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엿보기
점자 편지(실천문학사)
송유미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전태일문학상, 수주문학상, 김민부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등 수상. 시집 『살찐 슬픔으로 돌아다니다』, 『당나귀와 베토벤』, 『검은 옥수수밭의 동화』, 『당신은 아프지 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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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것’은 ‘결국은 노인이 되는 일’(노인이 되어도 나는 노인인 줄 모를 것이다)이지만, 우리는 젊음을 갈망하며 늙지 않음에 몰두하는 사회 안에서 ‘노인이 되어도’ ‘노인인 줄 모’른채 살아갈 것이다. 온갖 상품과 시스템이 영원히 ‘젊음’에 머물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긴다. 유칼립투스 물리치료실 연작시들은 의식이 요구하는 움직임을 몸이 수행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불일치의 아픔으로 가득 차 있다. 내쉬는 숨소리와 앓는 소리의 경계가 없어지는 날들 속에서도, 인턴들은 ‘현대 전기차 이야기에 바쁘고’ ‘코빼기도 못 보는 의사들은 세미나에 바쁘다.’ ‘주사를 맞아도 그만 안 맞아도 그만’인, 불치의 몸 앞에는, 그저 그 모든 고통을 치유할 ‘자연’이 부임 되리라.
사람 사는 일은 평생 똥 잔치다 밥잔치다 산다는 건 그 잔치 설거지로 바쁜 나날이다
누구는 밥 한 끼에 이백만 원씩이나 소비한다는데 누구는 무료급식 한 끼에도 부자 기분을 느낀다는데 입원해서 점도 증진제 섞은 죽을 먹다 기저귀 차고 똥싸는 환우의 똥 냄새 반찬처럼 씹으며 알았다 따뜻한 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어떤 밥도 똥이다 푸세식 찾기 어려운 이 시대 똥은 어떤 똥도 대접받기 어렵다 왕복 열차처럼 아침저녁 똥 체크 하러 오는 간호사의 슬리퍼 소리에 치매 걸린 친구와 간병인은 이전투구, 똥 전쟁이다
-똥이 안 나온다 똥이 안 나온다
-똥 소리 좀 그만해 오늘 많이 쌌어
그놈의 똥
정말 지겨워 죽겠어
-「개똥 익어가는 계절-친절한 간병인 k에게」 부분
‘사람 사는 일은 평생 똥 잔치’, ‘밥잔치’이며, ‘산다는 건 그 잔치 설거지로 바쁜 나날’임을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들을 차려내고, 얼마나 많은 그릇을 닦아야 할까? 냄비를 닦으며 제 마음 하나 헹구지 못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던 ‘손’의 수행은, 생노병사 속 모든 밥상을 차려내고, 개수대 앞에서 그릇을 휑궈 내며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한다.
‘밥 한 끼에 이백만 원’을 지불 하거나 ‘무료급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나 ‘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어떤 밥도 똥’이 되기에 모든 식사는 동등하다. 태어난 존재는 반드시 겪는 죽음 역시 그러하다. ‘어떤 똥도 대접받기’ 힘든 시대, ‘똥’이 나오지 않는 환자의 사투는 처절하고 고독하다. 간병인에게는 달갑지 않은 ‘똥’일지라도 ‘똥’은 살아있음의 징표이자 전부가 되기도 한다.
이대로 죽어도 내일은 또 오리
다 부서진 난파선을 껴안고 떠오르리란 것은
아침부터 밥도 굶고 이지 저리 뛰어온
시간 시간이 기적이었다는 것을
-「갈참나무 요양원-무연고자 류 사는 법」 부분
시인은 유칼립투스 물리치료실 연작시, 「개똥 익어가는 계절-친절한 간병인 k에게」 등을 통해 살아있는 존재의 가치를 깨닫게 한다. 밥을 먹는 것, 똥을 눌 수 있는 것, 움직일 수 있는 것, 그 모든 것이 삶의 ‘기적’이라는 것을---.
-김다연(시인, 영상작가), 시집해설 「들리지 않는 슬픔을 철필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