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합덕성당[唐津 合德聖堂]
1890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세워진 양촌성당으로 출발하여, 1899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명칭도 합덕성당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29년에 신축된 것인데,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건축양식으로서 벽돌과 목재를 사용한 연와조 구조로 지었으며, 종탑이 쌍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61년 합덕읍 운산리에 신합덕성당이 생김으로써 구합덕성당으로 불리다가, 1997년 다시 합덕성당의 명칭을 되찾았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29년에 준공된 것으로, 벽돌과 목재를 사용한 연와조 구조에 종탑이 쌍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 설계를 담당한 페랭(Perrin) 신부는 6·25전쟁 때 납치되고, 현재 성당 구내에 있는 그의 묘소에는 유해가 없이 유물만 묻혀 있다. 아산만 일대의 내포(內浦) 지방은 예로부터 충남지역 천주교의 중심지로, 내포 공동체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언제나 주목을 받는 곳이었다. 1791년 신해박해(辛亥迫害) 이후 1868년 무진박해(戊辰迫害) 때까지 이곳은 박해가 있을 때마다 수많은 순교자를 탄생시켰다. 김대건(金大建), 최양업(崔良業) 신부 집안도 이곳에서 천주교를 받아들였고, 박해시대 한국에서 활동한 성직자들은 거의 이곳을 거쳐갔다.
1890년 장 퀴를리에(Jean Curlier) 신부와 피에르 파스키에(Pierre Pasquier) 신부가 이곳에 파견되어 양촌과 간량골(현재 예산군 예산읍 간양리)에 2개의 본당을 설립하였다. 그후 퀴를리에 신부는 여러 차례의 교안(敎案)을 겪으면서 양촌이 본당의 중심지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장소를 물색한 끝에 1898년 합덕지(合德池) 이웃의 창말[倉里]에 있는 언덕을 매입하여 성당을 건립하고 본당을 이전하여 합덕성당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1907년 매괴학교를 설립하고, 1908년 결성(結城)의 수곡성당(현재 서산성당 전신)을 분리하였으며, 1928년 예산성당을, 1939년 당진성당을 각각 분리하였다. 1960년 11월 합덕읍 운산리(雲山里)에 여섯 번째 자본당인 신합덕성당을 신설·분리함으로써 본래의 성당을 구합덕성당으로 개칭하였으나, 1997년 다시 합덕성당으로 명명하였다. 1998년 7월 28일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성당2길 16에 있다.
출처:(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2023-11-29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