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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의 영광 제16편 발틱 해의 진주 중세도시 탈린 (Tallinn) -2018년 8월 16일- 밤새 발틱 해를 항해한 후 아침 7시 선박은 중세의 아름다운 도시 에스토니아 도착하는 탈린 시의 원경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아침 식사를 천천히 하고
에스토니아 공화국이며 중간은 리트비아 제일 남쪽에 위치한 나라가 리투아니아 이다 발트 3국은 역사도 비슷하다 주위의 강대국인 덴미크 스웨덴 러시아들로부터
에스토니아의 역사는 1세기 부터 에스토니아인들이 마을 형태를 이루었는데
그러나 1347년 덴마크는 800개도서와 에스토니아를 튜던 기사단에게 넘겨줌 으로써 게르만인들이 들어와서 한자동맹을 맺고, 길드 도시로 게르만인들의 지배를 받다가 1581년 리보니아 전쟁을 계기로 전승국 스웨덴영토가 되어 에스토니아의 황금시대를 구가하였으나
1704년 러시아에 정복당하여 러시아의 통치를 받다가 1차 대전 후 1918년 독립하면서 에스토니아 국가를 재건하였으나 2차대전시 1940년 소련이 점령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소비에트 연방의 지배를 받았으며1989년 8월 23일 발트 3국의 인간 띠를 만들어 자유투쟁을 벌리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 해체와 함께 독립국으로되었다
탈린은 에스토니아 어로 덴마크(Taani )의 도시(linn)라는 뜻이다 그 만큼 탈린 시는 언덕위의 도시와 해변쪽 아래의 도시인 다운 타운으로 구분되어 있다
두 구역사이에는 폭이 3M 높이 15M 총길이이가 4,7KM나 되는 높다란 폼페어 성벽있고 성벽 위쪽을 폼페어(Pompea)라고 하여 왕족 귀족, 교회 등 지배 계급이 거주 하였든 곳이라고 한다
1279년 건설된 성체는 여러번 보수작업을 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성의 끝부분에서 성곽을 보호하기 위하여 1397년 건축된 둥근 탑인 45m의 헤르만 타워(Herman Tower)가 아름답게 서 있었다 성의 맞은 편에는 알렉산드르 네브스키(Alexander Nevsky) 정교회가 있었다
1900년 지어진 양파모양의 둥근 지붕(Onion-Domed)을 가진 정교회는 (Mikhail Preobrazhensky)가 완성했으며 Novgorod 영주인 알렉산드르 네브스키에 헌정된 교회라고 한다
13세기 러시아 대공으로 몽골의 침략응 물리치고 러시아를 구한
알렉산드 네프스키 성당 양파모양의 지붕이 금장이 아니다
화려하지만 각기 다른 5개의 둥근 양파 모양의 돔 지붕은 조화롭고 신비로우며 일제히 울린다고 한다
우린 폼페아 성(Poompea Loss)의 전망대 중 가장 뷰가 좋은 가운데 전망대인
1553부터 1710년까지 스웨덴이 에스토니아를 지배할 때 탈린은 한자동명의 회원으로 무역이 번창하였고 이 시기에 문화 예술 사회제도 정립등 최고의 황금기를 누렸기 때문에 오늘날 발틱 해의 아름다운 진주로 남아 있다고 핝다
저지대 중앙에는 1267년경 지은 성 울라프 교회가 보이며 157M의 높은 종탑을 또한 꼬칼탑도 성벽을 이루며 많이 보이는데 강성했는 16-17세기에는 1,85KM의 성곽만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린 펌페아 언덕에 있는 돔교회(St, Mary’s Cathedral, Toomkirik)로 갔다
1233년 건립되어 성모마리아에게 봉헌된 주교 성당이다
최조로 건축한 목조 가톨릭 교회로 1684년 화제로 인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증축 되었으며 16세기 종교개혁으로 루터파 교회가 되었다고 하며
교회의 안쪽 제단에는 십자가 상이 있고 벽에는 중세 시절 한자동맹으로 탈린이 무역항의 중심이 되었을 때 각 길드들의 문양을 기념으로 조각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교회는 엄숙하고 화려했으며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리는 유서깊은 교회라고한다 우리는 학교거리(toom Kooli)로 내려와 중세부터 귀족의 자녀들에게 음악 공부와 연극 아카데미를 가르치는 학교 앞으로 나갔다
흉상이라고 한다
또 디른 톰 뤼트리 (Toom Ruutli)거리에는 에스토니아의 교육게의 원로인 엘프리드 린데르(Elfriede Lender1882~1972)가 어린 시절을 보냰 집에 기념 조각이 걸려있었다
우린 왕의 정원을 거쳐 성곽을 돌면서
덴마크 왕 인 발데마르 2세가 에스토니아를 정복하고 폼페아 언덕에 요새를 설치하고 성곽을 걷다보면 2개의 망루가 있다
타원형으로 생긴 망루를 올라가면 남의 집 부엌이 보일만큼 높기 때문에
구시가지로 내려가는 좁은 골목길에는 아름다운 조형물들리 걸려 잇고
아몬드를 꿀에 재워 끓여 먹는 에스토니아 전통 먹거리도 팔고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중세풍의 현관도 잇었으며
하늘에서 내려다본 구시청 중앙 광장의 모습은 하나의 작난감 도시와 같았다
그레서 탈린을 룬리 플레넷조사에서 가성비 1위로 선정된 관광 도시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구시가지 전체가 Unesco 세계 등재되어 있는 도시로 정말 아름다웠다
우린 구시가의 볼 것도 많치만 성문을 나와 탈린에서 동쪽으로 150KM 떨어진 18세기 영주의 저택을 관광하기 위하여 2시간 동안을 달려갔다
발틱 3국이 마찬가지 이지만 에스토니아는 제일 높은 산이 해발 318M로 평야 지대이기 때문 잦은 비와 농무 때문에 2차 세계 대전 때에도 폭격을 제대로 할 수 없어 피해가 적었다고 한다 에스토니아의 북쪽지방은 발틱 해와 붙어 있고 라헤마 국립공원 내에는 울창한 숲과 늪지대 위에 나무 데크로 올래길 만들어져 있어 놓아 힐링 코스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도착하였다
북부 늪지대의 국립 공원내에 잇는 팔름세 영주의 궁전은 중세시대인 1510년 경 목조 건물로 만들어 성 Michael 수녀원으로 사용하였다 1676년부터 1970년까지 발틱 해의 독일계 Pahlen 가의 영주인 Palmse 가의 저택으로 사용하였으며 1820 년경 칼 마그누스 영주대에 바로크풍의 석조 건물로 개조하였다
또한 1986년부터 2003년가지는 팔름세초등학교를 사용하였고
잘 가꾸어진 정원과 유물들이 잘 보존되어 잇었다
박물관에는 그 당시 사용하든 집기나 유품들이 소박하게 정리되어잇으며
우리 집사람은 방명록에 한글로 용기 있게 흔적을 남겼는데
뒷마당의 정원은 아담하게 잘 가꾸어져 잇엇고
Bathhouse로 사용했든 아담한 건물도 있었으며 아담한 호수위의 정자 (Rotunda: 원형지붕으로 덮은 건물)도 있었다
증류주 양조장고 세탁소도 있었다
Storehouse는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으로 바뀌어져 있었으며
이곳에서는 짝수 해마다 7월에 비루 세루(viru Seru) 음악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우린 팔름세 장원의 관광을 마치고 선박으로 돌아가다가 Tallinn Song Festival이 열리는 노래 공원으로 갔다 19세기 소련의 독제 지배에서 벗어나가 위하여 발트 3국의 국민들은 노래로써 애국심과 독립을 염원하여 평화를 쟁취했기 때문에 발트 3국의 독립은 “노래혁명“덕분이라고 한다 자랑하는 민요와 합창단이 부르는 합창으로 모든 시민의 노래잔치이며 합창단의 수가 최대 18,000명이 되고 출연자만 25,000명에서 30,000명에 이르며 관중들은 약 100,000명 이상이라고 한다
'노래하는 민족', '합창의 나라'라고도 불리며 '에스토니아에서는 세 사람이 모이면 서로 화음을 넣어서 합창을 할 수 있다고 한다 5년마다 열리는 노래축축제'(라울루피두, Laulupidu)는 탈린의 노래공원 (Lauluväljak)에서 열리는데 18,000명이 내는 코러스의 웅장함과 거대한 울림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이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는 피날레를 장식하는 구스타브 에르네삭스 (gustav Ernesaks 1908~1993)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 불려 지고 있으며 이는 소련의 압박시대에 시인 리디아 코이둘라(Lydia Koidula)시에 곡을 부친 노래로 애국가를 대신해서 불려 젔으며 독립을 염원했든 국민의 소망이 담긴 노래라고 한다
이러한 축제가 발트 3국에는 전지역에서 열리며 민족의 화합과 독립을 쟁퓌하는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Mu isamaa on minu arm" / Laulupidu 2014
이것으로 오늘의 에스토니아 관광에 종지부를 찍었다 우리에게 생소한 나라이지만 동화의 나라같은 에스토니아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옛날의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관광지로 추천하고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