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건청
한국 현대시의 풍경들. 4 ㅡ박상륭의 타계를 애도하며
한국 소설사상 확연한 개성-- 박상륭의 타계 소식을 접한 새벽. 충격과 아쉬움 속에 사진 한 장을 올린다. 박상륭은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론] 등을 비롯한 형이상 소설로 한국 소설사에, 하나의 정점을 이뤄낸 작가. 그의 만연 문체는 사유의 폭과 깊이를 심화, 확대해내는 그만의 독자적 개성이기도 했었다.
박상륭을 만난 것은 1961년, 문예창작 강의실. 그때 거기서 제각기 하나씩의 신대륙을 향해 떠났고, 가멸찬 용맹정진의 도정에 올랐던 것인데. . . 박상륭, 한승원, 조세희, 이문구, 권명옥, . . . 박상륭은 동기생 배유자와 단짝이었고, 결혼에 닿았다. 카나다 취업 이민을 떠난 부인을 따라 카나다에서 살았다. 시체 안치소에서 일했다고도 하고, 서점을 했었다고 하던가. . . . 그의 이민 생활이 힘든 것이었음을 알겠다. 그러면서도 그는 모국어권 밖에서 모국어로 소설을 썼다, 바람처럼, 문득 귀국해 평생의 지친 이문구에게 작품을 맡기고 가곤했었다. 이제, 이문구도 권명옥도 타계하고 박상륭까지 떠나니 적막하다.
박상륭이 귀국해 얼마쯤 광화문 근처에 머문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수소문해서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멀리 장흥에 내려가 사는 한승원이 동석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날 사인보드 다섯 장에 돌려가며 필적을 남겼고 한 장씩 나누어 가지고 헤어졌다. 이문구는 [만날 사람 만난 날]이라 적었고, 조세희는 [상륭이 온 반가운 날], 권명옥은 [콜롬바노네 안방 불빛], 나는 [목마른 물새들]이라 적고 사인을 했다. 그날, 박상륭은 [한잔 먹세 그녀 또 한잔 먹세 그녀]ㅡ장진주사의 일절을 고어 원문대로 아래아 한글로 적었다.
박상륭이 카나다에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까마득히 멀어진 문청시절이 생각난다. 이제, 이승을 벗어나 밝고 따뜻한 명부의 삶을 누리시길. . . .. 그가 남기고 간 작품들이 오랜 생명으로 남을 것을 믿는다.
사진. 조세희, 이문구, 권명옥, 박상륭, 이건청
(1999.5.14. 인사동 사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