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를 가다
지난 해 말에, 막내가 관광여행을 제의해왔다. 특히 일본 큐슈(후쿠오카와 구마모토 포함) 중에서, 후쿠오카로 관광여행을 가자고 하였다. 나는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오사카 성처럼 예쁜 구마모토를 못보고, 허물어진 후쿠오카의 빈 성터만 보았다.
해외여행에서 나의 콤플렉스중의 하나는, 몸으로 움직이는 것 즉 가장 필요한 걷기가 몹시 불편하다는 점이다. 중학교 시절에 다리를 다친 이후에, 나이가 들어가고 몸무게가 늘어감에 따라서, 점점 더 걷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게다가 더욱 나쁜 것은, 나의 강한 편견 가운데 하나가, 낯가림을 많이 하여 UN의 대표국인 미국을 제외한, 다른 이웃의 강대국에 대한 질투가 심하다. 실제로 역사상에 나타난 중국과 일본 그리고 북한은 한반도를 초토화시켜서, 굶주림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나라이다.
예를 들면 나는 우리의 이웃나라(일본과 중국)에 대하여 강한 적개심이 생겨서, 60년 초반에 중학교 시절에는 중국집에 맛있던 자장면 먹는 것도 거부하였다. 특히 북한은 중국을 통한 백두산 관광이 모든 여행이었다. 어린 시절에 읽은 동화처럼, 부모로서 자식이 나쁜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한 경고로, 검은 숯을 만지면 결국 나도 모르게 검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에 70%의 무역을 의존하는 점을 역이용하여 한국을 재지배하려고 하는 검은 속셈이지만, 다행히도 미국에 70%를 의존하는 중국에서는 미국과 우방인 한국을 우습게 볼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독도 만행을 일삼지만, 미국의 핵폭탄(사이판에서 뜬 B29의 리틀 보이Little boy와 팻 보이 Fat boy)에 두 손을 든 나라이기에, 아직까지는 미국에만 공손하다.
프랑스 소설 「내 사랑 희로시마」에서, 세계에 10개의 수소폭탄은 세상이 멸망하여, 선사시대로 돌아간다고 경고하였다. 가장 무서운 수소폭탄(캐슬 부라보. 미국)과 크기가 제일 큰 폭탄(짜르 발라. 러시아)이 있다. 한편 나는 이제 70을 바라보는 백수가 되었고, 또 한국이 세계의 강대국과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입장에서는, 세계를 특히 동북아에 대한 좁은 견문을 내심 몹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관점과 생활에서 변화가 생긴 것은, 특히 4년 전부터 즉 식민지 시절을 어렵게 보내신 선비께 선종하신 이후라고 생각된다. 무지한 고생을 감내하신 부모님에 대한 약간의 양심의 가책으로, 일본 방문을 꺼려왔다. 물론 경제적인 사정도 함께 생각해봐야 할 문제 이었다. 그리하여 3년 전에 처음으로 당일치기 대마도의 방문을 시도하였는데, 우리 부부와 막내와 사위 그리고 외손자가 부산-대마도 여행에 빠른 배로 다녀왔다. 그리고 작년(2016년 1월)에는 오사카를 다녀왔고, 지난해의 12월에, 그러니까 거의 23개월만에 다시 일본을 찾았다. 지금까지는 먼 나라 이웃나라였는데, 이제는 가장 많이 다녀온 나라가 일본이 되었다. 2위는 중국의 2회(대만과 북경)인데, 중국보다는 1회 더 많이 다녀온 셈이다. 물론 세계여행(서유럽, 터키-그리스, 캄보디아)과 해외연수(미국-카나다 7주, 뉴질랜드 9박10일)도 있었다.
후쿠오카의 마지막 날은 한국인 가이드를 채용하여 다녔다. 일본에 대한 인상을 묻기에, 남녀 모두 얼굴도 못생기고 키도 무척 작다. 그러나 복이 많아서 돈은 많다. 복이 많은 이유는 겸손과 친절을 들 수 있다. 세 번의 친절을 경험하였다. 국제장사에는 악인이지만, 국내여행객에게는 선인이었다. 먼저 버스로 온 가족이 함께 후쿠오카 타워를 찾아 가는데, 한 할머니에게 위치를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고, 100m의 길 건너에서 기다려서 신호등을 건너라고 말했다
또한 비싼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 다시 구시다 신사를 찾으러 캐널 시티(Kanal city) 쇼핑몰에서 젊은 청년이 3층에서 묻고 내려간 후에 한참 후에 우리가 내려갔더니, 그때까지 아래층에서 기다려주었고, 인터넷으로 찾은 위치를 알고서, 아래층으로 안내하여 길가에 까지 모시고 가더니, 친절하게도 손가락으로 신사의 위치까지 알려 주었다. 조그만 신사는 분위기가 캄캄한 밤이었고 약간 으스스하였으나, 특히 법당 앞에서 한참 이리저리 훝어 보았다. 실제로 한국의 어느 스님이 집요하게 칼을 한국에 양도하라고 주문하자, 일반인에게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파하기 전에 어느 여행업자가 한국의 관광객을 모시고, 구시다 신사에 들어갔다고 했다. 들을 때 섬칫하였는데, 원전이 폭파되고 스님의 집념에 질린 나머지 일반인에게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명성황후를 살해한 후에는 시신을 노지에서 불질러 내다 버렸다. 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씨없는 수박의 우장춘박사의 아버지도 만행에 참여하고 일본으로 도주하여, 일본여자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는데 우장춘은 한국인으로 돌아오고, 그의 동생은 일본인으로 귀화하였다.
저녁에 호텔로 돌아올 때의 친절한 기사를 만났는데, 나이 많은 기사님(4명 중에 3명은 모두 80대로 생각됨)이 길을 잘못 찾아서 미안하다고, 택시비 1800원(180엔)을 도로 내어 주었다. 그런데 과거 일본의 만행에 대하여는, 류주현의 소설 「조선총독부」(3권)에서 잘 기록해 두었다. 만행을 책임질 A급 전범들(히로히토 포함)이 구소련의 공산주의가 유럽의 대부분과 아시아의 대부분 즉 중국, 북한, 베트남을 먹어치워서, 일본마저 빼앗기면 미국의 국익에 막대한 위기가 온다는 점을 생각하고, 특별사면을 단행하였다. 물론 전범만 처형하여도, 한국의 영웅들(안중근의사 포함)의 위상은 세계에 잘 알려졌을 것이다. 한국이 세계의 미래에서 할 역할에서, 좋은 기회를 놓친 셈이다.
한편 후쿠오카로 떠나가기 전에, 고종황제의 황사손(or 황세손) 이원(영친왕의 양자. 가수 이석의 친형)씨의 명강의를 2시간 들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서 명성황후의 살해 칼(시해 칼이 아님)의 위치를 알아냈다. 그리고 과거에 조선의 왕들이 제사를 모시던 환구단(중국 북경의 자금성 옆의 황제들이 제사지내던 천단의 역할을 함)을 파괴하여 없애고, 그 자리에 일본 장교들의 합숙호텔 즉 “철도호텔”을 지었다. 지금의 조선호텔이 철도호텔을 대신하고 있어서. 서울시의 도움으로 환구단을 복구하기로 약속되었다고 한다.
일정이 바쁜 주중에 일본 여행을 떠난 이유는 간단하다. 주중에 여행을 가면, 저가항공이 더 싸다는 것이다. 아쉬웠지만 중앙도서관에서 목요철학 세미나의 이수식에도 참여를 포기하도였다. 그래도 여행은 잘 다녀왔다. 특히 구시다 신사에 다녀왔습이다. 명성황후 살해 칼이 보관된 작은 법당도 막내 사위와 구경하고 사진도 찟고왔습니다. 후꾸오까성은 성터만 남아서 아쉬웠습니다. 사무라이들을 모두 죽이고 파괴하는 과정에, 후꾸와카성이 사무라이들의 상징물로서 존재하였기에 거의 파괴한 것이라고 한다. 아마 그 후에 일정한 직업이 없던 거친 사무라이들의 모임이, 일본의 야쿠자로 변신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여행지 중에서 후쿠오카 타워에 대한 방문은 무척 인상적이다. 타워 자체보다는 입구에 세워둔 인도신들의 상들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후쿠오카 타워는 카나다에서 토론토의 CN 타워같이 높지 않았는데, 손주들도 오르지 않았다. 다만 밖에 세워진 인도신들의 상이 좋았다. 처음애는 가네샤( 코끼리 머리. 쉬바- 샤크티의 아들. Gana만군의 + 주님 Isa → Ganesa로 변형됨)상만 알아보았다.
자세히보니 인도( 모두 3억3천의 신들)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10개의 상들 아래에, 신들의 이름( 특성 포함)이 있었다. 간다라신은 음악의 신( 아폴로처럼)이고. 인도인이 짱으로 가장 좋아하는 쉬바신과 부인 샤크티(or 파르바티) 신도 있었다. 특히 샤크티는 풍수( 인도는 양택 즉 집짓기만 관여함. 풍수는 가상의 뱀의 목에 나무말목으로 박고 그위에 집을 짓는다.)의 여신이다. 모두 10명의 신들( 쉬바 샤크티 가네샤 인디라 간다라 브라흐만 등. 다만 최고신 비쉬뉴가 없어서 아쉬움)이라고 기억하는데, 특히 일본이 다른 나라 문화를 받아들여서 토착화( 일본화)시키는 열린 문화의식은 우리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일본의 신사는 제주도 신당에서 발전한 신사라는 것을 생각한다. 다만 원리가 불교와 도교의 합작으로 보인다. 특히 신사와 비슷한 중국의 도교에는, 노자- 장자라는 도교경전이 있다. 그러나 일본 신사는 도사가 스님이라 불리고, 불교의 한 분파로 보인다. 일본에는 구보 노리따다의 <도교사>가 유명하다.
다만 유교를 포함한 제자백가들이 모두 < 주역>에 나타난 사상 즉 "1음 1양 지 도"( 한번의 밤과 한번의 낮이 도이다)에 의존한다. 이것은 자연의 순환원리 혹은 천지창조를 상징하고 있다. 여기서 북송의 정이천 형제가 " 소이"( 까닭)를 1음앞에 붙여서, 도를 이로 바꾸어서 성리학이라 하였고, 남송의 후배 주자( or 주희)의 이기2원론이 되었다. 물론 이것이 조선 성리학의 뿌리이다. 더 나아가 중국 인문학의 대표로서 시경 서경 역경은, 이후의 모든 중국의 문학 역사 철학을 전개하는 근원이다.
특히 해외여행은 사람의 견문을 크게 넓혀주고, 책만 읽어서 인종적인 차별에 얽매인 사고를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비싼 여행에 필요한 그 나라의 신화를 알아보는 것도, 효과 높은 여행기를 쓸 수 있게 한다고 본다. 일본의 신사는 샤머니즘으로서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짓투성이지만, 힘든 현실에 적응하려는 일본인들에게 기도할 수 있는 신성한 신화적인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같은 거짓투성이로서 자리잡은 한국의 샤머니즘 즉 한국의 무당을 폄훼하는 것은, 스스로를 낮추는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그들도 제주도에는 많은 한국 고유의 신화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첫댓글 수정: 짜르 불바[불바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