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단이 튿어졌습니다.
검은 갈색의 바지이니 까만실을 고릅니다.
실에 침을 발라 손으로 비벼서 바늘 귀에 가만히 넣었습니다.
안쪽에서 바깥으로 넘어간 실을 당겨봅니다.
실패는 제 몸을 굴려 실을 풀어냅니다.
길다란 실을 뽑아올리며 윗쪽에서 아래로 엇갈려 가며 새발뜨기 바느질을 시작하였습니다.
중학교 일학년 때였습니다.
가정시간에 바느질을 익힌 우리는 처음으로 앞치마에 수를 놓았습니다.
사과와 배, 복숭아와 파인애플에 색색으로 서양자수를 수 놓았습니다.
가장자리 모양을 만들어 가는 아웃트라인 스티치, 공간을 메꾸는 사틴스티치,
입체감을 주는 체인스티치로 머리수건과 앞치마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친구들 보다 수를 잘 놓지 못하였습니다.
촘촘히 놓지 못하고 듬성듬성 바느질이 유난히 서툴렀습니다.
저는 엉터리로 수 놓아진 앞치마를 입고 삼년 동안 친구들과 청소도 하고 실습을 하였습니다.
다행인지 딸 아이는 엄마를 닮지 않았습니다.
가정시간에 맵씨있게 앞코를 뽑아올린 버선엔 꽃 수가 촘촘히 흠 잡을데가 없었습니다.
정승들의 관복 앞에 두른 빨강색 비단에 놓은 십장생 수는 놀라울 정도로 잘 놓았습니다.
결혼 때 수 놓은 십자수는 방마다 재치있는 제목을 붙여 액자로 만들어 갔는데
볼 때마다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엄마 차에도 꽃다발을 들고 있는 소녀의 귀여운 구두아래에
핸드폰 번호가 적혀있는 십자수를 놓아 주었습니다.
뽀동이 이불에도 귀여운 동물들의 수를 놓았습니다.
송편도 엄마보다 예쁘게 빚어 놓습니다.
솜씨가 있습니다. 뭐든지 막힘이 없는 제 고모들을 닮았나봅니다.
앞치마를 입고 처음으로 조리실습시간에 만든 요리는 궁중음식이었다는
'수란' 이었습니다. 국자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계란을 조심스럽게 깨뜨려
끓는 물에 천천히 담그어 익혀내는 연한 반숙이었습니다.
노른자 위에 흰자가 얇게 덮힌 수란의 맛은 부드러웠습니다.
그 다음은 삶은 감자를 으깨어 만든 야채샌드위치였는데 마지막 손질로는
젖은 행주에 샌드위치를 싸서 도마로 눌러 놓았다가 빵이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썰어 냈습니다.
검은 옥스포드 헝겊에 비단실로 수 놓은 보조가방도 만들어서 들고 다녔습니다.
한 땀 한 땀 꿰매 간 새발뜨기가 처음 바느질을 시작한 곳에 맞닿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저의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도 여전히 불안정하고 엉거주춤합니다.
자기가 지닌 본성은 어려서부터 변하지 않나 봅니다.
두 번이나 매듭짓기를 하고 실을 끊어냈습니다.
중학교 일학년 때 서툴기만 하였던 새발뜨기가 이제 고르게 꿰매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바느질이나 수를 놓는 일에 지혜가 생겨 모두 잘 할 수 있지만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잔 신경 쓰는 일은 시작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단순하고 간단하게 생각하고 무거운 이야기는 털어내길 좋아합니다.
바지통에 두 손을 넣고 힘을 주어 당겨봅니다.
남편의 바지통도 나이만큼 넓어져 보입니다.
첫댓글 ㅎㅎㅎㅎ 지금 다시 읽어보니 십장생 수 가 십자생으로 오랫동안 있었네요 수정합니다.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