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주 교본 속의 광맥
레지오의 목적
레지오의 목적은 단원들의 성화(聖化)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데 있다. 단원들은 교회의 지도에 따라 뱀의 머리를 바수고 그리스도 왕국을 세우는 성모님과 교회의 사업에 기도와 활동으로 협력함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한다.(교본P27)
평신도 역할을 요청하는 교회헌장 33조를 참조하면 레지오 목적의 필연성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의 백성으로 모여 한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의 한 몸을 이루는 평신도들은 누구든지 산 지체로서 교회의 발전과 그 끊임없는 성화를 위하여 창조주의 선물이며 구세주의 은총으로 받은 스스로의 힘을 다하도록 불린 것이다.
둘째 평신도 사도직은 교회의 구명 사명 자체의 한 부분이며 주께서 친히 성세와 견진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이 사도직에 부르시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도직 혹은 선교활동은 신자가 매주 일요일의 미사에 참여하고 때때로 고해와 성체 성사를 행하고 그 밖에 신자로서의 규율을 지킨 다음에 <아직 남는 여가가 있으면 도와주면 된다>는 여유의 시간과 노력과 재능에 의해 이루어지는 첨가물은 아니다. 신자와 사도직과의 연관은 말하자면 숙명적인 것으로 어떤 사람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그 순간에 그리스도의 증인. 선교사, 사도가 되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문헌 해설총서 제4권-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해설 (P127) -
제2주 시가 있는 장궤틀
초보자에게 주는 조언
- 엘렌 코트 -
시작하라. 다시 또다시 시작하라
모든 것을 한 입씩 물어뜯어 보라
또 가끔 도보 여행을 떠나라
자신에게 휘파람 부는 법을 가르치라. 거짓말도 배우고.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은 너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만들어라
돌들에게도 말을 걸고
달빛 아래 바다에서 헤엄도 쳐라
죽는 법을 배워 두라
빗속을 나체로 달려 보라
일어나야 할 모든 일은 일어날 것이고
그 일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흐르는 물 위에 가만히 누워 있어 보라
그리고 아침에는 빵 대신 시를 먹으라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말고
경험주의자가 되라
●인생은 언제나 초보자입니다. 어찌 보면 100살 먹은 노인이 10살 먹은 어린이보다 더 초보자입니다. 80가까운 나는 내 휴대전화기를 언제나 13살 먹은 손녀에게 손봐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초보자인 나에게 다음 시편은 크나큰 위안이 됩지요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 시편 23: 1-4 *다윗의 노래
- 류시화 :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_
제 3주 교리상식
성모님께 대한 5대 교리(상)
전광진 엘마노신부
1. 하느님의 어머니
초기교회 시기 사람들은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주님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 가운데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는 데에 신학자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반대 입장은 마리아가 오직 인간 예수님만을 낳았기에 인간 예수님의 어머니는 될 수 있어도 하느님의 어머니는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고,
찬성 입장은 예수님은 인간이면서 하느님이시기에 마리아는 하느님 예수의 어머니, 즉 하느님의 어머니도 된다고 주장하였다.
431년, 에페소공의회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하고 반대자들을 단죄하였다.
반대자들은 중국 등지로 피신하여 신앙을 전파하였는데, 사람들은 그 신앙을 ‘경교’라고 불렀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
우리의 어머니, 주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그리고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를 거룩한 어머니라는 뜻으로 ‘성모마리아’라고 부른다.
2. 평생 동정녀
초기교회 신자들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출산한 이후에도 평생 동정으로 사셨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이 신학자들에게도 받아들여져 교회의 공식 믿음으로 정착되었다.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평생 동정녀이신 마리아’를 선포한다.
자연과학적 입장에서 볼 때 고등 생명체의 동정잉태 및 출산은 불가능하다.
이 신심은 자연과학을 넘어가는 신앙의 차원이다.
세상의 구세주를 위해 마리아는 평생 동정이셨고,
하느님은 하고자만 하시면 인간의 성행위를 통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한 처녀의 자궁을 열 수 있다.
마리아가 평생 동정이었다는 사실이 마리아의 영예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한 깨끗한 자리였다는 믿음이 이 신심의 핵심이다.
구세주 예수님이 초점이지, 마리아가 동정이기에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 초점이 아니었다.
성모님은 ‘평생 동정녀’이시다.
동정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고, 동정으로 출산하셨고, 출산 이후에도 평생을 동정으로 사신 분이시다.
- 다음카페 인천원당동 성당 구세주의 어머니 꾸리아-
제 4주 성지소개
솔뫼 성지 –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솔뫼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의 탄생지이다. 솔뫼는 소나무가 우거진 동산이란 뜻이다. 성인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金震厚, 1739-1814년 순교), 종조부 김종한 안드레아(金宗漢, ?-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金濟俊, 1796-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이다. 성인은 박해를 피해 조부 김택현(金澤鉉)을 따라 용인 땅 골배마실로 이사 간 일곱 살까지 여기서 살았다.
김대건 신부가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오르고 30년 뒤인 2014년 8월 16일, 나머지 3대 순교 선조들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올라 4대 모두 복자와 성인품을 받았다.
김대건 신부의 조모 이씨는 이존창 루도비코의 조카 딸이다. 김 신부의 증조부 면천 군수 김진후가 이존창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벼슬을 버리고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로부터 이곳 솔뫼는 교우촌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1791년 진산 사건으로 옥에 갇히게 되었고,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귀양을 떠나야만 했다. 귀양에서 풀려 돌아온 후 1805년 또 다시 붙잡혀 해미 감옥으로 끌려가 10년간 옥중 생활 중 1814년 12월 1일 75세에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로부터 7년 후 1821년 8월 21일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와 모친 고 우르술라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김대건 신부는 재복(再福)이라는 아명으로 솔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김대건 일가가 살던 집은 아흔아홉 칸이나 되는 큰 집이었다고 한다.
솔뫼에서는 김진후가 수차례 체포되고, 10년간의 옥중 생활을 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신앙을 지키고 살기가 어려워졌다. 셋째 아들 종한은 안동 땅으로 피난을 갔다가 붙잡혀 1816년 대구 감영에서 순교하였다. 둘째 아들 택현은 1827년 아들 김제준과 손자 김대건 등을 데리고 경기도 용인 땅 ‘골배마실’이라는 산골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은 성 모방(Maubant) 신부로부터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고 회장에 임명되어 전교에 힘쓰면서 자신의 아들을 사제의 길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그 해 9월 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마카오로 유학을 갔던 신학생 김대건은 1845년 8월 17일 상해 김가항(金家港) 성당에서 페레올(Ferreol)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고 그 해 10월 귀국하였다. 용인 일대를 중심으로 사목을 하다가 사제품을 받은 지 1년 만인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장렬한 순교로 일생을 마감하였다. 1814년 증조부 김진후로부터 시작하여 김대건 신부까지 32년 동안 김씨 일가는 4대가 순교한 신앙의 명가가 된 것이다.
1906년 합덕 성당 주임 크렘프(Kremff) 신부는 솔뫼를 성역화하기 위해 인근의 토지 매입을 시작하였고, 1946년 백문필(Perrin) 필립보 신부는 복자 김대건 신부 100주년 순교 기념비를 세우고 생가 터를 매입하였다. 대전교구는 1976년부터 성지 개발을 본격화해 김대건 신부 동상과 기념탑을 건립했다. 이어 1983년에 솔뫼 피정의 집을 건립하여 솔뫼 성지를 ‘순교자 신앙의 학교’로 삼았다.
-카톨릭 정보 굿뉴스.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편집
첫댓글 좋은 자료 잘 읽고 묵상해 봤습니다. 1814년 증조부 김진후로부터 시작하여 김대건 신부까지 32년 동안 4대가 순교한 신앙의 명가가 된 데 대해 참으로 대단한 집안이고, 이분들의 선교와 순교가 한국에 신앙의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