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엠마뉘엘 마이야르 수녀
7월의 혹독한 태양 아래, 작은 무리의 사도들은 갈릴래아의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회당으로, 집집으로 사도들과 함께 가셨다. 그분은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를 너무나 좋아하셨다. 그가 아픈 사람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성실한 사람이든 위선자든 ... 그분은 그 사람의 얼굴 이면을 완전히 인지하시기에 그 영혼에 주의를 기울이셨다.
예수님은 이 강력한 가르침을 주셨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루카 6,2) 그때까지 토라(모세오경, 모세율법)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지만,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마음을 더 편안하게 했다.
더욱이 예수님의 놀랄 만한 치유 능력은 군중을 매료시켰다. 모두가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그분과 눈빛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고 변화되었다. 사실, 그분은 연민으로 모든 사람을 다시 살리시고, 사람들의 진정한 욕구를 이해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항상 그들을 놀라게 하셨다. 그런 그분과 함께 걸으면서 사도들은 종종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때때로 "오늘은 주님께서 또 우리가 무엇을 발견하도록 하실까?!" 하며 서로 물었다.
그날도 예수님과 제자들은 늘 그렇듯이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나자렛 근처 나인이라는 동네에 이르렀다. (루카 7, 11-10) 그 고을의 성문 가까이에서 예수님 일행은 장례 행렬을 만났다. 외아들의 장례를 치르게 된 가련한 과부. 쨍쨍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오래 걸어왔고,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끊임없는 요청으로 이미 지친 사도들은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했다! 틀림없이 예수님은 멈추실 것이다. 그분은 비탄에 빠져있는 이 사람들의 고통에 무감각할 수 없으실 것이다. 그분 앞에서 베드로가 "얘들아! 우린 자리에 눕지 않았어." 하며 속으로 투덜거렸을 가능성도 있다.
그분이 옳았다! 실제로, 동정심에 휩싸인 예수님은 군중 속으로 지나가시면서 동방의 상복색인 흰옷을 입고 눈물을 흘리는 과부인 그녀만 바라보셨다. 그분은 그 과부가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이미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알고 계셨다. 다시 또 맞는 죽음은 그녀를 망연자실케 했다. 아들 없이 그녀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녀에게 아들은 세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그녀를 바라보시고, 그녀도 그분을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울지 마라." 그분은 한없이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관에 다가가서 관을 만지셨다. 상여꾼이 멈추어섰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창조주의 능력으로 죽은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셨다. "젊은이여,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일어나라'를 그리스어로 직역하면 '잠을 깨어라'이다. 그러자 청년이 벌떡 일어나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을지는 천국에 가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를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깜짝 놀란 그녀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기쁨에 넘쳐 하느님을 찬양했다! 그들은 이제 이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부활시킨 엘리야만큼 위대한 예언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예수님을 통해 그들을 찾아오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심을 그들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오직 그분만이 죽은 사람을 부활시킬 수 있었다!
슬픔에 빠진 이들을 위한 자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특히 고통스럽다. 이 고통을 예수님보다 더 잘 아는 이가 있을까? 외아들을 잃은 나인의 과부를 바라보시며 그분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그분은 마음속 깊이 애통해하셨다. 그분은 머지 않아 당신의 어머니가 겪을 처지를 상상하셨다. 성모님은 이미 남편 요셉을 잃었고, 또한 당신의 독생 성자를 잃을 준비를 하고 계셨다. 예수님의 마음속은 완전히 뒤흔들리셨다. 모성애의 창조주이신 그분 역시 이 지상에서 어머니가 있기를 원하셨다.
그분은 모태에서 태어나, 인간의 가정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랑을 나누는 경험을 원하셨다. 예수님은 30년 동안 진정한 가족생활을 누리셨다.
당신 어머니를 통해, 그분은 세상사 중에 사랑하는 자녀를 잃은 아픔을 경험했고,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게 될 그 모든 어머니들을 또한 보셨다. 인간적으로 그리고 신성한 연민으로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신 예수님은 이런 동일한 감정을 마음속으로 느끼시며 우리의 고통에 동참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보시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려 애쓰셨다.
또한 예수님은 무덤에서 당신을 찾는 여인들, 특히 마리아 마달레나에게 물으셨다.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베타니아에서 오빠 라자로가 죽은 후 울고 있는 마르타와 마리아 앞에서 예수님은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셔서 눈물을 흘리셨다.
지금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눈물을 흘릴 때, 우리 각자 앞에서 그분도 똑같이 슬퍼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두자.
열린 상처 앞에서
우리가 슬픔과 어려움을 겪을 때, 마귀는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려고 개입한다. 마귀는 우리가 하느님께 반역하고 그분의 사랑을 의심하고 우리의 운명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도록 선동한다. 나인의 그 과부는 나는 내 아들보다 나이가 많으니 내가 먼저 죽었더라면 더 공평했을 텐데 …..”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가족의 기둥이 사라질 때 미래에 대한 불안도 우리를 덮칠 수 있다.
나는 혼자인데 남편과 아들이 있는 여자를 보면 질투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그리하여 시기심, 우울증, 죽고 싶은 욕망이 싹틀 수도 있다. 심지어 하느님께 대한 분노, 삶에서 그분을 배제하고 싶은 분노가 생길 수도 있다. 그때 악한 세력은 더 부추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인해 열린 상처에 마귀는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는 독극물을 그의 마음에 침투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열린 상처에 직면하여 절망을 쫓아내는 매우 강력한 치료법을 갖고 계신다. 즉 그분은 상처 입은 마음에 위안의 향유를 발라주시어 고통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변모시키신다. 예수님은 그 과부를 도우셨을 뿐만 아니라 아들도 도와주셨다. 우리 죽음의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당신을 드러내실 것이며,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 (1코린 13,12)이다. 그리고 우리 삶의 전체 장면이 펼쳐지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다니엘 나탈 수사님의 예를 들어 보겠다.
다니엘 나탈 수사의 두 번째 행운
이것은 1940년대 이탈리아의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다니엘 나틸Daniel Natale 수사(1919-1994년)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그는 이탈리아의 산 조반니 로톤도에서 살았고, 오상의 비오 신부님은 그를 매우 사랑하였다. 그런데 1952년 다니엘 수사는 위장에 심각한 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가 죽음에 직면했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았을 때, 비오 신부님은 그에게 "로마에 가서 유명한 외과 의사에게 수술을 받으시오!" 하고 말했다. 이 위대한 예언자의 조언에 따라 그는 수술을 받으러 갔다. 수술은 8시간이나 걸렸으며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니엘 수사는 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사망하고 말았다.
이 소식에 충격을 받은 비오 신부님은 그를 위해 열렬히 기도했으며, 성모님과 함께 성인들이 비밀로 알고 있는 일종의 특별한 거래를 맺었다. 사실, 다니엘 수사의 친구들은 비오 신부님에게 "신부님, 의사들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요청한 것은 바로 신부님입니다. 이제 그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고 말했던 것이다. 비오 신부님의 기도는 아주 빨리 받아들여졌다. 갑자기 다니엘 수사가 영안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정말로 살아 있었고, 걷고, 말하고, 진료소의 벽을 꿰뚫어 보기까지 했다!
당연히, 그는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었는지 질문 공세를 받았다! 다니엘 수사를 잘 아는 한 신부님과 평신도들이 내게 그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전해주었다. 게다가 다니엘 수사의 조카인 레미지오 피아레 Remigio Fiare 신부도 로마에 있는 내 친구들에게 증언해주었고, 내게도 전달되었다.
다니엘 수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예수님의 사랑의 유일한 대상은 나인 것 같았다. 나는 그분과 결합하기를 열망했고 그 사랑은 너무나 강렬했다. 더욱이 그분은 나를 초대하셨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모든 장면이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았고, 자신이 아직 하느님 품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몇 가지 죄, 특히 어떤 청빈 서원을 어긴 죄를 고백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연옥에서 두세 시간을 보내야만 했는데, 마치 백 년처럼 느껴졌다!
그는 연옥에서 두 가지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증언했다. 첫 번째 고통은, 더 이상 예수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혔다. 최고선이신 그분을 품고 있는데도 볼 수 없는 슬픔의 고통이었다. 두 번째 고통은 더욱 괴로웠다. 주님께서는 그를 위해 계획하신 높은 수준의 성덕을 그에게 알려주셨다. 다니엘 수사는 심지어 자신이 그 성덕의 상태에 완전히 도달할 수 있도록 그의 생애 동안 창조주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그 모든은 총을 보았다. 그 성덕의 은총은 너무나 눈부셨다! 그 높은 수준의 성덕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얼마나 놀라운 영광인가! 얼마나 찬란한가!
하지만 그는 지상에서 그 성덕의 일부만을 성취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극심한 고통이 그를 사로잡았고, 그 고통은 마치 칼이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너무 늦었어요.”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사실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위해 마련하신 꿈의 일부를 놓쳤던 것이다.
'바로 그때 다니엘 수사는 성모님께 간청하기 시작했다. "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시여, 오직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살겠사오니 지상으로 돌아갈 은총을 주님께서 제게 주시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모님은 고개를 숙이신 다음 다니엘 수사에게 미소를 지으셨다. 그가 자신의 몸을 다시 입게 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렇게 해서 다니엘 수사는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그 순간 그의 옆에 있던 병원 직원들이 무서워 떤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들은 유령을 본 줄 알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몇 시간 동안 문을 잠가버릴 정도였으니!
지상으로 돌아온 후부터 다니엘 수사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 그는 내세에서 보고 깨달은 것에 힘입어 남은 생을 항상 묵주를 손에 쥐고 기도하며 보냈다. 그는 비천한 이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과 온갖 종류의 고통받는 이들에 대해 특별한 연민을 지니고 그들을 맞아들이고 돌보는 데 지칠 줄 몰랐다. 그는 그들 안에서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서 수많은 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예수님께 바친 고통이 얼마나 많은 속죄 경륜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두 번째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다니엘 나탈 수사는 2016년 11월 5일에 가경자(시복 조사가 시작된 시복 후보자에 대한 존칭)로 선포되었으며, 지금은 그의 시복 명분이 로마에서 소개되고 있다. 다니엘 나탈 수사의 전구를 청하자! 그는 우리 가운데서 기적을 행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의 시복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나인의 과부 아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일단 예수님에 의해 되살아나자 그 아들도 사랑만이 중요하고 다른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을 알기에 지상에서의 자기 삶을 틀림없이 재고했을 것이다. 베타니아의 라자로처럼, 이탈리아의 다니엘 나탈 수사처럼, 나인의 그 청년은 이제 죽음 이후의 영혼의 미래에 관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많은 빛을 갖게 되었 으며, 그리고 이것이 자기 어머니의 삶도 격동케 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 과부는 아들을 잃었다가 자비의 증인을 만나게 되었으니!
박 아가다 수녀 옮김
(마리아지 2024년 2•3월호 통권 244호에서)
☆ 영성 잡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마리아지를 구독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마리아지는 격월지로 1년에 6권이 출판되며 1년 구독료는 18,000원입니다.
주문처 : 아베마리아 출판사
첫댓글 그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서 수많은 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예수님께 바친 고통이 얼마나 많은 속죄 경륜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두 번째 행운을 놓치지 않았다!
피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