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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9:18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는 동화 속 결말처럼 노아의 인생이야기가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창세기 9장 후반부는 방주에서 나온 이후 노아와 그 아들들의 삶의 기록입니다. 이전과 달라진 의인 노아만 아니라,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세 아들의 행보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세 아들로부터 인류가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불과 8 명이었지만,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사방에 퍼졌다는 것은 번성의 축복이며 명령의 성취입니다.
How I wish Noah's life story had ended like the ending in a fairy tale. The second half of Genesis 9 is the account of Noah and his sons' life after coming out of the ark. It introduces not only Noah, a changed righteous man, but also the actions of his three sons that have never been seen before. Humanity began to flourish from their three sons. Only eight survived, but having people everywhere from these three sons is a blessing of prosperity and fulfillment of or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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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들에게 어쩌면 각각 어린 자녀들이 있었는데 승선 명단에서는 기록하지 않았을 지도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노아와 그의 세 아들이 모두 연루된 사건이라는 겁니다. 노아는 홍수가 끝난 후 포도나무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6:9)노아가 술과 동행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의인이며 완전했던 노아가 벌거벗은 수치의 나신으로 드러날 만큼 만취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홍수 전 모습으로 돌아간 노아의 모습(마24:38,39)을 의도했을지 모릅니다.
We don't know if each of the sons had a small child, which he would not have taken down on the list. What's important is that Noah and his three sons were all involved. After the flood, Noah became a vineyard farmer. Noah, who was accompanied by God (6:9), was accompanied by alcohol. Noah, who was righteous and complete, was intoxicated enough to turn out to be a naked nassal. Why? The author may have intended the image of Noah back to his pre-flood days (Ma. 24:38,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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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누워있는 노아를 맨 먼저 본 사람은 가나안의 아비 함이었어요. 함이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22c)“했습니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허물을 가만히 덮어주었어요. 그리고 술에서 깨어난 노아가 함을 저주하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유대인들은 기념식 때마다 포도나무 소출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의식을 빼먹지 않은 것은 포도나무가 술 이상의 생명과 관련한 의미가 있겠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The first person to see Noah lying bare and drunk was his father in Canaan. Ham looked at his lower body and said, "Go outside, go to your two brothers (22c)." Sem and Yvette covered their father's skin. And the text curses Ham when Noah wakes up from the booze. Jews feel that the fact that they did not skip the ceremony to praise God for giving them a grapefruit at every ceremony means that the vines are more life-related than alcoh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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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수 년 전에 쌍문 동으로 큐 티 모임을 다닐 때였습니다. 하루는 목욕탕 집 주인이 냉동실에 얼려놓은 극상품 포도송이를 간식으로 내 놓았는데 형태가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았었습니다. 저는 겨울에 얼려서 먹는 포도가 얼마나 황홀한 맛이었는지 지금도 입맛이 꿀꺽 다셔지는조건반사가 옵니다. 그 정도 내추럴한 당도의 포도를 먹다보면 저도 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전 적용을 해보겠습니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한 사실에 대하여 성경은 부정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It was decades ago when I went to a cutie meeting in Ssangmun dong. One day, the owner of the bathhouse offered me a snack of the finest grapes frozen in the freezer, and none of them were in disarray. I still get a conditional reflex that makes my mouth water. I think I can get drunk by eating grapes with that natural sugar content. I'll apply a twist. The Bible doesn't seem to mention Noah's intoxication with w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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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노아가 술에 취해 옷 벗고 잔 것을 몰상식으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노아는 자기 집에서 잤고, 못 볼 사람한테 민폐를 끼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일로 함이 저주를 받을 만큼 큰 죄를 지었는가도 의문입니다. 과연 당대의 의인이었던 노아가 술주정뱅이가 되었을까? 인고의 세월 속에서 내 인생과 신앙을 어떻게 지켜 낼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되도록 덮어주는가, 까발리는가? 내 행동은 사람과 세상에 의해서 평가되고 있음을 아는가?
I don't want to see Noah drunk, undressed, sleeping. Noah slept in his house, and I don't think he caused inconvenience to anyone he couldn't see. I wonder if Ham has committed a crime so great that he can be cursed with this. Did Noah, who was the righteous man of the time, become a drunk? How can I protect my life and faith in the years of humanity? Do I cover up other people's mistakes to make them work? Do you know that my behavior is evaluated by people and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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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에서 인류의 번성(18-19)
포도주에 취한 노아(20-21)
세 아들의 반응(22-23)
노아의 예언(24-27)
a.함의 아들인 가나안에 대한 저주:24-25
b.여호와를 찬송함:26
c.야벳과 셈을 위한 축복:27
노아의 죽음(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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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에서 나온(18a)
노아의 아들들은(18b)
셈과 함과 야벳이며(18c)
함은(18d)
가나안의 아비라(1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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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19a)
이 세 아들로 좇아(19b)
백성이(19c)
온 땅에 퍼지니라(1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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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20a)
농업을 시작하여(20b)
포도나무를 심었더니(2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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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를 마시고(21a)
취하여(21b)
그 장막 안에서(21c)
벌거벗은지라(2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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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의 아비(22a)
함이(22b)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22c)
밖으로 나가서(22d)
두 형제에게 고하매(2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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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과 야벳이(23a)
옷을 취하여(23b)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23c)
뒷걸음쳐 들어가서(23d)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23e)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23f)
그 아비의 하체를(23g)
보지 아니하였더라(23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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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 술이 깨어(24a)
그 작은 아들이(24b)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2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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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가로되(25a)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25b)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25c)
되기를 원하노라(2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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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26a)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26b)
가나안은(26c)
셈의 종이 되고(2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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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야벳을927a)
창대케 하사(27b)
셈의 장막에(27c)
거하게 하시고(27d)
가나안은(27e)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27f)
원하노라 하였더라(2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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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후에(28a)
노아가(28b)
350년을 지내었고(2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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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이 950세에(29a)
죽었더라(2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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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동행한 노아_ Noah, who was accompanied by wine
수치를 안겨준 아들_ a son of shame
수치를 가려준 아들들_ sons who shielded sh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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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가족들을 번성케 하시고 포도나무 소출을 주신 하나님 찬양을 받으소서. 복된 길은, 단정함 중에 소명을 따르고 은혜를 귀하게 여기며 타인을 축복하는 것이나이다. 주변의 상황을 현상으로만 보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하소서. 무미건조한 인생을 핑계로 세상에 취하여 거룩함을 팽개치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Praise the God of Noah, who thrives his family and gives them vine-gowns. Blessed are the ways of the blessed: to obey the calling of chastity and to bless others with grace. Don't just look at what's going on around you. Let the eyes of faith see. Use your dull life as an excuse to help the world not to abandon holiness.
2026.1.13.tue.Clay
신학 비평//
아들이 아비의 하체를 본 것이 왜 문제인가?
― 창세기 9:18–29 신학비평
1. 이 본문은 ‘성윤리’ 이야기가 아니다
이 본문을 흔히 성적 타락-근친상간 암시-술 취한 노아의 실수로 읽지만, 본문 자체는 그 어느 것도 명시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핵심 동사는 단 두 개입니다. “보다”(רָאָה, ra’ah) “말하다/고하다”(נָגַד, nagad) 함의 죄는 "보았다”가 아니라 "보고, 나가서, 말한 것”에 있습니다.
2. “하체를 본다”는 말의 신학적 의미
히브리 성경에서 **‘하체(עֶרְוָה, ervah)’**는 단순한 신체 부위가 아닙니다. 수치-취약성-노출된 권위-보호받아야 할 약함을 의미합니다. 노아의 하체는 ‘권위가 무너진 순간의 인간’입니다. 홍수 이후, 의인·구원자·새 아담으로 등장한 노아가 처음으로 철저히 인간으로 노출된 장면입니다.
3. 함의 죄는 ‘시선’이 아니라 ‘해석’이다
함은 우연히 본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고 → 나가서 → 형제들에게 고하였다” 이 순서는 사고 → 판단 → 공적 유포의 구조입니다. 함의 행동은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무너진 모습을 사건으로 소비하고 이야기로 만들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4. 셈과 야벳은 왜 ‘뒤로 들어갔는가’
셈과 야벳의 행동은 매우 과잉됩니다. 옷을 취함-어깨에 멤-얼굴을 돌림-뒷걸음침-보지 않음. 이 과잉 묘사는 도덕성이 아니라 언약적 태도를 강조합니다. 차이는 이것입니다. 수치를 사실로 만듦 수치를 관계 안에 묻음-노출을 이야기로 만듦 노출을 덮음-아비를 객체화 아비를 여전히 아비로 둠
5. 왜 노아는 ‘함’이 아니라 ‘가나안’을 저주하는가
여기서 많은 독자가 분노합니다. “왜 아들이 죄를 지었는데 손자는 저주를 받는가?” 이것은 윤리적 징벌이 아니라 역사적 예언 선언입니다. 노아는 개인 감정으로 저주하지 않습니다. 그는 언약의 선지자로 말합니다. 가나안 족속은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수치를 덮지 않고, 노출하고, 조롱하는 문화로 등장합니다. 함의 태도가 ‘문화’가 될 것을 예견한 말입니다.
6. 핵심: 이 본문은 ‘말의 윤리’에 관한 이야기다
이 본문에서 하나님은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의 결과를 통해 개입하십니다. 함의 말 → 저주, 노아의 말 → 예언 셈·야벳의 침묵 → 축복 말은 중립이 아닙니다. 수치를 말로 만들면 그 말은 역사를 만듭니다. “아들이 아비의 하체를 본 것이 뭐가 문제인가?” 문제는 이것입니다. 약해진 인간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이야기의 재료로 삼았다는 것(가십거리)입니다. 이는 단순한 불효가 아니라 언약 세계를 파괴하는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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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완전한 사람보다 수치를 덮을 줄 아는 공동체를 통해 역사를 이어 가십니다. 창세기 9장은 노아의 술 취함보다, 함의 해석이 더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홍수는 끝났지만, 인류의 위기는 이제 말과 시선의 문제로 옮겨왔습니다. “주변의 상황을 현상으로만 보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