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면서 4장에 와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한 말이 본문말씀인데,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입니다.
'무엇보다도' 즉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때에 우리들이 할 일은 정신을 차리는 것이고, 근신하는 것이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도 더 중요하고 우선해야 하는 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되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뜨겁게'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ἐκτενής(엑테네스)인데 이는 신약성경에서 단 두번 사용된 단어로서 베드로가 감옥에 갖혔을 때 교회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한번 사용되었고, 오늘 본문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의미는 '쭉~~~'이란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즉 '끊임없이, 쉬임없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뜨겁게 사랑한다는 의미는 다르게 표현하자면 '끊임없이, 쉬임없이, 계속해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사랑'은 ἀγάπη 아가페입니다. '사랑하라'는 ἀγαπάω 아가파오를 쓰지 않고 사랑을 가지라고 한 것도 좀 특이하게 다가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만찬 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여기서 '사랑을 가지라'고 하면서, 그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이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사랑을 계속하여 가지고 있는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상대의 허물이 드러날 때마다 사랑이 끊어지기 쉽고, 멈추기를 잘 합니다. 그러나 만물의 마지막 때이니만큼 정말 끊이지 말고,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말의 의미를 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덮는다는 말은 보통 '가리운다'는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즉, 상대에게 허물이 있지만,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그 허물은 덮여지고, 가리워져 보이지 않게 된다는 의미 같습니다. 상대에게 비록 죄가 있지만, 사랑하니까 그냥 모른체하는 것, 이것이 과연 이 본문의 의미일까요?
저는 이 본문에 대하여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실 때의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일어나 뜬금없이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후,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왔을 때, 베드로가 발 씻기를 거부하자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하시며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모든 제자들의 발을 씻은 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요한복음 13: 12~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신 방법입니다. 사랑은 허물을 덮어버리고 모른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 허물을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가 그 허물을 없애주는 것입니다.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옳다는 말은 마땅하다, 당연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냄새나는, 혹은 더러운 발을 수건으로 그냥 덮어버리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대야에 물을 가져와서 직접 손으로 그 발을 씻어 주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신 방식이고, 제자들에게도 이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주와 선생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손수 본을 보이신 이유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새 계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는 이 계명의 말씀은 서로 서로 상대의 허물을 덮어서 모른체 해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랑하라는 말씀은 허물을 해결해주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할 때, 덮는다는 의미를 그냥 무시하거나 모른체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의 발을 씻어주신 그날밤 주님을 기억하면서 하는 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의 허물을 덮어버리고, 모른체하고, 무시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솔직히 그렇지 않습니까? 상대의 허물을 그냥 놔둔채, 속이 시끄럽지 않은 적이 있으신가요? 마음이 평안하시던가요?그러면서 사랑을 끊임없이, 계속해서 가질 수 있으시던가요? 그게 가능하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우리 주님께서 직접 사랑하는 본은 보이셨다고 저는 이해합니다.
요한복음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첫댓글 허물을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해결을 한다~의미있는 해석입니다~
헬라어로 해석하면 훨씬 깊이있는 해석이 되는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교회 안에서 성도들의 교제와 사랑은 매우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
사랑하라는 말씀은 허물을 해결해주라는 의미 로 해석하는 것이 신선하네요. 저도 전에 덮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맞아요.. 어라연님 말씀처럼, 어떤분의 죄를 덮은다고 하면서 내 마음이 항상 시끄러웠어요. 이것이 진정한 용서인지 아닌지 모를 만큼요. ㅜㅜ 그리고 과연 저한테 남을 용서할 자격이나 있을지 말입니다. 그저 주님께 달려가는 것만 할 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