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그리스도 (1628)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얀 브뢰겔
더블린 아일랜드 국립미술관에 가면
자그마한 크기의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그리스도>가 걸려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베다니아라는 마을을 지날 때
라자로의 누이들인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종종 방문하셨다.
마르타는 기꺼이 자신의 집으로 그리스도를 모셨다.
플랑드르의 안트베르펜 출신의 두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와
얀 브뢰겔(Jan Bruegel, 1568-1625)은
멀리 푸른 풍경이 펼쳐진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배경으로 한 풍속화처럼
루카복음 10장 38-42절의 내용을 충실히 화폭에 담았다.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38-42)
마르타는 예수님을 비롯하여 제자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부엌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그녀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편하게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림 속 오른쪽에서 마리아는 가운데 의자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보다
낮은 곳에 앉아 겸손하고 경건하게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손에는 말씀을 담은 성경이 들려 있고,
등 뒤의 탁자 위에 놓인 과일 바구니와
그녀의 발치에 놓인 바구니 안에는 포도가 풍성하다.
성경에는 포도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포도는 평화와 축복을,
그리고 알알이 맺힌 열매와 뻗어 나가는 넝쿨 등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그러나 포도의 가장 큰 상징은 우리 죄를 속죄하시려고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를 포도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포도는 특별한 의미의 과일임이 틀림없다.
왼쪽에 있는 마르타는 선 채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앞치마를 두르고 옷소매를 걷어 올린 그녀의 모습은
부엌에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방금 나온 모습이다.
그녀는 투덜대며 예수님께 일하지 않는 동생을 타일러 달라고
손짓과 몸짓과 눈짓으로 부탁하고 있다.
마르타는 동생 마리아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유다 전통에 따르면 여자들은 랍비가 가르치는 자리에 있을 수 없고,
마리아의 의무는 부엌에서 마르타의 일을 돕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마르타를 바라보고
마리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씀하신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41-42)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
마르타는 봉사를 택했고 마리아는 기도를 택했다.
마르타는 훌륭한 몫을 택했고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다.
마르타가 조급해하고 염려하는 마음과는 달리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것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반면 마르타에게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굶주림을 채울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을
우선 배려하며 일상적인 일을 잘 해내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을 것이다.
그녀 곁에 충성심을 상징하는 개가 있는 것처럼
그녀는 매우 충실하게 공적 활동을 하는 것에 익숙한 여자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르타가 하느님 나라를 잊어버릴 만큼
많은 일에 깊이 빠지지 않길 바라시는 마음이셨을 것이다.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회의 수도자들에게 말했다.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
경험으로 보면 기도하고 일을 해야지 두 가지를 모두 다 할 수 있다.
일하고 기도하기란 참 힘들다.
그래서 마르타의 영적 상태를 표현한 것이 ‘장터의 어둠’이다.
일을 많이 하다 보면 기도는 뒷전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왜 예수님께서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했다고 했는지,
기도와 일을 병행하다보면 쉽게 깨닫게 된다.
“주님, 저는 많은 일을 했지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고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