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해다창 제작 상표 ‘대익패’. |
|
중국다엽총공사의 상표 ‘중차패’ |
대익패(大益牌, 패(牌)는 상표를 의미함)는 맹해다창에서 직접 제작한 자사의 상표다. 대익의 의미는 윈난 대엽차수를 가리키는 대(大)자와 보이차를 마시면 건강에 유익(有益)해진다는 익(益)자를 합친 것이다. 맹해다창은 1950년 무렵부터 수출을 위해 찻잎의 거래를 전매공사화하였기 때문에, 국영 무역회사의 상표인 ‘중차패(中茶牌)’의 디자인으로 해외에 판매를 해왔다. 그리고 1990년 말까지는 대부분이 중차패로 상표를 붙여 판매를 하였다.
다시 말해 중차패는 중국 국영무역회사인 중국다엽총공사의 상표이다. 보이병차의 포장지에 자주 인쇄되고 있는 ‘중국다엽토산진출구공사윈난다엽분공사(中國茶葉土産進出口公司雲南茶葉分公司)’는 그 공사의 지점에 해당한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중순까지, 이 국영 무역회사가 윈난의 차에 관한 수출권을 가지고 있어 차 메이커들은 자유롭게 수출 판매를 할 수 없었다. 1980년대 말 무렵부터 중국 국내 시장 전용의 판매 준비를 시작하면서, 해외수출 전용과는 별도로 자사의 메이커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맹해다창은 ‘대익’상표를 붙이기 시작했는데, 1988년에 한 번만 벽돌형의 전차에 상표를 사용했다.
이후 1989년 6월에는 대익패가 맹해다창의 수출용 상표로 인정을 받았으며, 1994년에는 대익패 상표를 붙인 칠자병차의 생산을 개시하면서 맹해다창의 민영화를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1996년에는 서쌍판납맹해다업유한책임공사를 창업하고 자사 판매를 시작한다. 1999년에는 맹해다창이 독자적으로 차 상인들로부터 대익패에 대한 주문을 받기 시작하면서 상품의 규격이나 포장지 등을 다양화한다. 그리고 2002년에는 맹해다창은 중차패로의 판매를 종료하고, 모두 대익패로 판매를 시작한다.
대익패의 상표 디자인은 제조 연대나 제품마다 미묘한 변화를 주어왔다. 이것은 포장지의 카피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서다. 다만 요즘은 차 상인들의 개인적 성향이 가미된 대익상표의 주문이 많기 때문에,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대익마크의 모든 것이 문헌에 기록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카피 방지의 역할은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
은대익청병03년 |
맹해다창에서 생산한 은대익청병(銀大益靑餠03年)은 2003년에 출시된 것으로, 대만의 차 상인인 비대공사(飛台公司)가 주문한 것 중 하나다. 2004년 여름부터는 맹해다창의 민영화가 확정되었으므로 2003년은 국영 다창으로서의 마지막 차를 만들었던 것이다. 맹해다창은 2004년 민영화를 시작한 이후 대익패의 디자인이 통일된다. 카피에 대한 대책은 포장지의 디자인뿐 아니라, 포장지의 실(seal)이나 내비(찻잎에 파묻힌 종이) 등 여러 가지를 도입한다. 그렇지만 2004년 이후 만들어지는 대익 상표의 제품 대부분이 중국 국내 시장으로 유통되면서 대중색이 강한 상품이 되었기 때문에, 일부러 카피할 정도의 가치를 없애고 있다 할 것이다. 철학박사
[이 기사는 영남일보의 기사입니다.
문제가 된다면 언제든 삭제할 수 있음을 먼저 알려 드립니다.
또한, 본 기사의 내용은 호암다도 카페의 운영 원칙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단지, 보이차에 대한 정보를 걸르지 않고 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대로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