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죽었다!’ 1882년 프리드리히 니체의 단호한 선언 이후, 용기 있고 성찰적인 많은 사람들이 각자 신 없이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구상하는 창의적인 일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신이 아닌 ‘창작’과 ‘열정’, ‘희망’, ‘기지’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자립’의 형식들에 의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용감하고 혁신적인 이야기는 그저 각각의 이야기로 묻혀 있었다.
저자 피터 왓슨은 종교적 신앙이 사라진 곳에서 대담하게 새로운 길을 개척한 수많은 철학자, 화가, 극작가, 시인, 소설가, 심리학자, 과학자, 무용가들의 용감한 성취의 역사를 엮어냈다. 폴 발레리, 잭슨 폴록, 사뮈엘 베케트 등 이들이 신을 대체할 것을 찾아 애쓰는 과정에서 무신론이 어떻게 진화해가며 마침내 전례 없는 인기를 얻게 되는지, 혁명적 사상과 거대한 질문을 탐색한다.
저자 소개
저자 피터 왓슨
저자 피터 왓슨Peter Watson은 1943년 영국 출생. 전 언론인, 지성사가, 문화사가. 더럼대학교, 런던대학교, 로마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좌파 시사 주간지 《뉴 소사이어티》 부편집장을 지냈고, 《선데이 타임스》의 탐사보도팀에서 4년간 일했다. 《타임스》의 뉴욕 특파원, 《옵서버》 《펀치》 《스펙테이터》 《뉴욕 타임스》 등 유명 신문?잡지의 프리랜서로도 활동했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케임브리지대학교 맥도널드고고학연구소 협동연구원을 역임했고, 하버드대학교와 런던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생각의 역사 I: 불에서 프로이트까지 Ideas: A History of Thought and Invention, from Fire to Freud》 《생각의 역사 II: 20세기 지성사 The Modern Mind: An Intellectual History of the 20th Century》 《저먼 지니어스 The German Genius: Europe’s Third Renaissance, the Second Scientific Revolution, and the Twentieth Century》 《거대한 단절 The Great Divide: History and Human Nature in the Old World and the New》을 비롯하여 사상사와 예술사를 깊이 있게 소개한 책들을 집필했으며, 매켄지 포드(Mackenzie Ford)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펴내기도 했다.
목차
서문 우리 삶에는 무언가 빠져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니체의 탓인가
1부 세계대전 이전: 예술이 중요했던 시절
1 니체 세대: 황홀경, 에로스, 과잉
2 꼭 지켜야 하는 단 하나의 삶의 방식은 없다
3 사물의 관능성
4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방향이다
5 에덴동산의 비전들: 색채와 금속, 속도, 지금 이 순간의 숭배
6 욕망의 집요함
7 우리 뺨 속의 천사
8 ‘엉뚱한 초자연적 세계’
2부 하나의 심연을 지나 또 다른 심연으로
9 전쟁에 의한 구속
10 과학적 무신론을 향한 볼셰비키의 십자군운동
11 삶의 암묵성과 존재의 규칙들
12 불완전한 낙원
13 사실에 맞게 몸을 낮추어 살아가다
14 형이상학의 불가능성, 메타심리학 숭배
15 철학자들의 믿음
16 나치의 피의 종교
3부 인류의 0시와 그 이후
17 여파의 여파
18 행위의 따뜻함
19 미국식 전쟁, 원죄설의 쇠퇴
20 아우슈비츠, 묵시록, 부재
21 “생각을 멈춰라!”
22 비전의 공동체와 삶의 크기
23 행복이라는 호사와 그 한계
24 디테일에 대한 믿음
25 ‘우리의 영적 목표는 진화의 서사시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
26 ‘좋은 삶이란 좋은 삶을 추구하며 사는 삶’
결론 핵심적이고 건전한 활동
옮긴이 후기/ 주/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566페이지로 서구 문화에서 신을 제거하는 일을 기세 좋게 다루고 있는, 피터 왓슨의 《무신론자의 시대》도 놓치고 싶지 않다. ― 톰 스토퍼드, 《타임 리터러리 서플먼트》 2014년 올해의 책
신 없이 살아가는 일에 대한 철학적이고 열정적인 반응들을 바라보는 매혹적이고 경이로운 시선.
― 《오스트레일리안 파이낸셜 리뷰》
신 없이 살아가기 위한 인간 노력의 전모,
그것은 결국 20세기 예술과 과학의 백과사전이자 인명사전
‘거대 서사’를 잃어버린 인간을 위한, 한 편의 거대 서사 ‘모든 것의 시대’
‘있음’과 ‘없음’의 존재론, 나아가 그에 대한 ‘앎’을 다루는 인식론은 ‘함’과 ‘됨’의 실천론으로 이어진다. 21세기 현재 갖가지 이데올로기와 ‘이즘’들이 이미 무너지거나 막다른 골목에 봉착해 있다. 제국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스탈린주의, 파시즘, 모택동주의, 유물론, 행동주의, 인종주의까지, 그리고 2008년의 ‘신용 경색’과 그에 따른 혼란스러운 여파로 자본주의까지….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맨 20세기의 문화사, 지성사, 정치사, 종교사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책 《무신론자의 시대》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당연히 무시무시한 박학다식의 소유자 피터 왓슨(Peter Watson). 과학부터 시, 철학, 뉴에이지 ‘심령주의’와 테라피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비종교적 사상의 역사에 질서를 부여하여, 니체로부터 윌리엄 제임스, 밥 딜런, 심지어 재즈 사이의 동떨어진 지점들을 연결해나간다. 지성사의 바다를 비추는 등대, 그물 같은 사상의 경로를 안내하는 GPS가 되어주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 직후 세대부터 현재까지 130년 동안 펼쳐진 거대한 문화의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숨 가쁘게 연대기적으로 조망한다. 문학에서 미술, 철학, 심리학과 정치운동, 세계대전과 극예술과 대중문화까지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사이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연결하여 인간과 그 사상의 전개에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독자들을 위해 또 한 편의 작품을 완성했다. 모든 페이지의 반짝이는 문장들은, 만만치 않은 끈기와 지성과 지식을 요구하는 이 학구적 작품에 도전하는 지적인 독자들을 위한 피터 왓슨의 선물이다. 아울러 저자보다 더 박학다식한 독자들을 위해 아이디어의 출처를 밝힌 주석과 찾아보기를 함께 소개한다.
‘아멘’ 없는 시대, 무신론자의 시대는 세계를 판단할 단 하나의 압도적 기준이 사라진 시대이다. 이 책은 그 진실을 깨닫는 데서 나아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누리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사람은 신에 대한 두려움이나 이성의 빛 속에서 걷기보다는 스스로 다음 시대의 예언으로서 걸어야 한다.”
신도 이성도 없이 스스로 예언자가 되어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1882년 프리드리히 니체의 단호한 선언 이후, 용기 있고 성찰적인 많은 사람들이 각자 신 없이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구상하는 창의적인 일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신이 아닌 ‘창작’과 ‘열정’, ‘희망’, ‘기지’,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자립’의 형식들에 의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용감하고 혁신적인 이야기는 그저 각각의 이야기로 묻혀 있었을 뿐, 하나의 거대 서사로 통합된 적이 없었다.
《무신론자의 시대》는 종교적 신앙이 사라진 곳에서 대담하게 새로운 길을 개척한 수많은 철학자, 화가, 극작가, 시인, 소설가, 심리학자, 과학자, 무용가 들의 용감한 성취의 역사를 담아냈다. 이것은 이제 더 이상 공론가, 독재자, 허풍선이 들의 역사가 아니다.
1차 세계대전 때까지 니체는 예술에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알다시피 1차 대전은 니체와 그 사상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완전히 뒤집어엎었다. 가장 폭발적이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은 부류는 아방가르드 지식인과 예술가, 문필가 들이었을 것이다. 애슈하임이 ‘니체 세대’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새로운 무엇이 되고, 새로운 무엇을 나타내고, 새로운 가치들을 표상하라”라는 니체의 제안은 상징적인 것이었다. 니체는 기성의 고급문화에서 소외된 아방가르드에 의미를 부여했다. 니체가 지지한 두 가지 힘은 급진적이고 현세적인 자기창조와 디오니소스적인 자기탐닉의 명령이었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총체적’ 공동체, 구원적 공동체를 찾기 위한 모색 속에 개인주의적 충동을 녹여 넣으려는 몇 가지 시도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제일 먼저 주목한 것은 허무주의가 처한 곤경에 대한 니체의 진단이었지만, 그들은 재빨리 다른 쪽으로도 관심을 돌렸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흥분과 진정성, 강렬함, 그리고 이전에 지나간 것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것을 만들어낼 새로운 위버멘쉬(초인) 인간형을 북돋워 주고 그들에 의해 변화된 문명이었다. 표현주의 시인 에른스트 블라스는 독일제국 시기 베를린의 카페 생활에 대해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 일은 당시의 거대한 속물주의에 맞선 전쟁이었다. … 그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이들은 누구보다도 반 고흐와 니체, 프로이트, 베데킨트였다. 사람들이 원한 것은 합리주의 이후의 디오니소스였다.”
1914년, 역설적으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반겼다. 그들은 참호전의 참상 뒤에 자리한 심연, 즉 구속(救贖)과 공동체의 복원을 응시하는 자들이었다. 전쟁을 한 사람이 지닌 영웅적 자질들에 대한 궁극의 시험이자 의지의 시험으로 보고 무아경의 경험을 할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로 보았다는 점에 니체의 배음이 깔려 있었다. 이후 우리에게 특히 의미 있는 두 요소가 1차 세계대전의 전면에 등장한다. 하나는 시였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였다. 시와 전쟁이 그토록 잘 어울렸다는 사실은 대단히 이례적이며 많은 점을 시사한다.
2차 대전으로 인류는 ‘0시’에 도달했고, 세 가지 장기적 결과와 마주했다. 첫째는 주로 프랑스에서 일어난 것으로, 후설의 현상학적 관념들에서 싹을 틔워 들끓는 전쟁과 점령 상황 속에서 결실을 맺은 실존주의 철학의 태동이었다. 둘째는 미국 사회에서 깊이 각인된 폭넓은 변화로, ‘자유방임적 방향 전환’이 이어지면서 급속도로 세속화로 치달았다. 그 결과 사회와 사람에 대한 종교적 이해가 별안간 심리학적 이해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셋째는 홀로코스트가 유대인들의 생각에 남긴 영향이다.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신이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치할 수 있다는 말인가? 홀로코스트의 원인은 무엇이고 함축하는 바는 무엇인가? 2차 세계대전이 남긴 이 세 가지 결과는 커다란 사건이었으며, 무력 충돌이 다 끝난 뒤에도 종교적 맥락과 세속적 맥락에서 오래도록 사상과 문화를 형성했고, 오늘날까지도 계속 형성하고 있는 관심사들이다.
참삶을 추구하는 방법들
무신론자들은 무신론과 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서 다른 삶의 방식, 곧 세계에 존재하는 다른 형태의 의미를 찾고자 했으며, 수많은 사람이 초자연적 초월이라는 개념을 상실한 바람에 생긴 필연적 결과라고 여긴 그 무시무시한 결핍을 극복할 방안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들은 말한다. 구체적인 개인들, 개별적인 것들, 구체적 해결책, 모든 것에 존재하는 끈질긴 실체성, 절정의 순간, 작은 기쁨, 휴일의 삶, 자발적 긍정, 지엽적 행동, 자기를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통해 유한한 완전함을 볼 수 있다고. 시에서, 행복에서 높은 산에서, 풍경에서….
이들이 신을 대체할 것을 찾아 애쓰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현대 문화의 핵심적 요소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무신론자들이 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결코 아님을, 듣기 좋은 노랫가락은 신이나 악마의 차지만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책의 원제 ‘무의 시대(The Age of Nothing)’를 ‘모든 것의 시대(The Age of Everything)’라고 표현해도 좋겠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조마조마하고 도발적인 사유들은 결국 다양한 형태로 독자들에게 전달될 것이며 일종의 위안을 준다. 지구촌 모든 사람이 하나씩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참삶’의 방법이 각자에게 있을 수 있다는.
이 책의 내용
신이 없어진 세계에 대해 접근하고자 한 방법 중 가장 심오한 것은 현상학이었다. 말라르메는 ‘주름 없는 단어들(따라서 사상들)’을 추구했고, 보들레르는 ‘행복한 순간들’을, 발레리는 ‘질서로 이루어진 작은 세계들’을 소중히 여겼다. 체호프는 ‘구체적인 개인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자잘하고 실용적인 답들’을 선호했으며, 지드는 ‘체계화는 변질시키고 왜곡하고 빈약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토머스 네이글은 “개별적인 것들에는 자아의 모든 측면이 투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경쟁적이지 않은 완전함이 있을 수 있다”라고 표현했으며, 로버트 노직은 “이것이 바로 시인들과 예술가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작은 것들이 지닌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남이다. 모든 것에는 ‘그만의 끈질긴 실체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다시 삶의 일화적 성격, 프루스트의 ‘지복의 순간들’과 입센의 ‘정신적 가치의 섬광들’, 쇼의 ‘극미한 증가분들’과 ‘무한한 의미를 지닌 순간들’과도 일맥상통한다. 칸딘스키는 ‘작은 기쁨들’을, 말로는 ‘일시적 피난처’를 말하며, 예이츠는 ‘황홀한 긍정의 짧은 순간들’을, 조이스는 ‘에피파니(현현)’를 말한다.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오르가슴을 모형으로 한 ‘절정 경험’을 말했고, 프로이트는 행복이란 하나같이 일화적이라고 생각했다. 인상주의 예술은 기실 인상주의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쉬이 사라지는 경험의 덧없는 성질을 정성을 다해 포착하는 데 전념한 흐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모네의 루앙 대성당과 건초 더미, 수련이 그 전형적 예이다.
버지니아 울프, 로베르트 무질, 유진 오닐, 사뮈엘 베케트도 ‘존재함’의 순간들은 단지 그 순간들일 수밖에 없다고,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짧게 경험하는 고조된 강렬함뿐이라고 말한다. (울프와 무질이, 또한 릴케와 비트겐슈타인이 표현한 것처럼) 마치 존재에는 두 영역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그 두 영역 모두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하지만, 또한 실제로 존재하는 것 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초자연적 영역은 존재하지 않으며, 울프의 표현을 빌리면 ‘목화솜에 둘러싸여 보내는 시간’에서 벗어나 누리는 짧은 휴일들만이 존재한다. 삶의 목적은 사랑스럽고 사랑할 만한 것에 대한 ‘자발적 긍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조지 산타야나와 소설에서 합리성으로부터 벗어난 ‘휴일’을 즐기는 인물을 묘사한 필립 로스도 같은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삶의 크기, 생활의 상수들이며, 조이스가 말한 ‘사실에 맞게 몸을 낮추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종교적 감정에 불을 지폈던 ‘우주적 의식’과 정반대의 견해이며, 조지 무어와 버지니아 울프, 데이비드 슬론 윌슨 등은 우리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친밀하고 ‘지엽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제안함으로써 그 견해를 한층 더 탄탄하게 뒷받침했다. 무어는 아주 생생한 경험은 가까운 친지들이나 친구들과 함께할 때에만 얻어진다고 생각했다. 울프에게 내밀함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 가운데 영적인 감정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고, 윌슨은 지엽적인 활동을 할 때가 매혹을 경험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도 강조되는 것은 삶의 크기다.
인격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우리 중 누구도 단 하나의 인격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우리의 경험은 일화적 성격을 띤다. 리처드 로티는 여러 철학자들이 ‘인간 실존에는 구조가 없다’라고 단언했음을 상기시킨다. 앙드레 지드는 자신에게 매일 새로운 자아가 생겨난다고 생각했고, 체스와프 미워시는 ‘그저 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썼다. 예이츠는 ‘인격이란 끊임없이 갱신하는 선택’이라고 보았고, 에즈라 파운드와 T. S. 엘리엇도 거의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 바 있다. 한편 영국의 철학자 존 그레이는 “우리는 우리가 지속적인 자아라는 의식을 떨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그런 자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고, 유진 굿하트는 “일관된 인격이란 이음매 없이 매끈하게 접합된 통일체가 아니라, 자기를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통일성의 한 형식은 서사다. 별개의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한 인생의 서사 말이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행위 혹은 행동은 서사 속에 담길 때에만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든 그레이엄에 따르면 “단순히 존재하는 것과 달리 인생을 살아가는 일의 열쇠는 … 서사의 명료함에 필요한 요건들에 맞추어볼 줄 알고 행동할 줄 아는, 후천적이며 갈수록 더 정교해지는 능력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부분적으로는 모방을 통해 배우지만, 그 픽션이 제공하는 이해의 기회를 통해 그러한 연결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능력을 갖고 있다”라고 덧붙인다. 이런 설명에 따르면 삶이란 ‘[서사적] 전체에 대한 예상’의 안내를 따르는 ‘지속적인 해석의 움직임’이다. 컬럼비아대학 인문대 교수인 브루스 로빈스는 세속주의는 그 자체로 진보의 서사이며, 그런 점에서 종교적 믿음보다 한 단계 향상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를 단 하나의 압도적 개념이 없는 상태로 다시 데려다놓는다. ‘전체성’ 또는 ‘단일성’이라는 관념의 퇴조는 아마도 20세기에 이루어진 성취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우리에게 하나의 전체로서, 그러나 제한된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한 느낌을 전해준다고 보았고, 바로 그러한 한계들에 대한 의식, 그 한계들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야말로 신비로움을, 즉 무언가 빠진 것이 있다는 생각을 구축한다고 보았다. 이는 시인이란 세계에 ‘점진적으로 무한히 가깝게’ 접근하는 사람이며, 우리는 의미에 차츰 가까이 다가갈 뿐 결코 닿지는 못한다는 폴 발레리의 생각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조지 스타이너는 언어에는 한계가 없을지 모르지만, 역시나 존재하는 것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는 말자고 말한다. 나아가 케임브리지 대학의 철학자 사이먼 블랙번은 매킨타이어를 연상시키는 말도 덧붙인다. “나는 [삶의] 문제들을 이해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좋음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세속화는 불신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훌쩍 넘어서서 삶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 그리고 어느 정도는 더 응집력 있는 방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 접근법은 우리에게 디테일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세계를 바라보도록 가르쳐준다. 누구나 예술가가 되지는 못하지만 예술적 접근법을 취할 수는 있다. 스티븐스는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는 지적으로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나 감성적으로는 늘 도달한다. 시에서, 행복에서, 높은 산에서, 풍경에서 그러하듯이.”
세속화에 따르는 부차적 문제가 있다. 슈테판 게오르게의 견해에 따르면 과학은 세계를 향상시키는 대신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유진 오닐은 과학이 자본주의의 손아귀에 들어감으로써, 자선적인 목표들에서 확실히 등을 돌려버렸다고 믿었다. 울프는 심리학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다른 과학 분야들은 도덕적 삶이나 미학적 삶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D. H. 로런스는 과학이 비합리적인 것들과의 접촉을 회피함으로써 스스로 ‘삶’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고 보았다. 좀 더 앞서서 하이데거도 말했지만 스타이너가 보기에 과학은 예나 지금이나 지배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오염되어 있다.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했다. “과학이 만들어내는 진리들은 우리가 삶의 지침으로 삼을 만한 것들이 아니다. 과학이 할 수 있는 일과 명백하게 해낸 일은, 욕망을 만족시키는 기술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네이글은 최근에 펴낸 책에서 환원주의적인 진화론의 서사는 잘못되었음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과학이 종교에 대한 완벽하고 충분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분명히 자연의 세부들과 과정들에서 평생토록 이어질 만큼 충분한 외경과 아름다움, 매혹을 발견한 사람들이다. 또한 그들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살려면, 그리고 우리가 우리 모두를 최대한 이롭게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에도 과학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책 속으로
니체에게 특별한 무엇이 있었던 걸까? 다른 모든 사람의 문장을 제치고 그의 문장만이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차피 신에 대한 믿음은 이전에도 꽤 오랫동안 퇴조 일로에 있지 않았던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니 어쩌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는 신―또는 신들이나 모든 종류의 초자연적 존재들―에 대한 믿음이란 도저히 말이 안 되는 헛소리였다. 대부분의 불신앙 혹은 회의의 역사는 18세기에 에드워드 기번 및 데이비드 흄과 함께 시작되어, 볼테르와 프랑스혁명을 거치고, 칸트와 헤겔과 낭만주의자들, 독일의 성서 비평, 오귀스트 콩트와 실증주의의 약진을 포괄한다. 19세기 중반이 되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카를 마르크스, 쇠렌 키르케고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등장했고, 찰스 다윈을 필두로 찰스 라이엘과 로버트 오언, 로버트 체임버스, 허버트 스펜서는 지리학적·생물학적으로 막강한 파괴력을 행사했다. (41쪽)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안과 밖 모두에 존재하는 혼돈, 곧 ‘삶의 짐’을 통제하려는 이러한 고군분투가 우리를 더 강렬한 존재 양식으로 이끌어줄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인생에서, 지금 여기 이 삶에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목표라고 한 니체의 말이다. 우리의 윤리적 태도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강렬함을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것이어야 하며, 우리의 유일한 의무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의무다. (44쪽)
시간이 지날수록 독일에는―그리고 정도는 약하지만 나머지 유럽 지역에도―니체 세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졌다. 토마스 만도 그 점을 분명히 의식했다. “1870년 무렵에 태어난 우리는 니체와 아주 가까이 있었고, (어쩌면 지성사에서 가장 끔찍하고 가장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비극과 개인적 운명에 동참했다. 우리의 니체는 전투하는 니체였다. 승리에 찬 니체는 우리보다 15년쯤 뒤에 태어난 이들에게 속하는 니체다. 우리는 그로부터 심리적 감수성과 서정적 비판을, 바그너 경험과 기독 교 경험을, ‘모더니티’ 경험을 얻었으며, 언제까지고 그 경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 그러기에 그 경험들은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심오하며 너무나 유익했다.” (58쪽)
반본질주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보편적으로든 개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으로든 고정된 인간 본질은 없다는 생각이다. 듀이는 개인의 자족적 자아(그는 이를 ‘자아의 고정성과 단순성에 대한 믿음’이라고 표현했다)라는 개념은 ‘영혼에 통일성과 미리 만들어진 완전성이 있다는 신학자들의 도그마’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도리어 모든 자아는 서로 일관되지 않고 반드시 조화를 이룰 필요도 없는 여러 자아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듀이의 통찰이었다. 이러한 관념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앞으로 우리가 살펴볼 모든 분과를 관통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특히 신이 없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해방감을 선사하는 원칙이었다. (95쪽)
이 접근법의 …… 즉각적인 함의 두 가지만 먼저 짚어보자. 첫째, 현상학적 관점은 삶에 대한 과학적 접근 또는 종교적 접근보다는 예술적 접근을 떠받치는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삶이란 서로 다른 무수한 관찰과 경험, 계시적 깨달음과 통찰로 이루어지며, 이러한 것들은 평생에 걸쳐 축적된다는 것, 그리고 완전성 또는 전체성은 종교적이거나 치유적인 어떤 ‘초월적’ 사건을 통해 단숨에 성취되지 않으며 고된 노동이나 교육의 결과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106쪽)
모호할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신비롭기도 한 무의식은 세속 세계에서 영혼에 맞먹는 것으로 여겨진다. 앞으로 여러 차례 보게 되겠지만, 20세기 내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때로는 종교적 열성에 가까워 보이는 태도로 심리치료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신경증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심리치료사를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수없이 비판받으면서도 오든이 ‘사상적 기후’라고 표현할 정도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이유다. (127쪽)
우리가 니체의 선언이 일으킨 여파가 고스란히 미치고 있던 시기의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두 가지 일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그때는 예술, 즉 연극, 시, 회화, 소설이 변화를 일으키고 발전의 길을 제시하겠다는 실제적인 전망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새롭고 즉각적이며 근본적인 위기가 닥쳤다고, 문명화된 삶이 심연의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걸쳐져 있다고 확신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그 심연이 그다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1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