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작고 독립적이고 부서지기 쉬운 캔버스, 네일.카리스마 넘치는 블랙의 가을과 반짝이는 큐빅의 계절 겨울을 맞아 이 연약한 캔버스 또한 한층 대범하고 글래머러스해졌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 파리 출장 전날, 앞당겨진 촬영 일자와 기사 섭외로 허덕이면서도 무성한 큐티클과 드 문드문 벗겨진 매니큐어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허겁지겁 달려간 네일 숍, 매니큐어가 발린 채 자라난 발톱을 보며 “조금만 더 있으면 프렌치 가 되겠어요”라는 네일리스트의 핀잔을 귓등으로 흘리며 푹신한 의자 에 몸을 담그고 손과 발을 내밀었다. ‘이게 여자의 행복이야!’ 그래, 나 는 옛날부터 네일 아트를 사랑했다. 투명 네일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학창 시절 소녀는 버퍼로 손톱을 열심히 문질러 광을 내고, 방학이면 사촌언니의 매니큐어를 슬쩍 해 열 손가락을 각기 다른 색깔로 바르며 즐거워했다. 에나멜이 채 마르기도 전에 텔레비전 리모콘을 누르거나 화장실에서 팬티 스타킹을 올리다 콕! 하고 찍히는 날엔 2시간의 노력 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교 훈을 배운 것도 그 시절이다. 대국민 프로젝트였던 88서울 올림픽의 베스트 신 또한 감동의 개막식도, 벤 존슨과 칼 루이스의 세기의 대결 이 아닌, 원색적인 레드,골드,실버 컬러와 큐빅, 반짝이 테이프 등으 로 화려하게 장식한 전설의 스프린터 그리피스 조이너의 길다란 손톱 이었을 정도다. 당시에는 기괴하다 말들도 많았지만 네일 아트에 대한 인식은 불과 몇 년 사이 놀랄 만큼 변해 지금은 등본을 건네는 동사무 소 직원의 손에서도 목격할 정도다.
2년 전 내추럴한 네일 아트가 가장 아름답다 했던 네일리스트 최진순(뉴욕에서 3개의 네일 스파를 경영 하며 프라다, 돌체 앤 가바나, 로레알 ,레블론, 메이블린 등의 광고를 맡았고, 사라 제시커 파커, 린제이 로한, 제니퍼 로페즈 등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은 몇 년 사이 꽤 많은 것이 변했다고 말한다. “여자들은 누드톤의 내추럴 컬러 대신 셀레브리티나 패션쇼 모델들이 바르 던 컬러를 대범하게 선택하기 시작했어요. 네이비, 블랙, 딥 퍼플 같은 걸 말이죠. 어차피 네일은 문신이 아니잖아요. 보다 대범하게 즐기자구요.” 그녀와 M.A.C이 올가을 콜라보레이션으로 탄생시 킨 차가운 라벤더, 다크 그린, 딥 에스프레소 등의 네일 컬러는 에 지 있으면서도 매일 사용해도 무리가 없는 굿 컬렉션! 그야말로 공 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레어 아이템이 됐다. 그래서 이날 내 네일 컬러는 그녀의 조언에 힘을 얻어 브라운 골드와 퍼플 컬러가 감도는 블랙 컬러로 결정했다! 아름답게 치장 된 10개의 완성본은 박시한 후드티에 레깅스를 걸친 남루한 현실 에서 나를 구제해 블랙 발맹 재킷, 록 시크 데님 팬츠에 이브 생 로 랑의 스틸레토를 신은 듯한 자신감을 선사했다. 분명 이 하드코어 적인 네일 컬러는 베이지 혹은 다크 그레이 컬러의 풍성한 캐시미 어 니트에 웬만한 액세서리보다 멋스러운 포인트가 될 것이고, 피 트되는 가죽 재킷, 모던한 무광 실버 스팽글 장식의 블랙 원피스와 도 금상첨화일 것이다. 어느새 턱은 슬쩍 하늘을 향하고 손가락은 부채처럼 나풀거리며 네일 살롱을 빠져 나오는 나는 1시간 전과 전혀 다른 여자다.
네일 아트를 위한 우리 여자들의 투자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 다. 노란 날개 잠자리가 날아오르고, 꽃밭에는 키티와 곰돌이가 활 짝 웃고 있다. 조막만한 오렌지, 사과와 함께 반짝이고 있는 것은 크리스털 조각…. 동화 속 한 장면이 아니라 얼마전 만난 홍보 담 당자의 네일 장식 얘기다. 더 신기한 건 이 모든 장식이 손톱 위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코팅된 듯 손톱 안에 가둬져 있다는 것! 그녀가 시도한 건 젤 네일 아트. 팁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손톱> 위에 원하는 길이만큼 젤을 발라 덮은 후 UV 램프로 도자기 굽듯 굽는다(물론 뜨겁지 않다!). 팁을 붙일 때의 강한 본드 냄새에서 해 방될 수 있고, 팁처럼 들뜨지 않아 자신의 손톱인 양 훨씬 자연스 러운 것이 장점. 심지어 그 모양 그대로 한 달에서 한 달 보름 동안 유지된다니 놀랍지 않은가! 열을 이용해 붙이는 투명 판박이인 밍 크스(Minx)는 또 어떤가. 해외 스타들을 중심으로 핫 이슈로 떠오 르고 있는 밍크스 덕분에 리한나의 손톱에는 밥 말리가, 비욘세의 손톱에는 오바마가 장식됐다.
쥬세페 자노티 슈즈에서 볼 수 있는 〈보그〉 화보 속 지퍼무늬는 물론, 야성적인 지브라, 하늘거리는 레 이스, 버버리의 체크무늬까지 이 작은 캔버스 위에 표현할 수 없는 불가능이란 이제 없어 보인다. 네일 아트가 이처럼 점점 대범하고 화려해지는 이유는 뭘까? 웨스트 할리우드에 위치한 익스트림디스의 나자 그린(레이디 가 가와 퍼기를 담당하는)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트렌 디해지고 싶지만 백을 살 돈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우리 몸의 작고 독립적인 캔버스, 손톱을 장 식하는 거죠. 네일 아트는 4천 달러짜리 백이 표현했던 것을 대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네일 아트만큼 가격대비 효과적인 치장 도 없다. 네일 살롱이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면 거리 곳곳에서 판 매하는 1천원부터 시작하는 네일 에나멜로 대체하면 그만이다. 요 는 본인의 시간과 노력! 단, 주의할 점은 대한민국의 세련된 여인 들은 지나치게 긴 길이와 큐빅, 온갖 데커레이션으로 손톱 위를 너 무 휘황찬란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
청담동에 위치한 네일 살롱 키예레의 최현영 팀장은 “길지 않은 손톱, 딥한 컬러, 텍스처는 매 트 혹은 시어한 느낌”이 대세라고 일러준다. 그렇지만 네일 아트에 푹 빠져 시시각각 손톱을 치장했다가는 ‘약한 손톱이 너덜너덜해질 것’이라는 〈보그〉편집장의 경험에서 우러난 경고에도 귀 기울일 것! 젤, 팁, 컬러 순으로 손톱은 심하게 상처를 입는다. 그러니 〈뷰티 마니아〉의 저자 안노 모요코의 조언 처럼 한 달에 한 주 정도는 ‘자연 손톱의 주간’을 지정하는 것도 현 명한 아이디어일 듯! 매니큐어를 지우고 오일로 마사지를 하고 손 톱에 무한 자유를 주는 것. 이런 여자들의 근심 어린 마음을 읽었 는지 최근 반디 네일에서는 DBP, 톨루엔 등 손톱을 상하게 하는 유해 성분을 제외한 유기농(물론 화학 제품이 전혀 사용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네일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실 호사스러운 손톱은 호사스러운 생활의 표상이다. “네일 아트가 망가질까 봐 설거지도 청소도 못하겠어.” “네일 때문에 그 런데 신발끈 좀 묶어주겠어?” 내 남자에게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여자의 특권 아닐까? 잔혹한 다크 서클과 스트레스로 올라 온 뾰루지는 거울만 안 보면 그만이지만, 손은 무시하려 해도 안 쳐 다볼 수가 없다. 그렇기에 지저분한 손톱만큼 짜증스럽고 어깨를 처지게 하는 것도, 완벽한 손톱만큼 기분 전환이 되고 자기 만족이 높은 것도 없다는 말씀! 지금 이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내 손톱은 아주 짧고(자판 치기 편하도록!) 대충 바른 짙은 보라, 초콜릿, 겨자 색 컬러로 그야말로 엉망이다. 그러나 마감이 끝난 후에는 나자 그 린이 “이젠 역사 책에나 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끝이 각진 긴 사 각형 아크릴 손톱에서 벗어나 매혹적인 타원형 손톱으로 변신한 후, 뉴욕 매니큐어리스트 사이에 열렬한 지지를 얻고 있는 리버스 프렌치(손톱 뿌리 부분의 반달은 전복색이고 나머지는 홍학색)를 시도할 것이다. 문득 어머니가 딸의 안락한 미래를 위해 늘 하던 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여자는 손이 고와야 대접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