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26. 입춘대길 건양다경
지난 토요일에 제가 선생님으로 모시는 손님이 오셔서 24절기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평소 교훈이 되는 좋은 말씀을 많이 주시는 어른이신데, 특히 절기가 입춘이 가까운 터라 그에 대해 여러 가지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입춘을 맞아 가게 앞에 입춘방을 붙이면서 그날 들었던 말씀들을 정리해 봐야겠다 싶어져서 글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래는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들을 순서에 가림 없이 옮겨본 것입니다.
2월 4일 12시 58분이 입춘입니다. 절기상으로는 12시 59분부터가 새해예요. 입춘을 맞으면 예부터 기둥이나 바람벽, 문에 한자(漢字) 싯귀를 적은 춘련(春聯)을 써붙이고 송축(頌祝)하였는데, 이것을 춘축(春祝), 또는 춘첩자(春帖子)라고 하였습니다. 산업이라고는 농업밖에 없던 시절이니 농사의 풍·흉년은 최대 관심사였고, 자연히 그에 관계된 입춘 풍습도 발달되었는데, 일예로 보리뿌리 점 같은 것은 전국에 걸친 풍습이었다지요. 뿌리가 세 갈래 이상으로 갈라졌으면 풍년이고 두 갈래면 평년작, 한 가닥이면 흉년이라고 보았다더군요. 벼농사는 지어서 ‘돈 만들어’ 자식들 학자금으로 쓰고, 정작 농사를 지은 분들은 보리를 먹었지요. 서민들의 주곡이 쌀이 아니고 보리였기 때문에 보리농사의 풍흉은 보리 고개를 어떻게 넘느냐의 갈림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농가월령가에는 입춘 무렵에 할 일로 지붕잇기, 도롱이와 삿갓 준비하기가 적혀 있다고 하네요. 도롱이는 ‘짚이나 띠 따위를 엮어 만든 옛날 우비’라고 하니 비가 갑작스럽게 와도 논에 나갈 수 있는 채비를 갖추는 것이 되겠습니다.
가장 많이 써 붙이는 입춘방은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입니다. 건양(建陽)은 고종33년부터 다음해 7월까지 사용한 조선시대 최초의 연호였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깊은 것 같습니다.
‘철을 안다’혹은 ‘철들었다’라는 말을 아시지요? 농촌 어린아이가 씨 뿌리는 절기를 어림하게 되었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하기는 해마다 입춘을 맞고 해마다 철이 들어보지만 나이 들은 것만 확인했을 뿐 크게 달라지지도 못했지만요.
해주신 말씀을 대강 정리해 본 후 내친김에 인터넷을 열어 입춘방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외에도 좋은 말씀들이 많더군요. 살아오는 동안 입춘 절기 때마다 대했을 글귀들인데 무심히 넘기고 지나쳤던 말씀들의 뜻을 이제야 제대로 새기게 되었다 싶어 새삼 ‘입춘 철이 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부모는 천년을 장수하시고 자식은 만대까지 번영하라.
수여산 부여해 (壽如山 富如海)
산처럼 오래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여라.
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 (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생기고 문을 열면 만복이 온다.
거천재 래백복 (去千災 來百福)
온갖 재앙은 가고 모든 복은 오라.
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 (災從春雪消 福逐夏雲興)
재난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행복은 여름 구름처럼 일어나라.
인터넷에서 찾아본 입춘방의 문구들에 홀딱 빠져 되풀이해 읽었습니다. 어릴 적 할아버님이 바람벽에 써 붙이시곤 하시던 글귀들인데 그 좋은 말씀들을 이제야 제대로 대한다 싶어 그간의 무심했던 삶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하여 이번에야말로 뿌리를 뽑겠다는 심정으로 소장하고 있는 책들에서 입춘 풍습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아래는 그런 연유로 찾게 된 옛 왕조시절의 기사입니다. 조선조에서는 입춘날이면 관상감(觀象監)에서 주사(朱砂), 즉 모래로 갠 붉은 물감으로 벽사문(辟邪文)을 찍어 대궐에 바치고 그것을 문도리에 붙였다고 하였는데, 책에서 찾은 벽사문(辟邪文)의 내용을 옮겨 봅니다.
甲作食歹匈 脾胃食虎 雄伯食魅 騰間食不詳 攬諸食咎 伯寄食夢 强梁粗明共食磔死寄生 委隨食觀 錯斷食巨 窮奇騰根共食蟲 凡使十二神 追惡凶 嚇汝軀 拉汝幹節 解汝肌肉 抽汝肺腸 汝不急去後者爲糧 急急如律令
갑작(甲作)은 흉측한 것을 잡아먹고, 비위(脾胃)는 호랑이를 잡아먹고, 웅백(雄伯)은 도깨비를 잡아먹고, 등간(騰間)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잡아먹고, 남저(攬諸)는 허물을 잡아먹고, 백기(伯寄)는 환상을 잡아먹고, 강량(强梁)과 조명(粗明)은 함께 책형(磔刑)으로 죽은 책사(磔死) 귀신과 이에 기생하는 귀신을 잡아먹고, 궁기(窮奇)와 등근(騰根)은 둘이 함께 벌레를 잡아먹는다. 무릇 이 열 두 귀신을 시켜 흉악한 것들을 내쫒기 위해 네놈들을 위협하여 몸뚱이를 잡아다가 허리뼈를 부러뜨리고 네놈들의 살을 찢고 내장을 뽑으려 한다. 네놈들 중 빨리 서두르지 않고 뒤에 가는 놈들은 열 두 귀신의 밥이 될 터이니 율령을 시행하듯 빨리 나가도록 하라.
갑작(甲作)이니 비위(脾胃), 웅백(雄伯), 등간(騰間) 등은 귀신의 별칭이라지요. 아마 인간에게 수호령 같은 역을 하는 이로운 귀신인 모양인데, 위의 벽사문은 원래 중국 송나라 때의 납일(臘日) 전날 큰 나례(儺禮), 즉 섣달그믐 밤의 귀신 쫒는 행사 때의 귀신을 쫓는 장면에서 초라니-제의를 위해 선발된 열 살 남짓한 아이들-가 화답하던 가사라고 하는군요. 게서 문구를 취해 부적을 만드는데 문에 붙이는 첩자에는 신도을루(神荼鬱壘-뭇 귀신을 다스리는 도삭산의 두 귀신)라고 네 글자를 쓴다고 합니다. 입춘날 뿐 아니라 단오날에도 그와 같은 것을 써서 부적을 붙여 귀신을 물리쳤다네요. 저는 위의 글을 읽으며 귀신의 힘을 빌려 악귀를 쫓던 처용의 설화를 연상해 보았습니다.
위의 벽사문에 연한 연구(聯句) 중 대귀(對句) 몇 가지를 발견했기로 옮겨 봅니다.
문신호령 가금불상 (門神戶靈 呵噤不祥)
각 집마다 신령이 있어서 상서롭지 못한 것을 물리친다.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평안하여 집집마다 넉넉하다.
우순풍조 시화세풍(雨順風調 時和歲豊)
비바람 순조로워 시절이 평화롭고 세월이 풍요롭다.
전에 불교서적을 들추다가 ‘입춘 날은 절집에서도 행사가 있다’는 기사를 보았던 기억이 나서 역시 ‘내친김에’ 다시 찾아보았더니 “조선조 때는 부모은중경 중의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아아나 사바하(襲謨三滿多沒點晴嗚流潑襲要脚請)’라는 진언을 인쇄하여 나누어 주는 풍습이 있었다”고 되어 있더군요. 진언의 뜻까지는 알 수 없지만 부모은중경이 “나를 잉태하고, 쓴 것은 뱉고 단 것은 먹여 주시며, 나를 키워주고, 먼 길 떠나는 자식을 걱정하신 부모님의 은혜는, 양어깨에 모시고 수미산을 수억만 년 돌아다녀도 결코 다 갚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하니 무척 좋은 말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습니다.
입춘방에 대해 찾아보며 “좋은 풍습은 시대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해진다”싶어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새봄이 오기 직전의 절기에 이웃간에 한 해의 무사태평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던 풍습이 먼 훗날 우리 세대가 끝난 후의 다음 세대까지, 그리고 또 다음 세대에까지도,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며, 모처럼 철을 내서 가게 유리문 옆에 써 붙인 입춘방의 뜻을 다시 한 번 새겨 보았습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이 시작되니 나라 안팎이 크게 길하고 모든 국민에게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철이든다는게 이런뜻이있는줄 알았네요 감사해요
저도 얻어들은 지식입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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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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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감사합니다
방문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읽어 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잘 읽고 갑니다.
재밌네~~~ ㅋㅋㅋ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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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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