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弔 辭>
저 밑바닥에서부터 충만하게 차오르는 기운을
부어주시던 고 栢巖님 영전에서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선생님은 세월을 금처럼 아끼셨지요.
길을 가면서도 고전을 읋조리시고 버스 속에서도 논어의 문장들을 통째로 암기하셨지요. 집에서도 강의실에서도 수불석권手不釋卷하시며 명강의로 고전의 씨앗을 풍성히 뿌려주셨지요.
인향만리로 동서에서 모여든 수강생들은 행복을 구가하며 부족한 성품도 인으로 채워가던 중, 어찌 이런 청천벽력이 몰아쳐 망연자실합니다. 차라리 긴 꿈속이길 바라다가 현실을 직시하고 미소 짓는 영전 앞에서 이제 정신을 차려봅니다.
백암 선생님!
야인이 되어 제게 큰 기쁨은 일주일에 두 번씩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화요일은 동면 자치센터에서 16명이 모여 오묘한 갑골문자를 배워 저 밑바닥에서부터 충만하게 차오르는 기운을 주체할 수 없었고, 금요일 또한 정녕 금캐러 가는 날이었지요. 교동 동사무소에 30명이 등록해 논어 한 줄 한 줄을 샘물처럼 표주박으로 떠주셔 참으로 기뻐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자기 공간과 시간을 최상으로 누리던 불개기락不改其樂을 안겨준 선생님은 선비 광산 김씨 김장생의 자랑스러운 후손 백암 김집중님이시며 진정 이 시대 최고의 선비이셨지요.
선생님의 가르침은 많은 고전서생들과 서예 견습생들 모두 하루하루가 행복한 배움의 날들이었습니다. 마치 아름드리 나무 뿌리부터 시작하여 수천만 개가 넘는 잎사귀같은 고전 역사는 물론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예술, 역사, 철학, 신학까지 아낌없이 두루 가르쳐주셨지요.
논어 태백 8장을 가르치실 때였어요. 고공단보 은나라 태왕 때부터 주나라까지 문왕, 무왕 춘추전국시대 공자가 태어난 주공의 역사를 참으로 그 어디서 그렇게 자세히 배울 수 없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공자도 위편삼절이라고 어려워 가죽끈이 세 번 끊어졌다는 주역을 어찌 그토록 쉽게 가르쳐 주셨지요. 선생께서는 특히 함 咸괘를 강조하셨어요. 아래는 산, 위에는 호수야말로 천지만물의 근본이라고 강조하셨지요. 아니 제가 정족리가 고향이라고 솥 鼎자 또한 길한 괘라고 미소 지으며 가르쳐 주셔 정신없이 64괘를 암기하던거 기억하시나요.
선생님은 항상 조용하시고 반듯하셨지요. 누구하나 인격적으로 귀히 대해 주심도 잊지않습니다. 일전에 청평사를 방문할 때도 여인의 허세도 불쌍하다고 다 수용하시던 휴머니즘, 모두는 뒤늦게 알고 이해하였습니다.
저희는 이제 공자 사후처럼 스승 없는 학당에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유가조차 없습니다.
다음 주에 맹자를 배운다고 두꺼워 무겁다고 걱정까지 해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당신은 불능이 아니고 불위不爲라고 한 맹자의 명강의가 듣고 싶습니다. 어린 양들은 목자를 잃어 갈 곳을 몰라 합니다.
매화는 한평생 춥게 살아도 결코 그 향을 팔아 안락을 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시던 강직한 사부님-. 오동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늙어가며 거문고 소리를 간직하고 있듯이 선생님의 고고한 인품을 그리며 살아가겠습니다.
항상 고전서생들 한 명 한 명께 관심을 보이시며 –언제 출간하나요. 요즘 작품 하시나요. 건강검진 결과는 어떠신지요하며 끊임없이 채근하시며 창작에 잉걸불을 지펴주시던 백암 사부님-. 특히 선생님께서 권해 수필가의 길을 걷는 무로, 일석님-. 모든 고전 서생들 역시 어찌 잊겠습니까?
부디 천상에서 큰 별이 되시어 어린 양들을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잎사귀 하나 달지않은 회색겨울을 사부님 없이 살아가야 하는 마음 심히 두렵습니다.
그 많은 독서로 중무장한 백암님께서 헛짓거리로 날뛰던 배고픈 영혼들에게 양식 내리시고, 이생에서 못다 한 여행 또한 우주 광활한 곳에서 마음껏 누리소서.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도 이젠 들으시면서 상수를 수 백번 영원하소서
정녕 삶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라고 하지만, 주고 가신 가치들은 실핏줄처럼 저희 몸에 퍼져 실체가 있는 구름으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가르쳐 주신 둔천지형遁天之刑이여! 자유로워진 백암님이시여!
생전에 후덕하게 입은 은혜 어찌 잊으오리까! 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2023.9.29 초가을에 훌쩍 떠나신 훌륭하신 후진 백암님께
부족함이 많은 선진 德田 이응철(수필가)
첫댓글 가신 님 큰별되소서
덕전 이응철 선생님의 조사를 읽으며 고인의 생전모습이 떠올라 슬픔에 목이 메입니다
,. 한편의 영상을 보는듯 이토록 표현을 잘 하셨을까~애통함 속에 감동의 물결이 밀려듭니다!!!~~~
고인 백암 선생님께서 감동하시며 그 쑥스러움 특유의 웃음을 지으실것 입니다
덕전 이응철 선생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녀가셨군요. 영원히 저희 가슴에 남아 계실것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