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가야산伽倻山이 있는 합천․고령 지방이 옛 대가야의 땅이었으므로 가야산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신빙성이 약하다. 가야산은 옛 가야의 땅이 아닌 충남에도 있다.
가야산은 불교와 관련된 이름이라 생각된다. 가야는 석가가 깨달음을 이룬 곳이다. 또한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의 딴 이름이 우두산牛頭山, 설산雪山, 상왕산象王山, 중향산衆香山 등인 것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우두는 범어의 가야가 소를 뜻한다는 데서 그 관련성을 찾을 수 있으며, 설산은 석가가 고행한 곳이다.
또 상왕산은 코끼리 산이란 말인데, 코끼리는 불교에서 가장 숭상하는 동물이다. 여섯 개의 이를 가진 눈이 부시도록 흰 코끼리가, 마야 왕비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석가를 낳았다고 불전은 전하고 있다.
중향도 마찬가지다. 향은 부처에게 바치는 중요한 공양물의 하나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가야산은 가야국과는 관련성이 없으며, 불교와 관련되어 지어진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소쩍새 접동새
어느 어원사전에 접동새와 소쩍새는 같은 새이고, 접동새와 두견이는 다른 새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는 통상적인 쓰임과는 다르다. 접동새와 두견이는 같고, 소쩍새는 다르다. 두견이는 두견과의 새로 뻐꾸기 비슷하고, 소쩍새는 올빼밋과의 새로 부엉이 비슷한 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그렇게 실려 있다. 또 두시언해나 훈몽자회에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그러니 접동새와 두견이는 같은 새로 봄이 타당하다. 그런데 고금 시가에서 애달픈 정서를 환기하는 새로 수없이 등장하는 접동새를, 사전에는 두견이의 방언으로 정해 놓고 있으니, 이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봄 직하다. 접동새도 복수표준어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밤새도록 피를 토하며 울어대는 그 울음소리가 우리의 시정詩情에서 살아 들릴 것이다.
내 님이 그리워서 울며 지내니
산에 우는 저 접동새 나와 같구나
-정서의 「정과정」 한 절-
접동 / 접동 /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 와서 웁니다.
-김소월의 「접동새」 한 절-
접동새는 촉나라 임금 망제望帝에 얽힌 애달픈 전설 때문에 그 이칭도 많다. 꾸꾸기 두견杜鵑, 두견이, 두견새, 망제, 망제혼, 두백杜魄, 두우杜宇, 불여귀不如歸, 자규子規, 촉백蜀魄, 촉조蜀鳥, 촉혼蜀魂, 귀촉도歸蜀道, 시조時鳥, 제결鶗鴂, 주연周燕 등이 그것이다.
자규는, 천성이 착한 어린 망제가 자기가 구해 준 별령이란 자에게 도리어 쫓김을 당하여, 그 원통함을 가슴에 품고 죽어서 새가 되었다는 전설을 가진 새다. 그러기에 쫓겨난 단종이 유배지에서 남긴 시도 자규시子規詩다.
한 맺힌 새 한 마리 궁중에서 쫓겨나와 一自寃禽出帝宮
짝 잃은 외그림자 푸른 산속 헤매누나. 孤臣隻影碧山中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 못 이루고 假眠夜夜眠無假
해가 가고 해가 와도 쌓인 한은 끝이 없네. 窮恨年年恨不窮
자규의 울음 끊긴 새벽 멧부리 달빛만 희고 聲斷曉岑殘月白
피 뿌리듯 한 봄 골짝엔 지는 꽃만 붉구나. 血流春谷落花紅
하늘은 귀머거린가? 애달픈 이 하소연 어이 天聾尙未聞哀訴
듣지 못 하는고!
어쩌다 수심 많은 이내 귀만 홀로 밝은가! 何奈愁人耳獨聰
우리나라에도 접동새에 대한 애달픈 전설이 있다.
어머니를 잃은 열 남매가 새로 들어온 의붓어미 밑에서 살게 되었는데, 큰누이가 부잣집 도령과 혼약하자, 의붓어미가 이를 시기하여 그녀를 장롱에 가두었다가 끝내는 불에 태워 죽였다. 동생들이 슬퍼하며 타고 남은 재를 헤치자, 거기서 한 마리 새가 날아올랐는데, 그 새가 접동새라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소월의 시 접동새는 바로 이 전설을 바탕으로 하여 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