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무대는 농가의 대청마루 바라보는 늦은 저녁 앞마당이다.
왼쪽 면에 안방이 있고, 정면은 마당건너 마루, 오른쪽으로 우물이다. 장치막으로 구름 깔린 산 전경이 무대를 꽉 차게 펼쳐있다.
극의 도입은 이불 속에 아이들이 엄마와 잠들어 있고 어머니가 불편한 듯 방에서 마루로 나온다. 어머니는 마른기침을 계속한다. 아들이 잠에서 깨여 마루로 나온다.
아들- 엄니. 기침이 그치지 않네요, 청이라도 올릴까요?
엄니- 아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처 오르는데 나을 병이 아니구먼.
아들아 지금이 음력으로 언제이냐?
아들- 곧 음력으로 8월, 금년 추수가 시작되지요.
엄니- 서리가 내리려면 두 어달 걸리겠지?
1분정도 적막이 흐른다.
엄니- 아들아 , 나 올 첫 눈이 내리기 전에 산에 오르고 싶구나.
아들- 엄니 무슨 말씀이셔요, 아직 노인소리 들으려면 한참 남았어요, 그런 말씀 마셔요.
엄니- 아니다,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도 부끄럽고 식구들 먹을 것도 없는데 날 살린다고 어멈이 고생이다, 살만큼 살았고. 영감 곁으로 가고 싶구나.
아들과 엄니는 서로를 붙들고 흐느끼는 잔영으로 무대 조명이 어두워진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은 망태를 둘러매고 들로 나서고 며느리는 창고에서 옥수수와
누룩가루를 내온다. 아들은 가마솥을 고이고 물이 담고 불을 지핀다.
준비가 다된 것을 마루에서 지켜보던 엄니는 손짓을 한다. 어훠 어휘이 알아서 할 터이니 일 나가란 뜻이다. 며느리는 방구리를 이고 아들은 연장을 챙겨들고 집을 나선다. 무대 왼쪽으로 나가며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듯 몇 번이나 돌아본다. 무대를 어둡게 한 상태에서 막을 내리지 않고 술 담그는 장면으로 전환한다.
엄니는 옥수수를 물에 풀어 조리로 건져낸다. 솟에 옥수수를 안치고 누룩가루를 물에 푼다. 이 과정에 엄니의 속풀이가 시작된다.
술담아라 술 익어라
땅 지신 하늘 천신
에헤야 데헤야
구름타고 어서 가자
찬바람 언제 불랴
상강이 내일 모래
어허야 여라 난다
기다리지 못하 나니
술거르고 전 부치니
지금이 아니든가
에헤요 에이 디라 .
입동전에 가자 꾸나
반짝 볏 가을 훈풍
엿기름 나풀 대니
에헤야 데헤야
이승술이 찰랑 찰랑
정든 님 기다 릴까
갈피갈피 맺힌 설움
여라난다 얼싸 디여라
그리울며 술을 빗네
에헤야 데헤야
에헤야 데헤야
새 장면으로 엄니와 며느리는 음식을 준비하고 아들은 멍석 깔고 평상을 놓는다. 아이들은 신이 나는지 이리저리 논다. 이어 동내사람들이 하나 둘 모인다. 몇몇 손님은 선물을 들고 온다.
아들은 술을 나르고 따르고 잔치 분위기를 띄운다. 시끌 시끌 동내 분들의 한담과 탄식이 터져 나온다.
아들- 어르신, 아저씨, 아주머니 농사가 바쁜데도 이리 모여 주셔서 감사 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오늘 이 자리에 모신 것은 우리 엄니 뜻 입니다. 그간 우리 가족 보살펴 주심을 감사하는 자리이오니 차린 것은 없으나 어머님의 정성으로 빗은 술과 떡을 준비 했습니다. 맛나게 드셔요.
아들의 인사말을 받아 여기저기서 감사 말이 울린다. 술과 음식이 돈다.
흥이 돋고 인생살이 노래판이 벌어진다.
1장 후렴은 청중 선수가 다 같이 타령은 선수가 부른다.
2장은 역으로 후렴을 선수가 메기면 여러 사람이 받는 형식으로 청중이 극의 형태에 맞추어 연기와 함께 창(唱)을 부른다.
에루화 좋다 영화로구나
푸른바다 깊은 물엔
용왕님이 살고 있고
우리동네 효자 골엔
풍년꿈이 청청 이네
에루화 좋다 영화로구나
세상만사 부잡 다만
아침이면 싹이 솟고
비가오면 풍년 될세.
눈내리면 잊는 다네
에루화 좋다 영화로구나
발그레한 저녁 노을
밥이끓는 그림 일세
보석같은 우리 아가
목화솜에 잠이 드네
에루화 좋다 영화로구나
오뉴월의 땡볕 가림
엄니치마 너울 일세
거친바람 모진 겨울
고삿엄니 그리 워라
에루화 좋다 영화로구나
내리사랑 온만 사랑
거룩사랑 구름 같네
세월가도 끝이 없어
상화님만 모를 레라
에루화 좋다 영화로구나
노래가 끝나가며 조명이 어두워진다.
다음날아침 식사시간이다 . 식구들은 안방에서 식사를 하고 마루 건너 창고로 거처를 옮긴 어머니의 식사는 밥 반 사발 물 한 그릇이다.
다음 식사시간이다 . 식구들은 안방에서 식사를 하고 마루 건너 창고 방 어머니의 식사는 죽 반 사발이다.
다음 식사시간이다 . 식구들은 안방에서 식사를 하고 마루 건너 창고 방 어머니는 아예 곡기를 끝 는다. 엄니는 산발에 거의 귀신 형상이다.
2분 적막 후에 새벽이 밝아온다.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 길 떠나자고 한다. 아들은 지개를 내와 짚방석을 깔고 어머니를 올린다. 며느리가 물병과 음식을 담은 보퉁이를 지게에 올린다.
엄니- 아들아 어이 나서자꾸나. 서봉산이 예서 사십리 길인데 돌아 갈려면 또 사십리 아니냐?
아들은 눈물을 훔치며 지개를 지고 나선다. 엄니는 집을 바라보며 조명이 서서히 꺼진다.
무대는 전면 집과 마당의 막이 걷히고 뒷 편 산 그림을 배경으로 엄니와 아들의 여정이 시작 된다.
엄니- 아들아 무겁지? 힘들까보아 몇 날을 걸렀건만 그래도 무겁지? 미안 하구나.
아들- 미안하긴요, 그런 말씀 마셔요. 저를 낳고 키우신다고 손자손녀까지 키우신다고 힘이든 것에 비하면 일도 아니지요.
바람이 불며 낙옆까지 휘날린다. 엄니와 아들은 무대 중앙부터 산길을 오른다.
이어 첫 눈이 서서히 내리기 시작한다.
엄니- 아들아 물병과 먹을 것을 내리자꾸나. 아들이 돌아 내려오며 먹도록 해라. 갈 길이 바쁘구나. 눈이 잦아 길이 점점 험해지는구나.
엄니는 무대 우편 경사지 바위를 가리키며 이쯤이면 된 것 같다며 내리자는 표시를 한다.
엄니- 아들아 수고 했다. 이만 돌아가게나.
아들은 바위 아래 낙옆을 모으고 지게에 깐 짚을 올린다. 낫으로 솔가지를 쳐 바람막이를 두른다. 엄니는 다 됐으니 어이 가라고 손 흔든다.
마지막으로 아들은 입은 개가죽 조끼를 엄니께 입히고 옷 춤에 넣어두었던 주먹밥과 호리병을 엄니께 드린다.
아들- 엄니께 드리는 마지막 식사입니다. 천천히 꼭 꼭 씹어 드셔요.
엄니는 어이 가라고 손짓이다.
날씨는 점점 험해진다. 까마귀 울움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엄니와 마지막 포옹 후 아들은 울며 산을 내려간다.
잠시 전체 조명이 꺼진 후 엄니가 앉아 있는 곳을 조명이 밝아진다.
눈이 어깨위로 조금씩 쌓인다.
어머님의 여한가(餘恨歌)가 시작 되다.
가을깊어 술을 빗고
동내방네 환송 받고
꿈에그린 정든 내님
낭군님을 만나 네요
새상떠난 그해 여름
눈물젖어 살았 구려
새록새록 슬픔 세월
나이들어 알았 다오
밭도매고 손자보며
밤새도록 베틀 밡고
손이붓고 발절 어도
밤새도록 그리 웠소
꿈속에서 보여 지는
우리서방 정든 내님
아들효심 지게 딛고
당신곁에 가렴 나니
회색하늘 저편 넘어
아름답고 따뜻 한곳
이별없는 천상 세상
무능도원 영원 세상
그리운님 만나 려고
저승길을 나섰 다오
길못찾아 허둥이면
청명등을 높여 주오
눈바람에 몸은 점점
스러지고 힘듬 니다
구름날개 펄럭 이며
나를안고 날아 주오
엄니는 점점 눈에 덮여 쓰러지며 조명 불빛이 점점 어두워지며 무대도 점점 어두워진다. 조명이 완전히 꺼지며 다리막이 내려진다.
- 희철은 엄니의 속풀이, 방훈은 인생살이 노래판 ,정화는 엄니 여한가 곡(曲)을 부탁드리며
2021년 4월27일 극본 안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