 살려 주시면 일 잘하겠다고 백배 사죄를 한다. 그래서 무량병 든 놈을 때려서 살렸다는 것이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참말 한국민족이 이렇게 매를 맞고 한국교회가 많은 매를 맞는 것은 일어나서 일하라는 것이다.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은 곧 나를 위함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15. 일치단결의 신
어떤 집에 아들 오 형제가 서로 밤낮 분쟁 불화로 부모의 속을 태운다. 마침내 속이 상한 아버지는 별세하게 될 때에 아들 오형제를 불러 놓고 마지막 유언으로 아들들에게 나뭇가지를 한 개씩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가지고 온 나뭇가지 한 개씩을 꺾어 보라고 하였다.
아들들은 힘 안들이고 쉽게 꺾어 버린다. 다음에는 다섯 개의 나뭇가지를 한데 묶어서 꺾어 보라고 하니 꺾을 장사가 없는지라, 아버지는 그렇게 너희 오형제가 제각기 분열하면 속히 꺾기어 망할 것이나 너희 오형제가 일심 단결만 하면 너희를 대적할 자가 없으리라고 한마디를 남겨 놓고 운명하였다. 아들 오형제는 그 유언을 지켜 축복의 가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16.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어떤 부자가 상처를 했는데 새장가를 들어 젊은 색시를 데려 왔다. 여자가 시집 온 날부터 남편의 속을 많이 썩이는데, 밥을 하라고 하면 죽을 쑤고 죽을 쑤라고 하면 밥을 하고 가라면 오고 오라면 가고 앉으라면 서고 서라면 앉는다. 아마 나이가 어려서 그렇겠지 하고 모든 것을 참았다니 나이가 들고나니 군눈을 뜬다. 간부를 두고는 볼사납게 군다.
여러 번 권면을 하나 조금도 회개하는 빛이 없고 이혼을 강요한다. 허락하지 않으니까 하루는 간부와 공모를 하고 남편의 밥에다 독약을 넣어 처치하기로 결심하였다. 남편이 하루는 밥을 먹다가 토하고 구사 일생하였다. 여자를 불러 책망을 하니 조금도 회개하지 않고 반항을 한다.
할 수 없이 간부를 책망하고 어서 내 눈 앞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리 가서 잘 살라고 놓아주었다. 간부는 손에 손을 잡고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가서 재미있게 살았다. 그러나 죄악으로 맺어진 사랑은 오래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사나이는 그 여자를 술집 유곽에다가 팔아먹었다. 그 여자는 불의의 씨를 배고 만삭이 되어서 술단지를 부둥켜안고 오고 가는 뭇 사람에게 술을 팔고 육체를 팔아 비참한 고통의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 본남편이 일본을 갔다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오랜만에 그 여자를 보고 너무 반갑고 감격하여 달려가서 “너 이거 웬일이냐” 하고 손목을 꽉 잡으니 그 여자는 깜짝 놀래어 가만히 있다가 눈을 흘기며 “무얼하러 왔소?” “나는 너를 보러 왔다,” “이것을 보면 뭘해요?” “너 내 품을 떠나더니 잘 되었구나,” “잘됐건 못됐건 당신이 무슨 상관이요,” “대관절 얼마에나 팔려 왔노?” “물어보구려,” “ 여보, 주인! 이 여자 얼마에 사 왔소?” “돈 많이 주었지요.” “여보시오, 이 여자 도로 물러 주시오. 이 여자는 내 아내요”하고 많은 배상금을 치르고 찾아내었다.
그 여자 말하기를 “저는 데려다 무엇해요?” 했지만 “어서 가자.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아닌가?”하고 데리고 한국에 건너 와서 그 간부의 자식을 낳게 했다. 그 남편은 그 아이를 제 아이보다 더 사랑하고 귀여워하며 그 더러운 여자를 전보다 더욱 사랑하여 주었다. 이제 이 여자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냐 말이오.
그 여자는 누구요? 이 글을 쓰는 나를 비롯하여 모든 인생들이다. 없던 우리를 세상에 귀한 인간으로 만드시고 핏덩어리로 생겨난 우리를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고 길러 주심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신 양심대로 살다가 영원한 천국의 복락을 누리게 하고자 함이니 우리는 간부 같은 악마에게 속아서 생명의 근원이요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다.
또한 속절없이 멸망을 받을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까지 주시고, 독생자께서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시어 탄생이후 최후까지 십자가를 지시고 녹아지고 사라지어 피 한 방울 남기지 않으시고 쏟아 우리를 구원하사 악마의 포로 됨을 석방시키시고 멸망의 자식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영생의 복락을 누리게 하였으나 우리는 그 사랑 그 은혜를 등한히 하고 과거에 주님 가슴에 창칼을 박은 것도 원통한데 가시 같은 잔 못을 계속하여 박아드렸다.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간절하신데 너희들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뇨.
17. 주님은 도적같이 다시 오신다
주님은 도적같이 다시 오신다. 심판하러 오신다. 주님의 택한 신부를 영접하러 오신다. 심판하러 오신다. 주님의 택한 신부를 영접하러 오신다.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은 무엇인가? 그것도 두 가지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첫째는 어느 때 오실 지 알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생각하지 않을 때에 오신다고 하였다. 그런고로 너희는 예비하고 있으라고 하셨다. 나는 종종 부흥회 갔다가 밤중에나 새벽에 집에 들어가면 식구들이 깊이 잠들고 방심하였다가 당황하는 것을 많이 본다.
내가 수원서 교역할 때 일이다. 전도사하고 심방을 갔었다. 때마침 여름이라 시어머니, 며느리, 딸 모두가 옷 저고리를 벗고 치마를 벗고 홑바지 바람으로 마루에서 발을 치고 낮잠들을 자고 있었다. 전도사가 들어가면서 “여보세요, 이거 웬 잠을 잡니까? 선생님 오십니다.” 하니까 모두 일어나서면서 “야, 내 치마, 내 적삼” 하며 떠드는 것이다. 주책없는 시어머니는 먼저 치마를 입고 치마끈을 매면서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한다. 나는 다 입은 줄 알고 따라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아직 적삼을 못 입고 헤매다가 내가 들어가니까 “에구머니나”하더니 뒷문으로 벌거숭이로 뛰어나간다. 나는 모르는 척하고 앉아서 기도하는데 며느리는 저의 딸 이름을 부르면서 “영자야, 영자야, 내 적삼 내 적삼”하니 영자는 아무리 보아도 적삼이 없다. 잠잘 적에 어디다 구겨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 때 성경 한 절이 생각났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18. 감사 안 할 것이 없다
어떤 독실한 신자 노인이 있었다. 그가 쌀 한 가마니를 외상 맡아다가 마루에 두었더니 그날 밤에 도적이 와서 홀랑 가져다 버렸다. 그의 마누라는 도적을 욕하면서 야단을 치는데 영감님은 “마누라, 너무 떠들지 마시오. 나는 쌀 한가마니 잃어버렸는데 다섯 가지 감사가 생기는구먼” 한다. “원, 저런 영감두, 무엇이 감사하단 말이요” 하니 “보라구, 우리는 쌀 한 말도 얻기 힘든 집에서 한 가마니나 외상으로 얻게 된 신용을 얻었으니 감사하지 않은가? 또 감사할 것은 남은 도적질하면서 사는데 우리는 도적질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오. 또한 그것 모두 다 우리가 잘못했지, 그것을 방안에 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마루에 두어 실패하였으나 결국 좋은 경험을 얻었으니 감사하고, 또한 육신의 양식은 잃어버렸어도 영혼의 양식은 잃지 않았으니 감사하고, 또 외상으로 얻어온 쌀이라도 남의 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내 것을 잃었으니 감사하지 않소?” 하며 찬송을 불렀다 한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 안 할 것이 없고 감사 안 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것이 없는 것이다.
19. 천국의 문지기
천로역정에 보면 장망성(將亡城)에 살던 기독교가 천성을 가는 길데 간난산(艱難山)이란 태산준령 험악한 길을 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많은 사람은 이 산을 넘지 못하고 곁길로 쉬운 길을 찾다가 위험의 길, 패망의 길로 떨어져서 멸망하는 자가 부지기수이다. 기독도는 노래를 부르기를
간난산아 높다마는 어려운 줄 모르겠네
이리 가세 저리 가세 생명길이 여기로다
왼편 길로 가는 이야 멸망함을 면할쏘냐
천신만고 한연 후에 무진복락 누리도다
하면서 정도로 올라간다. 꼭대기에서 웬 두 사람이 우당탕우당탕 뛰어 내려오는데 이름은 심경(心驚)과 회의(懷疑)라. “왜 내려오느냐”하고 물으니 “아이구! 말 마시오. 우리는 천성 가던 사람인데 산꼭대기에서 사자 두 놈을 보았소. 그래서 돌아왔소”한다. “회의야 너도 보았느냐?” “나는 보지는 못했어도 무엇이 버석버석 하는 것 같더라”하며 회의는 보지도 않았으면서 겁을 먹는다. 어서 기독도 너도 같이 돌아가자고 한다. 기독도는 “나는 나가도 죽고 돌아가도 죽을 바에는 나아가다 죽겠다. 결사적이면 필생적이란다”하고 전진한다.
과연 산꼭대기는 찬란한 궁전이 있다. 그것은 길가는 나그네를 위하여 천성 주인이 세운 집이다. 이것은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기독도는 거기에 들어가 하룻밤을 쉬려 하는데 문 밖에는 아까 심경이가 보고 도망질 친 바로 그 사자가 있다. 기독도는 놀래어, “아이구머니나, 저놈의 사자가 거기 있구나”하고 돌아서려 하니 미궁(美宮)문에 경성(驚醒)이란 사람이 소리쳐 부른다. “여보시오, 그 사자 무서워하지 마시오. 발모가지 잡아 매었다오” “그래요? 그 사자는 왜 거기에 매어 두었소?” “예, 그것은 천성 가는 사람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함이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곡인지 쭉정이인지, 선한 목자인지 삯꾼 목자인지 시험을 하는 것이오.”
옳소. 교회 밖에는 우는 사자 모양으로 악마가 두루 삼킬 자를 찾으나 다 발모가지 잡아 맨 사자라 염려할 것 없건만 경풍쟁이, 의심쟁이, 가짜 신자들은 이것을 보고 다 낙제를 하는 것이다. 참으로 감사하기는 미궁의 문지기 경성은 귀한 존재이다.
20. 죄인의 마음에는 평안함이 없다
“죄인의 마음에는 평안함이 없느니라”고 이사야 선지는 말씀하였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 양심은 범죄함을 기억하고 정죄한다.
왜정시대에 평양 숭실대학 강단에서 큰 집회를 하였다. 그 때 최경자라는 여자가 새벽 기도를 하고는 평양 경찰서로 뛰어들어가 자수하기를 나는 살인한 여자라고 하였다. 경찰서에서는 처음에는 정신병자인 줄 알았다. 살인한 전말을 고백하기를 자기는 강원도 동천 사람으로 일본 사람 양자와 결혼을 하여 삼 남매를 두었는데, 남편이 뜻밖에 죽고 다섯 살 난 아들이 또 죽고, 세 살 난 계집애와 갓난 계집애를 데리고 살 수가 없어 친정에 왔더니 가정에 파탄이 생겨 아버지는 다른 여자를 얻어 살림하고 어머니는 딴 남편을 얻었더란다.
누구를 찾아가야 밥술이나 얻어먹을까? 그래도 어머니가 정이 들었으니 그리 가야지 하고 딴 남자에게 시집 간 어머니를 찾아가니 변심한 어머니는 시집을 못 살고 온 딸에 대해 구박이 자심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하여 아무도 없는 틈에 갓난 아이 코와 입에다 솜을 틀어막고 이불을 덮어 눌러 죽였다. 그리고 세 살 난 딸을 부둥켜안고 바다에 뛰어들려는 찰나에 어린 것이 어머니 목을 쓸어안고 “엄마, 살자 살자”하는 바람에 한 어부가 그 소리를 듣고 “그거 누구냐”고 소리를 치니 그만 그 발걸음을 돌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죽을 것을 단념하고 며칠을 얻어먹으면서 평양에 와서 어느 선교사의 집에 식모로 들어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 범죄한 고통은 해결할 수 없더니 그 집회 때 견딜 수 없어 경찰서에 자수한 것이다.
온 경찰서에서는 탄복을 하고 신문에서도 굉장히 떠들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죄를 숨기고 아무리 법으로 악형을 해도 입술을 깨물면서 자백을 하지 않는데, 예수교란 이렇게 힘있는 것이냐고 그 여자에게 동정이 빗발치듯하였다. 그러나 법이 있으니 할 수 없어 함흥 검사국으로 넘기었다. 검사국에서 또 이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하여 일 개월만에 삼 년간 집행유예로 석방되어 자유의 몸으로 나와서 간증하기를 죄를 가지고 비단 이불을 덮고 자도 바늘 요에 누운 것 같고, 고량진미(膏梁珍味)를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 것 같더니 회개하고 주님 품에 안기니 유치장 마룻바닥도 뜨끈뜨끈한 하나님의 무릎 같더라고 하였다.
21. 세 가지 종류의 잠쟁이들
천로역정에 보면 기독도는 가는 길에서 잠쟁이 세 사람을 만난다. 이름은 우몽(愚蒙), 해타(懈惰), 자시(自恃)이다. 우몽아 너 웬 잠을 그리 자느냐 위험한 데서 하니 위험하기는 무엇이 위험해 이 곳은 우리 아랫목이다 하고, 해타야 일어나라 하니 아이구 조금만 더 자고 하며 게으름을 핀다. 자시야 일어나라 하니 이 자식아 너는 네 걱정이나 하지 남의 걱정은 왜 하냐 하면서 그냥 잠을 잔다는 것이다.
오늘 교회 안에는 잠쟁이들을 대개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우몽이와 같이 몰라서 자고, 해타와 같이 게을러서 잠을 자고, 자시와 같이 자만하여 잠을 자는 것이다. 성경에도 잠을 자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있다.
22. 성경 백번 읽어보아라 되나?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요 뭇 사람을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다. 어떤 신자들은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일하기를 싫어하고, 주를 위하여 또 교회를 위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어느 교회에서는 신자들이 예배당을 쓰니 한 양복장이 집사가 일어나서 무릎을 톡톡 털고 목사가 쓸어 놓은 쪽으로 딱 가서 앉더라고 했다. 자기 앉았던 그 자리까지 마저 쓸라고 하는 것이다.
얼마나 얄미운 집사이냐. 그러한 사람이 교회의 집사라 하니 교회가 될 것이 무엇인고. 물론 목사야 그것을 쓰는 것이 참으로 잘 했지. 그러나 그 집사님이 “아이고, 목사님”하고 얼른 그 빗자루를 빼앗아 대신 쓸면 얼마나 좋으랴. 양복을 톡톡 털고 저편으로 가서 성경만 읽고 있어? 성경 백번 읽어보아라 되나? 봉사적 정신을 좀 가져야 한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하고 하였다. 봉사를 하면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온다. 봉사를 하면 좋은 습관을 기르게 된다.
23. 금강석이 아무리 보배라 할지라도
금강석이 아무리 보배라 할지라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금덩어리와 과자를 주면 금덩어리를 내어버리고 달콤한 과자를 먹는 것과 같다. 이는 금덩어리를 모르는 까닭이다.
옛날 독일의 광물학자가 아프리카에 갔더니 새까만 흑인종 계집애가 돌 네 개를 가지고 공기를 하는 것이다. 그 돌을 보니 금강석이라. “얘, 너희 집이 어디냐?” 하니 “저기예요” 하면서 가리킨다. 그 아이를 따라 그 집에 가보니 새까만 흑인종 부인이 움막집에서 핏겨죽을 쑤어 먹고 있었다. “여보시오, 이 아이가 당신의 딸입니까?.” 그렇다고 하니 “미안하지만 이 아이가 가지고 노는 돌을 나에게 파시오” 하니 “아이고, 별 양반 다 보겠군. 돌을 팔기는 무얼 팔아요? 그 양반 그거 드려라” 하니 그 아이는 돌 네 개를 광물학자에게 주었다.
광물학자는 지갑에서 돈 몇 십원을 주었다. 그 부인과 어린이는 횡재했다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러나 광물학자는 금강석을 가지고 자기의 나라에 와서 몇 백만 원에 팔고 정부와 교섭하여 거기서 채광한 것이 독일 정부 재산의 절반 이상이나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금강석이 아무리 보배라 할지라도 알지 못하는 아프리카 사람은 돈 삼십원 받고 주었지만 아는 독일 사람에게는 자기만 아니라 자기 국가에까지 큰 행복을 가져온 것이다.
오늘 내가 전하는 온 세계의 대종교인 기독교의 주인 되시는 예수는 누구이신가? 예수는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예수를 모시기만 하면 현재 문제, 미래 문제, 개인 문제, 가정 문제, 국가 문제, 세계 문제가 다 해결되건만, 그저 사람들은 몰라서 몇 날이나 살겠다고 썩어질 세상, 썩어질 물질, 썩어질 허영에 속아서 먹고 자고 일하고, 먹고 자고 장사하고, 먹고 자고 애나 낳고, 먹고 자고 변소에나 다니면서 번민 고통에 병들고, 마지막에는 죽어서 땅 속에 들어가 해골 바가지가 되고 화장장에 가서 한줌의 백골, 재와 연기로 사라지는 경우가 이 시간에도 부지기수가 아닌가?
24. 세상의 사랑과 주님의 사랑
사람이 사랑을 많이 말한다. 사랑하는 형님, 사랑하는 동생, 사랑하는 친구, 사랑하는 선생님, 이렇게 사랑 사랑 하지만 참 사랑이 있는가? 제게 좋게 하면 사랑 사랑하다가도 조금만 손해가 나면 다 버리는 사랑이다. 세상의 사랑은 그림자 같아 밝을 때는 잘 따라 오지만 어두운 데로 가면 즉시 없어진다. 내가 축복을 받아 영화롭게 될 때는 사랑이 버글버글 따라오지만 내가 실패하고 적막한 데 들어가면 그 사랑은 간 곳 없이 사라지고 만다.
나도 한때 큰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하면 굉장히 사랑이 많이 따라오더니 왜정 시대 사리원 유치장에 들어가고 보니 그 많던 사랑이 다 어디로 가고 검정 개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그래도 거기에 우리 어머님만은 찾아오시었다. 누구는 말하기를 하나님 종교가 없으면 우리 어머니 종교를 믿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 많이는 앓지 말고 조금만 아팠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왜 그랬는가 하면, 우리 어머니가 나를 엄하게 길러서 내가 성했을 때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더니 내가 병이 들어 눕게 되니 여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다 주시면서 안 먹겠다고 해도 조금이라도 더 먹으라고 권하시고 또 업어 주시고 하더니 그 병이 다 나으니까 그 좋은 과자와 실과가 다 없어졌다. 그래서 철없는 생각에 많이는 앓지 말고 조금만 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님 사랑도 한정이 있는 것이다. 웬만치 조금 아파야지 너무 오래 앓으면 귀찮아서 아이구 그렇게 오래 앓아 사람 구실 못할 바에야 차라리 죽어 없어지면 시원하겠다고 진절머리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내가 원수 되었을 때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내가 죄인 되었을 때에 죽으시고 내가 약할 때에 사랑으로 죽으신 것이다(롬 5:5-9). 세상의 사랑은 내가 강해질 때에 나를 사랑하나 주님의 사랑은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신다고 하였다.
25. 내세의 증거
우리는 내세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확증할 수 있다.
첫째는, 우리의 현재를 보아서이다. 현재가 있으면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으면 미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머니 복중에 10개월간 있은 줄을 알지 못하였으나 실제로 나와 놓고 보니 이러한 세상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내세를 지금은 희미하게 알지마는 이 육신이 가죽을 벗어버릴 때에는 알 것이다. 죽음이란 이편 세상에서 저편 세상으로 들어가는 터널인 것이다.
둘째는 우리의 욕망이 증거한다. 누구나 악착스럽게 살려고 애를 쓴다. 욕망이 있으면 대상이 있다. 식욕이 있으면 음식이 있고, 색욕이 있으면 이성이 있고, 지욕이 있으면 학문이 있음같이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는 누구나 생욕이 있으니 영생의 대상이 있는 것이다.
셋째는 양심이 증거한다. 죄인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고 의인의 마음에는 참 평화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인공시대에 공산당들에게 잡혀서 많은 악형을 당했고 유치장에 들어가 거기서 찬송을 부르며 고통을 참고 견디었다.
삼 일 만에 빨치산 부대들이 내려와 많은 사람을 총살하는 마당에 나도 끌리어 나가서 심문을 받는 중 빨치산 대장이 “예수는 왜 믿는가?” 하기에 “예수는 자아를 혁명하는 것이다. 물줄기가 흘러가려면 물 근원을 파야 하고, 좋은 나무가 되려면 그 뿌리를 가꾸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나라가 또 우리 민족이 복을 받으려면 우나 좌나 정치적으로보다도 우리 민족의 양심을 바로잡아야 하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그래, 양심은 얼마나 바로잡았소?”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마음은 바로 잡았소“ 하였다.
“그래, 예수쟁이들은 밤낮 천당 천당 하고 현실을 부인하니 천당을 보았소?” 한다. “보구 말구요.” “그래, 어디서 보았소?” 하기에 나는 “천당 본점은 못 보았어도 천당 지점은 못 보았소, 본점 없는 지점이야 어디 있소? 경찰의 지서를 보면 으레 경찰서 본서가 있는 것을 알 것이고, 은행의 지점을 보면 으레 은행 본점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 같이 천국의 본점은 우리의 육안으로 불 수 없으나 천당 지점은 우리 마음속에 이루어져 있소. 당신들이 나를 악형하고 죽인다 고 해도 내 마음은 지극히 평화롭소” 하니까 그들이 박장대소를 하면서 “천당 지점이라, 그것 참 처음 듣는 말이로구나” 하면서 여러 가지로 질문을 하고 나를 석방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와 함께 갇혀 있던 19명을 모두 총살하고 갔다고 한다.
죄를 회개하고 성신 받은 그 마음은 천국이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심령은 지옥의 지점인 것이다. 이것이 내세의 증명을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는 이 세상에,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세계에 나타나는 인과응보, 즉 하나님의 공의가 증명한다. 죄가 현재 드러나는 것도 있고, 뒤로 따라오는 죄도 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다 드러나지 아니하여 악한 사람이 잘사는 일도 있고 선한 사람이 못사는 일도 있고, 의로운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호소할 곳도 없는 일도 있고, 불의한 자가 뻔뻔스럽게 성공과 승리로 일생을 미끈히 지내는 일도 있으니, 이것은 반드시 내세의 보응의 심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모든 문제보다도 우리의 구주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으로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느니라(행 17:3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주님은 탁상공론만 한 것이 아니라 친히 사랑의 죽음과 생명의 부활로, 또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시며 우리의 중요한 인생의 함대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2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부자가 물질을 의롭게 쓰지 않는 것도 죄이지만 무산자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도 불신앙의 죄가 된다는 것을 경고하셨다. 나는 종종 형무소에 가서 죄수들을 모아 놓고 전도 강연을 한다. 얼마 전에 군산 형무소에 갔더니 죄수가 한 팔백여 명이 예배드리러 모였다. 그런데 몸도 다 튼튼하고 옷도 두껍게 입어 추위를 모른다. 그래서 소장보고 이 죄수들 밥을 얼마씩이나 주느냐고 하니 오홉밥을 준다고 한다.
나는 그때 “아하, 나는 먹을 걱정할 필요 없구나. 먹을 것 없으면 식구들 데리고 여기로 들어오는 것이 상책이겠다” 하고 웃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살인 강도 죄수들도 오홉밥을 먹이는데 왜 하나님의 자녀들을 돌아보지 않으시리오. 엘리야 선지자가 굶어서 주릴 때에 까마귀가 떡을 물어다 공궤(供饋)하였다. 사렙다 과부는 자기 먹으려던 마지막 양식을 엘리야에게 대접함으로써 통 가물어 흉년이 되었어도 굶지 않고 잘 살았던 것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는 생활을 하여야 할 것이다.
27. 받은 은혜를 잘 활용하라
쓰면 범이 되고 안 쓰면 쥐새끼가 된다. 있는 자에게는 더 주어 풍족하게 하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까지 빼앗는다고 하셨다.
어느 나라 임금이 황태자 며느리를 맞으려고 며느리 시험을 치는데, 전국엣 처녀들이 수없이 모여들었다. 시험을 치르는데 학술시험도 아니요 무슨 기술 시험도 아니라. 매인당에 쌀을 소두 한 말씩 나누어주고 가서 한 달씩 먹고 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처녀들을 그것을 한 달에 맞추어 먹느라고 죽도 쑤어 먹고 별별 경제를 다 하지만 모자란다. 그 때 어떤 처녀는 그것을 갖다 놓고 밤새도록 연구를 하여 옳지 이것은 내가 활용해서 먹으라는 것이로구나 하고, 하루 먹을 쌀만 남겨 놓고 전부 떡을 해 가지고 시장에 나아가 떡장사를 했더니 어떻게나 떡이 잘 팔리는지 몇 시간만에 다 팔아 쌀이 몇 되 이익을 보았다.
그것을 밑천으로 매일매일 떡장사를 하여 쌀밥에 고깃국만 먹고도 한 달에 쌀 두말이나 남았다. 며느리 재시험 치르는 날에 모든 처녀들은 영양 부족으로 기진맥진 죽어간다.
“너는 며칠 먹었느냐?” “예, 보름 먹었습니다.” “저는 스무 날 먹었습니다” 이렇게들 대답한다. 그 때 이 처녀는 쌀 두 말 박을 머리에 이고 둥실둥실 들어왔다. 비록 떡장사를 하느라고 얼굴이 햇볕에 탔으나 건강하고 튼튼하여 보이는 것이다.
“너는 며칠을 먹었느냐?” “예, 저는 한 달을 먹고 두말이나 남았습니다.” “그게 웬일이냐?” 하고 물으니 “예, 저는 그것만 파먹으면 안되겠는 고로 활용해 먹으라는 줄 알고 좀 힘들고 좀 부끄럽지만 임금님 며느리가 될 욕심에 떡장사를 했더니 잘먹고 다른 사람을 대접하고도 두 말이나 남았습니다.” 하니까 임금님은 너무 기뻐서 “야, 너를 하나 고르려고 이런 일을 했단다. 오냐, 이리 오너라”하고 며느리를 삼았다. 다른 처녀들은 밥들만 굶다가 다 쫓겨갔다는 것이다.
28. 마귀의 작전
우스운 이야기다 있다. 하루는 마귀들이 총회를 열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영혼을 지옥으로 집어넣을까 하는 문제를 가지고 토의했다.
한 마귀가 제안하기를 우리는 무신론자(無神論者)의 영(靈)이 되어서 세상에 무신론자가 많이 일어나게 하여 각처에서 무신론을 선전하면 될 것이라고 한즉, 다른 마귀가 일어나서 이를 반박하기를 틀린 말이다. 사람들이 무신론을 주장하다가도 무슨 환난을 만나서 급하게 되면 바다 가운데에서도 회개하고, 병상에서도 회개하고, 실패에서도 회개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임종에도 마지막으로는 회개하고 하나님을 부르고야 마니 그것도 소용없는 말이다 한다. 또 다른 마귀가 일어나서 그보다는 훨씬 좋은 계책이 있다고 말을 꺼내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너무 엄하고 무서운 신이라, 인간으로는 감히 가까이할 수 없을 것이 아니냐고 제안을 하니, 또 다른 마귀 하나가 이 말에 대하여 그렇지 않다고 반대하기를, 그러니까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래서 예수의 보혈 공로를 힘입어 담대히 지성소에, 즉 하나님 보좌에까지 나간다는 성경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한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소용없는 말이라고 말을 막고 난즉, 회중은 잠시간 아무 대책이 없다는 듯이 잠잠하더니 저편 구석에서 늙은 마귀 하나가 회장을 부르고 일어서서 말하기를, 사람을 지옥으로 집어넣는 유일한 묘책이 있는데 무엇이 그리 어려우냐 이는 다름이 아니라 "내일" "요다음" "차차"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인간은 이 말을 제일 좋아하고 또 안심하는 말이다 할 때에 만장일치로 가결이 되었다 한다.
29. 그리스도를 영접할 자 누구인가?
옛날 러시아에 알반이라는 어진 임금이 있었다. 하루는 민정(民政)을 살피기 위하여 남루한 옷으로 변장하고 거리로 나왔다. 이 집 저 집 다녀 보았으나 밥 한술 고맙게 떠주는 집이 없고 고관대작(高官大爵)이나 부잣집에서도 그를 영접해 주기는 고사하고 하인을 시켜 때리고 내어쫓는 것이 예사였다.
그러는 중에 교외(郊外) 어느 움막집에 이르러 주인을 찾고 하룻밤 쉬어 가기를 청하였더니, 주인은 자기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또 있나 보다고 동정하여 맞아들였으나, 그날 마침 부인은 아기를 낳고 누워 있으므로 손수 나가 구워다가 주는 굳은 빵을 저녁이라고 얻어먹고, 그날 밤은 그대로 남루한 이불을 같이 덮고 잤다.
이튿날 그 움막집에 황금 마차가 들이닥치고 어젯밤에 다녀간 거지 아닌 알반 임금이 다시 찾아와 후한 상금을 내리고 그때까지 무자(無子)하였던 임금이 어제 해산한 어린 아기로 태자를 봉했다는 아름다운 일화가 있다.
우리 주님께서 천상 영광 버리시고 지상에 강림하실 때 왕공가로 나지 아니하시고 부잣집에도 나지 아니하시고 베들레헴 여관마다 거절을 당하시고 마침내는 하는 수 없어 마구간 구유에서 탄생하시니, 양을 치는 목자와 동방박사 세 사람 외에는 그를 영접하는 이 없었다 하였고,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계3:20) 하셨으니, 오늘날 영으로 오셔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할 자 누구인가?
30. 허무한 인생살이
미국의 애덤즈(Adams) 대통령이 늙어서 지팡이를 짚고 가다가 숨이 차서 쉴 때 지나가던 사람이 인사하면서 "대통령 각하! 안녕하십니까" 하니 "안녕치 못하네, 대통령의 집이 다 무너져가서" 하고 대답하였다. 인사한 사람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주저했다. 대통령은 "내 집은 지붕이 다 벗겨지고 창구멍이 다 뚫어지고, 벽이 다 떨어지고 바람에 흔들려 넘어질 것 같아서 나무로 버티고 있네" 하니, 그 사람은 더욱 의아해서 그것이 무슨 말씀이냐고 하니 "이 사람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가? 내 몸을 보라. 이 육체는 다 쇠하여 지붕 같은 머리가 벗어져서 대머리 되고, 창구멍 같은 눈동자가 어두워 도무지 보이지 않고, 살이 없고 뼈만 남아 넘어질 것 같아서 지팡이로 버티고 있지 않은가." 이팔 청춘 그 꽃다운 시절도 지나가고 혈기방장(血氣方壯) 그 청춘도 옛날이로구나.
홍안 소년 미인들아 자랑치 말고
영웅 호걸 열사들아 뽐내지 말라
유수 같은 세월은 늘 재촉하고
저 적막한 공동묘는 널 기다린다.
31. 그리스도의 사랑이 면려하시는도다
백인이 흑노(黑奴)를 사 가지고 기차를 탔다. 그 앞에는 선교사가 앉아서 성경을 보는데, 흑인 노예가 성질이 포악하여 도무지 말을 듣지 않고 백인의 화를 돋우었다. 그만 백인은 옆에 있던 칼을 들어 흑노 앞에 던질 때, 선교사는 무의식중에 팔을 벌려 흑노를 가리우니 그 칼은 쏜살같이 날아와서 선교사의 손바닥에 박혔다. 그만 그 백인은 어쩔 줄 모르고 사과했다. 그 선교사는 눈물을 머금고 관계치 않다고 하고, 흑노를 자기에게 팔라고 대금을 주고 선교사가 사 가지고 돌아와서 같이 살 때, 정말 흑노는 성질이 포악하여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속을 썩일 때마다 선교사가 말없이 칼 박혔던 손바닥을 내보이면, 혹노는 거기서 쓰러져 사과하고 개과천선(改過遷善)하였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악한 성질에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 그 손과 발의 못자국과 그 옆구리의 창자국의 사랑이 면려하신다. 모든 죄를 사하고자 우리 죽을 대신 성자 예수 십자가에 고난 당하셨네. 이 사랑에 아직 감복 않는 자여, 어찌 사람이라 할꼬
32. 예수님은 꼭 다시 오신다
어느 교회의 영수(領袖) 한 사람이 믿은 지 오래건만 재림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한다. 어느 날 깨어 보니 곁에 누워 자던 자기 부인이 별안간 간 곳 없고 누웠던 자리에는 성경이 펴져 있는데 "두 여인이 맷돌을 갈매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 두었다"는 구절에 빨간 줄이 그어 있더란다. 이것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아들 며느리 자는 방을 가서 보리라 하고 가서 본즉, 그들도 역시 그 성경 구절에 빨간 줄을 그어 놓고 간 곳이 없었다.
이 영수는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나서 이거 우리 식구는 다들 어디로 나가 버리고 나만 빠졌구나, 야단이로구나, 에라 지금이라도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서 의논해 보리라 하고 곧 달려가 본즉, 온 교회 신자들이 모여들어서 그 목사님을 가운데 세워 놓고 달라붙어 잡아뜯으면서 하는 말이 "글쎄, 이놈의 목사야, 다른 교회 신자는 다 들려 올라갔는데, 우리 교회 교인만 들려 올라가지 못 했으니 이거 어쩌잔 말이오? 목사가 재림이 있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었더라면, 우리가 준비하여 들려 올라갔을 터인데 재림을 분명히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들려 올라가지 못했으니 이거 어쩌란 말이냐"고 아우성을 치며 큰 소요를 하는 통인데, 곁에서 자던 자기 부인이 흔들어 깨워 주는 바람에 눈을 떠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꿈을 깨고 나서 자기의 과거 신앙을 반성하고 그때부터 재림을 확신했다는 말도 있다. 하여간 먼저 말씀한 바와 같이 예수가 다시 오신다고 하는 문제는 세계 역사상에 큰 사실로 남아 있다.
33. 이것이 인생이다
“15분"이라는 연극 각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얌전한 청년이 30세에 대학을 마치고 박사 논문을 제출해 놓고 그만 폐병(肺病)이 들어 죽게 되었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은즉 15분 후면 죽을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째깍째깍 시간은 간다.
병자: "오! 선생님 몇 분이나 남았습니까?"
의사 : "15분이오" (째깍째깍)
"12분이오" (째깍째깍) "11분이오"
배달부 : "편지요 ! "
억만 장자인 부자 삼촌이 죽었다는 부고와 함께 상속할 자가 없으니 와서 재산을 상속하라는 편지였다. 그러나 어찌 이 부자 재산의 상속이 반가울 수 있으랴? (째깍째깍)
병자 . "몇 분이나 남았습니까? "
의사 : "10분이오"
10분 부자. (째깍째깍) 9분 부자. (째깍째깍) 8분 부자. (째깍째깍)
배달부 : "전보요 ! "
박사 논문 합격 통지이다. 성공이로다. 그러나 어찌 박사 학위로서 이 청년을 위로할 수 있으랴? (째깍째깍)
병자 : "몇 분이나 남았습니까? "
의사 : "5분이오"
5분 박사. (째깍째깍) 4분 박사. (째깍째깍)
배달부 : "편지요 ! "
애인에게서 온 결혼 승낙의 편지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반가워야 할 애인의 결혼 승낙 편지도 그를 위로할 수가 없었다. (째깍째깍)
병자 : "몇 분이나 남았습니까?
의사 : "2분이오"
2분 결혼. (째깍째깍) 1분 결혼. (째깍째깍) 픽 ! 운명하였으니 허무한 세상 30세를 일기로 영원한 곳으로 갔다.
세상 만사 살피니 참으로 헛되구나! 관(棺) 하나 사다가 입관하고 억만 금 상속장, 박사 논문 합격장, 결혼 승낙서 다 넣고 뚜껑 덮어 이튿날 북망산에 메어다 한 무덤 이루니 그날 밤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니, 이것이 인생이 아닌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 도로 찾아가면 네가 가진 토지 가옥, 가장집물(家藏什物) 다 누구의 것이 되겠느뇨?
34. 주의 앞에서 어찌 피할 수 있을까?
황해도 봉산에 있었던 오래 전의 일이라 한다. 오동짓달에 길을 가던 행객이 길에서 동사하였다. 그 동리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고 가까운 주재소에 가서 보고하였더니 순경이 수첩에다가 다 적었다.
“송장이 몇 살이나 되어 보이던가?” “약 40세쯤 되겠습니다” “키가 크든가 적든가?” “자그마합니다” “머리는 빡빡 깎았든가 하이칼라든가?” “빡빡 깎았습니다” “무슨 저고리던가?” “검정 저고리입니다” 이런 것들을 전부 수첩에 적어 놓고 “여보, 내가 오늘은 바빠서 못 가겠고 내일 공의(公醫)를 데리고 갈터이니 송장을 좀 가져다 두시오. 그리고 밤을 새우려면 수고가 많겠으니 술이나 국수를 십원 어치만 갖다 먹으면서 지키시오. 그것은 관청에서 물어줄 터이니”라고 했다. 송장을 가져다 두는 것은 재미없으나 먹는 것만큼은 좋아서 몇 사람이 송장을 메어다 윗목에 두고 홑이불을 씌워 논 후에 술도 먹고 국수도 먹으면서 노름하면서 떠드는 판이었다.
그때에 얼어죽었던 송장이 몸이 녹으니까 부스스 깨어났다. 정신이 들어 자세히 들어다 보니 아랫목에서 술들을 먹으면서 “야, 걱정 말고 먹어라. 내일은 순경이 와서 술값을 다 물어준다고 하지 않았나”하면서들 떠들었다.
“아, 이 일을 어찌하나. 나를 살려 준 것은 고마운 일이나 순사가 오면 취조를 할 터이고 돈을 나더러 물어주라고 할 터이니 참말 걱정이구나. 차라리 깨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것 큰일이로구나” 생각다 못하여 술을 먹고 다들 잠든 후에 송장은 문을 가만히 열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밤중에 소변을 보러 일어나 보니 송장이 없어졌다. “야, 큰일났구나. 송장이 달아났다”고 외치니 “뭐? 송장이 달아나다니”하고 모두 일어나 보니 사실이었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하고 연구한 결과 한 청년이 말할 때 “저 건너편 동리에 그저께 죽은 송장이 있지 않은가. 어제 갖다 파묻었으니 대신 파다 놓는 것이 어떠한가?”하고 제의하니 그것 참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하고 그 밤중에 남의 무덤을 파헤치고 송장을 파다가 대신 갖다 놓았다.
이튿날 순사가 공의를 데리고 와서 “송장 어디 있소?” “여기 있습니다”하고 다른 송장을 보여 주었다. 순사가 수첩을 꺼내서 보니 전부 틀렸다. 전번 송장은 키가 작은데 이 송장은 키가 6척이었다. 전번 송장은 머리를 빡빡 깎았는데 이 송장은 하이칼라였다. 또 전번 송장은 검정 저고리라는데 이 송장은 흰 저고리로구나 이것 어떻게 조사한 것인가? 의심이 생겼다.
해부하라 하니, 공의가 진찰을 한 후 머리에 이상이 있다고 톱으로 머리를 켜니 중간에서 쇳소리가 달그랑달그랑 났다. 머리를 쪼개어 보니 이게 웬일인가, 귓구멍에 커다란 쇠못이 박혀 있지 않은가! 못을 꺼내면서 “이게 웬 못이냐”하니 그들은 “우리는 모릅니다”한다. “이 자식들, 너희들이 사람을 죽였구나”하고 후려갈기니 “아이고, 나으리, 바로 말하겠습니다”하고 “정말 엊저녁에 송장 하나를 얻기는 얻었습니다” “얻어서 어찌했단 말이냐?” “우리가 술 먹고 자는 바람에 송장이 깨어서 달아났습니다”하였다.
“그럼 이 송장은 웬 송장이냐?” 대답하기를 “할 수 없어서 건너편 아무개네 송장을 대신 갖다 놓았습니다” “그러면 이 송장 임자가 있느냐?” “예, 있습니다” “그러면 그 집으로 가자”하고 그 사람들을 앞세우고 건너편 동리에 가니 오막살이집에 한 이십 세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흰 댕기를 드리고 눈이 붓도록 “아이고 아이고”했다.
“야! 요년아, 네 남편이 어찌되었느냐?” “삼 일전에 죽었어요” “왜 죽었느냐?” “뇌출혈로 갑자기 죽었어요” “야 이년아! 똑바로 말해라” “똑바로 말했어요. 생벼락 맞으려고 거짓말을 하겠어요” “이년 가자”하고 앞세워 데리고 가서 그 송장을 보이면서 “이것은 누구의 남편이냐? 그리고 이 쇠못은 웬 것이냐?” 그때야 그 여자는 “아이고, 용서해 주세요”하며 벌벌 떨었다.
“바로 말하면 용서해 줄 터이다”하니 이 여자가 고백을 했다. 시집을 가서 본남편과 정이 없어서 다른 간부를 두고 비밀로 지내오다가 아무래도 본남편이 걸리어 없이하자고 간부와 공모를 한 후 남편에게 술을 먹이고 잠자는 사이에 귓구멍에 못을 박아 죽였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지 않는가? 누가 그의 눈을 속일 수 있으랴. 내가 어디로 가면 주의 앞에서 피하리이까?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며 아셨나이다(시 139:1)
35. 영혼이 치이지 말라고 전도하오
최봉석 목사님은 평양 거리를 다니며 예수 믿고 천당가자고 소리쳤다가 순경에게 제지를 받았다. 최목사님이 순경에게 “자동차가 빵빵거리는 것은 왜 가만히 두시오”하니 “그것은 사람 치이지 말라는 것 아니오” “여보, 나는 당신들의 영혼이 치이지 말라고 하는 것이오”하였다고 한다.
36. 선다 싱의 교훈
선다 싱(Sundar singh)이 추운 겨울에 친구와 같이 가다가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를 업고 가자고 하니 그 친구는 우리도 추워 죽겠는데 그 사람을 어떻게 업고 가겠느냐고 거절하고 혼자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다 싱은 그 사람을 업고 땀을 흘리며 갈 때 그 사람도 깨어나고 자기도 추위를 잊어버렸다. 가다가 또 한 죽은 사람을 보니 아가 혼자 달아났던 자기의 친구였다.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힘써 전도하자.
37. 우리 주님은 얼마나 신실하신가?
신실하지 못한 부모라도 자기 자녀에게 약속한 말은 그대로 이루어 주려고 한다. 맹자가 나이 어렸을 때였다. 동리에서 돼지 잡는 소리를 듣고 그 어머니에게 “저 돼지는 왜 잡느냐”고 물을 때에, 그 어머니는 무심히 농담으로 “돼지고기를 네게 먹이려고 잡는단다”하고는 그만 “아차 실수했구나”하면서, 농담이 참말이 되게 하기 위해 즉시 가서 고기를 사다가 먹였다고 한다.
이 말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하물며 우리 주님은 얼마나 신실하신가?
38. 항상 감사하자
어떤 할머니가 병중에서 고통스러워할 때에 한 번만 살려 주시면 남은 여생은 주의 뜻대로 괴로우나 즐거우나 항상 찬송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겠노라고 간구하더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후 며칠은 참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더니 또 다시 며칠 후에 보니 불평 불만으로 집안을 볶는다.
“아주머니, 왜 또 그러시오”하니 “이이고 목사님, 차라리 그때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공연히 살아 가지고 이 고통을 당합니다”하면서 그때 죽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닌가. 죽어 가면 살려 달라고 하고 살려 놓으면 죽여 달라니 그 꼴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여기서 하나님의 가슴을 태우고 모든 불행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항상 축복을 원하는가? 받은 은혜를 항상 유지하기를 원하는가? 항상 감사를 계속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