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봉 그는 누구인가? [펌] 2007.08.01 신동아 통권 575 호 (p130 ~ 139) 양동봉은 누구인가?-1
치과원장 접고 과학·수학책 3000권 독파 “꿈에서도 방정식과 놀았다”
● 수만장의 수식 노트, 7개의 금고에 보관 ● 39세에 터져 나온 단어 7개 ● ‘미친 듯’ ‘홀린 듯’…해변에서 책상 펴놓고 연구 ● “상대성이론 재해석하고 양자역학 보완했다” ● 컴퓨터에 넣어놓은 숫자 9억 개의 비밀 ● “과학의 역사는 ‘다르다’는 것을 ‘같다’고 증명하는 것” 실험기구라곤 찾아볼 수 없는 표준반양자물리연구원. 그러나 눈에 띄는 게 있다. 사람 키 높이만한 육중한 금고다. 양동봉 원장에게 물어보니 연구원에 7개가 분산돼 있다고 한다. 금고 안에는 연구원의 핵심 자산이자 양 원장의 ‘혼(魂)’이 담긴 노트가 들어 있다. 8절지 크기의 그 노트엔 양 원장이 ‘뭐에 홀린 듯’ 써내려간 수학 공식이 빽빽하게 담겨 있다. 그는 “집이 무너지거나 불에 타도 금고 안에 있는 노트는 소실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인도의 전설적 수학자 하얀 종이에 새카맣게 적혀 있는 방정식은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린다. 베끼기만 해도 수년은 걸릴 이런 작업에 대해 보안업체 니츠의 부설연구소 유재연 소장(수학 박사)은 “전설적인 수학자로 알려진 인도의 라마누잔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라마누잔은 정규 수학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뛰어난 수학 실력 덕분에 영국의 수학자 하디의 눈에 띄었다. 그의 도움으로 라마누잔은 케임브리지 트리니티칼리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하디와 함께 정수학(整數學)의 발전에 공헌했다. 인도인으로는 처음으로 영국 왕립학회 회원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라마누잔은 직관과 명상으로 수많은 수학 공식을 발표했고, 후대의 수학자들이 뒤늦게 그의 진가를 인정했다. 양 원장과 라마누잔이 직관으로 숱한 난제를 풀어냈다는 점에서는 비슷할지 몰라도 삶의 궤적에선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1954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양 원장은 마산고등학교를 나와 조선대 치과대학에 입학했다. 1992년 그가 불현듯 삶에 관한 영감을 얻기 직전까지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치과의사였다.
회사원 평균 월급이 40만~50만원이었을 때, 그의 월급은 600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39세 되던 해 그는 안락한 삶에서 ‘이탈’하고 만다.
1992년 가을 오전 진료를 끝낸 양 원장은 편안한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엔 흰 종이와 펜이 놓여 있었고, 그는 무의식적으로 종이에 뭔가를 적어 나갔다. 원형성, 원칙성, 동인성, 방향성, 보상성, 회귀성, 그리고 통일성. 각기 ‘성(性)’으로 끝나는 7개의 단어를 보자 그는 “마음이 편해지고, 삶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때는 내가 써놓고도 무슨 뜻인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뜻 같다. 모든 것은 다르지만(원형성)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원칙성). 그것을 움직이는 원인이 있고(동인성), 또 방향이 있다(방향성). 부족한 것을 보완하려는 속성(보상성),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속성(회귀성)이 있다.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그 자리는 예전의 자리가 아니다(통일성).” 총 21자, 7개의 단어를 발견한 양 원장은 그때부터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관심도 두지 않았던 분야를 공부한다는 것도 그랬고, 복잡한 과학책을 재미있게 읽는다는 것도 그랬다. 그는 1992년 10월 대전에 미래과학연구소를 설립한 뒤 진료나 수술이 없는 날엔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수학, 과학 교과서를 탐독했다.
그냥 튀어나오는… 줄잡아 3000권의 책을 읽었다는 그의 독서법은 특이하다. 읽었다기보다는 베껴 썼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 내용을 베꼈고, 그러다 지치면 그 부분에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베끼고, 사색하고, 베끼고, 사색하기를 거듭하면서 그는 수학과 물리학의 오묘한 세계에 깊숙하게 빠져들었다. 이런 기이한 행동에 부인은 물론 아이들까지 어리둥절했음은 불문가지. 아들이 병원에 나가는 날보다 집에서 수학 공부하는 날이 많아지자 그의 어머니마저 견디지 못했다. 게다가 병원과 집을 대전에서 속초로 옮기고, 병원은 후배 의사에게 맡기자 주위 사람들은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대전에 있으면 여러 가지 약속이 생기게 마련이고, 이런 고리를 끊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영감이 떠올랐을 때, 그걸 꼭 붙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의 기이한 행동은 속초에 가서도 이어졌다. 바닷가에 책상을 펴고 앉아 책을 읽는가 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개나 고양이, 돌고래 혹은 바이러스와도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를 ‘엉뚱한 몽상가’로 치부했다.
양동봉 원장이 제로존 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가 공부하는 방법은 통상적인 스타일과 다르다. 답을 먼저 발견하고 난 뒤, 그 답이 나온 원인을 추적하는 귀납법이라고 할까. 그 답은 직관을 통해 나왔다. 까닭도 없이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수식이나 수치를 그는 종이에 적었다. 지금도 양 원장의 잠자리 옆엔 늘 노트와 펜이 놓여 있다. 양동봉은 누구인가?-2 그의 직관력은 대부분 잠을 잘 때 발현됐다. 낮엔 책을 읽고, 밤엔 숱한 방정식과 놀았다. 꿈에서 수학 공식을 보고, 일어나 ‘미친 듯’ 종이에 적어 나갔다. 이 때문에 그는 의식이 잠들고 무의식이 활동하는 새벽을 좋아했다. “사실 나는 잠을 잘 자기 위해 하루 종일 준비한 거나 다름없다. 술을 마시지 않았고,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다.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애썼고, 잠자리에 들 때는 가벼운 질문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러면 꿈에서 방정식이 보였고, 그걸 종이에 옮겼다.” 그러나 혼자 고행하듯 하는 공부가 쉬울 리 없다. 또 공부에 끝이 어디 있겠는가. 해도해도 제자리만 맴돌다 포기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양 원장도 공부를 시작한 지 4년째 되던 해 공부를 그만두려고 했다.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1의 세계, 0의 세계 낙담하던 그에게 처음으로 묵직한 깨달음의 울림이 느껴졌다. ‘수(數)의 원천이자 실수의 모태(母胎)인 허수(虛數)의 세계’를 안 것이다.
허수는 제곱해서 마이너스 1이 되는 것(i2=-1). 수학에선 실수와 허수를 합해 복소수라고 한다. 실수의 반대말이자, 크기를 비교할 수 없는 허수(i가 큰지 2i가 큰지 비교할 수 없다)를 우리가 체감할 수는 없지만, 과학계에선 광범위하게 응용하고 있다. 예컨대 인공위성의 궤도를 파악할 때 허수의 개념을 사용한다. 그가 복소수의 세계에 눈을 뜨면서 깨달음을 얻은 것은 ‘1’이란 존재의 의미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수, 크기를 비교할 수 없는 허수에도 붙어 있는 숫자 1의 존재(i×1=i이란 뜻에서). 1의 외양(外樣), 즉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상태에서 1은 1, 2, 3, 4…의 1이다. 반면 1의 내면(內面), 즉 감춰져 있는 부분은 모든 수에 들어 있는 1이다. 모든 수의 곱하기 1은 바로 자신이므로(2×1=2이고, 0.00001×1=0.00001이니까). 모든 수에 내재하는 것으로서의 1은 달리 말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수다. 양 원장은 숫자 1과 에너지적으로 닮은 중력상수, 플랑크 길이와 허수개념을 이용해 차수가 10-86인 무차원수를 계산했다. 이 수는 우주에서 가장 작은 수이자, 제로존 이론에서 ‘무한 개념’으로 연결됐다. 양 원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학창 시절 선사(禪師)들의 말씀을 즐겨 읽었던 그는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을 1이란 숫자의 존재를 파악하는 데 적용해보았다. 그가 설명한 말을 기자의 언어로 풀어보면 이렇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수로서 1을 발견했더니 공(空=0)이었고, 공(空=0)인 줄 알았더니 또 다른 1, 혹은 1의 쌍둥이인 -1(허수)이었더라.” 그의 논법에 따르면 0 안에는 +1과 -1이 공존한다. 이걸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해도 좋고, 천부경에 나오는 일석삼극(一析三極)이라고 봐도 좋으리라. 양 원장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1이 가진 특징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점이다. 모든 숫자에 내재된 것이고, 곱셈의 항등원이기 때문이다. 불변하는 존재여서 떼어낼 수도 없다. 쪼갤 수 없다는 말은 자신은 크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0’이란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정량적으로는 2-2=0일 때의 0이다. 한편 정성적으로는 ‘방향자’라는 뜻이 있다. 0을 기준으로 +1과 -1, 실수와 허수가 나뉘지 않는가. 0을 기준으로 방향이 생기지만, 정작 자신은 방향을 갖지 않는다. 그래야 방향자 노릇을 하니까.”
두 번째 큰 울림 1은 크기를 갖지 않고, 0은 방향을 갖지 않는다는 말,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양 원장은 여기서 자신의 이론(c=h=s=1)을 발견하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낸다. 그가 이 이론을 제로존(Zero Zone)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0의 존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 인간의 인식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 존재 그 자체의 모습을 양 원장은 0의 세계로 보았다. 0의 세계는 달리 말하면 수학의 세계다. +1이나 -1의 세계는 물리학의 세계다. 수학의 세계는 자연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물리학의 세계는 인간이 측정하면서 알게 된 세계다. 예컨대 물의 특정 온도를 자연의 상태라고 치자. 그럼 물의 온도를 재기 위해 인간이 온도계를 들이대는 순간, 온도계라는 기기가 포함된 물의 온도는 변화한다. 결국 인간은 절대 자연 상태의 온도를 알 수 없는 셈이다. 온도계를 대는 순간 오염되니까. 파악하려고 측정하는 순간, 대상의 본성은 사라지면서(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미 과거가 된다. 양동봉은 누구인가?-3
양동봉 원장의 스승은 세계적 선대 과학자들. 이들의 초상화 중간에 ‘?’라고 표시한 부분이 눈에 띈다.
제로존 이론에서는 시간과 시간의 측정이 ‘존재’와 ‘실재’만큼 다르다고 설명한다. 시간의 측정은 ‘자연 자체’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측정’을 말하는 것으로 불확정성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 원장이 그의 이론을 제로존이라고 한 이유는 그가 자연 상태의 존재를 파악하는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측정 전의 상태, 오염되지 않은 상태는 빛의 속도로 측정한 상태다. 그것이 숫자 1의 의미이고, 가장 작은 에너지 단위(플랑크 상수)이기도 하다. 그는 c=h=s=1이란 공준(公準)을 정한 뒤, 물리학에 등장하는 방정식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했다. 그 결과, 모든 물리량(단위)은 전하(C)와 전위(V), 길이(m)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중성미자의 질량까지 계산했던 것이다. 양 원장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질문하는 기자에게 질문하는 법이 틀렸다고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기자에게 질문이 틀렸다는 건 ‘옷 벗으라’는 말과 같다. 질문을 업(業)으로 삼는 기자가 틀린 질문을 하고 있다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니까. 그는 “있냐? 없냐?”라는 이분법적 질문을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매우 난감한 요청이었다. 있느냐, 없느냐는 질문은 ‘기자인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냐, 아니냐’의 질문이고, 그것은 기자의 기본적인 질문이다. 확인할 수 없는 기사는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 원장의 지적은 수학과 물리학의 세계, 자연의 상태와 그걸 벗어난 상태를 분리해서 질문해달라는 주문이었다. 그건 질문을 명확하게 해달라는 요청이기도 했다. 예컨대 ‘이건 빨간색이냐’고 묻지 말고, ‘섭씨 40℃, 1기압 상태에서 오후 4시에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이건 빨간색이냐’고 물어달라는 것이다.
‘1999년 7월1일에’ 그가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것은 또 있었다. 존재가 무엇인지 묻지 말고, 존재와 존재의 관계에 대해 질문해달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뭐냐, 거리가 뭐냐는 질문보다 시간과 거리는 어떤 관계냐는 질문을 해달라고 했다. 그는 “인간은 존재 자체를 간단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관계를 파악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존재 자체보다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깨달은 것은 기하학의 원리를 터득하면서부터다. 그에 따르면 기하학은 관계학이다. 변과 변 사이의 관계, 각도와 각도 사이의 관계를 깨닫는 학문. 이것이 그에게 다가온 두 번째 울림이었다. 고대 그리스인이 황금비율로 구성된 직사각형을 가장 아름다운 도형으로 봤듯 세상의 모든 존재는 특정한 비율로 조합돼 있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은 존재의 황금비를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양 원장은 “자연에 존재하는 숫자들의 놀이터를 복소수라고 한다면, 그 숫자들이 현실에선 기하학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숫자 자체가 뭔지는 모르지만, 그것들이 만들어낸 관계, 자연의 동력학(動力學)을 표현하는 황금비(ø), 자연로그(e), 원주율(π), 허수(i) 간의 관계는 인간인 우리가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가 컴퓨터에 입력해놓은 9억개 이상의 숫자는 관계 파악을 기다리는 자연의 모습이다.
이미 양 원장은 소립자들을 여러 방법으로 조합해 특정한 숫자를 찾아내거나, 역으로 숫자를 놓고 조합비율을 찾고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우주의 생성 원리를 찾는 작업이다. 양 원장이 발견한 것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지금 여기서 밝히는 건, 기자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 수차례 그를 만나 밤이 깊어질 때까지 그의 ‘강연’을 듣고 토론했지만, 그가 15년 이상 공부하면서 밝혀놓은 것들을 며칠 만에 파악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를 오랫동안 만난 전문가들을 통해서 이론의 의미를 살짝 엿볼 수는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통일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방건웅 박사는 “양 원장은 상대성이론을 재해석하고, 양자역학의 약점을 보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차이는 ‘실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다. 아인슈타인은 신(神)이 이미 실재의 구성 원리를 만들어놨다고 보았다. 반면 양자역학의 학자들은 ‘실재란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며 불변의 원리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양 원장은 모든 실재의 관계를 숫자를 통한 연속성과 비연속성의 개념을 적절히 활용해 현상론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일정한 속도’와 ‘힘’의 개념을 연결하는, 시간의 개념이 불분명한 상대성이론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해석한다.
존재 자체보다 실험적으로 드러난 실재, 측정 문제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빅뱅의 의미와 빅뱅 이전에 대한 의문, 이와 관련한 양자중력화의 언어학적 이해를 돕는다. 또 양자역학의 표준모델이 중성미자의 경우 질량을 ‘0’이라고 가정하고 있지만, 양 원장은 중성미자의 질량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로 판결이 날 경우, 양자역학의 표준모델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이다.”
양동봉은 누구인가?-4 미터법을 통일하는 숫자를 발견한 뒤, 그는 입자물리학계에서 난제로 손꼽는 3개의 중성미자 질량을 계산했다. 그게 1999년 7월1일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발견을 입증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세상에 떠들어봐야 정신병자 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다.
방법을 찾던 양 원장의 눈에 번쩍 띄는 게 있었다. 외국의 입자물리 전문지였다.
이 전문지에는 유럽공동 원자핵연구소(CERN)나 미국 페르미 연구소(Fermi Lab.) 등 파티클 데이터 그룹(Particle Data Group, PDG)이 발표하는 주요 입자들의 크기나 질량에 대한 실험측정치가 게재돼 있다.
선진국에선 입자 실험분야별로 10~20명이 한팀을 이뤄 실험하고, 과제별로 수백명의 연구원이 앞 다퉈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여기서 나온 결과가 전문지에 실리는 것이다. 양 원장은 이 전문지를 보자마자 “그 책을 가슴으로 끌어안았다”고 한다.
그가 이론적으로 밝혀놓은 소립자들의 제원(諸元)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그의 진가가 차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 첫 번째 ‘사건’이 2002년에 벌어졌다. 입자물리학 실험실에서는 작은 입자들의 질량 등을 표현할 때 eV라는 에너지 단위를 사용한다.
1eV는 전자 1개가 1V의 전위차를 이동할 때 얻는 에너지인데, 벌레가 날개를 움직일 때 드는 에너지보다 작다.
양 원장은 그의 이론을 통해 1999년 주요 입자 중 하나인 위크보존 ‘W’ 및 뉴트리노의 질량을 파악했다. 이를 유럽공동 원자핵연구소와 미국 페르미 연구소에서 발표한 것과 비교해 보니 차이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값이 정확하고, 연구소 발표가 틀렸다고 확신했다. 이 같은 결과를 인정받기 위해 그는 입자물리학계의 전문가들을 찾아갔다. 그러나 세계적인 연구소에서 내놓은 실험값을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믿는 전문가는 없었다.
더구나 양 원장의 이력에선 물리학을 공부한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간판’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정서로 보자면 그를 만나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신뢰가 쌓이면서 소립자 물리학자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낙담하던 그에게 낭보가 날아든다.
2002년 여름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가 보내온 자료엔 그가 계산한 ‘W’의 질량이 실험값으로 게재된 것이다. 이를 확인하자 그는 함성을 질렀다. 그가 이보다 앞서 실험편차 내에서 정확한 값을 알아냈다는 주장을 증명하는 것이 있다.
양 원장이 기록을 남기기 위해 2002년 3월 저술한 ‘Zero Zone 이론’이란 책자에는 ‘W’의 질량이 수록돼 있다.
책을 낸 동기는, 실험 값은 실험 당시 자연 상수 값이나 경계조건의 대입으로 변할 수 있지만 수식은 일정한 값을 갖는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는 자료를 통해 뮤온 중성미자의 상한값이 제로존 이론이 예측한 대로 2002년 이후 실험치가 변경되고 있음도 알았다. 이렇듯 그의 연구가 차근차근 신뢰를 쌓고 주위에 그 진실이 알려지면서 그를 인정하고 돕는 전문가가 모이게 된다. 표준반양자물리연구원의 연구단장이자 단국대 부총장인 오명환 교수, 고문을 맡고 있는 이규행 전 문화일보 회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방건웅 박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문병로 교수, 유재연 수학 박사, 제주대 에너지공학부 이헌주 교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신소재본부 이상목 박사 등이 그들이다. 이들 외에도 국내에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학자, 대기업 연구소 소장, 언론계 인사들이 그의 논문을 보았고 그의 강연을 들었다. 이들의 이름은 연구원이 보관한 방명록에 게재돼 있다. 모두 비밀 서약을 하고 일독했다는 자필 사인이 있다. 연구원의 커다란 금고도 인상적이지만 하얀 벽지에 수백개의 수식을 빼곡하게 적은 것도 잊을 수 없다. 모두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는 수식들이고, 아직 세계의 과학자들이 밝히지 못한 방정식들이다.
비밀 서약 설명을 들어보니 에너지와 힘, 질량과 전하량의 관계를 비롯해 플랑크 시간 및 플랑크 질량의 관계, 관측 가능한 우주의 나이를 계산한 것, 우주에서 가장 큰 수와 작은 수, 우주 배경 복사온도, 3종 중성미자, 경입자인 타우, 중간자, 핵자를 구성하는 6종류의 쿼크 질량, 초전도 관련 등이라고 한다.
그가 옳다면 빛을 볼 날이 꼭 올 것이다. 양 원장은 현재 그를 인정하는 과학자들의 격려와 그를 변함없이 내조하는 부인 김옥숙씨, 그리고 연구소 스태프들과 함께 서울의 모처에서 연구하고 있다.
그는 “과학의 역사는 다르다는 것을 같다고 증명한 역사”라며 “우주 만물은 진동수만 다를 뿐 모두 같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이 같은 그의 이론이 세상에 알려져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이 사라지고, 아프리카의 기아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의 꿈은 곧 인류의 꿈이기도 하다. 여럿이 같은 꿈을 꾼다면 그건 이미 현실이다. 그 꿈이 조만간 실현되기를 바란다. *양 원장과 대화를 원하는 독자는 그의 e메일(dongbongyang@hanmail.net)을 이용하면 좋을 것이다. (끝) |
출처: aprova 원문보기 글쓴이: aprova
첫댓글 < 곽선생님과 양원장과의 대담> 이 까페에 올라오는 날이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선생님 이 글 발견하셨을때 참 기쁘셨을것 같아요
예, 많이 반가웠습니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리학의 전문분야를 재야에서 한다는 것도. 어쩌면 우리 안에 흐르고 있는 정신세계의 한 맥이 이분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 아닌지 생각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