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물을 지고 나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늘 같은 길을 오가며 물을 날랐다. 어느 날 문득 그는 보았다. 자신이 오간 길의 한쪽 편에만 소박한 들꽃들이 옹기종기 줄을 지어 피어 있는 것을. 다른 편에는 팍팍한 흙먼지만 일고 있는데. 그는 알게 되었다. 자신이 지고 다닌 물동이 중 하나에 금이 가서 길을 오가는 동안 계속 물이 새어 나와 땅을 적시고, 이곳저곳에서 날아 들어온 꽃씨들을 그 촉촉해진 땅에 앉게 하여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게 했다는 것을. 또한 그는 보게 되었다. 아무런 손상 없는 매끄러운 물동이 쪽의 길은 푸석하고 메마른 흙덩이 그대로라는 것을.
제가 전남편을 만나러 가는 두려운 발걸음에 용기를 북돋워 주시려는 분들의 기도 빚이 큽니다. 기도 빚뿐 아니라 밥 빚도 적잖습니다. '돈 빚'도 지우려는 분들께는 정말이지 마음만 받겠습니다. 설마 여비 마련도 않고 그 먼 길을 가겠습니까.
여비라고 하니, 2년 전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하신 분이, 동행해 줘서 고맙다고 주신 호주 돈 1000달러(약 100만원)를 보태 쓰려고 합니다. 그 돈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제 집안 일이라지만 남편과의 관계 회복과 가족 치유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생명을 살리는 후원금'이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고인도 좋은 일에 썼다고 하실 것 같아요.
그분이 그러셨지요. 본인의 안락사를 책으로 내서 제가 돈을 좀 벌 수 있었으면 한다고요. 돈을 벌려고 책을 낸 건 아니지만, 고인이 될 분의 부탁(자신의 마지막을 기록으로 남겨 달라는)을 거절할 수 없어 낸 책이 아닌 게 아니라 좀 팔렸습니다. 지금까지의 인세로 호주행 경비를 충당하고, 그밖에 사람 살리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그분의 조력자살을 말리지 못했던 것이 제게는 죄책감의 멍울로 남아 있습니다. 독자라는 인연으로 만났지만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석달, 개인적으로 가까워졌을 때 이른바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 안타깝습니다. 내 쪽에서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더 많이 대화하면서 마음을 돌이킬 '시간 벌기'를 해 볼 수도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 인거죠.
이제 와서 후회해 본들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때 못했던 노력을 스위스 조력사를 택하려는 또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쏟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더 이상은 이대로 떠나보낼 수 없다는 각오로.
그분과의 4박5일 동행기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를 읽었다며 자기와도 스위스에 함께 가달라는 메일을 받곤 하니까요. 제 독자 중에도 한 분 계시죠. 지난 1월, 저와 함께 JTBC 조력사 관련 방송 '존엄한 죽음 VS 방조된 자살'에 출연하셨던.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저자신아연출판책과나무발매2022.08.26.
이야기가 옆으로 샜네요.
어제는 한국에서 제가 감옥생활, 크리스천들의 표현으로 하자면 '광야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이 글 머리에 쓴 "평생 물을 지고 나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늘 같은 길을 오가며 물을 날랐다. 어느 날 문득 그는 보았다..."를 제게 말씀해 주신 분을 만났습니다.
돌아보면 이 우화를 붙잡고 지난 10년을 버텨온 것 같습니다. 저는 비록 '금이 간 물동이'지만, 그 틈 사이로 흘러내린 물로 인해 제가 이렇게 여러분들과 소통하고, 맘 아픈 사람들, 삶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자잘한 글꽃을 피우고 있으니까요.
이 이야기를 제게 들려 주신 분은 두란노 아버지학교 김성묵 (전)국제운동본부 본부장이십니다. 영치금 넣듯이 김 장로님은 제게 '영치언(言)'을 주셨던 거지요. 어제 이분이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부인 되시는 두란노 어머니학교 운동본부장 한은경 권사님도 함께요.
호주에서 벌어질 '영적 전쟁'을 앞둔 저를 두 분께서 특별히 격려하시고, 맛난 점심을 사주시고, 깊게 기도해 주셨습니다. 두 분께서 혈육보다 더한 따스함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고난이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고난이 '의미의 옷'을 입고 고통 중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옷깃을, 옷자락을 스칠 수 있을 때일 것입니다. 그 짐에 공감하고, 그 짐을 나누고, 함께 가자며 다독일 수 있을 때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제 인생이 매끈한 물동이가 아닌 것에 오히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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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자로서는 큰 결단이겠죠. 결혼할 때 인생을 걸었듯이요 그나마 그때는 좋은 감정 하나만 가지고 모든 걸 걸었는데 ... 지금 생각하면 도박 같아요. 작가님은 이제 하늘에 구름이 걷히는 파란 꿈 보다는 또다른 꿈일까요 ?
한 세상이 지나가고 또 다른 세상이 열린 것 같습니다, 제겐. 아무것도 몰랐기에 혹독히 고생했고, 그 쓰디쓴 결과를 받아들이며, 이제 주님 만나 새 삶을 시작합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을 따라 비상합니다. 그것이 제 꿈인지, 저를 향한 주님의 꿈인지 구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행복에서 의미로, 성공에서 승리로 !!!!
네, 그것이 진정한 삶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