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철학·사회학적 관점 이론 추가
이런 언어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과 언어를 통한 문화의 전승 및 발전에는 언어의 근본적인 기능, 즉 의사소통의 기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언어란 문자언어(말)이건 음성언어(글)이건 간에 일차적으로는 개인들 간의 의사소통에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말은 의사소통의 일차적인 도구이며 수단이다.
사람들 간에 문제가 발생하고 고민이 생길 때, 그런 고민을 혼자 하지 말고 상대방에게 전달하면 의외로 쉽게 문제가 풀리는 것을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남들이 나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의 고민은 대부분 남들이 이해를 하고 또 고민의 해소를 위해 협조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걱정이나 고민 역시 말로써 구성되고 말로써 표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개인적인 문제와 집단적인 문제는 격한 감정이나 심리적 강압 혹은 물리적인 폭력 등과 같은 비합리적인 수단보다는 말과 대화로써 해결되는 수가 많다. 이런 언어를 우리는 흔히 이성(理性)이라고 부른다. 언어는 이성의 구현이고 표현이다. 이성(Logos)은 이처럼 인간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으로써 사회적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 다른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장점이다. 이래서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는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언어를 통한 인식의 기능과 표현의 기능이 있다. 인식은 가령 내가 ‘이 사과는 붉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런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는 다시 말해서 인식작용이 있다. 인간의 앎은 언어를 통한 인식이다. 언어를 통해서는 궁극적인 진리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언어관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개인의 주관적인 체험을 인식의 근거로 삼기 때문에 일상적인 의미의 앎은 아니다.
그리고 언어는 개인의 감정이나 사상을 밖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다. 가령 ‘나는 슬프다’와 같은 문장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타자에게 드러내 보인다.
20세기를 지나 언어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언어학적, 사회학적 연구의 결과로 언어의 기능, 형성과정 그리고 언어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따라서 의사소통을 언어의 중심으로 보는 언어관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언어의 다른 기능과 의미 역시 무시할 수가 없다. 이 글에서 필자는 언어의 기능과 본질에 관련하여 훔 볼트의 ‘민족언어’ 이론과 워프-사피어의 ‘언어상대성 이론’ 그리고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사용이론과 이를 계승, 발전시킨 오스틴의 ‘언어행위론’ 등을 고찰해 보려고 한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인 훔 볼트는 한 민족의 언어란 단순한 의사소통 기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즉 한 민족의 고유한 언어는 그 민족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각 나라에 있어서 모국어의 차이는 바로 제각기 상이한 세계관을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가 지니는 세계관을 새롭게 획득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일 수도 있다. 따라서 흔히 ‘언어가 서로 다르다’고 말할 때의 의미는 사물을 표시하는 기호가 서로 다르다는 뜻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민족의 관점, 즉 ‘언어적 세계관’이 다르다는 뜻이 된다.
워프와 사피어는 언어가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사고를 규정한다는 소위 워프-사피어 가설을 제안했다. 워프는 “언어는 우리의 행동과 사고의 양식을 주조(鑄造)한다”는 말을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우리가 객관적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 인식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언어 없이 사물을 그대로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가 시키는 대로 보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무지개 색을 5가지로 보았었다. 오늘날 우리가 무지개의 색깔을 7가지로 보는 이유는 서양의 문화와 교육이 전래되어 그런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언어와 사고 그리고 세계라는 관점에서 언어의 기능을 보았다. 이는 다시 말해서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과 의미 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생활을 규정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언어의 문화적 차원과 달리 언어를 인간 행동의 한 부분으로 본다는 새로운 언어이론이 오스틴의 언어행위론(speech act theory)이다.
오스틴은 모든 문장들이 항상 진실 또는 거짓의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며 때로 언어들은 어떠한 행동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종류의 문장들을 수행문(performative sentence)이라고 했다. 수행문은 가령 예를 들어, ‘나는 너를 돕겠다’는 약속의 문장을 말한다. 이는 진리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다. 이 말을 하면서 화자는 자신의 의지와 행동을 결단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가 사실의 인식이나 전달이 아니라 이처럼 행위의 한 부분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전개한 논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언어의 기본적 기능은 사실의 인식과 전달이다. 그 외에 각 민족의 고유 언어는 역사와 전통이 스며 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의 역할을 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세상과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의지와 결단 그리고 행동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