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기' 프로그램은 타인에게 나를 설명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자기를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나의 학력-인생대학 부모박복과 심화과정 수료.
필수 과목-불안. 불안 속의 안정 추구
가장 극단적 테러는 자살 폭탄이다.
위험을 벌이는 쪽은 아예 애초부터 안전이라는 것이 없다.
그들에게 안전이 있다면 절망 속의 안전일 뿐이다.
절망이 주는 안전이라니? 세상에 그런 것도 있는가 싶을 것이다.
절망이 주는 안전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바탕이다.
10, 20대 나는 한 때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라는 생각 하나로 살았던 때가 있었다.
희망이 없기 때문에 불안도 없는 것이다.
그 시절 삶의 키워드는 행복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월남에서 일병에서 상병으로 진급해야할 달에 중대 서무계가 진급해서 봉급에서 오른 부분을 부관부 사병계에게 주어야 한다고 정보를 제공(?) 했다. 내가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더니 서무계는 "너 그러면 끝까지 진급 못해." 라고 했다. 설마 그럴 수가 있을까 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월급이 오르지 않아 손해를 볼지언정 이런 흐름에 따라서 흘러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월남전에서 미미한 전투 경험이 있다. 합리적인 전쟁은 없다. 전쟁에서는 지면 죽는 것이다.
그런데 흔히 전장에 대한 오해가 있다. 죽음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전선에서 최선의 방법은 용감함이 아니라 냉정함이다.
즉 현상학적 시각이다.
목회자들의 공통점. 개교회주의인 한국 교회 구조는 순수자영업임으로 목회는 생계형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목회자의 삶은 위선적 성격을 내포할 수 밖에 없다.
40대 10년 동안 부천에서 빈민 노동자 민주 재야세력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동안 직업적으로 옳은 편에 서야만 했었다.
그러나 부끄러워 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밖으로 알려지기에 꺼려질만한 공권력과의 타협과 협상을 해야할 일도 있었다.
교단 안에서는 미운 오리새끼의 고독을 느껴야 했다. 보수교단 출신이라 지원 받는 곳이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후원에 의지해서만 살 수 있었다.
그 결과 50대에 들어서 생존의 한계에서 이민 아닌 유민을 갔고 시드니에서 15년간 택시 운전을 했다.
부가적인 일로 시드니 진보사회를 돌보는 역할과 복지단체를 운영했다. 뉴스공장 런종섭 취제.
70대에 들어서 전립선 암에 당첨 되어 고엽제후유증 상이연금으로 노후를 보장 받고 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항상 간극이 있다. 사람 가운데는 눈 앞의 현실 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상은 구름 위에 있는데 현실은 코 앞이 싱크홀인 사람도 있다. 실재를 파악 하는 것 최우선이다. 나는 삶에서 성경 보다는 현상학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은 마치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 같이 양순해야 한다.”(마태10:16)
예수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양과 이리는 정반대의 품성을 가진 동물이다. 뱀과 비둘기 역시 속성이 전혀 반대되는 생물이다. 그런데 예수는 이리떼 사이에서 사는 양을 보고 뱀같이 살기도 하고 비둘기 같이 살기도 하라니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가 세상이 본질을 꿰뚫어 보신 까닭에 내릴 수 있었던 가장 정확한 처방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순서가 문제다 . 비둘기 같은 순결이 먼저가 아니고 뱀 같은 지혜가 먼저다. 현상학적인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극도의 슬픔, 극도의 고통, 극도의 분노 앞에서도 냉정함을 찾을 줄 아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운 현상학적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