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관계의 지혜
잠언 3:27~31
오늘 본문 말씀은 이웃 관계에 있어서 우리 성도들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지혜자가 가르쳐주는 이웃 관계의 지혜는 무엇일까요? 다섯 가지로 ‘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으로 이웃 관계의 지혜가 나타나 있습니다.
첫 번째 금지 명령은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는 것입니다.
27절 말씀에,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마땅히 받을 자란 우리가 빚을 진 채권자입니다. 품삯을 갚아 줘야 할 일꾼, 돈을 빌려준 채권자, 세금을 마땅히 줘야 할 지방 및 중앙 정부 기관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마땅히 갚아야 할 빚이 있다면 그것들을 당연히 기꺼이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품삯을 갚아야 하는데 아까와서 떼어 먹는다면 안됩니다. 나라의 세금도 갚지 않으면 안됩니다. 돈을 빌렸다면 마땅히 떼먹지 말고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만약 갚지 않는다면 이웃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미련한 자의 행동입니다. 만약 갚을 힘이 있는데도 갚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평하고 정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책망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갚아야 할 대상 중에는 하나님도 있습니다. 선을 베풀 힘이 있는데도, 하나님께 서원했거나 하나님의 것인 예물을 아까와하여 드리지 않는다면 그것도 마땅히 책망받을 일입니다. 여기서 마땅히 받을 자로 구약 율법에 기록된 자로서는 레위인, 이방인, 나그네, 가난한 이웃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있거든 아까와 하지 말고 자선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와 후손들을 위하여 선한 사업에 부한 자가 되어 좋은 상을 쌓는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없을 때 도우라는 것 아닙니다. 손에 선을 베풀 힘이 있을 때 그러하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그러한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힘이 있을 때 선을 베푸십시오. 힘이 없을 때 도리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갚아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 금지 명령은 선을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28절 말씀에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웃을 도울 힘이 있는데도 차일 피일 미루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일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할 지 모릅니다. 도울 수 있는 나의 능력과 여건이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 상대방에게 내가 아닌 다른 구원의 손길이 임하여 도울 필요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선을 행하여 상을 쌓을 수 있는 기회와 특권을 놓쳐버릴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속히 주는 자는 두 배를 주는 것이다.” 이웃에게 선을 행할 힘이 있거든 내일로 미루지 말고 신속하게 실천합시다.
세 번째 금지 명령은 이웃을 까닭없이 음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9절 말씀에,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웃이 우리를 해치거나 하지 않고 평안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면 그들에게 어떠한 악을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꾀한다’는 단어는 ‘쟁기로 밭을 간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을 해치려고 은밀하게 나쁜 말의 씨앗을 심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해하려고 꾀하지 말라’는 뜻은 공연히 그들에게 안 좋은 말들을 만들어 내고 해치려고 꾀를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험담하고 비난하고 뒷말하지 말고 평화롭게 잘 지내라는 것입니다. 아무 상관 없이 잘 살고 있는 이웃을 공연히 비난하고 헐뜯고 텃세 부리는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성경의 중요한 계명이, “할 수만 있거든 모든 사람과 평화하라”, 그리고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게 맡기라”는 것 아닙니까? 원수 노릇하는 사람도 아니고 평화롭게 잘 살아가는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꾀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곁에 평화롭게 잘 생활하는 이웃, 친구, 동료들을 고맙게 생각하고 기회가 되면 무엇을 도와줄까 생각하면서 그 평화로운 관계를 잘 가꿔가는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네 번째 금지 명령으로는 까닭없이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30절 말씀에,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다툰다’는 단어는 ‘몸싸움’도 포함되고, ‘말싸움’도 포함되지만, ‘법적 소송 싸움’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를 해치려고 일부러 하지 않는데, 굳이 거칠게 싸움을 벌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되도록 언성 높이지 말고 조용히 대화로써 어떤 조정할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순조롭게 풀어가라는 것입니다. 층간소음 문제 때문에 사람들이 얼마나 신경이 예민해지고 거칠어지는지 모릅니다. 별 일 아닌 그런 것 때문에 사람들이 심하게 다투고 그 일로 큰 손해를 봅니다. 얼마전 한 부장판사는 층간 소음 문제로 이웃과 다툰 나머지 화가 풀리지 않자 주차장으로 가서 상대방의 차 열쇠 구멍에 순간 접착제를 주입하여 못쓰게 하는 못난 화풀이를 했습니다. 이것이 cctv로 발각되어 결국 판사직을 사임하는 일까지 되었습니다. 참 못났습니다. 다투지 말고 좀 져줄 줄 아는 사람이 됩시다. 목소리 높이지 말고 소리를 낮추고 차분하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합시다. 특별히 문제가 있다고 무조건 법정에 가서 소송하려고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소송을 걸핏하면 합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것은 최후에 할 일이지, 이웃과 조정 문제가 있을 때 무조건 법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사람은 오늘 본문 말씀에 악한 자라는 것입니다. 소송 싸움 좋아하면 반드시 망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이웃과 대화로, 서로 타협하고, 조용히 해결하려는 지혜로운 자가 됩시다.
다섯번째 금지 명령으로 악한 사람들과 교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1절에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포학한 자는 거칠게 폭력을 구사하는 자입니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고 얼마든지 남을 짓밟고 제멋대로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지배력을 행사하고 다른 평범한 사람들 위에 우월한 지위를 자랑하며 이권을 차지하면서 성공한 듯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악한 자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 앞에 비굴하게 머리를 숙이면서 친하게 지내려고 합니다. 그들의 현재의 높은 지위와 권세를 인하여 부러워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지혜자는 결코 그러한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사람들의 반발을 사게 되어 아첨하던 사람에게조차 결국 외면을 당하고 비참한 자리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웃 관계에서 우리가 마땅히 행할 지혜 중에 하나는 포학한 사람들과 교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포학한 사람들을 멀리하고 그 대신에 의를 행하는 사람, 진실하게 행하는 사람, 선을 행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과 가깝게 교제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우리 영혼과 삶에 궁극적인 안녕과 평안과 행복과 번영을 안겨줍니다.
이웃 관계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지혜의 행동지침을 오늘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금지 명령은 베풀기를 아끼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금지 명령은 선을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금지 명령은 이웃을 까닭없이 음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 금지 명령으로는 까닭없이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금지 명령으로 악한 사람들과 교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교훈을 마음에 새겨 행함으로써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둘째 계명을 잘 이루어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주여, 한평생 살아가면서 우리가 먼저 이웃에게 선하고 진실하고 평화롭고 경건한 좋은 이웃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이웃들도 하나님을 알고 함께 어울려 주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