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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더불어 살아온 삶 윤무부(尹茂夫)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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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우리네 삶의 풍속 중 결혼식에 새 목각이나 원앙금침 등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새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곧 사랑을 상징하는 원앙새, 가정의 질서를 상징하는 기러기, 가족의 건강이나 장수를 상징하는 두루미(학)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신혼부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기러기, 원앙새, 두루미는 변함 없는 행동양태로 사람도 배울 점이 많고, 그래서인지 옛 어른들은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하는 신랑 각시에게 꼭 이 새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고 보면 새에 관한 조상들의 관찰력과 판단력이 새삼 지혜롭게 여겨진다. 두루미, 기러기, 원앙새의 행동양식을 보면 인간이 태어나서 늙어 죽을 때까지 바라는 편안하고 건강한 가정, 사랑이 있는 가정, 지켜야 할 가정의 질서 등을 생각하게 된다. ![]() 천년을 산다고 하여 예로부터 장수의 상징으로 잘 알려진 두루미는 생김새나 자태도 빼어나다. 곧 새 중에서 가장 크고 몸매도 날씬한 두루미는 머리 일부와 날개 일부만 검은 깃털이고 나머지 온 몸이 하얀 깃털로 덮여 있다. 백의 민족이라 불려온 조상들이 흰색을 좋아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데, 두루미를 멀리 들녘에서 보면 마치 흰 치마 저고리나 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두루미는 새 중에서 가장 오래 살기 때문에 장수와 건강을 상징한다. 또 한시라도 부부가 떨어지는 일이 없고 저들이 낳은 새끼를 돌보며 데리고 다닌다. 그뿐인가, 수백 마리씩 모여 사는 경우도 있지만 무리에서 서로 싸우는 일이 좀처럼 없다. 북녘 땅 시베리아에서 번식한 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꼭 같은 장소를 찾아오는 도중에도 가족을 멀리하는 일이 없다. 이렇듯 두루미는 장수하면서 가정과 동료간의 질서를 잘 지키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인간사의 면면을 생각하면서 두루미를 떠올린 듯하다.
또 신부의 혼수품 중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곧 원앙금침이라 하여 긴 베개와 이불이 그것이다. 이는 원앙새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으로 원앙새가 우리나라 수백 종의 새 중에서 부부의 금실이 으뜸인 데서 비롯된 풍습이다. 아름다운 수컷 원앙새는 태어나서 한 해가 지나면 비슷한 연령의 암컷과 짝을 짓고는 평생을 암컷 곁을 떠나지 않고 산다. 암컷도 수컷을 떠나지 않고, 먹이 찾기, 둥지 지키기, 알 품기, 새끼 기르기 같은 일을 낮이나 밤이나 한다. 이러한 원앙새는 깔끔하여 오리 무리 중에서 강이나 개울의 가장 위쪽 물가에서 산다. 우리 조상들을 신랑 신부를 원앙새에 빗대어 늘 가까이에서 함께 있어야 사랑이 계속 이루어진다고 들려주었다. 또 원앙새처럼 아름답고 깨끗하게 사랑하며 살라는 뜻에서 신부 될 사람의 어머니와 그 집안의 모범이 되어 살아온 여인을 모셔다가 이불과 베개에 예쁘게 원앙새를 수놓게 했던 것이다. 이는 신혼 부부의 사랑은 양가 부모의 사랑과 일가 친척의 사랑에 그 뿌리가 있음을 뜻하기도 했다. 높은 하늘을 보면 일자나 꺾쇠 모양으로 줄을 지어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날아가는 새들이 곧잘 눈에 뛴다. 기러기는 그렇게 북녘 땅 시베리아에서 월동지인 우리나라 남부 지방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무리를 지어 이동해 겨울마다 찾아든다. 날아가는 기러기 무리를 관찰해 보면 맨 앞이 나이 많은 수컷, 그 다음이 새끼들, 맨 뒤가 나이 많은 암컷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기러기는 가족간 질서의 상징이다.
건강한 수컷 가장 기러기가 이동할 때나 먹이를 먹을 때나 질서를 잘 지켜감을 두고 조상들은 한 집안의 가장인 신랑의 역할을 강조했다. 곧 모범을 보여 가문을 잘 이끌어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앞둔 총각에게 집안의 가장 높은 어른이 산에 가서 단단한 나무토막을 잘라다 기러기 목각을 깎게 했고, 신랑은 이것을 혼례 때 안고 가서 신부에게 바쳤다. 총각은 목각을 깎으면서 결혼 설계를 했을 터이다. 곧 부부간 사랑, 부모께 효도, 일가 친척간, 이웃간 우애를 생각했을 것이다. 곧 한 가문의 가풍을 잘 이어갈 수 있는 근본인 가족간의 질서를 되새겼을 터이다. 새들은 대개 새벽 일찍 일어나 울기 시작하여 아침 8, 9시까지 울다가 그 이후 낮 시간은 울지 않는다. 즉, 우리 인간같이 새들도 우는 시간이 있고, 휴식시간이 있으며 또 먹고 자고, 경계하는 시간이 있는 것이다. 새들의 이런 생태를 보면 참 신기하다. 우리 인간같이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교육도 받지 않았는데……
나는 섬마을 바닷가의 거제도 장승포 작은 갯촌에서 태어난 촌놈인데,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새벽 일찍 일어나시면 곧 뒤따라 벌떡 일어나곤 했다. 아마도 새벽 네다섯시나 되었던 것 같다.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면 아버지는 논밭에 줄 똥장군을 짊어지고 아니면 소를 몰고 , 나는 집안 가축 중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서 우는 얌생이(염소)를 몰고 따라 나섰다. 그런 습관 때문에 나는 남들이 잠자는 사이에 아침 일찍 우는 온갖 잡새들의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 때 듣곤 했던 꿩과 때까치, 섬휘파람새, 직박구리, 동박새, 팔색조 등의 너무나 맑고 아름다운 울음소리가 50이 훨씬 넘은 지금도 귓속에 들리곤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곤 했던 나의 습관 탓에 늦잠꾸러기 우리 외사촌형은 나를 '얌생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어릴 적 그때의 생활습관이 몸에 배어 새벽 일찍 눈을 뜨곤 한다. 그렇게 일찍 일어나 하루의 일할 스케줄을 세우고, 산과 들에 가서 노래하는 새소리를 녹음하고, 또 새들의 활동과 행동을 연구하다 보니 자연히 조류연구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창비 웹매거진/2002/8] |
첫댓글 평생 한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넹^^ 가끔 딸아이가 윤무부 선생님이 출연하셨던 몰래카메라 얘기를 해서 우리끼리 많이 웃곤 했는데, 너무 순진하시더라, 새에 관해선 굉장히 아는 게 많고 예민하시더라, 어떤 부분에서 몰라도 넘 모르시더라 등, 한 길만 꾸준히 걷는 분들의 특징에 대해 속닥속닥^^
카페 분들은 모두
과 더불어 사시는 분들...... 몇몇은 미쳐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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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두 분 글 너무 재미있사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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