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포항바다문학제 우수상
축항 사람들 / 김철순
해 지난 파래가 흰 꽃처럼 나풀거린다. 셔터가 한 컷을 건져 올릴 때마다 겨울 바다는 시샘하듯 내 종아리로 짠물을 퍼 던진다. 성큼 뒷걸음으로 물러서다 빠지직 밟히는 소리에 내려다보니 반들거리는 홍합무리가 방파제를 오지게 붙잡고 있다.
한때 형산강과 송도 바다가 만나는 곳에 방파제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축항이라 불렀다. 그 위로 횟집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붉고 푸른 천막촌이 이어졌다. 해수면과 같은 천막촌은 물 위에 떠 있는 수상가옥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싱싱한 회 맛도 볼 겸, 좁은 축항 길을 누비며 이 색다른 풍경을 즐겼다. 축항은 파도와 싸우는 바다 사람들 쉼터이고 철강 공단 노동자가 푸념을 늘어놓으며 재충전을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햇살이 좋은 아침이면 자주 축항을 찾았다. 부산한 아침을 여는 천막촌은 갯내음이 진동했다. 골 깊은 천막 안길을 벗어나면 확 트인 바다가 보였다. 밤새 정박한 오징어 배들이 수평선에서 넘실대고 낚시꾼들은 물 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축항은 거친 삶을 사는 사람들의 터전이지만, 그런 풍경이 내게는 꽤 낭만적으로 보였다.
“어디서 왔수?’
숙이네 간판을 건 여주인이 퉁명스럽다. 통이 넘칠 듯 맴도는 뱀장어를 구경하는 내게, 생선 거품을 걷어내던 그의 심통스런 볼이 실룩거렸다. 아침 댓바람부터 낯선 여자가 남의 가게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게 불쾌했나 보다. 주인의 얼굴이 붉은 천막에 비쳐 환해졌다.
“아지매 참 곱습니다, 싱싱한 생선을 드셔서 그런가 봐요.”
“이제 쪼그라져 볼 게 있나, 젊을 때는 한가락 했제.”
숙이네는 예쁘다는 말에 금방 밝아졌다. 간간이 축항을 찾으면서 그녀는 내 사진 속으로 들어왔다. 손님이 뜸한 날은 줄담배를 피우며 아픈 속내를 털어놓았다. 어느 해 태풍이 삼킬 듯 덤비던 날, 강물에 쓸려 가버린 아들에 대한 쓰라림과 그 괴로움에 행방 없이 떠나버린 남편을 원망했다. 소주라도 걸치는 날이면 ‘죄 많은 내 청춘아.’하고 한 맺힌 한가락을 뽑았다. 그럴 때면 축항에 이는 물결도 유난히 훌쩍였다.
가끔 어깃장을 놓는 손님에게 거친 욕설을 퍼부어 대기도 했지만, 속내는 여리기로 소문이 난 숙이네였다. 그해 여름 태풍에 기우뚱거리던 옆집 용이네 가게가 폭삭 무너져 내렸다. 숙이네는 제집 문을 닫고 망연해 하는 용이네를 다독이며 매운 솜씨로 간이 가게까지 만들어 주었다. 다시 문을 연 두 집의 도마 소리는 날아갈 듯 경쾌했다. 삶은 짠물에 절어 악다구니 같지만, 심성은 봄볕이었다. 이른 아침에 들르는 내게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꼭 건넸다.
부초처럼 떠돌다 축항에 정착한 용이네도 큰 몸집만큼 화끈한 성품이었다. 마음에 드는 손님이면 생선회를 듬뿍 올리고 구수한 입담을 풀어내어 단골이 많았다. 타고난 걸쭉한 목소리로 육자배기를 뽑으면 천막도 신들린 듯 흔들었다. 지금은 사라진 달봉섬과 명사 오십 리 추억담을 해장 소주에 풀어내는 칠순노인의 쓸쓸함까지 받아주는 용이네였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축항의 삶이기에 갓 데친 오징어를 덤으로 올리며 맞장구를 쳤는지 모른다. 바위에 붙은 홍합처럼 축항과는 떨어질 수 없는 숙이와 용이네 삶이었다.
한여름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고 나면 헐거워진 축대와 헤진 천막이 너불거렸다. 천막촌 사람들은 한마음이 되어 다듬고 꿰매어 새 단장을 했다. 축항이 그대로 있는 한 생계를 이어가는데 큰 걱정이 없었다. 한바탕 쓸고 간 헤진 자리는 아침 바다에서 올라오는 펄떡이는 생선들과 단골처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 금방 메워졌다. 활기찬 소리는 늘 살아있었다.
방파제도 더는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축항에 사는 민초들은 개발의 파도를 피할 수는 없었다. 동빈 운하를 건설하고 송도를 새로운 명소로 만드는데 축항이 걸림돌이 되어 천막촌을 철거한다고 했다. 어느 것 한자리에 머물지 않듯 바위에 붙은 따개비 같은 악착스런 삶도 세상의 파도에 밀려 어디론가 떠나야 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축강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면 살길이 없다고 아우성이었다. 화면을 고정하고 보았지만, 숙이네와 용이네의 얼굴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부표처럼 떠도는 인생이었기에 언젠가는 밀려날 운명이었으리라.
다시 찾은 축강은 썰물이 지나간 자리처럼 미끈하였다. 천막 옷이 벗겨진 자리에 녹슨 철근이 심지처럼 박혀있다. 힘 좋은 일꾼들도 뽑아내지 못한 깊은 상흔들이다. 철벙대던 생선도 어부들 굵은 팔뚝과 노동자의 워커 소리, 축강사람의 푸념 소리까지 사라졌다. 도시의 새 물결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겠지만, 파도만 그들의 미련인 양 목을 빼고 오르내리며 철썩거린다.
사진 속의 천막촌 골목길을 컴퓨터 화면으로 옮겨왔다 확대된 화면에서 축항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펄쩍 뛰는 숭어를 두 손으로 잡고 활짝 웃는 숙이네 뻐드렁니, 한쪽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는 용이네, 천막촌 안길에 바쁘던 도마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다들 어디로 떠났을까. 어느 시장통에서 혹은 어느 골목에서 그들은 땅을 부여잡고 살고 있겠지. 그들과 헤어졌지만, 기억은 내 사진 속에 오래도록 천연색으로 살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