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0의세계 0의길
 
 
 
카페 게시글
공감글/좋은글/참고글 스크랩 현각죽이기 시작되나, 오만과 편견의 자현스님 기고문을 읽고
milkyway 추천 0 조회 206 19.02.08 05: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현각죽이기 시작되나, 오만과 편견의 자현스님 기고문을 읽고

 

 

 

 

 

 

 

요즘 한국불교에서는 외국인 출가자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큰 절이나 승가대학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외국인 스님들을 위한 국제선원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화계사국제선원이나 세종시 무상사 같은 곳 입니다. 심지어 연등축제 때 연등을 들고 행진하는 외국인 스님들도 볼 수 있습니다.

 

외국인 스님들을 볼 때 삭발한 모습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두상이 우리와 달라 삭발한 모습이 멋있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어떤 이는 섹시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외국인 스님들이 가사와 장삼을 입은 모습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훤칠한 키에 푸른 눈을 가진 고학력의 백인 스님이 두루마기를 걸치고 활보 하는 모습을 보면 장쾌해 보이기도 합니다.

 

현각스님이 탈한국불교를 선언 했습니다. 승단의 전근대적 사고방식과 기복에 따른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하며 한국불교를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화계사 국제선원이 해체과정을 걷고 있는 것에 대하여 지적 했습니다. 대체 화계사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요?

 

현각스님의 탈한국불교는 이미 몇 년 전에 시행 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한국을 떠나 독일에서 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그다지 세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현각스님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요? 페이스북에 여러 가지 내용이 있는데 이를 둘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그것은 절뺏기와 외국인수행자푸대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화라는 이름으로 절뺏기를

 

첫째, 절뺏기 입니다. 현재 무상사는 사단법인이라 합니다. 구체적으로 관음선종의 숭산국제선원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숭산스님이 조계종 소속이 아닌 별도의 사단법인을 만들어 놓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이에 따르면 숭산스님이 오늘날과 같은 상황을 예측하시고 입적 10년전부터 무상사 만들기에 돌입하신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세계를 돌며 시주를 부탁하여 오늘날 무상사가 생겨났다고 했습니다. 그런 무상사에서도 여러 차례 절뺏기 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조계종에서는 과거 정화라는 이름으로 수 없이 절뺏기를 했습니다. ‘정화하러간다는 말은 절뺏으로 간다는 말과 동의어인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수의 비구승들이 대다수의 대처승들을 몰아 내고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절뺏기습관은 잘 없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숭산스님 제자들이 설립한 뉴욕조계사도 절뺏기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합니다. 조계종에서 파견된 스님이 주지로 오게 됨에 따라 숭산스님의 수행방식과 달리 기복에 치우치다 보니 절이 두 쪽 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어느 법우님의 고발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발생한 뉴욕 조계사 사태에 대해 조계사의 한 회원으로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저는 20 여년 넘게 숭산스님의 제자, 묘지스님의 법우, 제자로 지내면서 조계사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뉴욕 조계사는 숭산스님께서 유언으로 남기신맨하탄에 꼭 한국 절을 세우라는 말씀을 깊이 받든 묘지 스님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가꾸어 온 절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묘지스님께서 갑자기 이 생을 떠나가신 것이 조계사에서 숭산스님의 법 전통을 배우며 마음을 닦아오든 저희 모두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숭산스님 문중에서 출가하시고 묘지스님의 속가 친 동생이신 도암스님을 조계사 주지로 모실 수 있게되어 모두 행복하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도암스님을 모신지 2년이 넘은 지금  뉴욕 조계사는 공동체의 분열이라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열 사태를 안타깝게 지켜본 저는 조계사를 사랑하는 한 도반으로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미주불교뉴스, <뉴욕조계사-2> 정현경 교수의 편지, 2014-11-18)

 

 

현각스님에 따르면 무상사는 외국인스님들과 외국인수행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보루와 같습니다. 이 마저도 가져 간다면 숭산스님의 원력도 끝나게 될 것입니다.

 

외국인 수행자 푸대접

 

둘째, 외국인 수행자 푸대접 입니다. 이는 화계사 국제선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이에 따르면 화계사의 기복에 대하여 그것은 대웅전에서 그리하는 것이야 그러려니 하겠지요.”라고 하면서 놀랍게도 숭산스님께서 외국인 스님과 일반수행자를 위해 국제선원을 3층으로 크게 지으셨습니다. 맨 위층 옥탑방 같은 선원이 있는데, 그곳을 사용하는 외국인스님들에게 까지 돈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라 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정말 돈을 받았다면 외국인 스님들과 외국인 수행자가 살만한 환경이 못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현각스님 페이스북 글에 따르면 문을 자꾸만 좁게 만들어서 지난 2-3년 간 외국인스님들 7-9명이 환속했다라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현각스님은 국제선원 해체작업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현각스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인하여 불교계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불교바깥에서도 중앙일간지와 방송에서 보도 될 정도로 파장이 크게 일어 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불교, 특히 조계종에서 직격탄을 맞고 있습니다. 이에 일부 스님들은 반론 글을 올리기도 합니다. 늘 그렇듯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선방에서 정진하는 스님들도 있고, 일선 포교현장에서는 악조건 속에서도 할 일을 다하는 스님들도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불교와 스님들이 비난 받는 것에 대하여 몹시 억울해 하는 것 같습니다. 굳이 허물을 들추어 낼 필요가 있느냐는 것 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지적하는 것에 대하여 한국불교는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현각죽이기 시작되나

 

현각스님은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한국불교 기득권층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이제 아웃(OUT)’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기득권프레임에 갇혀 있는 스님들이 반성의 기회로 삼으려 하기 보다 아마 현각스님죽이기로 반격을 시도하리라 봅니다. 그 신호탄이 나왔습니다. 박사학위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는 자현스님은 현각스님의 페이스북내용을 조목조목비판 했습니다. 더구나 현각스님이 잘 못알려진 것이라 관련 글을 삭제했음에도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에서는 이틀에 걸쳐 두 차례 메인 기사를 실었습니다.

 

현각스님을 비판한 자현스님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다만 불교TV(BTN) 사이트에서 강연한 것 몇 차례 보았으나 즉흥적으로 그때그때 생각나는 듯이 말을 하며 좌충우돌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국제회의장에서 세미나할 때 직접 보았는데 그때 매우 황당한 말을 들었습니다. 초기불전연구원 각묵스님과 언쟁을 하면서 갑자기 청중을 향하여 혹시 여러분 중에 범천이나 제석천 등 초기경전에 나오는 초월적 존재를 본 사람 있으면 저에게 문자 주십시오라 했습니다. ‘종단출범 50주년과 한국불교 계율의식의 재고라는 세미나에서 일어난 일 입니다. 이 세미나에서 자현스님은 1973년 한국불교의 고승들이 태국율사로부터 비구계를 받은 것에 대하여 “태국불교에 붙이자는 소리입니까?”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1973 태국계맥의 전수, 쾌거인가 헤프닝인가(2012-10-20)”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한국말도 제대로 못한다고

 

자현스님이 작심하고 현각스님을 비판했습니다. 이를 현각죽이기 신호탄으로 봅니다. 자현스님은  불교신문 논설위원이기도 합니다. 불교신문에 따르면 자현스님의 페이스북글에 대하여 더 자세한 입장을 듣기 위하여 원고집필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자현스님의 기고문에서 문화우월주의와 기복과 출재가와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자현스님은 현각스님의 문화우월주의에 대하여 비판합니다. 한국에서 비구생활 한지 25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한국말 하나 제대로 못한 것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에 유학가면 그 나라 말을 배워서 학위까지 따는 마당에 25년 살면서 한국말 조차 제대로 못한 것은 한마디로 백인우월주의에다 하바드라는 학벌우월주의에 빠져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아마 자현스님이 박사 학위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 자부심에서 한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반면 열등함에서 오는 자만일 수도 있습니다.

 

자현스님이 가지고 있는 학위를 보면 불교와 무관한 것도 있습니다. 그건 그렇다치고 출가한 스님이 세속에서나 받을 수 있는 학위를 여러 개 따는 것이 타당한 것일까요? 물론 스님도 공부할 수 있고 학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과 인연을 끊고 가족과 인연을 끊고 거듭 태어난 스님들이 세상의 것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며 세상에서 추구하는 명예를 갖고자 한다면 출가정신에 맞는 것일까요?

 

현각스님은 한국불교에 잔존하고 있는 유교적 관습을 비판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상명하복의 질서입니다. 그러나 평등한 승가에서 가부장적 질서를 강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입니다. 이런 정신으로는 한국불교가 세계화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현스님은 이를 비판한 현각스님에 대하여 한국을 너무 쉽게 보고 만만하게 보고 낮추어 보았기 때문이라며 역공합니다. 또 한국말도 못하는 스님이라 하면서 하버드라는 유교문화 속에 존재하는 사대주의와 학벌주의에 의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분이다.”라고 맹공을 퍼 부었습니다.

 

자현스님의 기복론

 

두번째로 기복에 대한 것입니다. 자현스님은 기복을 정당화 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에는 기복적인 요소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말하면서 한국불교가 조선 500년의 숭유억불시기를 넘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화려한 교학()’빛나는 정신문화()’도 아닌 바로기복이었다.”라고 강변합니다. 기복에 대한 하나의 예로서 예불문에 나오는 명훈가피를 들고 있습니다.

 

자현스님의 기복론에 어느 정도 공감은 하지만 그렇다고 전부 수용할 수 없습니다. 현각스님이 지적한 기복은 한국불교가 안고 있는 고질적 병폐에 대한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천도재같은 것입니다. 천도재가 장점도 있을 수 있으나 천도재의 단점도 많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천도재가 천정을 치자 이제 납골당사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죽음장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장이나 율장 그 어디에도 천도재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있습니다. 아귀가 된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큰 공덕을 짓는 것이라는 가르침은 있으나 마치 돈으로 매수하듯이 천도재를 지내 좋은 곳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은 거짓이라 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으로 알 수 있습니다.

 

 

“촌장이여,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커다란 큰 돌을 깊은 호수에 던져 넣었다고 합시다.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그것을 두고 ‘커다란 돌이여, 떠올라라. 커다란 돌이여, 떠올라라’ 라고 기도하고 찬탄하고 합장하고 순례한다면 촌장이여, 그대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커다란 큰돌이 많은 사람이 기도하고 합장하고 찬탄하고 순례한 까닭에 물 속에서 떠오르거나 땅위로 올라올 것입니까? (S42:6)

 

 

여기서 큰돌은 악행을 하여 악업 지은 것을 말합니다. 오계를 지키지 않아 악처에 태어날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도한다고 하여 선처에 태어날 수 없음을 말합니다. 반면 선업을 지었다면 깃털처럼 가벼워져서 버터나 기름처럼 물위에 떠 오를 것입니다. 오계를 지키는 생활을 하여 선처에 태어날 것임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저주하는 기도를 하여 악처로 떨어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이유로 죽은 자에 대하여 천도재를 지내 주는 것이 의미 없음을 말합니다.

 

자현스님은 한국불교에서 기복은 교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자현스님은 봉은사 일년 총수입이 210억원임을 언급하면서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1년 수익규모가 수천억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 정도 금액으로 한국불교가 기복으로 돈을 밝힌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출재가에 차등이 있다고?

 

세번째로 출재가와의 관계입니다. 현각스님에 따르면 한국불교 불자들의 굴종적인 신앙행태를 비판했습니다. ‘주인으로 살자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주종관계로 살아 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대하여 자현스님은 스님과 신도의 관계에 대하여 차등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말합니다. 먼 옛날 제사장이 다스리던 시대부터 지금까지 성직자와 신도가 완전 평등한 종교가 존재했는지 의문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부처님도 승가와 재가를 엄격하게 구분했다는 자현스님의 주장입니다. 이에 대한 예로서 비구와 비구니로 이루어져 있는 승가를 들고 있습니다. 승가에 재가의 남자신도와 여자신도가 낄 여지가 없습니다. 초기경전을 보았거나 불교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현전승가가 사부대중승가가 아니라 비구와 비구니의 승가라는 것은 상식에 속합니다. 그럼에도 출가와 재가에는 엄연하게 차등이 있음을 말합니다. 이런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차등이 차별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부처님이 출가와 재가를 차등하고 차별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자현스님은 출가와 재가의 가르침은 달랐다고 주장하면서 출가자에게는 4성제·8정도·3과설을 주로 가르치셨다면, 재가인에게는 보시·지계·생천의 3론이 일반적인 가르침이었다.”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재가신자 마하나마가 부처님에게 세존이시여, 재가신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S55.37) 라며 물어 보았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마하나마여, 부처님에 귀의하고 가르침에 귀의하고 참모임에 귀의합니다. 마하나마여, 이렇게 해서 재가신자가 됩니다.”라 했습니다. 불자가 되는 첫 번째 조건이 삼보에 귀의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승보는 분명히 승가입니다. 비구와 비구니의 승가공동체를 말합니다.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승가공동체에 귀의 해야 합니다. 한글삼귀의문에서 말하는 승보로서 거룩한 스님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마하나마의 질문에 답을 해 줍니다.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준수하는 삶과 함께 믿음과 보시와 지계의 삶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보시하고 지계하면 하늘나라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것이 시계생천의 가르침입니다. 자현스님은 여기까지만 말했습니다. 이어지는 가르침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재가자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보시하고 지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가르침을 실천하면 성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마하나마가 세존이시여, 재가신자가 지혜를 갖춘다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마하나마여, 세상에 재가신자는 발생과 소멸에 대한 고귀하고 통찰력 있는 지혜를 갖추고 올바른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지혜를 성취합니다. (S55:37)

 

 

재가불자가 되려면 삼보를 믿고 오계를 준수하면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지혜를 갖추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시계생천의 쉬운 가르침부터 심오한 가르침까지 차례로 설했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1) 보시를 설함, 2) 계행을 설함, 3)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설함, 4) 감각적 쾌락의 욕망의 재난과 욕망의 여읨의 공덕을 설함, 5) 네 가지 거룩한 진리와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을 설함, 6) 수행적 관점을 설함.’라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차제설법(?nupubb?katha?  kathess?m?ti)’이라 합니다. 만일 스님들이 신도들에게 보시에 대한 가르침만을 강조하면서 사성제 등 심오한 가르침을 외면한다면 직무유기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재가자에게도 출가자와 똑같이 사성제를 통하여 지혜를 성취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재가불자가 단지 보시하고 지계하는 것으로 머물지 않고 수행을 통하여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재가불자는 더 이상 신도라 부를 수 없습니다. 재가수행자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출가와 재가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재가자가 현전승가의 일원은 될 수 없으나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면 성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앙굿따라니까야를 보면 부처님 80대 제자에 재가신도가 포함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으뜸 가는 제자중에는 사부대중이 포함 되어 있습니다. 우빠사까(청신사) 9, 우빠시까(청신녀) 9명 포함 되어 있어서 단지 보시하는 것만이 재가의 의무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자현스님이 말한 재가인에게는 보시·지계·생천의 3론이 일반적인 가르침이었다.”라 하여 출재가의 차별을 두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자현스님의 견해는 편견

 

자현스님은 현각스님에 대한 비판글을 불교신문에 두 차례 기고하면서 현각스님의 한국불교관에 대하여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그리고서는 현각스님의 차등에 대한 비판은 불교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단견斷見 불과하다.” 라 했습니다. 하지만 자현스님의 불교에 대한 인식은 유교적 사고방식이 농후합니다. 전통을 지킨다는 이름하에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글쓰기를 한 것입니다. 마치 외국인을 혐오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기복을 정당하고 하고, 심지어 출재가의 차별을 이야기합니다. 자현스님의 전근대적 사고방식과 기득권 프레임에 입각한 불교관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자현스님의 견해는 불교를 올바로 이해 하지 못한 단견에 불과 합니다. 자현스님의 기고문에서 한국불교의 오만과 편견을 보았습니다.

 

 

 

2016-08-03

진흙속의연꽃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