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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9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사도행전 강해’ - 주인의식을 가진 종들의 모임, 교회!
본문 : 사도행전 1장 26절(23~26절)
그리고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맛디아가 뽑혀서,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의 수에 들게 되었다. <새번역>
만약 베드로와 10명의 제자들이, 사도의 권한이나, 사도의 특권이나, 어떠한 특정한 이유를 빌미로, 밀실에 들어가서 나머지 한 명의 제자로 맛디아를 뽑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오늘 읽었던 본문처럼 베드로가 모두 앞에서 충분한 이유를 설명하고 나서 나머지 한 명의 제자를 선출한 것이 아니라 아무 설명 없이 그냥 뽑았다면 어땠을까요?
한국 교회가 오랜 시간동안 성도들에게 요청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니 사실은 요청이 아니라 요구한 것이고, 순종을 강요한 부분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무 설명 없이’, ‘교회가 결정한 것은’, ‘순순히 따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련히 알아서 잘 선택했을까, 어련히 제직회에서, 어련히 당회에서, 성도들을 생각해서 잘 결정했을까, 궁금해 할 필요도 없고, 대답해 줄 이유도 없이, 귀를 닫고, 입을 닫고, 생각하지 않고, ‘순종’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그런 순종이 가져다 준 부흥의 측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흥의 측면은 곧 부패와 부정직과 밀실담합이 교회에 미친 영향으로 인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솔직히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은 것은 다름 아닌 교회였습니다. 바로 교회의 어른들이었고, 당회였고, 제직회였습니다. 아프지만 현실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부여된 모든 권력과 권위를 부여한 것은 성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성도들을 무시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양처럼 비유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2025년 오늘과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CBS크리스천노컷뉴스에서 방영된 기사를 보면 비개신교인의 한국교회 호감도는 14%라고 합니다. 불교, 천주교도 50%인대 현저히 낮은 수치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 대한 호감도는 13%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낮은 호감도가 나온 이유로 뽑힌 내용이 더 슬픕니다. 바로, ‘부패’였습니다. 이어 사회적 책임 결여, 지나친 전도, 독선, 차별과 혐오 등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교회의 중요한 특성으로는 사회 약자를 향한 봉사와 구제를 선택해 교회가 사회를 향한 공공성을 실천하길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다보니 설문에 참여한 개신교인 가운데 30.9%가 출석교회가 없는 가나안교인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런 결과의 원인은 어디서부터였을까요? 저는 제왕목회자를 만든 교회 구성원, 비밀의 당회, 그들만의 제직회, 그저 숨기고 묻어둠을 선택한 성도들, 그 습하고 음침한 곳에서부터 각 종 세습과 비리와 슬픈 일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초대교회는, 함께 기도에 전념했던, 증인이었던, 120명의 무리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일어나서 모든 이들을 향하여 너무도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특정 사람들만 제비를 뽑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들이,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나머지 한 명의 제자를 뽑기 위하여 함께 했습니다. 누구도 뒷전으로 밀려난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그 자리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주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에 가면 미국 남장로교 테이트 선교사에 의해 1900년에 설립된 금산교회가 있습니다. 이 금산 교회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이 이야기는 그 당시에도,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 금산 교회를 섬겼던, 이자익 목사와 조덕삼 장로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거상이자 지주였던 조덕삼은 금산교회의 운영에도 많은 후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조덕삼의 집에는 이자익이라고 하는 종이 있었습니다. 참 놀랍게도 조덕삼은 자신뿐만 아니라 종들에게도 교회를 다닐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해 주었다고 합니다. 시대상으로 볼 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조덕삼은 이자익보다 나이도 15살이나 많았고, 금산교회의 설립자였으며,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도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1908년에 있었던 장로 피택에서 선출된 사람은 바로, 자신의 종이었던 이자익이었습니다. 아무리 겉으로 볼 때는 신분제가 폐지되었다고 해도 권위적인 구습들로 교회 내 차별이 여전하던 때였기에 주인이 떨어지고 종이 장로가 된 것은 놀랄만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조덕삼이었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그런데 그 때 이 결과를 본 후 조덕삼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고 더욱 교회를 잘 섬기겠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주인과 머슴의 관계가 되고, 교회에서는 장로와 평신도가 될것을 믿음으로 겸허히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자익 역시 집에서는 종으로서 주인을 충실히 섬기며, 교회에서도 맡겨진 자기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고, 교회라는 곳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조덕삼은 후일 사재를 털어 유광학교를 세워 후진 양성에 매진하였으며, 이자익 장로의 목회를 위해 평양신학교에 보내고 학비 전액을 지원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년 후 1910년 이번에는 조덕삼이 장로로 피택되었을 때는 이자익을 금산 교회 담임목사로 초빙해, 주인과 머슴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금산교회의 담임목사와 장로로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런 조덕삼 장로의 섬김 덕이었을까요? 시골 작은 교회의 목사였던 이자익 목사는 후에 3회에 걸쳐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이 이야기가 왜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지 아십니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어떤 마음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인지, 교회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진정한 섬김과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집에서 종인 사람도, 아니 집에서 종이든 어떤 모습이든지, 교회에서는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믿음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분 예수그리스도가 머리 되신 교회에 대해서,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는 책임의식을 가진 주인이 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만 교회가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교회를 향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때론 비판을 받을 때도, 우리도 함께 받는 것입니다. 때론 수모도, 기쁨도, 고난도, 행복도, ‘교회’를 향한 책임의식을 가진 주인이라면 함께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이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의 주인은 바로, ‘당신’, ‘여러분’입니다. 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주인이 되셔야 할 분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목사의 것도, 특정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분명히 주님이 주인 되십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그 주인이신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이 교회에 모든 일들을 대행하라고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이라고 하는 교회가 모여, 하나의 교회를 이룬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종이지만, 교회에서는 주인의식을 가진, 즉 주인의식을 가진 종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의 주인은 여러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물건을 여러분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끼며 돌아보며, 보존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진행 되고 있는 모든 일들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모든 것이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예배도, 식사도, 소그룹도, 성경공부도 바로 여러분이라고 하는 교회 주인을 위하여 차려진 것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주인으로서 그 모든 시간을 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주인공이고, 여러분들이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잘 가르쳐야 하는 일에 부름을 받은 존재가 아이러니하게도 ‘목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믿음의 주인공이 여러분이라는 것을, 천국의 주인공이 여러분이라는 것을, 성령의 임재의 주인공이 여러분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여러분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려드려야 할 인물이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여러분의 것이라는 것을 최종적으로 알려 드림으로 도래할 천국의 주인공이 되시라고 권면해야 하는 존재가 목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열심히 여러분이라고 하는 ‘주인공’들을 향해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은혜와 사랑과 평안과 축복이 다 여러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라고 하는 교회의 주인을 위해서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한 것입니다.
베드로와 열 제자를 포함한 120명의 성도들은 함께 제비뽑기를 실행하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맛디아를 뽑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함께 했기에,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참여했기에, 모두의 생각이 하나로 모아졌기에, 맛디아를 선출한 것에 대해서 아무런 잡음이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초기 교회는 정말 훌륭한 공동체였습니다.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진 종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이 주인의식을 가진 ‘종’입니다. 여기서 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내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그의 종입니다. 이 고백이 분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삶의 주인이시기에 나는 주인이신 하나님을 따라가는 종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머리가 하는 일을 따라 행하는, 이미 복음서를 통해 보여주신 수많은 말씀들을 이루기 위한 움직임에 그저 쓰임 받는 종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하신 대로, 기꺼이 따르는 종입니다. 하지만 ‘주인의식’을 가진 종입니다. 종이기도 하면서 또한 자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신비를 깨달아가는 존재들, 그래서 주인의식을 가진 종들의 모임이 교회를 만들고, 그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든든히 서가고, 부흥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특정한 누군가만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종의식을 가지길 강요한다면 그런 교회는 곧 쓰러지게 될 것이 자명합니다. 모두가 종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고, 누군가만 주인의식을 가진다면 교회 안에 계급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소위 상위평준화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주인의식을 가진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오네시모를 표현할 때 사용한 언어를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그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그대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특히 그가 나에게 그러하다면, 그대에게는 육신으로나 주님 안에서나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생각하면, 나를 맞이하듯이 그를 맞아 주십시오. <빌레몬서 1장 16~17절, 새번역>
조덕삼 장로님은 이 말씀을 완전히 뼛속까지 녹아들도록 받아들이셨기에 자신의 종이었던 이자익을 먼저 장로로, 목사로, 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로 주인의식을 가졌던 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던 믿음의 선배였던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종입니다. 주님의 종입니다. 그리고 또한 양자로서 자녀가 된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이 모여 오늘 교회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러면 종들의 모임일까요? 네, 맞습니다. 종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된 존재들, 즉 아버지로부터 유업을 물려받아 아버지의 역할을 대행할 수 있게 된 주인이 된 종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주인의식을 가진 종들의 모임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우리는 종입니다.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기 위하여 주체적으로 일을 하고, 의견을 내고, 함께 해야 하는 것은 주인 된 여러분이라는 것을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교회를 아낄 수 있습니다. 그래야 교회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그래야 다른 이들을 향한 관심을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교회를 생각하는, 교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가장 먼저 나 자신을 향한 정체성이 바뀌어고 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증인인 우리가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기도하는 존재인 우리가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또한 주인의식을 가진 종들인 우리가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종이 됩시다. 하나님의 종이자 자녀임을 잊지 맙시다. 이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주인공이 나 자신임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함께 섬김으로 이 교회를 더욱 더 든든히 서가는 교회로 만들어 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단 찬양 - 함께 지어져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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